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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5/3(월)
농사 안 짓기 운동이라도 펼쳐야 할 판이요" 르포 ; 위기의 농촌  
“농사 안 짓기 운동이라도 펼쳐야 할 판이요”
르포 _ 위기의 농촌

 

월간말 editor@digitalmal.com

 

김동현 객원기자 _ storykim@kornet.net

제야의 타종 소리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방송이 한 해의 마감을 발악적으로 알리고 있을 때 기자는 길을 떠났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국회비준 반대를 외치며 2003년의 마지막 날을 떠나 보낸 농민들의 뒤를 따라, 그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나섰다.

   
2003년 12월 12일 가금 인플루엔자(조류독감)가 발생한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새해 첫날이었지만,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연말 연시의 들뜬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음성군에서 만난 택시기사 권아무씨는 “경기가 안 좋기는 어디나 똑같은 것 아니냐”며 기자의 질문을 잘라 버렸다.

음성군에서 약 10km 정도 떨어진 삼성면사무소 인근의 음성농협은 유달리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대부분 각종 융자금의 이자를 상환하기 위해 농협을 찾은 농민들이었다.


“2010년 쌀소득은 현재의 30% 이하”

12월 29~30일 서울에서 한겺Ⅷ?자유무역협정 비준 반대 투쟁을 마치고 내려왔다는 이양석씨(43)는 “일년 농사 지어서 이자 갚다 보면 우리 식구 먹을 쌀 다섯 가마니밖에 남는 게 없다”며 말을 열었다.

“이자라도 갚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부농 축에 속하는 거지요.”

지난 한 해 한국 농촌은 그야말로 위기의 연속이었다.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와 최근 한겺Ⅷ?자유무역협정까지…. 한국 농촌은 지금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해 10월 28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주최한 동북아 농정연구포럼 창설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는 이와 관련한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서진교 연구원은 이날 멕시코 칸쿤 WTO 각료회의의 농업분야 선언문 초안을 기초로 추정할 때 최악의 경우, 2010년 우리 농가의 쌀 총소득이 현재 3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와 같은 예측은 앞으로 10년 이내에 쌀 생산 농가의 대규모 붕괴 현상이 발생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굳이 연구소의 연구결과가 아니더라도 농가들은 개방에 따른 농촌경제의 몰락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음성에서 만난 농민들 대부분이 평균 1억 원 이상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 국회 통과가 지연되고 있는 농가부채특별법만이 이들의 유일한 희망이다.

“농사 짓는 사람들이 무슨 빚이 많으냐고?”

음성에서 만난 40대의 농사꾼 노장식씨(음성군 삼성면)가 그 이유를 설명해 줬다.

“농기계 값이 얼마인 줄이나 압니까. 트랙터, 콤바인 등 농사 짓는 데 필요한 농기계 값만도 1억 원이 넘어요. 정부에서 기계화 영농을 하라고 농기계 구입을 부추기면서 농가 부채만 늘어났다니까….”

정부시책을 따르다 보면 어느새 빚더미에 앉게 되는 곳이 한국의 농촌이다.

1970년대 식량증산운동을 하라고 해서 통일벼를 심었고, 그 후 기계화 영농정책에 따라 융자를 끼고 농기계를 샀던 사람들. 그들이 떠안은 빚은 바로 정부의 농업정책에 대한 신뢰의 대가였다.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하면 망한다.”


엎친데 덮친 조류독감

삼성면엔 조류독감으로 피해를 입은 축산농가가 많다. 1만여 마리의 오리를 폐기한 이동기씨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앞으로 6개월 동안은 오리를 키울 수 없게 됐어요. 그동안의 시설투자비와 생계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조류독감이 발생하자 농림부와 음성군은 발생지로부터 반경 3km 이내를 ‘위험지역’으로 3~10km는 ‘경계지역’으로 설정, 방역대책을 마련했다.

경계지역 내에 있는 축산농가의 경우 ‘이동제한 기간’ 동안엔 가축을 이 지역 밖으로 반출할 수 없다. 특히 위험지역의 경우 가축 분뇨의 농장 밖 반출도 금지된다. 더 이상의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다.

당국이 이번에 설정한 ‘이동제한 기간’은 ‘30일 이내’다. 그러나 하루라도 빨리 생계를 이어야 하는 축산농가의 입장에서는 종료시점을 분명히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동기씨의 경우 오리 사육 규모는 약 1천 평. 1평당 시설투자비가 15만 원 정도 들었다. 총 시설투자비만도 1억5천만 원이다. 그러나 이동제한 기간이 끝난다하더라도 국내 원종장에서 씨오리 입식이 이뤄질 가능성은 적다. 국내 원종장의 씨오리 수요가 턱없이 부족한데다, 더욱이 조류독감 발생지역에서 생산된 오리를 기꺼이 입식하려고 할 것 같지는 않다.

결국 이씨는 6개월 정도의 허송세월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동안의 시설투자비에 대한 이자 상환과 생계비 문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 것이다.

“말하면 뭐해유, 이젠 할말도 없어유”라며 황급히 자리를 떠난 이동기씨. 그의 뒷모습이 너무나 허탈해 보였다.

음성농협에서 만난 농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조류독감 문제며, 시장 개방 문제며, 당장 돌아오는 융자금 상환문제 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난 오후 세 시가 넘어서야 이들은 인근 자장면 집에서 자장면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랬다.

조류독감 발생 초기에는 이 곳 자장면 집도 장사가 안됐다고 말하는 이들은 자장면을 안주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고단한 그들의 삶을 애써 삼켰다.

누군가 내뱉은 다음과 같은 발언은 오기였을까, 술주정이었을까, 아니면 기자에게 애써 과시해 본 자존심이었을까.

“내가 죽고, 네가 죽어도 농사는 지을 수밖엡. 다른 희망이 없잖아.”

   
“‘농사 파업’이라도 벌이고 싶다”

음성에서의 짧은 하루를 마치고 기자는 전라남도 나주로 향했다.

나주는 1차 산업 비율이 전체 산업규모의 47.4%에 이르는 농업도시다. 음성에서 버스를 타고 청주로, 청주에서 고속버스로 광주, 그리고 나주로.

그 짧고도 긴 길에서 기자는 겨울의 빈 들판과 무수히 마주쳤다. 봄에서 가을까지 농민들의 수고로움이 가득했던 들판은 저물어 가는 겨울햇살 아래 그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부관료들은 한겺Ⅷ?자유무역협정에 쌀, 사과, 배가 협상 예외품목으로 지정됐기 때문에 비준안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쌀 농사에 미치는 영향은 지극히 적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농촌에서 체감할 수 있는 개방의 바람은 이미 너무나 거세다.

땅을 경외하며 살아온 농민들이 땅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저 겨울 들판을 농민들이 그들의 부산한 수고로움으로 지켜나갈 것이라는 장담은 그래서 쉽지 않다.

나주만 해도 그렇다.

최근 6년간 나주지역의 농업인구는 1만5천6백54명이나 감소했다. 매년 2천5백 명이 넘는 농민들이 땅을 등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60세 이상의 농업인구는 전체 농업인구의 30%를 넘은 1만4천여 명에 달한다.

한때 영산강을 따라 곡물을 수송하던 배들로 나주지역에서는 제법 큰 상권을 형성했던 나주시 영산포, 그리고 나주 시내 곳곳에는 한겺Ⅷ?자유무역협정 비준 반대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새해 첫날 나주의 풍경은 현수막에 쓰여진 글귀만큼이나 절박했다. 나주농민회 정영석 사무국장은 “지금 농민들은 자포자기 심정”이라며 운을 뗐다.

“조류독감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축산농가들의 판로 자체가 없다는 것이 더욱 심각합니다. 나주 지역의 닭과 오리 사육농가들의 생산물량을 소화하던 업체가 12월 부도를 냈어요. 이에 따른 지역 농가들의 피해규모만도 2천7백억 원이 넘을 것 같아 걱정이 많습니다.

우리가 FTA에 반대하는 이유도 농민들만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농업 생산기반이 무너지면 당장 우리들의 생계에 문제가 닥치지 않습니까. 칠레가 농업국가라고는 하지만, 중요 핵심 사업들은 거의 미국에 본거지를 둔 다국적 기업이 장악하고 있어요. 미국의 압력, 미국 내 다국적 기업의 압력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러나 ‘도시’에서는 농민들의 이 같은 절박감을 그리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 국장은 이에 대한 섭섭함과 소외감을 다음처럼 ‘과격한’ 어투로 쏟아냈다.

“우리 농민회 회원들끼리는 이런 이야기까지 합니다. ‘정말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우리 먹을만치만 딱 짓고 말자. 도시 사람들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두고보자.’ 당 장 농민들이 쌀 생산 안 하면 어찌 될 건지 짐작이나 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이젠 정말 ‘농사 안 짓는 투쟁’이라도 해야 할 판이요. 지금 농촌은 이렇단 말입니다.”

그의 발언엔 농정에 대한 극도의 불만, 정부의 FTA 대책에 대한 불신. 그리고 언론과 도시민에 대한 농민들의 소외감 등이 농축되어 있었다.

 “차라리 농사를 짓지 않겠다”니…. 그것은 ‘파업’이었다. 따지고 보면 누가 농민들에게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의무를 지운 것은 아니다.

 그들이 파업을 하고, 식량대란이 일어난다고 해서 누가 감히 ‘부당 노동행위’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1년 내내 농사를 짓지만 생계비를 건지기도 어렵고, 정부마저 농업을 포기했다고 간주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오렌지 수입하면 다른 과일들 피해 안 볼 것 같습니까. 감귤만 피해 본다는 것은 말짱 거짓말이요.

지금처럼 수입농산물에 대한 정부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책 없는 개방의 결과는 뻔합니다. 작년에 태풍 매미 때문에 배추값이 금값이었고. 평당 1만천 원에 거래됐는데 지금 얼마 하는지 아십니까. 평당 2천 원도 안 나가요.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킨다고 중국산 배추를 들여왔기 때문이오. 정부의 저농산물 정책! 문제 있습니다. 농민들만 죽도록 하잖아요.”

정 국장의 발언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요약하자면 “바뀐 것은 하나도 없고” “운동권의 생리를 아는 사람들인 만큼 더 악랄하게 군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농민이 아니라 단지 ‘농민운동권’만의 것이라고 여겨도 되는 것일까. 조금 거친 단어들이 나오지만 그대로 옮겨 본다.


“농촌폭동 없는 게 신기하다”

“막말로 농민들은 그동안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만 했습니다. 그 결과가 뭡니까. 영농후계자들, 우리 지역에 남아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영농 성공사례라고 정부에서 추켜세웠던 그 사람들, 속으로는 골병들었습니다. 빚은 빚대로 지고, 야반도주하는 사람들마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고요? 바뀐 게 도대체 뭡니까. 절차적 민주주의? 이거 다 개뿔입니다. 바뀌면, 세상이 바뀌면 우리는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바뀐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민중의 편에 서서 싸워줄 것으로 기대했던 노무현 정권도 이제 우리들을 위해 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악랄하게 탄압하고 있습니다.

5?공보다 더 나쁜 놈들입니다. 운동권의 생리를 아는 사람들이 농민운동 깨기 위해 갖가지 술책들을 쓰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압니다. 농민들은 더 이상 시골 무지렁이가 아닙니다. 올해만 39번이나 상경투쟁을 했습니다. 이게 무엇을 말합니까. 요즘 같으면 폭동 안 일어나는 게 신기합니다.”

한바탕 독설을 퍼부은 정 국장. 시설농사를 하는 그도 만만치 않은 규모의 부채를 안고 있다. 그나마 자신은 나은 편이라고 했다. 평균 3~5억 원. 많게는 10억 원까지 부채를 안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빚으로 빚을 막는 농촌. 빚 때문에 이혼을 하는 농가. 새벽이면 언제 누군가의 집이 빌지 모르는 농촌의 현실. 그래도 그 엄혹한 현실 속에서 꿈을 찾고 싶다고 정 국장은 말했다.

“찾고 싶다. 농사를 지어야 하는 이유를. 내가 사는 이유를. 그래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싶다.”

전라남도 나주시 왕곡면 양산리. 마을 들머리에 걸려진 ‘미국산 수입 생우 전량 폐기하라’는 문구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10월 21일 미국에서 들여온 수입 생우 때문이다. 나주지역 한우농가들은 이 지역의 한 수입농가에 입식된 미국산 생우의 사료반입을 막으며 열흘이 넘게 농성을 하고 있다.

한우농가들은 미국산 수입 생우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수입육은 안되고 수입 생우는 괜찮다?

지난해 10월 21일 미국에서 들여온 수입 생우는 모두 7백62두. 검역 과정에서 8마리가 1종 가축 전염병인 ‘블루텅 병’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됐다.

블루텅 병에 감염된 소들은 폐기처분됐지만 나머지 미국산 생우들은 모두 수입 농가에 입식됐다. 미국산 수입 생우가 입식된 지역은 전남의 나주,영암과 경기도 화성시.

한우 농가들은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으로 국내에 수입된 미국산 냉동육과 가공식품 등을 전량 회수하고 있는데도, 광우병 발생 지역에서 들여온 수입산 생우에 대해서는 아무런 방역대책 없이 농가에 방치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언급된 수입농가에 입식된 미국산 생우는 모두 1백53두. 한우 농가들은 생우들이 수송과정에서 블루텅 병의 원인인 능애모기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1월 1일, 농민들은 트랙터와 드럼통으로 축사 앞 도로를 막고 미국산 생우에 대한 대책을 농림당국에 요구하고 있었다.

농성장에서 만난 이승헌씨는 “광우병은 3~4년 정도의 잠복기간을 지니고 있다”며 “현재 입식된 생우들은 2년 내에 도축돼 시중에 유통, 판매되기 때문에 미국산 소가 광우병에 걸렸다면 소비자들은 광우병에 걸린 소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미국산 수입 생우들은 현재 미국 아이다호주에서 매입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우농가들은 광우병이 발생한 미국에서 들여온 소가 이처럼 무방비로 노출될 경우, 인근 한우 농가들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미국산 수입생우가 국내산 육우로 판매되고 있는 현실에서 블루텅 병, 광우병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는 생우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산 수입생우를 둘러싼 수입업자와 한우농가들의 싸움은 우리 축산농가가 겪고 있는 오늘의 모습이다.

 

월간말 2004년 2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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