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 사랑 :: [전문기자 칼럼] 갈등 해결, 정부부터 변해야

[중앙일보 강찬수] 4년 만에 타결된 북핵 6자회담을 보면서 8년째 갈등을 빚고 있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떠올린다. 답답한 마음부터 든다. 적대적 관계가 아닌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있는가 싶다.

새만금 사업 재개 여부를 놓고 논란이 거셌던 2001년 봄에 찬성 주민과 반대 주민, 환경단체와 전북도, 농림부와 환경부 관계자, 전문가 등이 토론회를 열긴 했지만 단상과 단하에서 고성이 오간 기억만 남아 있다. 북핵 문제처럼 며칠씩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열었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개발사업을 둘러싸고 한쪽에서는 경제적 이익을, 다른 한편에서는 생태계.문화유산 등 추상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 지율 스님의 단식에서 보듯이 절대 다수가 찬성한다고 해서 갈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환경조사가 진행 중인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도, 11월 주민투표를 앞둔 방폐장도 걱정이다. 환경조사 결과에 깨끗이 승복할까, 방폐장 후보지 가운데 한 곳으로 압축된 후에 일부 주민이나 인근 자치단체의 반발은 없을까.

한탄강댐이나 경인운하 문제도 남아 있고 최근에는 호남고속철도의 계룡산 관통 문제도 새롭게 불거지고 있다.

개발사업을 둘러싼 갈등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는 지난 5월 '공공기관의 갈등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회 전반의 갈등 예방과 해결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시책을 수립.추진해야 한다.

또 공공기관의 장은 공공정책 등의 수립.시행.변경이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이해 상충으로 과도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사전에 갈등 영향 분석을 실시하고, 이견을 조정하기 위해 갈등조정회의를 둘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이 법안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개발을 맡고 있는 공공기관에서는 사업의 결정 권한을 주민.환경단체에 넘겨주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반면 시민단체에서는 갈등의 당사자인 정부.공공기관이 갈등을 관리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맞선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법을 만들려는 정부가 여전히 갈등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부가 지난해부터 135건의 개발사업에 대해 환경 피해가 우려된다며 부(不)동의 혹은 조건부 동의라는 의견을 건설교통부 중앙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 제시했으나 실제 부결된 것은 5%에 불과했다.

이런 가운데 한덕수 부총리는 "환경영향평가 기간을 단축하는 등 환경 규제가 좀 더 유연하게 실시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금도 사업자가 직접 실시하는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개발의 면죄부'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기간을 더 줄인다면 부실 평가를 낳게 되고, 이는 다시 천성산 터널처럼 갈등의 원인이 될 우려가 크다.

'갈등 관리법'이 정부의 개발정책을 정당화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우려를 불식하려면 정부.공공기관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려는 자세부터 바꿔야 한다.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서로가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nvirep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