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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연천닷컴에서
2006/7/2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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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만에 귀화한 허위 선생 두 손자
| 60년만에 귀화한 허위 선생 두 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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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이라고 차별받을 때 맘 속에 고이 품고 있던 고국이 60여년만에 저희를 안아줬습니다” 백발이 된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 허 게오르기(62)ㆍ허 블라디슬라브(55) 형제는 18일 오후 과천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후손 귀화증 수여식에서 ‘특별귀화증’을 받아들고 이같이 감회를 밝혔다.
두 형제의 조부는 구한말 의병대장으로 활약했던 왕산(旺山) 허 위(許蔿) 선생(1854∼1908).
성균관에서 박사를 제수받은 뒤 중추원 의관(議官), 정삼품 통정대부(通政大夫) 등 관직을 거쳤던 허 선생은 일제에 의해 한국 군대가 해산됐던 1907년 의병대를 조직,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항쟁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1908년 4월 정미의병 당시 ‘서울진공작전’을 주도했던 허 선생은 다음달 일제 헌병에 체포됐고 넉달여 뒤 51세의 일기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됐다.
허 선생의 공훈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될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그 뒤에 가려진 가족들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허 선생의 가족들은 1915년 일제의 핍박에 못 이겨 만주로 떠났고 이들 중 4남인 허국 (1971년 사망) 선생은 만주에서 다시 연해주로 터전을 옮겨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허국 선생은 구 소련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 때문에 중앙아시아로 거처를 옮겨야 했고 그 이동경로였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게오르기씨와 블라디슬라브씨를 낳았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부친의 뜻에 따라 배움을 놓지 않았던 게오르기씨와 블라디슬라브씨는 모스크바 국립대학과 우크라이나 오데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전기공학과 지질학을 각각 전공했다.
유명 국립대학에서 석사학위까지 마치고 ‘지식인’이 된 두 형제는 구 소련의 공기업에 직장을 얻어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했다.
하지만 거주지였던 키르기스스탄이 1991년 분리ㆍ독립하면서 고난이 다시 시작됐다. 두 형제는 키르기스인이나 러시아인이 아닌 ‘고려인’이었기 때문에 소수민족으로서 차별을 받았던 것.
형 게오르기씨는 “전문지식이 있었는데도 자국 민족을 우선시하는 고용정책 때문에 일할 곳이 없었다. 손을 벌려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 정말 서러웠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때부터 화물차 운전과 소작 농사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온 두 형제는 2003년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을 영상으로 담아 온 국내 모 다큐멘터리 업체 관계자와 만나면서 고국에 돌아올 길을 찾게 됐다.
이듬해 이 업체를 통해 관련사실이 국가보훈처에 통보됐고 지난해 법무부가 취업비자를 발급해 주면서 두 형제는 한국 땅을 밟았다.
국내 모 의료기기 제조업체에 취직한 두 형제는 1년여 뒤 국가유공자 후손에게 자격이 주어지는 ‘특별귀화’를 통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나라’인 대한민국 국민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동생 블라디슬라브씨는 “타국에서 서러운 시절을 겪었지만 한국은 언제나 자랑스러운 나라였다”며 “뒤늦게라도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살게 해 준 정부에 감사드린다”고 국적을 취득한 소감을 말했다.
형 블라디미르씨는 “고국을 잊지 말라고 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이 새삼 생각난다”며 “나 보다는 함께 온 자녀가 한국 문화를 배우며 커갈 수 있게 돼 참 만족스럽다”고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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