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건설 희생양 (공신옥수필) 펌
댐건설 희생양 (공신옥수필) 펌
글쓴이 최해선 (철원군청 누리집 열린게시판)
2007-01-27 오후 4:09:00
가을, 진안, 최씨
이제 곧 있으면 겨울이 올 것이다. 벌서 온 산야에 짙푸르던 녹음은 가뭇없이 스러지고 햇빛의 온기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며 공기는 스산해졌다.
푸르던 것들이 스러지고 온기가 줄어들고 공기가 스산해지는 거야 계절의 변호 때문이라고 쳐도 그곳의 풍경들은 확실히 ‘나간 동네’ 자체였다. 하여 나는 햇빛보다 더한 온기는 사람의 온기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던 바였다.
고대광실도 사람 한번 나가버리면 빈껍데기에 다름 아님을, 다 스러져 가는 초가삼간도 거기 사람이 살고 있으면 훈훈한 화롯불 같은 온기가 스며든다는 것을.
최한생씨의 옆집은 마침 ㅣ그날 이사를 하고 있었다. 최한생씨를 빼고 남은 마지막 집이었다. 이제 그 집마저 이사를 가버리고 나면 허허벌판이 되어버린 마을에 최씨집만 달라 남을 것이다.
집을 부수는 포클레인은 이사를 가고 있는 집 앞에 와 대기하고 있었다. 짐을 다 빼는 즉시로 삼간 흙집인 그 집은 순식간에 이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수자원공사 쪽에서 나온 직원 몇몇이 이미 수수어진 집들의 잔해를 치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랬다.
마을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동행한 사진작가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마디 했다.
“꼭 비적들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것 같군요.”
그도 그럴 것이 초토화가 되어버린 마을 사방에서 쓰레기 태우는 연기가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비적떼의 습격을 받고 불이 난 것처럼 그 마을에 서 빤히 바라보이는 이웃마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제 곧 물이 들어찰 것이다.
진안으로 전주로 진작에 이사를 한, 어쩌면 안전대피를 한 사람들이 봄에 심은 곡식을 끝내 못 잊어서 수확하러 왔다가 서둘러 막차를 타고 떠나고 있었다.
곧 있으면 물이 들어찰 전북 진안군 용당댐 수몰예정지에 사는 최한생씨는 사정이 그러한 데고 도통 이사를 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어디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수몰보상금은 다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한숨부터 먼전 내쉰 뒤에 천천히. 어눌하게 말하는 것이다.
“보상금 받은 것은 전부 농협 빚 갚는데 써버렸구만요.”
그가 가진 것이라곤 백여 평 되는 집터와 낡은 슬레이트집이 전부였다. 그는 분영 농사꾼이긴 했지만 소작농이었다. 이녁 이름으로 된 번듯한 논밭이 없었기에 집에 대한 보상금은 농협빚 갚고 나서 한달 정도의 생활비만 남았다.
그는 정말로 돈이 없어서 갈 곳도 없었다.
이제 어떡할 거냐고 물었다. 집 벽에는 벌써 누차에 걸쳐 최후통첩 조의 철거예고 날짜들이 붉은 스프레이로 표시되어 있었다. 최씨의 아내는 붉은 스프레이 글씨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않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표시되어 있는 날짜는 바로 다음날이었다.
사람이 살건 안 살건, 살림살이가 있건 없건, 그날이 오면 포클레인으로 밀어버릴 것이라는 소리를 들은 바가 있는 최씨의 아내는 막 보기에는 입술이 바짝 바짝 타들어가 있는 형편이었다. 그것은 최씨도 마찬가지였다.
전기도 나간 깜깜한 마을에, 모든 집들이 헐려버린 빈 마을에 최씨집만 섬처럼 남아있는 저녁, 최씨는 내일의 철거에 맞서기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소주병과 농약병을 각각 양옆 끼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가을 밤바람은 시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