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녹피(鹿皮)에 가로 왈(曰)자’라는 말이 있다. 뚜렷한 주장이 없어 이렇게도 저렇게도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사슴 가죽은 신축성이 뛰어나 그 위에 쓰여진 날 일(日)자를 좌우로 늘리기에 따라서 가로 왈(曰)
자로 바뀌는 것에 비유된 속담이다. 조선 효종 때 학자이며 시평가(詩評家)였던 홍만종(洪萬宗)
은 순오지(旬五志)라는 책을 지었는데, 순오지에는 정철(鄭澈)·송순(宋純)의 시가와 중국의 ‘서유
기’ 등을 평하는 내용과 함께 130여 종의 속담이 부록으로 실려있다.
그 부록에서도 ‘녹피의 가로 왈자’라는 속담을 확인할 수 있는데 숙녹피 대전(熟鹿皮大典)이라는
글로 실려있다. 숙녹피대전(熟鹿皮大典)을 직역하면 익힌 사슴 가죽에 쓴 큰 법전이 되며, 속뜻으
로는 법을 시행하는 사람이 제 입장에 유리하도록 법을 사용하는 경우에 쓰는 말로 해석된다.
한탄강댐 건설을 추진하던 수자원공사의 태도를 보면 ‘숙녹피 대전(熟鹿皮大典)’이라는 순오지의
글을 떠올리게 한다.
환경영향 평가서의 각종 수치를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왜곡하고,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안정성
의 문제는 애써 외면하며, 공개 토론의 장소에는 참여를 거부하는 것이 수자원공사의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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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방지용 댐건설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댐 건설을 추진해왔지만 경기북부의 용수공급원의 확보
라는 것이 한탄강댐 건설의 속내라는 사실을 철원군민이면 모두 잘 알고 있다.
한탄강댐이 수해방지에 경제성과 효율이 없고, 건설 예정지의 지반 특성상 안정성에 문제가 있음
이 전문가 토론회를 통해 이미 알려졌다. 또한 결정적으로 국방부의 댐 건설 조건부 동의 안에 대
한 재검토 발표와 북한이 임진강 상류에 대규모 황강댐 건설이 대두되면서 댐건설 관련 여러 난제
로 수자원공사는 사면초가에 빠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른바 한탄강댐 공사비의 20%인 550억원을 생태환경 및 수질 보전, 어도(魚道) 및 물고
기 산란지 설치 등 환경 관련 예산에 투입하는 등 환경과 지역경제를 우선 고려하는 댐 건설에 나
서고 있다는 주장으로 국면을 전환하고자 하는 의도가 포착되었다.
용수공급원, 대외적으로는 수해방지용, 댐 건설을 반대하는 환경단체에는 환경을 고려한 환경친
화적 댐이라고 포장하여 어떻게든 댐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했던 수자원공사와 건교부는 댐 건설
의 목적을 바로 밝혀 그동안 국민을 기만했던 것에 사죄하고, 댐 건설 이전에 환경을 고려하여 건
설 계획을 백지화하는 용단을 내려야 했다.
수자원공사와 건교부는 지난 3월 20일을 전후하여 중앙언론을 이용, 한탄강댐을 환경친화적으로
건설한다면서 새로운 명분 쌓기에 돌입해 왔다.
지난 6월 27일에는 김창회 건교부 수자원국장, 이균환 수자원댐본부장, 이완호 한탄강댐 건설단장
이 철원을 방문하여 장진혁 한탄강댐 건설반대 철원군대책위원장, 문경현 철원부군수, 황희로 철
원군 이장협의회장, 김동일 한탄강댐 건설반대 철원군 대책위원회 사무국장과 회의를 가졌다.
한탄강댐과 관련한 주요 담당자가 철원을 방문한 것은 댐건설의 추진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것
을 의미하기에 철원군민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방문단의 철원 방문의 핵심은 철원주민의 동정을 살피는 것과 한탄강댐 건설을 추진하기위해 철
원군과 조율해야 할 사항들을 점검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회의 결과 댐 건설을 추진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골이 생각보다 깊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을 뿐 양측의 의견 조율은 전혀 이루어진 것이 없다.
다만 철원군의 반대 의지를 당위성과 함께 충분히 전달하였다는 것 외에는 별한 성과가 없는 것으
로 판단된다.
7월 28일에는 한탄강댐건설과 관련해 환경부가 법적기한을 이유로 환경영향평가서를 건교부에 제
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오전 9시에 대책위원회를 군청 상황실로 긴급 소집했었다.
대책위는 환경부가 철원군을 비롯해 한탄강 주변의 주민의사를 포용할 것과 한탄강 경제성을 확
인해야 한다는 것을 조건부로 명시했지만 건교부와 수자원공사에서 강행 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강력 맞대응을 해야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대책위는 현 정부의 모순을 규탄하고 수자원공사사장과 최종찬 건설교통부장관, 관련 프로젝트참
여자들을 상대로 각종문서 왜곡과 날조, 국고낭비(30억)등을 이유로 민,형사 고발을 함과 동시에
8월 20일 고석정에서 3개군(포천,철원,연천) 연합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기로 발표 했다.
8월 4일 대책위는 준비회의를 다시 갖고 우선 8월6일 200여명(철원:100,포천:50,연천:50)의 항의
방문단을 구성해 청와대, 국무총리실, 건교부, 각정당을 상대로 항의방문하고 서울지검에 건교부
와 수자원공사를 상대로 고발장을 접수하고 중앙청사에서 삭발시위 및 환경단체와 기자회견을 가
지게 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8월 8일 오후 2시 건설교통부 홍형표 수자원개발과장과 이완호
수자원공사 한탄강댐건설단장이 군을 방문, 문경현 철원군수 권한대행과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수자원측은 "한탄강 댐은 예정대로 오는 9월 수몰 편입용지에 대한 고시를 할 것이며
내년 상반기에 착공할 것이다"라고 밝히고 문경현 부군수에게 주민 설득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
와 관련, 문 부군수는 철원주민들의 댐건설 반대가 완강한데 설득이 가능하겠느냐"며 건교부와 수
자원측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철원군민과 연천군, 포천군 3개지역 연합 대책위는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다고 판단 8월 20
일 3개군 연합 총 궐기대회를 철원군 동송읍에 위치한 고석정 광장에서 8,000군중이 웅집한가운
데 이용삼 국회의원, 이훈 강원도의회의장, 강원도 각 시·군의회 의장이 전원 참여하여 한탄강댐
건설 반대에 강원도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대외적으로 표명했다.
한탄강댐 건설반대 대책위는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환경정의시민연대, 녹색미래, 한탄강네트
워크, 댐반대국민행동과 연대하여 유인물로 배포한 성명서에서 "보상이라는 허울좋은 미끼로 주
민들을 이간시키고 왜곡된 정보를 흘려 자신들을 정당화하고 무조건 공사부터 시작하고 보자는
식의 정책은 더 이상 국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며, "이에 연천, 철원, 포천 주민들은 건교부
와 수자원공사를 이미 허위공문서 작성 및 동행사 혐의로 사법당국에 고발했으며 감사원 감사와
국회 국정감사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발표했다.
또한 "김진선 지사도 기자회견을 통해 한탄강댐 건설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철원군민에게 힘
을 주었다.
철원군민들은 "50년 간 군사시설보호법 등 각종 규제에 밀려 개발이 제한되는 불이익을 받아온 철
원군민에게 이제 부당함이 입증된 한탄강댐 건설을 고집하여 철원의 생존권을 강탈하려는 수자원
공사와 건교부를 철원군민의 이름으로 응징하자"고 격분해 있지만 수자원공사와 건교부는 묵묵부
답이다.
이러한 수자원공사의 태도는 안타까움을 넘어 연민의 정마저 들게 한다. 한탄강댐은 이렇게 저렇
게 늘려 억지를 부릴 수 있는 사슴 가죽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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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녹피 대전(熟鹿皮大典)과 수자원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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