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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Love Hantangang
한탄강백서

작성자 명덕외국어고등학교
작성일 2003-11-01 (토)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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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3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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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 연천 전곡리 유적 (전기구석기)

전곡리 구석기유적 [全谷里舊石器遺蹟]

경기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의 한탄강변에 있는 중부 홍적세 후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기구석기 유적.

소재지 : 경기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시   대 : 전기구석기
지   정 : 사적 제268호


사적 제268호. 1978년 미군 병사 보웬이 처음 확인한 이후 10차례 발굴 조사된 이 유적은 전곡읍 남쪽 일대의, 한탄강이 U자 모양으로 감싸고 도는 대지상(臺地狀)의 지형에 분포하며, 지도상의 위치는 동경 127°3', 북위 38°1'이다. 이 일대에는 ‘전곡현무암(全谷玄武岩)’이라 부르는 철원-평강 지역에서 흘러온 현무암이 고기하천(古期河川) 퇴적을 덮고 있는데, 하부(下部)의 연대가 약 60만년 전, 상부의 현무암이 약 30만년 전후로 알려졌다. 현무암 대지 위에 두께 3~8m의 퇴적물은 한탄강이 현무암 대지 위를 흐르는 동안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 퇴적물 속에서 석기가 발견되었다.

퇴적층은 하부에 우각호(牛角湖)에 의해 퇴적된 호소성(湖沼性) 퇴적물 또는 강에 의해서 퇴적된 모래층으로 구성되었고, 이 위를 적색 또는 황갈색 점토가 덮고 있다. 이 퇴적물은 현무암이 절리(節理)현상으로 인하여 빠른 속도로 침식되는 과정을 고려한다면, 현무암 상부의 30만년에서 많이 떨어지는 시기가 아닌 대략 중부홍적세의 후반 20만년 전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아직 신뢰도에 문제가 있지만 퇴적물의 발열형광법(thermoluminiscence dating method)에 의하여 얻은 4만 5천년 전이라는 연대를 주장하는 견해도 있으며, 상부홍적세에 들어서 급격히 침식되어 현재의 지형을 형성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지금까지 발굴에서 채집된 석기는 4천여 점이 넘으며, 지표에서 채집된 석기도 많다. 석기는 석영암(石英岩)과 규암(硅岩)을 이용한 것이 대부분이며, 현무암과 편마암도 약간 섞여 있다. 재료는 거의 강바닥에서 채집된 것이다. 가장 특징적인 석기로는 아슐리안형의 주먹도끼류이고, 평면이 첨두형인 것과 타원형으로 만들어진 주먹도끼류와 한 면 가공된 주먹도끼(handaxe) ·가로날도끼(cleaver) ·뾰족끝찍개(pick)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찍개 ·긁개 ·다각면원구 ·소형찌르개 등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 외에 많은 수의 몸돌[石核] ·격지[剝片] 및 부스러기돌 등이 발견되었다.

석기는 대부분 직접타격법 또는 모루떼기법으로 제작된 것이며, 기본형이 만들어진 뒤에 2차 가공을 시도한 것은 극히 적다. 2차 가공이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가공에 그치고 있어서 동아시아의 전기구석기의 일반적 양상인 석기의 비정형성이 나타난다. 전곡리에서 발견된 아슐리안형의 석기는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것으로, 세계 전기구석기문화가 유럽 ·아프리카의 아슐리안문화전통과 동아시아 지역의 찍개문화전통으로 나누어진다는 기존의 H.모비우스 학설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두산세계대백과)




[발굴 이야기]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를 논함에 있어서 뭐니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곳은 임진강과 한탄강변에 산재한 일련의 구석기지점들이다. 임진강 유역에서는 현재까지 15군데 정도의 구석기 유적이 확인됐다. 그 중 대표격인 전곡리 유적은 1978년 발견되어 다음해 사적으로 지정됐고, 88년 발견된 파주 주월리-가월리 유적은 작년(94년)말 사적으로 지정됐다.

  이 일대가 중요한 것은 유적이 많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발견된 석기들이 인도 동쪽의 아시아에서는 거의 발견된 사례가 없는 특별한 형태의 도구들이기 때문이다. 1944년 미국의 모비우스라는 사람이 ‘주먹도끼’라 불리는 석기의 유무는 구석기 시대 문화권 설정의 지표가 된다는 주장을 제기했는데, 세계 구석기 고고학에서 통설로 통용되던 이 생각은 전곡리 유적의 발견과 더불어 무너지고 말았다. 임진강 유역은 이제 세계 구석기 지도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지역이다.

  이 유적을 처음 발견한 이는 그렉 보웬이라고 하는 미 공군하사관이었다. 그는 인디애나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다 학비를 벌기 위해 군에 입대, 동두천 미군 2사단 헬리콥터장 기상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우연히도 그는 석기에 관심이 많았고, 자케타 보르다즈라는 석기 전공교수로부터 많은 지식을 쌓은 처지였다.

  1977년 한국에 온 그는 미군 영내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던 한 젊은 여성과 사귀었는데, 결혼을 약속한 이들은 78년 1월 20일 한탄강유원지로 같이 놀러갔다. 지금은 한탄강 유원지가 공장폐수와 음식점으로 엉망이 됐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이곳은 한적하고 깨끗하며 조용히 데이트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었다. 아무튼 강변을 산책하던 그는 우연히도 강가의 모래둔덕이 길을 내느라 잘려나간 곳에서 토기편과 숯이 된 목재가 노출된 것을 발견하게 됐다. 1년여 만에 고고학 유적을 접하게 된 그는 매우 흥분하여 그 일대를 좀더 조사해보고자 영문도 모르는 애인을 무조건 뒤를 따라오게만 하고 주변을 찾기 시작했다.

  한시간이 넘도록 별 소득도 없고 추운 날씨에 짜증을 내기 시작한 애인도 있고 해서, 요기나 하자고 생각한 그는 애인과 함께 앉을 만한 곳을 찾았는데, 마침 조금 떨어진 곳에 잔디가 잘 깔린 묘역이 있어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배낭을 내려놓고 물끓일 차비를 하던 그에게 갑자기 주먹도끼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몸이 얼어버릴 것만 같은 충격에 그는 들고 있던 것을 내팽개치고 그것을 집어들고는 어리둥절한 애인에게 “봐! 봐! 내가 뭘 찾았는지 좀 보라구!” 하는 소리를 정신없이 외치며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주위를 계속 찾던 그는 주먹도끼 3점, 가로날도끼 2점과 긁개 1점을 발견했다. 전곡리 유적이 드디어 길고도 긴잠에서 깨어난 순간이었다.

  심장이 터질 듯한 흥분에 그는 바로 귀대해 사진기를 빌리고 군용작전지도를 한부 구한 다음, 다시 현장으로 뛰어왔다. 정확한 발견지점을 지도에 표시하고 현장과 유물 사진을 찍은 그는 1주일여에 걸쳐 막사에서 자세한 보고문을 작성했다. 그런데 흥분 속에서 자료는 정리했지만, 이 중요한 발견을 누구에게 알려야 할지 몰라 막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 고고학자가 있는지, 또 있다면 어디로 연락해야 할지를 애인과 부대에 근무하는 한국인들에게 물어봤으나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궁리 끝에 그는 프랑스 보르도대학의 세계적인 구석기 권위자인 프랑소아 보르드 교수에게 무조건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받은 보르드 교수는 발견의 중요성을 즉각 인지하고 바로 다음과 같은 답장을 냈다. 즉 “만약 이것들이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발견됐다면 나는 이것을 의심없는 아슐리안 문화(☻ 유럽,아프리카,중동,인도에 걸쳐 발견된 전기 구석기 시대의 한 시기 이름이자 문화 이름. 특히 주먹도끼와 가로날도끼라 불리는 독특한 형태의 양면가공석기가 중요한 지표유물이다. 가장 오래된 아슐리안 유적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1백4,50만년전의 유적이고, 대체로 8-10만년전 사이에 다른 문화로 대체됐다.) 의 석기라고 부르겠습니다. 내 자신 직접 현장을 보고 싶은 중요한 발견입니다. 그러나 여건상 그럴 수 없으니, 한국에 있는 학자들을 접촉하십시오. 여러해 전 서울대학교에서 유학생을 보낸 적이 있으니, 서울대학교에 연락해 보십시오”라고 써 보냈던 것이다.

  보웬이 보낸 편지가 서울대 고고학과 사무실에 도착한 것은 3월 중순이었다. 4월15일 휴가를 받은 그는 서울대로 찾아왔고, 필자의 길안내로 당시 서울대가 발굴하고 있던 여주 흔암리 청동기 시대 집자리 유적에서 김원룡 교수를 만나게 됐다. 한국사람으로 전곡리 유물을 처음 본 셈인 필자는 당시 4학년 휴학생이었는데, 어린 눈에는 그가 주섬주섬 배낭에서 꺼낸 돌덩이들이 책에서 그림으로 보던 것과 비슷해 신기하다는 생각만이 들었을 뿐, 큰 감흥은 없었다. 그러나 김교수께서는 매우 흥분하셨고, 이 유적을 바로 보고 싶다는 욕심에 허겁지겁 서울로 올라가셨다. 필자는 보웬과 현장에서 더듬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사흘을 같이 지내는 동안 가까운 사이가 됐는데, 유적 발견에 얽힌 얘기를 장황히 쓸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때 그에게서 자세한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전곡리에서 발굴이 시작된 것은 그해 11월 발견자가 자기 나라로 돌아간 지 넉달이 지난 79년 3월이었다. 귀국후 보웬은 아리조나 대학에서 고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발굴전문회사에 취직해 한국인 아내와 자식들과 같이 잘 살고 있다.
[명덕 외국어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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