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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_삼학사]_吳達濟의_詩와_인간적_면모.hwp
[삼학사] 오달제의 시와 인간적 면모
吳達濟의 詩와 인간적 면모 漢陽大學 李勝洙 敎授 1. 吳允諧(1562~?)는 1609년 태어난 셋째 아들의 이름을 고심 끝에 達濟라고 지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달제라고 이름 지은 경위를 글로 지어 격려와 경계의 마음을 담았다. 여기에 따르면 돌림자인 達을 뺀 ‘濟’ 자는 《주역》의 마지막 괘인 〈未濟〉에서 취한 것이었다. 〈未濟〉의 괘는 물(坎, ☵) 위에 불(離, ☲)이 있는 형상으로, 각 爻의 위치가 바르지 않으며 일도 다 이루지 못한 불안정한 상태를 뜻한다. 하지만 初爻와 제 4爻, 2爻와 5爻, 그리고 3爻와 上爻의 관계가 陰陽 剛柔로 대응하여 조화롭고, 또 미완성인 상태는 완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未濟〉 괘는 형통한 것으로 해석된다. 오윤해도 이러한 〈미제〉 괘가 지닌 ‘剛柔得中’의 의미를 아들의 이름에 부여하였다. 글의 후반부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는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으며 自家康濟의 도를 다하고, 임금을 섬김에는 수레를 얻어 길을 가며 한 시대를 물에서 건네주는 노가 되어야 한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널리 구함[博濟]를 기약하고, 미더움이 있는 명성을 원근에 이르게 하라. 또 급류의 가운데서 절도를 알아 용감하게 물러설 줄 안다면, 온 몸을 망치는 것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剛柔得中의 효험이 아니겠느냐? 제 2爻의 剛才로 제 5爻의 柔道를 행할 것을, 깊이 너 달제에게 기대하노라.1) 오윤해는 아들에게 세상을 널리 구제할 것을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剛柔得中의 태도를 견지하여 험난한 세상에서 화를 당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였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에게 이런 바람을 가질 것이다. 오달제는 어려서부터 이러한 부친의 뜻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 하지만 1336년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때 오달제의 나이는 겨우 28세에 지나지 않았다. 剛才는 지녔지만 아직 柔道를 행할 만한 연륜이 쌓이지 않았다. 그는 한 시대를 救濟할 뜻을 품었지만, 아버지의 바람대로 急流 속에서 용감하게 물러나 일신을 보전하는 데는 실패했던 것이다. 삼학사는 17세기 말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충절의 표상이며 의리의 화신으로 존재해왔다. 역사 속에서 충신 지사들은 항용 정해진 위치에서 변치 않는 모습으로 하나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이들의 인간적 면모는 늘 뒷전에 가려져 있기 마련이다. 위 예문은 오달제의 삶에 있어 일상의 한 단면이다. 그에게도 가족이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며, 그리움이나 서러움 같은 감정이 있었다. 이 글은 삼학사 중에서도 오달제를 중심으로, 忠臣 또는 志士의 儀裝 속에 감추어진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 그의 삶을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재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편견이 고착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나아가 역사적 인물과 더 친근하게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2. 공자는 《시경》의 시 3백 편을 한 마디로 간추려 ‘思無邪’라고 했고(《論語》, 〈爲政〉), 毛詩序〉에서는 “詩言志”라 했다. 두 말을 모아 풀면 시는 자기도 모르게 거짓 없는 마음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이 된다. 윤동주가 〈서시〉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한 것은, 왜 시가 거짓 없는 마음의 징표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한 구절만으로도 우리는 그 시절 윤동주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오달제의 문집은 사후 60년이 지난 1697년에야 간행되었는데, 여기 20편의 시가 실려 있다. 오달제 삶의 면면을 재구하기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오달제의 마음결을 엿보는 데는 모자람이 없다. 이 몇몇 작품에서 우리는 피가 돌고 감정이 이는 인간 오달제를 만날 수 있다. 2-1. 憂愁와 悲哀의 정서 1622년 정월 오윤해는 7언 절구로 두 수의 〈落梅〉 시를 지어 형제 자질들로 하여금 和韻하게 했다. 열네 살의 오달제도 막내로서 화답시를 지어냈다. 화분의 맑은 손님 반나마 떨어지니 淸客盆中半落花 애석타 어찌하여 이리도 쉬 쇠하나 惜之其奈易衰何 나는 꽃잎 꽃잎 봄빛을 덜어내며 飛來點點除春色 시인의 긴 탄식을 공연히 자아내네 空使騷人長歎嗟 가련타 화분 속의 꽃잎 진 매화나무 可憐盆上落梅花 잎 진 뒤 향 스러짐 그것을 어이할까 落後香消可奈何 꽃 피어 쉽게 짐이 인생과 똑같으니 花開易落如人老 몇몇 곳 규방에서 아녀자 한숨짓네 幾處幽閨兒女嗟 〈敬次家君落梅韻〉 시의 주제가 이미 ‘落梅’인 데다 ‘嗟’라는 운자가 제시되어, 詩想의 폭이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는 정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네 살 소년의 작품치고는, 易衰 · 除春色 · 易落 · 老 등 그 선택된 시어들이 哀傷感을 짙게 띠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오달제의 평생 행보를 볼 때, 이를 관습적인 단어 선택으로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길 수는 없다. 오달제는 유년기부터 생명의 榮枯盛衰에 예민했으며, 이것이 자연스럽게 풍부한 감성을 자아냈던 것으로 보인다. 생사의 철리에 대한 조숙한 터득, 생명의 무상함에 대한 탄식이 배어있는 ‘易衰’와 ‘易落’ 등의 시어를 주목하면, 뒤 두 편은 자기 삶에 대한 詩讖의 속성도 지니고 있는 셈이다. 2-2. 科詩에 나타난 삶의 지향 오달제의 문집에는 1626년의 監試初試와 1627년 監試會試에서 각각 지은 고시가 2편 실려 있다. 또 창작 시기가 표기되지 않은 賦도 두 편 실려 있는데, 監試 製述科의 경우 賦 1편과 古詩 · 箴 · 銘 중 1편을 지어야 했던 규정으로 보아, 또한 科詩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과시란 모두 공식적으로 제시된 제목을 따라야 했고, 또 형식적인 법칙을 중시했기 때문에, 보통 개인의 미의식이나 성향을 파악하는 자료로서는 이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오달제 시의 경우, 과거장의 답안지로 간주하여 지나쳐버리지 못하게 하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이 또한 그 삶과의 관련성 때문이다. 18, 19세에 지은 세 편의 시는 10년 뒤 그의 삶과 符節처럼 들어맞는다. 1626년에 지은 시는 〈春風草又生〉이다. 제목은 白居易의 〈賦得高原草生別〉에 나오는 “들불에도 풀들은 다 타지 않고, 봄바람 불어오자 또 돋아나네. 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에서 가져온 것이다. 오달제는 이 제목으로, 전쟁터에 나가 전사한 아우를 그리는 형의 비애를 구도로 잡고 생사 이별의 아픔을 그려냈다. 화자는 아우를 잃은 형이다. 아우는 자질이 뛰어나 가문을 드날릴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전쟁에 참여했다가 죽었고 시신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세월은 흘러가고 해마다 봄은 찾아오지만, 돌아오지 않는 아우를 생각하며 슬픔에 잠기는 내용이다. 시의 마지막 부분은 아래와 같다. 안개 숲 늘 오지 않는 원망을 띠어 있고 煙叢長帶未歸怨 이슬방울 밤마다 찬 가지에서 우는구나 浥露夜夜啼寒莖 그 얼굴 그 목소리 세월 속에 아련하니 音容冥寞節序改 늙은이의 영혼을 상처나게 하는도다 只令老夫傷魂精 빼어난 자태 재주 끝내 어디 써보았나 英姿俊才竟何用 죽은 뒤엔 생전 이름 전하지 않는다네 死後不傳生前名 인생은 잠깐인데 풀들 절로 푸르니 人生一瞥草自綠 황천을 돌아보며 외로움에 잠기노라 九原回首心惸惸 시름 끝에 살짝 잠결에 들었다가 愁來暫成一枕眠 연못가 봄풀에 외론 꿈 놀라 깨네 靑草池塘孤夢驚. 오달제는 21세 때인 1629년 仲兄 達晉을 잃고, 그 비통한 심정을 두 수에 담아낸 바 있다.(哭仲氏進士墓) 또 1637년에는 斥和의 죄목으로 본인이 심양에 압송되어 처형되었으며, 가족들은 그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였다. 고향에는 伯兄 達升이 살아있었다. 위 시에서 죽은 아우는 오달제와, 그리고 형은 오달제의 형 달승과 그 처지가 흡사하다. ‘春風草又生’란 시제로 꼭 생사이별을 다뤄야 하는 게 아니고, 또 형제간의 생사 이별을 그려낼 이유가 있는 게 아니고 보면, 오달제의 시가 이처럼 자신의 삶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 재삼 놀랍다. 두 편의 賦도 검토를 요한다. 한편의 제목은 〈寶劍躍鞘〉이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이 황산벌에서 백제 계백의 군사를 물리치고 伎伐浦에 이르자, 당나라 장수 蘇定方이 신라군이 기한에 늦었다며 신라의 장수를 목 베려 하였다. 이에 김유신이 분노하여 唐軍과 먼저 결전을 벌이겠다며 軍門에 서자, 머리털이 곧추 서고 허리에 찬 보검이 절로 칼집에서 튀어나왔다고 한다.2) 寶劍躍鞘는 여기서 나온 말이다. 오달제는 시에서 김유신의 영웅적인 면모를 그려낸 뒤, 아래처럼 시상을 맺었다. 고금 역사를 살펴보아도 閱今古之靑史 공 같은 사람 듣지 못했네 聞未曾於如公 우러러 볼수록 좇기 어려워 仰高槩而難追 말속의 용렬함 탄식을 하고 歎末俗之蒙庸 외론 검 잡은 채 길게 읊조리며 撫孤劍而長吟 만고의 영웅 풍모 우러르노라 欽萬古之英風 蘇定方의 군대는 신라의 요청으로 파견된 것이었다. 신라군은 당군의 지휘를 받았고, 여러 정황상 두 군대 사이에 우열은 확연했다. 이런 경우 파병군의 횡포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부하 장수가 목숨을 잃고 나아가 신라군의 위상이 급전직하할 위급한 순간에 김유신은 결연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신라의 자존심과 권익을 지켜냈다. 이는 뒤에 신라가 羅唐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정신적 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김유신을 오달제는 정신적으로 동일시하였다. 오달제는 글을 읽는 文人이고 儒者였지만, 확실히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영웅 지향적인 기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660년 신라 김유신의 행위와 1636년 조선 오달제의 행위 사이에는 일정한 유사성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달제는 김유신의 행동을 내면화하여 자신의 행동 지침으로 삼았던 것이다. 나머지 한편의 제목은 〈空心柏〉이다. 殷 나라 紂王은 숙부 比干이 사흘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失政을 간하자, 성인의 심장을 확인한다며 배를 갈라 죽였다. 뒷날 비간의 무덤 옆에는 속이 텅 빈 잣나무가 자라났는데, 사람들은 그 나무가 속을 다 비워내고 죽은 비간을 닮았다고 했다. 〈空心柏〉은 속이 빈 잣나무를 소재로 삼아 比干의 충절을 그린 작품이다. 空心柏은 설화 속의 가상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오달제는 실제 그 나무가 있는 숲 속을 거닐며 옛 사람의 자취를 되새기는 형식을 설정하여 생동감과 현실감이 드러나도록 하였다. 시상은 행여 나무꾼이 숲에 들어 가지를 치거나 나무를 베지 않기를 당부하는 말로 마무리하였는데, 이는 比干의 행적이 오달제의 가슴에 얼마나 깊이 각인되었는가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죽음을 무릅쓰고 直諫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比干의 행적은, 역시 끝까지 斥和論을 펼치다가 희생처럼 죽어간 오달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 편의 시는 科場에서 지어진 것이긴 하지만, 우연으로 돌려버리기 어려울 정도로 이후 오달제의 삶을 예시하고 있다. 〈春風草又生〉은 형제 간 사별의 아픔을, 〈寶劍躍鞘〉은 절대절명의 순간에도 신념을 내세워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영웅적 면모를, 〈空心柏〉은 신념을 지키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삶을 그려냈는데, 이 모두는 뒤에 거짓말처럼 그대로 실현된다. 이중 〈春風草又生〉은 詩讖의 성격이 강하고, 나머지 두 편은 오달제의 평소 삶의 지향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그는 이미 志士로서의 삶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2-3. 서정적 내면과 미의식 오달제를 시인의 범주에 넣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에게서 서정 시인의 면모와 섬세한 미의식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는 시작에 전념하지 않았을 뿐, 시인의 마음까지를 폐기하지는 않았다. 신념을 지키다 죽어간 鄭夢周가 섬세하면서도 호방한 미의식의 소유자였고, 충절의 표상처럼 전해지는 金時習이 결 고운 서정시인의 면모를 지녔던 것처럼, 志士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오히려 보통 이상으로 예민한 감성을 지닌 경우가 많다. 다만 이들은 행동을 지키기 위해, 복잡하고 多變하는 감성에 쏠리지 않았을 뿐이다. 이들에게 시는 덜 중요할 뿐이었다. 한편만 보기로 하자. 붉은 해 산 위에서 솟아오를 제 赤日初生岫 아침 안개 아직도 강에 어렸네 朝煙尙帶江 청동 거울 노 맞아 깨져버리고 靑銅迎棹破 눈썹은 구름에 들어 짝이 되었네 翠黛入雲雙 깨어보니 여울소리 귀를 울리고 睡覺灘喧耳 시 짓자 흥취는 뱃속 가득해 詩成興滿腔 백구는 한가롭기 나와 같아서 白鷗閑似我 봉창 위를 날아서 오고가누나 飛去過篷窓 <독임강을 건너며 삼가 아버님 시에 차운하다 過禿任江, 敬次家君韻〉 1628년 스무 살 때 지은 작품이다. 부친의 原詩에 “어제 여주 객관서 헤어지고는, 오늘은 독임강을 지나가누나. 昨別驪興館, 今過禿任江.”라 한 것으로 보아, 시인은 배 위에서 하루를 묵었음을 알 수 있다. 강가 산 위에서는 붉은 해가 솟아나는데, 강 위에는 아직 안개가 자욱하다. 뱃전에 앉아 아래를 보니, 배가 지날 때마다 마치 청동 거울이 깨지는 듯 파랗고 잔잔한 물이 갈라진다. 고개를 들어보면 산 중턱에 구름이 걸려있으니, 그 위로 솟아난 등성이가 마치 양 눈썹 같다. 시인은 그제야 잠이 깬다.(5구의 睡覺) 여울물 소리가 귀가를 울린다. 어쩌면 여울물 소리가 잠을 깨운 건지도 모른다. 한 수의 시가 지어지자, 뱃속 가득 흥겨움이 가득하다. 시인이 흥으로 충만하자 잠에서 깬 갈매기들도 한가로이 날기 시작한다. 시인의 興과 갈매기의 비행 사이에 마치 인과성이 있는 듯도 하고, 갈매기의 비행이 시인의 내면을 표상하는 듯도 하다. 시상은 산에서 강으로, 해에서 안개로, 붉은 색에서 파란 색으로, 밖에서 안으로 다시 밖으로 종횡무진 이동하며 情景이 한데 어우러진 새벽 풍경을 그려낸다. 오달제는 몇몇 시에서 이렇게 한가롭고 여유로운 풍경을 그려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한가로움보다는 좀 더 긴장감 넘치고 역동적인 사상과 직업을 택했고, 시대 또한 그가 한가로움에 빠지도록 놓아두지 않았다. 그래도 이 또한 오달제 삶의 한 단면이 된다. 2-4. 妓女와의 짧은 인연과 그리움 오달제는 1625년 겨울 열일곱의 나이에 결혼했다. 신부는 高靈 申得淵의 따님으로 오달제보다 두 살이 많았다. 두 사람은 당시 관습대로 신부 집에 살림을 차렸다. 8년 뒤인 1633년 겨울 부인이 임신 중의 몸으로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3) 1634년 1월 부인을 선영에 묻은 오달제는 3월 宜寧 南氏를 새 아내로 맞이했다. 새 아내는 南烒의 따님으로 당시 열아홉 살이었다.4) 이해 여름 오달제는 伯兄의 부임지인 함경도 高原에 갔다. 고원에서 愛花라는 기녀를 만나 정이 폭 들었다. 오달제는 애화에게 몇 편의 시를 써주었고, 이것이 후에 발견되어 문집에 실리게 되었다. 이 몇 편의 시는 다정다감하고 감수성 예민했던 오달제의 성격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시는 모두 네 편인데 그 중 두 수만 보기로 하자. 내게 정 있음을 너는 알지 못하나 我有情爾不知 네게 정 없음을 나는 알고 있노라 爾無情我已知 무정한 이별과 유정한 이별 無情別有情別 너는 슬퍼 않고 나 홀로 슬퍼하네 爾不悲我獨悲 〈취중에 장난삼아 짓다 醉裏戲題〉 헤어지기 전날 밤쯤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官妓는 소속 관청을 떠날 수 없었고, 더구나 사대부와 사사로이 結緣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니 기녀와의 관계에 있어 언제나 사랑은 짧고 이별은 길었다. 이러한 제도는 때로 매우 애틋한 사연을 낳았는데, 그 이별의 情恨과 충격을 말하자면 늘 기녀 쪽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고향에 돌아가면 妻妾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情人을 떠나보낸 여인의 심사는 수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하지만 위 시만 놓고 보면 기녀의 심사를 담은 것처럼 보일 정도이니, 오달제는 기녀 못지않은 情恨을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술에 취해서,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내 마음을 알지 못하고, 나는 너와 헤어지는 게 이렇게도 서글픈데 너는 아무렇지도 않구나.”라고 미리 설움에 잠겨 있는 오달제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것은 마치 떠나가는 정인을 향해 투정부리는 기녀의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오달제는 애화가 헤어진 뒤 강원도 高山 땅에 이르러 두 편의 시를 애화에게 부쳤는데, 아래는 그중 하나이다. 외론 객사 비취금서 한기가 일어나매 孤館寒生翡翠衿 객창의 새벽달을 시름겨워 읊조리네 客窓殘月對愁吟 내려와서 오래도록 그리움의 눈물 참았건만 南來久制相思淚 오늘밤 이르러선 옷깃 흠뻑 적시누나 却到今宵恐滿襟 뜰 앞에 하마하여 이별을 아파할 때 下馬庭前惜別時 미인의 눈썹 사이 붉은 한 서렸었지 美人紅恨在蛾眉 아직도 마음 다쳐 잊을 수 없는 것은 傷心最是難忘處 화장 지워진 얼굴로 기둥에 기대어서 말 못하고 울먹이던 모습이라오 愁倚殘粧欲語遲 〈고산 땅에 이르러 애화에게 부치다 行到高山寄花兒〉 이부자리에서 寒氣가 돋는 것은 날이 추워서가 아니라 情人이 옆에 없기 때문이고, 새벽까지 잠들지 못한 것은 견디기 어려운 번민 즉 그리움 때문이다. (1,2구) 오달제는 애화와 헤어진 뒤 눈물을 꾹 참고 있었다. 사대부의 체면상 기녀와 헤어지며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원 땅 객사의 새벽, 오달제는 옷깃이 흠뻑 젖을 정도로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냈다. 오달제의 눈에는, 헤어질 때 애화의 눈썹에 서려 있는 시름, 그리고 눈물과 화장이 범벅된 얼굴로 기둥에 기대어 뭔 말을 하려다가도 입을 열지 못하고 울먹이던 애화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철석같은 신념을 지녔던 스물다섯 장부 오달제도 한 여인을 위해 눈물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동서고금에 수많은 戀詩가 있지만, 남성의 작품으로 위 시처럼 애절한 노래는 찾기가 쉽지 않다. 오달제는 순결하고도 다정다감한 영혼의 소유자였고,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신념을 지켜낸 그의 행동은 바로 이런 영혼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1634년은 오달제에게 있어 세 여인과의 관계가 교차한 특별한 해였다. 첫째 아내를 묻었고, 둘째 아내를 얻었으며, 情人을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첫째 신씨 부인은 임신 중의 몸으로 병사했다. 1637년 둘째 남씨부인이 회임 중에 오달제는 심양으로 압송되었다. 오달제 사후 남씨 부인은 딸을 낳았지만 일찍 죽고 말았다. 1635년 기녀 愛花는 오달제의 아들을 낳았지만 정작 오달제는 이 아들을 보지 못했다. 오달제의 처가에서는 이 아들(이름은 道南)을 돌봐주었지만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오달제와 세 여인의 만남 뒤에 남은 슬픈 사연이다. 1695년 숙종은 오달제의 매화그림에 題詩하면서 오달제의 후손이 끊어진 것을 두고, “후손이 끊어질 줄 그 누가 알았으리, 福善禍陰 이치를 믿기가 어렵구나. 誰知嗣孫終無傳, 於此難諶福善理.”라고 하며 안타까워했다. 2-5. 生死岐路에서의 번민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 1637년 정월 남한산성에서 오달제와 윤집 두 사람은 斥和臣임을 자수하였고, 1월 19일 西門을 나서 淸陣에 인도되었다. 당시 두 사람의 지위나 나이로 보아 청에서 요구한 首謀之人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두 사람의 맑은 영혼은 자신들의 운명을 險路에 내몰았다. 2월 초 淸陣을 떠난 오달제는 국경을 건너기 전 세 차례에 걸쳐 伯兄 앞으로 편지를 써놓고, 기회를 엿보다가 대동강가에서 촌로의 손에 넘길 수 있었다. 짤막한 세 통의 편지에는 60여 일이나 옷을 벗지 못하고 잠을 자서 이[蟣蝨] 때문에 겪은 고생, 文具와 담배가 없음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심정이 함축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에 따르면 오달제는 죽음을 각오하고 淸陣에 자진 압송되었지만, 늙은 어머니와 약질의 아내와 형과 조카에 대한 그리움을 숨기지 못했고, 살아서 돌아갈 희망도 버리지 않고 있었다.5) 오달제는 마음이 따스하고 여린 사람이었던 만큼 생사의 기로에서 당연히 번민하고 회의했고, 때로는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혔음에 틀림없다. 오달제는 信川에서 종이가 없어, 길 위에서 주은 종이 위에 형에게만 편지를 쓸 수 있었다. 그 여백에는 어머니에게 두 편, 형에게 한 편, 아내에게 한 편 등 모두 네 편의 시를 적었다. 특히 아내에게 보내는 시에 대해서는, 형이 그 뜻을 설명해주거나 아니면 처남을 시켜 말해주도록 꼼꼼하게 당부하였다. 이 네 편의 시는 죽음의 길을 떠나며 육친과 아내에게 보낸 別辭로,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형과 아내에게 보낸 시 두 편만 보기로 하자. 그때 남한산성에서 사지로 나아온 몸 南漢當時就死身 타국에 사로잡혀 돌아가지 못합니다 楚囚猶作未歸臣 서쪽 와 몇 차례나 형님 그리며 눈물을 뿌렸던가요 西來幾洒思兄淚 동쪽 멀리 바라보니 이 아우 그릴 사람 가슴이 저려옵니다 東望遙憐憶弟人 혼백은 변방의 기러기 쫓아가며 내 외론 그림자 슬퍼하다가 魂逐塞鴻悲隻影 잠에서 놀라 깨어 연못가 새싹 풀에 가는 봄 안타까워합니다 夢驚池草惜殘春 색동옷 입고 잔치를 베풀어드릴 제 想當彩服趨庭日 차마 무슨 말로 어머니를 위로하실가 忍作何辭慰老親 〈형님에게 寄伯氏〉 오달제가 斥和臣을 자처했을 노모는 물론이고 나이 어린 제수씨를 무슨 낯으로 볼 수 있겠느냐며 눈물로 만류했던 형 達升은 達濟보다 18살이나 많았다. 중간의 達晉(1596~1629)은 이미 몇 년 전에 요절했다. 오달제는 혼자 남은 老兄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고, 또 자신을 그리며 마음 아파할 형 생각에 더욱 가슴이 저렸다. 줄지어 나는 기러기를 넋 놓고 바라보다가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슬퍼했다. 줄지어 나는 기러기는 여러 형제를 의미한다. 또 꿈결에 형을 만나다가 깜짝 놀라 깨곤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을 안타까워하였다. 5,6구는 집에 있는 형님의 정황을 의탁한 것으로 보아도 된다. 생각만 해도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어머니 생신 상을 차리고 헌작할 때, 막내아들 생각에 눈물 흘릴 어머니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 하염없이 슬픔에 젖어있을 장면이었다. 부부 사이 은정이 중요하건만 琴瑟恩情重 만난 지 이태도 못 되었는데 相逢未二朞 오늘 만 리 멀리 헤어졌으니 今成萬里別 백년 기약 헛되이 저버리었소 虛負百年期 땅은 넓어 편지도 부치기 어렵고 地闊書難寄 산이 높아 꿈결도 더디기만 하오 山長夢亦遲 나의 생사 여부를 알 수 없으니 吾生未可卜 뱃속의 아이를 잘 키워주시오 須護腹中兒 〈아내에게 寄內〉 의로운 志士의 뒤에는 늘 가족의 희생이 뒤따른다. 특히 아내가 겪는 고초는 말할 수 없다. 417년 朴堤上이 일본으로 떠났을 때 아내는 세 딸을 데리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고, 1930년 尹奉吉이 중국으로 떠나간 뒤 그의 아내는 어린 두 아들과 숱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떠나간 사람 또한 처자 생각에 가슴에 피멍이 들었을 것이다. 오달제 또한 혼인한 지 이태도 못 되어 회임중의 어린 아내(당시 22세)를 두고 생사를 기약 못할 길을 떠나며 수없이 번민했을 것이며,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5,6구에 잘 나타난다. 一心同體라는 부부 사이의 거리가 머니 편지를 써도 부치기 어렵고, 꿈결에나마 찾아가고자 하지만 가로막은 산이 높아 행보가 더디기만 하다. 오달제는 다시 만날 희망을 붙들고 있기 보다는, 삶에 대한 집착을 거둠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 했고, 이는 마지막 두 구에 그대로 드러난다. 오달제는 단숨에 죽음과 직면한 것이 아니었고, 그의 마음에는 ‘主辱臣死’라는 신념만 가득했던 것이 아니다. 척화신을 자처하기부터 심양에서 목숨을 버리기까지 석 달 이상의 시간이 있었으며, 그의 마음 한편에는 忠君과 尊周의 의리 말고도 가족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이 자리자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그는 끊임없이 고뇌하고 번민했던 것이다. 그 번민까지 헤아려야만 오늘 오달제와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고, 또 그의 실상을 잡아낼 수 있다. 3. 오달제의 설매도 지금 내 앞에는 두 폭의 매화 그림이 놓여있다. 한 폭의 매화는 온 가지에 눈이 하얗게 쌓였고 싸늘한 기운은 비단 밖으로 뚫고 나오는 듯하다. 1637년 정월 남한산성이 이렇게 추웠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꽃은 피어 萬斛 향기를 은은히 내뿜고 있으니, 혹심한 추위도 얼리지 못하는 게 있는 것인가? 그야말로 ‘梅一生寒不賣香’의 그 雪梅이다. 다른 한 폭의 매화는 옛 등걸에 새 가지가 돋아났고 가지에는 꽃이 피었다. 모진 추위를 겪고 나면 어느덧 새 가지가 돋아나와 새 세상을 열어 보임을 말해주는 것인가? 그림 위에는 숙종의 御製詩가 적혀 있다. 오달제의 묵매도 오달제는 평소 묵매를 즐겨 그렸다. 雪梅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는 먼저 추위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 추위가 잘 드러나야 꽃의 품격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意在筆先이라 했으니, 추위를 그리기 위해서는 그 추위를 먼저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추위가 느껴지면 붓을 들었고, 추위가 화폭 위에 조성되면 그제야 꽃을 그렸다. 古梅의 생명은 묵은 등걸이다. 묵은 등걸은 곧 연륜이다. 오랜 연륜에서 피어난 꽃은 남다른 품격을 지닌다. 그래서 묵은 등걸을 그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가라앉히고 거기 온갖 風霜을 겪은 세월을 담아야 한다. 그런 뒤 오랜 풍상의 연륜으로 묵은 등걸을 앉힌 다음, 마지막에 새 가지와 꽃을 그려냈다. 이것이 오달제가 매화도를 그린 방식이다. 한참 그림을 보고 있으면, 畵人의 붓질과 마음결이 느껴진다. 오달제는 평소 매화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곧고 굳게 단련시켰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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