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을 먹는건 몸 아닌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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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이 사람을 만든다’ 펴낸 전재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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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 육근원통에는 약상.약왕 두 보살과 부처님이 음식에 대해 논하는 대목이 나온다. 약왕보살은 “이 사바세계의 음식은 종류가 십만팔천가지인데, 그 맛의 변화를 탐구하다보니 맛의 참모습이 공(空)도 아니도 유(有)도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맛의 뿌리를 파고 들어가다보니 내 본래의 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고 말한다. 식품공학자 전재근 교수가 최근 발간한 〈음식이 사람을 만든다〉는 음식에 담긴 깨달음의 철학을 논한 책이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부드러운 문체와 해학적인 그림이 편안하게 다가선다. 지난 2월 28일 서울대학교 교정에서 전교수를 만났다.
“차 한잔 마셔보세요. 차 맛이 좋습니까. 그런데 나와 기자가 마시는 차 맛은 조금 다를겁니다. 왜죠? 의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차 맛은 과거, 현재 미래의 업이 얽여서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수수께끼 하나 내 볼까요?”
전재근 교수는 대뜸 질문부터 시작했다. “뜨거운 것을 마시고 ‘아, 시원하다’하는 것은 왜일까. 죽어서도 음식은 못 버린다. 제사상이 망자를 위한 음식상 아닌가. 그럼 음식으로 이승과 저승이 이어지는가. 먹는 것은 내 몸이지만, 맛을 느끼는 것은 누구인가”
식품학자들의 공통된 과제가 어떻게 맛있고 영양높은 음식을 만드느냐에 있다면, 전교수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에서 시작한다. 음식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예를들어 딸기가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딸기는 사라지고 정보(화학물질)만이 남는다. 두뇌는 전기적 신호로 바뀐 화학물질만 전달받을 뿐인데, 왜 딸기맛이 어떻다고 말을 할까. 또 식품학이 제일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비만’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것이다.
“법과 제도로 비만문제를 해결할 순 없어요. 가령 비만 문제 해결을 위해 맛없는 음식을 생산한다는 비현실적 결론뿐이 없겠지요. 비만을 해결하려면 식성을 바꿔야하는데, 음식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식성이 바뀝니다. 몸이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음식을 먹기 때문이죠. 결국 비만 문제는 영양과 칼로리를 연구해야하는 식품학의 문제가 아니라 식탐을 일으키는 마음을 다스리는 불교의 문제라 할 수 있죠.”
전교수는 30대 초반에 중증근무력증이라는 병을 앓게 됐다. 몸 근육 전체가 마비돼는 병으로, 현대까지도 치료법이 밝혀지지 않은 난치병이다. 3년간 병마와 싸우던 중 ‘금생에 병치레가 많은 사람은 전생에 살생을 많이 저지른 과보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제일 싫어하는데, 그 원한이 어디로 갈 것이냐’는 〈삼세인과론〉의 구절을 읽고 채식주의자가 됐다. 식생활을 바꾸니 병도 치유됐다.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어봐야 그 자체로는 고철에 지나지 않아요. 사람이 운전을 해야 비로소 이동수단으로서의 기능을 갖죠. 어떤 자동차에 어떤 음식(휘발유)을 넣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운전자가 운전하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식품학이 지금까지 몸에 음식을 집어넣는 것에 대한 연구였다면, ‘유식론적 식품학’은 식품과 마음의 관계를 연구하자는 거죠.”
전교수는 유식학의 아뢰야식 개념을 식품학에 접목시킨다. “의식에는 눈, 귀, 코, 혀, 피부로 느끼는 5식이 있고, 여기에 의식의 단계인 6식, 7식 8식이 있어요. 6식에 저장되면 먹는 순간 맛을 느끼고 바로 잊어버리지만, 7식에까지 저장되면 나중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하죠. ‘어머니의 장맛’ 이니 ‘고향의 맛’이니 하는 말이 이런 것이죠. 8식까지 기억되면 이는 훈습이 돼 되물림됩니다.” 8식에 기억된 훈습은 무의식과 연기로 연결된다는 설명이다.
“유전학의 효시인 멘델의 강낭콩 실험은 대부분 잘 압니다. 오스트리아 신부인 멘델을 완두콩을 이리저리 교배하면 부모의 형질이 자손에게 유전현상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실제 유전법칙의 효시는 400년 경 살았던 인도 스님 바슈반두입니다. 스님은 사람이 무의식, 의식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기억을 뇌에 어떻게 저장하고, 또 후손에게 전해주는지를 밝혔지요. 의식의 유전학을 400년경에 이미 말한겁니다. 불교가 과학적이며, 최근 서구에서 연구 대상으로 각광받는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5년간 연구해 온 ‘유식론적 식품학’을 쉽게 알릴 목적으로 저술했다. 둘 다 어려운 학문이지만 전교수의 손을 통해 아주 쉽게, 또 재밌게 풀어져 나온다. 전교수는 “음식이 약이 되거나, 독이 되는 것은 결국 마음의 문제”라며 “금연하기 힘들면 담배피고 싶어하는 내 몸을 관찰해보라. 마음을 바뀌면 식성이 바뀌고, 몸이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수원=안직수 기자 jsahn@ibulgyo.com
[불교신문 2109호/ 3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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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사람을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