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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수다쟁이 활동가로 만든 ‘지뢰 피해자들’
나를 수다쟁이 활동가로 만든 ‘지뢰 피해자들’ 문은영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KCBL) 사무국장 얼마 전 나는 KBS취재팀과 함께 지뢰 피해자 촬영을 위하여 민통선 안쪽에 위치한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을 찾았다. 이곳에 사시는 80세의 박춘영 할머니의 삶은 너무도 기구하여 기자나 PD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30대 초반에 남편을 잃고 혼자 힘으로 아이들을 키워야 했기에, 가진 재산도 경작할 논이나 밭도 없는 형편이었던 할머니는 품을 팔아 근근히 살아 보겠다고 민통선인 이곳으로 이주해 오셨다. 그러나 이주한 지 얼마 안되어 마을 인근 산에서 고사리를 뜯다가 지뢰 폭발 사고를 당하셨다. 사고 지역은 인적이 드문 산 속이었는데, 그곳에 있다가는 아이들도 못보고 그냥 죽을 것 같아서 잘린 다리와 피투성이 된 몸을 해가지고 오로지 아이들을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큰길까지 간신히 기어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현재까지 의족에 몸을 의지하고 사신지 50년이 다되어 가건만 아직도 의족과의 마찰이 심해, 의족이 닿는 부위에선 피부가 짓물러 고름이 나곤 한다. 얼마 전 방문했을 때도 피부가 울긋불긋 말이 아니었다. 끊나지 않은 전쟁에 시달리는 지뢰 피해자들 그런데 불행은 본인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할머니의 큰아들은 술 취한 봉사에게 맞아 한창 나이에 사망했고, 93년에는 막내아들인 오흥식(당시 37세) 씨가 지뢰 폭발 사고로 엄지발가락을 포함한 발등의 일부를 잃었다. 그 사고로 부인과 이혼을 했고 손자들은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할머니께 맡겨졌다. 그 후 1년도 채 안 된 1994년 1월 맏아들과 다름없는 둘째 아들, 오흥식(당시 40세) 씨와 할머니가 맡아 키우던 손자 오은철(당시 10) 군마저 저 세상으로 떠났다. 산에 토끼 잡으러 간다고 나갔는데 나흘만에 산속에서 지뢰 폭발 사고로 숨져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십 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떠나 보낸 아들과 손주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신다. 이곳 해안면에서 지뢰 피해자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구수 500, 주민수 1천4백만 명인 이곳에 지뢰 피해자 수는 신고된 건만 해도 100여 명 이상 된다. 그런데 이분들에게 보상금은커녕 치료비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지뢰 사고를 당했다 하여 과도한 벌금을 물게 하는 일도 있었다. 때문에 이들은 소송은 고사하고 병원에서 치료받을 때도 지뢰가 아니라 다른 사고로 다쳤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치료받곤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일들이 비무장지대에 국한된 일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2002년 1월 소양강 입구 뒷산에서 사고를 당한 김수민(당시 17세) 씨의 사연이다. 이날도 그는 늘 다니던 뒷산에 친척들과 땔감을 구하러 갔다. 길을 걷다 발이 미끄러지면서 유실 지뢰가 흙과 눈으로 덮여 있는 부분에 손을 짚어 지뢰가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상황을 피해자 어머니 말씀을 그대로 적어보면 “뭔가 펑하는 소리가 났어요. 그 때 그 소리가 컸는지 작았는지 하나도 기억은 안 나고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어요. 근데, 아들이 안 보였어요. ‘수민아’ 하고 불렀더니 ‘에-에’하는 쇳소리가 아래쪽에서 나는 거예요. 그곳을 봤더니 수민이가 엎드려 있잖아요. 그래서 ‘수민아 왜 엎드려 있어’ 하며 아이를 뒤집어 보니 온몸이 피범벅이고 살은 너덜너덜 하고, 얼굴은 파편이 박혀 광대뼈가 보일 만큼 벌어져 있고…. 정말 만신창이였어요. 근데, 손이 안 보이는 거예요. 제가 아들에게 그랬죠. ‘수민아 팔 어딨어. 니 팔 어딨어?’ 그때 상황은 생각하기도 싫어요. 지금도 전쟁 영화는 절대 보지 않아요.” 그 후 김수민 씨는 헬기로 후송이 됐고 강원도에서 치료가 불가능해 서울로 다시 옮겨진 후, 여러 번의 수술을 거듭하면서 병원 생활만 2년 가까이 했다. 이 사고로 그는 어린 나이에 두 팔과 한쪽 눈을 잃고 푸릇푸릇 몸과 얼굴에 파편을 간직한 채 살고 있다. 이 외에도 피해자는 많다. 심지어는 방안에서도 지뢰가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으니, 그분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저절로 눈물이 나고,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누군가를 노리고 있는 방치된 지뢰들 우리나라의 지뢰 민간인 피해자 수만 2천여 명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 각지가 지뢰 밭이니 어쩜 이 보다 더 많을 수도 있고 군인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더구나 지뢰는 종류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흔히 발목지뢰라 말하는 ‘M14’인데 어린아이의 주먹만한 크기의 이것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지뢰 탐지기로도 탐지가 안 되고, 매우 가벼워 큰비가 온 후 빗물과 함께 떠다니다가 아무 곳에나 걸쳐 있곤 한다. 그래서 지뢰 지대가 아닌 강둑이나 바닷가 갯벌 등에서 쉽게 사고가 발생한다. 요즘엔 도시 주민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여행 삼아 민통선 부근이나, 바닷가 갯벌에 놀러 갔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뢰가 어디 있는지 현지 사정을 몰라 생기는 사고이겠지만, 꼭 그렇게만 단정지을 수도 없다. 애당초 지뢰가 우리나라에 있으리라고는 꿈에서조차도 생각 해 본 적이 없을 테고, 막상 현장에 가보면 지뢰 지대를 알리는 표시 또한 허술하기 짝이 없다. 관리·감독 또한 전혀 안 되는 실정이라, 누구나 쉽게 넘나들 수 있다. 매년 지뢰 폭발 사고로 적게는 5명에서 15명까지 피해자가 발생한다. 올해만 해도 9월 30일까지 군인을 제외한 순수 민간인만 6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사망한 사람, 다리가 절단된 사람, 어떤 사람은 간에 파편이 깊숙이 박히기도 했다. 폭발 지뢰 종류도 M14, M16(대인지뢰), M15(대전차치뢰) 등 종류도 각양각색이고 사고 지역도 다양하다. 이렇듯 지뢰 문제는 심각하건만, 우리 정부의 대외적인 공식 입장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다. 예전에 클린턴 대통령은 “현재 한국에는 DMZ을 제외한 후방 지대에는 지뢰가 전혀 매설되어 있지 않으며, 피해자 또한 없다”고 유엔회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우리 정부는 작년에 외교통상부를 통하여 300만 달러(우리나라돈 30억)를 타국의 지뢰 제거 사업에 지원했으며, 해마다 유엔에 거액을 보낸다. 그러나 이와는 상반 되게 자국의 피해자에겐 일원 한푼 지원 해 준 적이 없다. 또 하나 우리나라의 언론도 문제다. 지뢰 폭발 사고 기사를 보면 ‘그 사람 얼마나 무식하면 제 목숨 앗아가는 지뢰 지대에 들어갔을까?’하는 생각이 들만큼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군부대의 증언만 듣고 기사를 쓴다. “산나물 캐러 지뢰 지대에 들어갔다. 지뢰를 가지고 놀다 사고가 났다” 등. 세상 어떤 바보가 그 안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 하여도 제 목숨과 바꿔 가며 그 곳에 들어가겠는가? 실제로 모르고 한 일인 것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턱이 없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들은 전쟁이 낳은 비극이 아닌가? 만약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지뢰 같은 것을 묻을 일도 없고, 설사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분단이 되지 않았더라면, 아직까지 지뢰가 남아 있을 리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지뢰를 보유할 필요도, 새로운 지뢰를 수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를 수다쟁이로 만든 NGO활동 지뢰 피해를 당하신 분들께 통일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물으면, 진심으로 이렇게 대답하신다. “더 이상 내 가족의 갈기갈기 찢긴 주검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것, 더 이상 내 몸뚱아리를, 내 가족의 몸뚱아리를 잃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나 역시도 그렇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 내게 통일은 멀게만 느껴졌었는데, 이젠 마음 속에 확실히 새겨졌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이들과 함께 하여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요즘 우리 단체에서 추진하는 일은 ‘지뢰 피해자 보상을 위한 특별법’을 국회에 상정하는 것이다. 생각 같아선 지뢰제거 문제까지 밀어붙여 보고 싶지만, 국방부와의 마찰이 심해 다음 번으로 미루고, 더 늦기 전에 피해자 보상 문제만이라도 해결해 보려고 하나, 이 또한 쉽지 않다. 국민적인 지지가 부족하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KCBL)에서 일하면서 나는 많이 수다스러워졌다. 물건을 팔러 다니는 세일즈맨처럼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지뢰에 대해, 피해자에 대해 떠들고 다닌다. 큰돌 하나 던져 잔잔한 호수에 큰 파문 일으키고 금세 잠잠해지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작은 돌이지만 자주 던져 파문이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 나의 할 일인 것 같다. 열정적인 내 연설 아닌 연설, 수다를 들으시던 어떤 분이 “우리 국민 모두가 NGO화되어 더 이상 시민단체가 필요하지 않아도 좋을 세상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그런 분들이 계시기에 오늘도 난 힘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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