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기독교 유적지 기행-살아오는 역사의 순간들

분단된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철원이 초겨울부터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하얀 입김을 불며 다녀야 하는 추운 곳이라고만 생각했던 기자는 취재 차 내려갔던 날, 땀을 뻘뻘 흘리며 다녀야 했다. 사실 “뻘뻘”이라고 하기엔 지나친 감이 있지만 그만큼 날씨는 포근했다. 12월이었지만 한낮에 쏟아지는 햇살은 마치 늦가을 같았고 가끔씩 불어대는 매서운 바람만 아니라면 분명 가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각종 보온장비(?)들로 완전 무장했던 기자는 취재가 끝날 무렵, 목도리도 잠바도 내팽개친 채 간간히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강원도의 맑은 바람을 흠뻑 마시는 여유를 부려보기도 했다.

사실 강원도 철원 지역에 관해 기자가 가장 많은 얘기를 들었던 것은 남자친구들과 선배들에게서였다.

주로 군입대 시절 철원지역에서 근무하던 얘기들이었는데 그래서였는지 이념의 대립, 시대의 뼈아픈 현실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장소인만큼 철원에는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적 현장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푯말 옆에 멈춰선 기차의 잔해, 열흘 간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던 처절한 격전지 백마고지, 공산치하 5년 동안 철원, 김화, 포천 일대를 관장하며 애국 인사들을 체포, 고문, 학살했다는 공산당 당사인 노동당사, 남침용으로 만들었다 발견된 제2땅굴…. 이념의 차이와 강대국들의 권력으로 인해 두 쪽으로 갈라져버린 이 땅에 남아 있는 현장들은 역사의 상흔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선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철원, 그 곳에는 분단의 아픔으로 인해 사라져버린 철원읍교회도 있었다.

◇무너진 교회 터에는 건물의 잔재만이 남아있다.

철원읍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철원군 관전리였다. 아니 정확히 말해 철원읍교회 터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었다.

 한국전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완전히 폐허만이 남아 있는 철원읍교회 터는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교회 건물과 무성하게 자라난 이름 모를 잡초들, 그 앞에 놓인 24개의 계단이었다.

노동당사에서 차로 채 5분도 걸리지 않을 곳에 위치한 철원읍교회는 처음 1905년 철원에 기독교가 전파된 이래 장로교회 선교사 웰번에 의해 시작됐다고 한다.

정확히 교회가 당시 건축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철원읍교회가 뿌린 씨앗으로 인해 해방직전까지 철원지역에는 김화, 금성, 창동, 내금강, 연천, 월정 등 13개 구역에 수많은 교회가 생겨났다고 한다. 철원읍교회는 철원지역의 어머니 교회였던 것이다. 처음 장로교회였던 철원읍교회는 1907년 선교구역을 분할할 때 남감리교회로 편입돼 원주교회 창시자의 한 사람인 콜리어 선교사가 맡게 됐고 1920년에는 앤더슨 의료선교사와 어윈 여선교사가 상주하여 활동해 점차 부흥하게 됐단다.

당시 철원읍교회는 철원지역 복음의 씨앗이기도 했지만 3·1운동의 중심이기도 했다고 한다. 1919년 3월 10일 박연서 목사를 중심으로 교회 청년들은 3·1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이들은 지방 청년들과 함께 천여 명이 철원군청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일본 헌병대로 몰려가 구속한 사람을 석방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것이 관철되지 않자 다시 군청으로 가 일본인 직원들에게 독립만세를 부르라고 하기도 하며, 2백여 명은 철원역으로 행진, 정차하고 있는 열차 안의 승객들을 향하여 만세를 부르고 승객들도 함께 불렀다고 전해진다. 독립운동의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철원읍교회는 교세가 더욱 신장하였고 1936년에 다시 신축하게 됐다.

◇교회 벽면에 선연히 남아있는 총탄자국.

교회 터는 말 그대로 명당자리 같은 곳이었다. 비록 교회 터 앞에 남아 있는 그림으로나마 교회의 모습을 그려보건데 배산임수의 ‘수’는 없었지만 교회의 뒤쪽으로 산이 병풍처럼 안정감있게 둘러쳐져 있었고, 앞에는 밭이 있었다.

 또 교회는 24개의 계단을 올라서야 하는 높은 곳에 있었는데 교회 터에 올라서 아래 쪽을 바라보니 넓게 펼쳐진 지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터에 3층짜리 건물이었다니, 생각해보면 당시로서는 참으로 큰 교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더욱이 교회의 평수를 모른 채 남아 있는 터만 둘러보아도 그 크기가 지금의 웬만한 규모의 교회와 같았는데 알고 보니 건평 대략 200여 평, 대지는 1천7,8백평이었다고 한다. 고딕 건축물로 미국인 건축가 보리스가 설계했다고 하는데 그림으로만 보아도 꽤 현대식 건물이다. 그렇다면 이 교회가 왜 지금의 폐허로 남게 된 것일까.

"일사 후퇴 때 인민군과 중공군은 이 예배당에 모여 진을 쳤습니다. 그리고 양민을 데려가 고문도 하고 학살도 했습니다. 그들은 유엔군이 교회만은 폭격을 안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그러나 어떻게 정보가 들어 갔던지 하루는 유엔기가 날라와 폭격을 했습니다.

당초에는 지붕만 날라갔는데 수복 후에 주민과 군인들이 합작, 석축한 화강암을 팔어먹어 지금은 이 지경이 됐습니다.”(철원읍교회가 세운 장흥교회의 이금성 장로―<한국기독교문화유적> 중에서)

◇자료로 남아있는 당시 철원읍교회의 모습.

한국전 당시 미군이 교회를 폭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북한군이 철원읍교회를 근거지로 사용하고 있던 중 미군의 폭격으로 철원읍교회는 폐허가 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교회는 폭격 당시 지금의 모습처럼 초토화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금성 장로의 말처럼 전쟁 후에 완전히 박살난 셈인 것이다.

 남과북이라는 대치된 현실 속에서 시대의 희생자로 스러져간 3·1운동의 근거지요 철원지역의 복음의 씨앗이었던 철원읍교회 터를 보고 있노라면 분단된 이 땅의 현실이,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두 갈래로 찢겨져야만 했던 현실이 새삼스레 진한 아픔으로 저려오는 것 같았다.

현재 철원읍교회 터는 실상 교회의 역사 유적지로서 잘 관리돼 있는 상태는 아니다. 훗날 철원제일감리교회로 불렸던 철원읍교회는 노동당사를 비롯해 주변의 안보관광유적지들과 맞닿아 있어 찾는 이들이 간간히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교회 터 주변에는 표지판이 있을 뿐, 그 외에 자세한 정보가 없고 교회 터를 아무나 밟고 들어가 손댈 수 있도록 돼 있는 상태여서 훼손이 심각했다.

 이미 훼손된 교회건물의 흔적이지만, 생생하게 남아있는 전쟁 당시 총탄의 자국들, 그리고 그 교회 터에 담겨있는 역사적 의미들이 후대들의 무관심과 소홀함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 독립운동의 장에서 혼신을 다하고 더불어 철원 지역의 복음 전파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이들, 그런 이들이 모여 예배했던 철원읍교회가 시대의 아픔으로 사라져야만 했던 이 땅의 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간절한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철원/ 김진아 기자 nebo@cnew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