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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의 代母, 일어나세요”
<금주의 인물> “직지의 代母, 일어나세요” 最古 금속활자본 ‘직지’ 발견… 암투병 박 병 선박사 [문화일보]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재불 서지학자 박병선(81)씨가 지난 9월 한국을 찾았다가 암 선고를 받고 경기 수원시 팔달구 지동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에서 투병 중이라는 소식은 이번 주 초 갑작스러운 추위에 움츠린 우리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했습니다. 1955년 8월 ‘프랑스 파리 유학 여학생 1호’로 파리 외곽 오를리 공항에 도착한 이후 50년 넘게 프랑스에서 홀로 살며 우리 문화재와 역사 자료를 찾고 연구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친 그가 입원비와 치료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에 그를 돕고자 하는 네티즌들의 성원도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박씨는 1967년부터 1979년까지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면서 도서관에 소장된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이하 직지)’과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 191종 297책을 찾아낸 바로 그 사람입니다. 원래 교육행정학을 배우고 돌아와 유치원과 초·중등학교를 운영하겠다는 꿈을 안고 소녀시절부터 동경해 마지 않던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 그가 소르본대 박사학위 취득을 앞두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하게 된 데는 은사였던 서울대 사학과 이병도 교수의 당부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원래 서울대 사범대에서 역사를 전공할 때 이 교수의 강의를 몇 차례 청강한 적이 있는 박씨가 유학을 앞두고 찾아갔을 때 이 교수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인들이 약탈해 간 문화재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몰라. 사학을 공부했으니 자네가 그걸 찾아보기 바라네”라고 격려했다는군요. 이 교수의 당부와 도서관 직원으로 있으면 책을 마음대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시작한 프랑스 국립도서관 근무 첫해에 박씨는 소장품 중에서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어낸 ‘직지’ 하권을 발견했습니다. 이후 다양한 실험과 검증작업을 통해 ‘직지’가 독일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0여 년이나 앞선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본임을 증명해낸 박씨는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 도서의 해’ 기념 도서전시회에 ‘직지’를 출품해 그 가치를 공인받게 됩니다. ‘직지’와 달리, 외규장각 도서는 박씨가 거의 10년이 넘도록 웬만한 곳을 다 뒤진 끝에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파리에 볼 일이 있어 찾아온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에서 일하는 지인과 함께 밥을 먹다가 서고에 한자로 된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말을 듣고 사정한 끝에 조선왕조 ‘의궤(儀軌)’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 것이죠. 1978년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낸 사실을 파리 주재 한국특파원들에게 알린 박씨는 ‘한국의 스파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결국 이듬해 사표를 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바로 몇달 뒤 다시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찾아가 옛 동료들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외규장각 도서 297책의 해제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박씨가 1985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출간한 ‘조선조의 의궤’는 그가 당시까지 조사한 외규장각 도서와 국내 규장각·장서각 소장 의궤를 비교해 목록화한 것으로 조선왕조 의궤 연구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박씨가 지난해 출간한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태학사)는 바로 이 책의 개정증보판입니다. 이와 함께 지난 2001년 한국어와 영어, 프랑스어로 동시출간된 ‘한국의 인쇄사’ 등이 박씨의 대표적인 저서입니다. 불교서지학자인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 등 최근 병원을 찾은 지인들에 따르면 박씨는 오는 17일까지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병행한 뒤 일단 퇴원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고령인 점이 걱정은 되지만 최근 들어 병상에서 병인양요 관련 한국자료를 찾는 등 의식도 또렷하다고 합니다. ‘직지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박씨는 매년 9월 ‘청주직지축제’ 개최에 맞춰 청주고인쇄박물관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아왔습니다. 올해는 한국 방문 길에 불의의 암 선고를 받고 두 달 넘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지만 박씨에게 이는 또다른 도전의 시작일지 모릅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직지’와 외규장각 도서 297책을 찾아내고 이를 전 세계에 알릴 때 보여준 열정과 집념이라면 그가 앞으로 겪어야 할 수술 등 암과의 힘겨운 사투도 극복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를 지켜보는 정부와 국민들의 성원과 격려도 필수적이겠지요.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9-1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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