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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댐 건설로 물에 잠기는 연천 고문리의 ‘마지막 겨울’
한탄강댐 건설로 물에 잠기는 연천 고문리의 ‘마지막 겨울’ [경향신문] 연천 | 최명애기자 “쫓겨온 사람들이 만든 마을 이제 어디가서 살란 말이오” 경기 연천군 연천읍 고문2리. 한탄강댐이 완공되는 2012년 12월 마을은 물속에 잠긴다. 120여가구 가운데 40여가구만 남았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공사장의 중장비 소리가 바람을 흔들었다. 마을 어귀 재인폭포 앞에는 매점이 3곳이었지만 신라상회 한 곳만 문을 열었다. 박금철씨(74)는 불도 켜지 않은 채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수몰된다니까 다 나가버렸어. 남은 것만 다 팔고 나도 떠나려고….” 창문에는 ‘국수’ ‘도토리묵’ 메뉴가 붙어 있었지만 “뜨거운 것은 안 된다”고 했다. 한탄강댐이 건설되면 수몰되는 경기 연천군 고문2리에서 24일 한 주민이 철거 예정인 빈집을 쓸쓸히 바라보고 있다. <연천 | 김문석기자> 120가구 중 40여가구만 남아 두 집 걸러 한 집꼴로 붉은색 스프레이로 ‘철거’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마당에는 빈 음료수 캔이 굴러다녔고, 따지 않은 호박이 지붕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지난 서너 달 새 60여가구가 더 빠져나갔다. 보상이 완료된 주택 거주기간이 지난 6월30일로 끝났기 때문이다. 빈집들은 올 겨울 철거된다. 한탄강댐은 마을 한가운데 들어서게 된다. 양계장을 가로질러 이쪽 끝과 저쪽 끝을 694m의 댐이 잇는다. 12월 현재 한탄강댐 공정률은 27%. 배수터널 공사가 끝나면 내년 하반기 본댐 공사가 시작된다. 올해가 고문2리의 마지막 겨울이다. 땔감으로 쓸 나무 장작을 패던 최창식씨(67)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올해로 33년 살았소. 자유당 시절인데 사업이 쫄딱 망해서 여기로 들어왔지. 고철만 주우면 먹고살 수 있었거든. 그걸로 자식들 공부 시키고 유학도 보냈는데….” 마당에서는 메주콩이 끓고 있었다. 주민 대부분이 최씨처럼 30~40년 전 마을로 들어왔다. 38선 이북인 고문리에는 토박이가 거의 없다. 마을에서 1.5㎞ 거리에 전차포 사격장인 다락터 사격장이 있어서 이주민들은 탄피를 주워 내다 팔았다. 탄피 줍고, 텃밭에 고추나 콩을 심으면 먹고살 만했다. “여기는 쫓겨온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마을입니다. 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다시 쫓겨나가게 된 거죠.”(최해선 한탄강댐 제 1대책위원장·49) 한탄강댐은 1990년대 후반 경기 파주·연천·문산 일대의 대홍수 이후 홍수대비책으로 계획됐다. 99년 처음 발표된 후 추진과 재검토를 반복하다 2006년 12월 홍수조절용 댐 건설기본계획이 고시되며 건설이 확정됐다. 지난해 3월 착공에 들어가면서 ‘끝난 일’로 여겨졌지만, 주민들에겐 아직 남은 겨울이 길다. “땅이 있어야 농사를 짓지. 파출부를 해보려고 해도 나 같이 늙은 사람은 안 써줘.” 댐 건설에 반대해 온 강용식씨(여·68)는 지난달 대책위가 조성한 이주단지로 이사했지만, 먹고살 일이 걱정이다. 45년간 집 앞 텃밭에 의존해 살았지만 그 밭이 없어지는 것이다. 강씨는 “고문리로 마실 갈 때마다 살던 집이 보인다. 우물물 퍼서 쌀 짓던 집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댐 건설에 찬성해 수자원공사의 집단 이주 지구로 옮기기로 한 17가구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논밭 대신 비닐하우스 농사나 펜션을 지을 요량으로 수자원공사에 요청한 공동시설부지 분양가가 예상을 웃도는 평당 57만원으로 책정된 것이다. 수공은 원가 분양이라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그 정도 돈이 있는 집은 서너가구에 불과하다”며 “오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김준문 이장(54)은 “정부의 약속 믿고 집과 땅을 다 내줬는데 이제 와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했다. 댐 건설에 찬성해 협의를 이끌어왔던 그는 “도망가지 않고 댐 밑에 마을 하나 만들어 살려고 했다. 수몰민도 잘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이때까지 버텨왔다”고 말했다. “이주단지 땅값 비싸 엄두 못내” 어둠이 깔린 저녁 7시. 마을 뒤 언덕 자락의 교회로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교회에는 구슬과 전구도 매달았다. 크리스마스 예배를 위해서다. “32년 된 교회예요. 내년이면 이주해야 하니까 올해가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될 겁니다. 아이들이 공연도 준비했어요.”(공병옥 목사·48) 마이크가 없는데도 노랫소리는 교회 밖 마을로 울려 퍼졌다. 불이 켜진 집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적었다. 모두 일곱 집이었다. 연천 | 최명애기자 <연천 | 최명애기자> 입력 : 2008-12-26-00:26:34ㅣ수정 : 2008-12-26 00:2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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