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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결정을 논함(김용옥님)
"이라크 파병결정을 論함" 김용옥/doholk@munhwa.co.kr 인류역사는 도덕적명분만을 정당화안해 지난 주말에 나는 영주(榮州)·순흥(順興)·풍기(豊基)를 다녀왔다. 오랜 친구 손진책·이두식이 주관 하여 자기 고향에서 부석사 화엄축제를 벌이는데 내가 꼭 참가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조르고 또 졸 라 하는 수없이 내친 걸음이었지만, 백운동(白雲洞) 소수서원(紹修書院)의 송림을 들어서면서부 터 우리나라 유학의 본원지요, 충절과 기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죽계(竹溪)의 취한(翠寒)을 굽 어보니 이곳을 이제야 처음 밟게된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에 유학을 처음 도입한 동방의 주자(朱子), 회헌(晦軒) 안향(安珦, 1243∼1306)도 이곳 사 람이요, 그 주자학의 이념에 따라 새롭게 조선건국의 마스터플랜을 짠 삼봉(三峰) 정도전(鄭道 傳,1337∼1398)도 이곳 사람이다. 단종의 폐위에 반대한 금성대군(錦城大君, 세종의 여섯째 아들) 이 사육신의 피비린내에 연루되어 유배당한 곳도 바로 이곳 순흥이다. 성품이 강직하고 고결했던 금성대군은 결국 이곳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과 함께 단종복위의 거사를 획책하였고, 이곳의 사 족들은 대의명분이 바른 그 격문에 호응하여 의병대열에 참여하였지만 관노의 밀고로 사전발각되 어 모두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곳 남정네의 씨가 말랐다 할 정도로 분노에 찬 세조의 칼날이 금성대군과 순흥 안씨 사족의 모 가지에 내리쳤고 죽계천에 흘린 수천명의 피가 7㎞나 흘러흘러, 지금도 그 이름이 현존하는 ‘피끝 마을’에서나 멈추었다고 한다. 이라크 전쟁 그 자체는 覇道의 비극 이들의 피맺힌 한은 226년후 숙종 9년에나 복권되었으니, 5·18광주민주항쟁의 젊은이들이 금남로 에 흘린 피가 10년후에 신원된 것에 비한다면 그 원루(寃淚)의 통렬함을 가히 헤아릴 수 있을 것이 다. 특기할 사실은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이 바로 이곳 안향이 수학한 숙수사(宿水 寺) 폐찰터이자 순흥의 기개높은 수천의 젊은이들이 피흘린 바로 그 자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고등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는 백운동서원을 세웠고, 주세붕의 뒤를 이어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명종으로부터 편액을 받아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개명함으로써 그 서원은 우리나라 최 초의 사립대학으로 우뚝 솟았다. 조선조의 가장 많은 선비를 배출한 소수서원 학통의 배면에는 이곳 영주의 선비들이 대의명분을 위하여 흘린 피가 서려있다는 사실(史實)을 가슴에 한번 애잔하게 새겨봐야 할 것이다. 취한대 곁에 주세붕이 새긴 경(敬)이라는 붉은 글씨가 오늘도 그 유생들의 의혈(義血)을 전해주 고 있다. 충절의 고장, 선비의 고장인 이곳 영주의 시민회관에는 예상을 뒤엎고 천여명의 시민이 이 초로 의 선비 도올의 강의를 듣겠다고 빽빽이 일·이층 복도까지 메웠고, 과연 명불허전이라, 두시간이 상이나 남녀노소 그 어느 누구도 조금의 흐트러지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옛선비의 기개를 느끼게 하는 분위기였다. 이 지역의 훌륭한 지성의 전당인 동양대학교 최성해총 장님의 진성(盡誠)의 환송인사를 받으며 새마을호를 타고 청량리역에 도착했을때, 나는 울려퍼지 는 라디오뉴스를 통해 노무현대통령의 파병결정소식을 들었다. 18일 정오였다. 처음에 나는 아찔했다. 그리고 노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엄습했다. 재신임결단의 배면에는 최소 한 파병문제를 재신임이후로 연기시키려는 명분과 그에 따른 이상주의적 행동의 치열한 계산이 숨어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파병은 도덕적으로 정당치 못하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앞서 미국이 벌여놓은 이라크전쟁 그 자체가 인류의 역사상 가장 명분이 없 는 전쟁이며, 한 강대국의 단순한 탐욕을 위하여 모든 주변국이 공납의 제물을 강요당해야만 하 는 패도(覇道)의 비극이라는 사실을 상기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비극은 바로 인류의 역사가 도덕적 명분을 정당화시키는 방향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리고 이 주사위판에 패를 걸지 않으면 안되는 불가 피한 입장에 놓여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패를 던져야 할 것인가? 최근 시정연설에서 파병문제는 아주 신중한 태도로 임하겠다고 공언한 노대통령이 이와같이 급선 회를 한 것은, 유엔 안보리의 결정에 급물살을 타지않을 수 없었다는 시의적 상황과, 방콕APEC 정상회담에서 부시와 만나기 전에 정상회담에 무게를 실을 수 있는 지렛대를 하나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고 본다면, 하여튼 현정권이 이전의 미적미적하던 태도와는 달리 상 황변화에 과감히 발빠르게 대처한 것만은 확실하다. 남북문제 이니셔티브 보장받아야 그리고 파병결정이 재신임정국에 부정적 요소가 될 수도 있겠지만, 파병반대의 주요세력이 노무 현지지기반인 진보세력이며, 그들은 오히려 재신임문제때문에 노무현반대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 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고 본다면, 파병결정의 후유증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절묘한 타이밍을 골랐다는 역설도 가능하다. 나 도올은 미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지만 우리민족이 미국에 대한 막연한 의 존심리, 미국이 떠받쳐주지 않으면 하루도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극단적 사대주의의 불안감에서 하루속히 해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현재 인류사의 연기구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나라이 며, 불안하기는 하겠지만 독자적 생존능력이 없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외압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며, 우리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비하시키는데 익숙해 있다. 이러한 익숙상태가 우리나라 꼴보수 우익세력의 광상(狂想)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분명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 그리고 약소국으로서 걸어가지 않을 수 없는 필연적 운명이 있다. 이러한 운명을 감안하면서 이라 크파병의 문제를 미국의 압력에 굴종하여 대리전을 치른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보다 창조적으로 보다 거시적으로 해석해야하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첫째 미국의 이라크결의안이 유엔안보리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은 파월의 외교적 승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결의 배면에는 세계평화에 대한 강대국들의 우려가 숨어있다고도 볼 수 있 다. 다시 말해서 이라크의 민족자결의 원칙을 존중한다 하더라도, 현시점에서 이라크를 방치한다면 그것이 발칸반도의 비극처럼 또 다른 성격의 유혈사태를 유발시켜 세계평화를 어지럽히는 화약고 가 될 수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파병은 미국을 위한 대리전 파병이 아니라 세계평화의 유지를 위 한 파병이라는 세계사적 명분을 확보해야 한다. 이에 따라 그 파병의 규모와 성격과 시기 등이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되어야 마땅하다. 이를 위하여 이라크현지 주민들의 구체적 요구와 외교적 채널을 통한 주변국가들의 중동평화에 대한 요구를 보다 엄밀하고 다양하게 수집하여 판단을 내리고 미국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군은 지휘체계나 작전수행에 있어서 모든 테크니컬한 코드가 미군의 체제와 맞기 때문에 미 국에게는 효용성이 가장 높은 군대이며 필요불가결의 동맹군이다. 이미 파병결정을 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미국에게 엄청난 이익을 선사한 것이다. 따라서 이에 상 응하는 충분한 대접과 보상을 따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둘째 이라크파병에 관하여 미국의 이니셔티브를 인정한다 한다면, 이제 한반도의 남북문제에 관 하여서는 대한민국의 확실한 이니셔티브를 미국에게 보장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불가침조약의 형식이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모든 문서보장과 의회결의를 확약받아야 하며 남 북경협이나 6자회담에 있어서 한국의 주도적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부시는 미스터 프레지던트(Mr. President)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데도 ‘디스 맨’(this man)이라는 표현을 썼다. 김대중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불편감 을 표시하는 언사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노무현대통령이 갔을 때는 ‘이지 맨’(easy man)이라고 표현했다. ‘만만한 사람’이라는 뜻 이다. 이제 노대통령은 외유내강(外柔內剛), 선약후강(先弱後强)의 ‘터프 맨’(tough man)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해야 한다. '이지맨'아닌 外柔內剛 '터프맨'되라 “사진찍으러는 가지 않겠다”고 한 당선 전의 신념을 “정치범수용소로 갈뻔했다”는 식으로 배반치 않고, 꿋꿋이 버티어냈더라면 오늘 노대통령에게 한·미관계에 있어서는 보다 당당한 이니셔티브 가 주어져 있을 것이다. 파병을 위하여 미국은 우리에게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아니되는 입장에 있을 것이다. 노무현을 변절 시킨 것은 그의 안목의 결핍과 인간적 허약함을 들 수도 있겠지만 한국 보수계층의 막연한 공포 가 그에게 굴복의 제스처를 강요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명백백하게 깨달아야 한다. 제1라운드는 노무현의 패배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재신임정국으로 시작된 제2라운드에 있어서는 노무현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사범대를 갓졸업한 신임교사는 자기 관념의 결백성에만 사로잡혀 첫해에는 학습분위기를 통솔치 못하는 경향이 있으나 다음해부터는 교사의 본무를 잡아가기 시작 한다고들 한다. 노무현은 어찌되었든 우리국민 다수가 뽑아 놓은 대통령이다. 노무현이라는 인간에 대한 호오(好 惡)를 떠나, 특히 대외문제에 있어서는 우리가 우리 지도자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우(愚)를 범해서 는 아니된다고 본다. 그를 인정하고, 그로 하여금 올바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오늘의 난국을 풀 어가는 한 좋은 방편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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