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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최종철
작성일 2024/05/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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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56      

전쟁의 승패와 군량

                                                                 전쟁의 승패와 군량

                                                                                                                 최종철 철원향토사학자

제21대 국회에 민군 관련 3대 법안이 있다. 한기호 의원이 발의한 ‘6·25전쟁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법’은 시행 중이며 평화나눔회가 이론적 기초를 만든 ‘지뢰 제거법’은 지난 2월에 공포되었다. 국방과 민생을 위한 ‘군급식기본법안’은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 법의 탄생을 소망하며 그 미래를 함께 생각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전란사를 보면 국방의 요체는 인화(人和)와 병식(兵食)에 있다. 희망이 없거나 군량이 부족한 군대는 승리할 수 없다. 즉 전쟁의 승패는 희망과 군량을 뒷받침하는 법과 지혜에 달린 것이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광해군은 1615년 2월 19일 북방을 방어하고 있던 의주부윤 박엽에게 상가서(賞加書)를 내렸다. 광해군은 상가서에서 “군사가 아니면 나라를 지킬 수 없고 식량이 아니면 군사를 양성할 수 없다(非兵無以守國 非食無以養兵)”며 “백성들에게 조세를 더 하지 아니하고도 군대가 3년을 먹을 양식이 있다(千斯倉萬斯箱民不加賦 一年師三年食軍有見糧)”고 칭찬했다. 후일 평양감사 박엽은 계해정변으로 처형되는 그 순간에도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전곡부를 도원수 한준겸에게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광해군을 이은 인조는 문무를 겸비한 왕이나 김자점 도원수의 늑장 보고로 산성에 고립되면서 비운을 맞게 된다. 1636년 12월 15일 남한산성에 포위된 인조는 장병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혈전을 펼쳤다. 그러다 군량과 땔감이 거의 다하고 비빈이 있는 강화도가 함락되자 1637년 1월 30일 청군의 철수를 조건으로 항복을 하게 된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이 낙동강에서 퇴각하게 된 것은 충분한 식량 확보 없이 모내기 철에 전쟁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남한의 농민들은 포 소리를 들으면서도 농사를 지어 쌀과 콩나물, 된장을 군량으로 공급했다. 1951년 백두진 재무부 장관은 전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군량을 확보하기 위해 물납제를 내용으로 하는 ‘임시토지수득세법’을 제정·시행했다. 한편 미군은 지게부대(KSC)를 창설하여 군량의 수송을 지원했다. 이처럼 용병지도(用兵之道)는 군량의 확보와 지원에 달린 것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한 사람으로 21대 국회에서 군급식의 법제화를 위한 논의가 이루어져 기쁘고 감사하다.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전략적 차원에서 군대 급식의 자연성 및 공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최근의 군납 기업화나 미식계(美食計)에 의한 가공식품 납품 확대는 청년 장병의 건강과 농어촌 경제 및 전시 급식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년이 건강하고 농어촌이 튼튼해야 국방도 튼튼해진다. 또 군대 급식의 과학적 관리와 질적 향상을 위해 군급양관 제도(기술장교)를 신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평시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급양을 위해 국방부와 행정안전부가 ‘군급식품의 계획생산조달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길 바란다. 행안부는 조변의 원칙에 따라 지자체에 그 권한을 위임하고, 지자체는 인력과 시설을 갖춘 협동조합 및 상인단체 등에 군납 업무를 위탁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군급식 제도 및 운영에 관한 체계적 연구를 위해 ‘군급양연구소’를 설립하길 바란다.

이번 마지막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희망의 기도를 멈출 수 없다. 이 나라와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군급식에 관한 기본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2대 국회에서는 강원도 국회의원들이 합심하여 농어민과 군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제21대 국회에 민군 관련 3대 법안이 있다. 한기호 의원이 발의한 ‘6·25전쟁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법’은 시행 중이며, 평화나눔회가 이론적 기초를 마련한 ‘지뢰 제거법’은 지난 2월에 공포되었다. 국방과 민생을 위한 ‘군급식기본법안’은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 법의 탄생을 소망하며 그 미래를 함께 생각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전란사를 보면 국방의 요체는 인화(人和)와 병식(兵食)에 있다. 희망이 없거나 군량이 부족한 군대는 승리할 수 없다. 즉 전쟁의 승패는 희망과 군량을 뒷받침하는 법과 지혜에 달린 것이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광해군은 1615년 2월 19일 후금을 제어하고 있던 의주부윤 박엽에게 상가서(賞加書)를 내렸다. 광해군은 상가서에서 “군사가 아니면 나라를 지킬 수 없고 식량이 아니면 군사를 양성할 수 없다(非兵無以守國 非食無以養兵)”며 “백성들에게 조세를 더 하지 아니하고도 군대가 3년을 먹을 양식이 있다(千斯倉萬斯箱民不加賦 一年師三年食軍有見糧)”고 칭찬했다. 후일 평양감사 박엽은 계해정변으로 처형되는 그 순간에도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전곡부를 도원수 한준겸에게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광해군을 이은 인조는 문무를 겸비한 왕이나 김자점 도원수의 늑장 보고로 산성에 고립되면서 비운을 맞게 된다. 1636년 12월 15일 남한산성에 포위된 인조는 장병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혈전을 펼쳤다. 그러다 군량과 땔감이 거의 다하고 비빈이 있는 강화도가 함락되자 1637년 1월 30일 청군의 철수를 조건으로 항복을 하게 된다.

6·25전쟁 때 북한군이 낙동강에서 퇴각하게 된 것은 충분한 식량 확보 없이 전선을 확대하였기 때문이다. 남한의 농민들은 포 소리를 들으면서도 농사를 지어 군량을 공급했다. 또 지게부대(KSC) 용사들은 식량과 탄약을 나르는 등 눈부신 활약을 했다. 이처럼 전쟁의 승패는 군량의 확보와 수송에 달린 것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한 사람으로 21대 국회에서 군급식의 법제화를 위한 논의가 이루어져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다.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전략적 차원에서 군대 급식의 자연성 및 공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최근의 군납 기업화나 미식계(美食計)에 의한 가공식품 납품 확대는 청년 장병의 미래 건강과 농어촌 경제 및 전시 급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군대 급식의 과학적 관리와 질적 향상을 위해 군급양관 제도(기술장교)를 신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평시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급양을 위해 국방부와 행정안전부가 ‘군급식품의 계획생산조달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길 바란다. 행안부는 조변의 원칙에 따라 지자체에 그 권한을 위임하고, 지자체는 전문 인력과 수송 능력을 갖춘 협동조합 및 상인단체 등에 군납 업무를 위탁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장병의 평생건강 및 민족농업의 진흥을 위해 군의 주식은 오곡으로 하고 부식은 지역농수산물로 하면서 절식을 포함하길 희망한다.

이번 마지막 법사위에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의 기도를 멈출 수 없다. 이 나라와 후손들을 위해 군급식에 관한 기본법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22대 국회에서는 강원도 국회의원들이 합심하여 농어민과 군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202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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