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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최종철
작성일 2022/07/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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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4      

최영 장군의 정신과 통일국가

최영 장군의 정신과 통일국가

                                                 
우리나라와 명나라가 요동(만주)의 점유권 문제로 패권을 다툰 전쟁이 있었다. 그것은 고려 우왕과 최영 장군이 합심하여 추진한 요동정벌이다.

이 요동정벌은 명나라 정벌과 중원의 회복을 위한 건곤일척의 출병(出兵)이나 정사에서는 이를 직서하지 아니하였다. 그 이유는 송나라의 문벌책(文伐策)과 사상전(思想戰)으로 모화사상과 춘추대의의 역사관을 가지게 된 고려말엽의 학자들이 그 진실을 외면하였기 때문이다.

명나라를 천조(天朝)로 부르고 동이족인 여진족을 오랑캐로 보는 화이적 세계관을 가진 여말선초의 사대부들에게 우왕(禑王)의 자주적이고 영웅적인 대외 출병은 이해 불가 그 자체였다. 이에 고려사 등에서는 우왕의 정료계(征遼計)는 정명계(征明計)이므로 이를 짐짓 은폐한 것이다.

이러한 예를 들면 논어의 “子欲居九夷(자욕거구이) 或曰(혹왈) 陋如之何(루여지하). 子曰(자왈) 君子居之(군자거지) 何陋之有(하루지유).”의 올바른 해석은 “공자께서는 도가 행해지지 아니함을 근심하여 동방의 구이에 가서 살고자 하셨다. 어떤 이가 누추할 터인데 어찌 가시렵니까?” 공자께서는 “(구이에) 군자가 살고 있으니 어찌 누추하리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를 조선왕조 500년 동안 “군자(공자)가 가서 살게 되면 어찌 누추하리요.”로 반대로 해석을 했다.

궁예왕의 북진정책과 팔관회를 계승한 고려(후고구려)는 공민왕에서 우왕 때까지 전후 3차에 걸쳐 요동으로 출병하였다. 제1차는 오늘날 서간도 지방을 공벌하였고 제2차는 이성계 장군이 당시 정치 중심이었던 요양을 공략했다. 제3차는 요동의 첫 전투에서 승전보가 울렸으며 북원과 협공을 약속했음에도 위화도에서 장마와 군량 부족 등을 이유로 회군을 했다.

현재 학계에서는 이성계 장군이 요동 수복(고토 회복)을 반대하여 회군을 했다고 하나 이는 진실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외국과의 전쟁을 반대하는 장군에게 우군 도통사라는 중책을 맡길 수 있겠는가. 이성계 장군의 4불가론은 회군 즈음에 만들어진 명분인 것이다. 이성계 장군은 요동에 정예부대를 보내 초전에 승리하여 후고의 염려를 없게 하였다. 그러나 명나라 국경으로 진군하라는 우왕의 명령은 거부한 것이다. 요동 수복은 천시, 지리, 인화로 볼 때 가능하나 명나라와의 전면전은 부담되기에 화가위국(化家爲國) 및 사직안정(社稷安定)을 위해 반기를 든 것이다.

당시 요동은 원명교체기로 무주공산이며 힘의 공백지대임으로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요동은 본래 고구려의 영토로서 궁예왕이 평양(남만주)을 다시 회복했으며 태조 왕건은 평양을 서경으로 삼았다. 공민왕 때 제2차로 요동에 출정한 장군이 태조 이성계이다. 이성계 장군이 요양성을 공함(攻陷)하고 철수한 다음해(공민왕 20년) 요양행성 평장 유익(劉益) 등이 사자를 보내와 요양이 본래 고려의 땅임을 들어 내부(內附)를 간청했다. 그러나 조정에서 회답이 없자 명나라로 귀부를 한 것이다.

지금은 만주를 남의 땅으로 인정하나 당시는 만주(요동)를 고려의 옛 땅으로 보았다. 그래서 원나라에서도 남만주를 관할하는 심양왕을 고려 왕족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성계 장군이 요양을 점령했을 때 고려 조정은 강계만호부로 하여금 방을 내걸어 요심인(遼瀋人)을 효유하길 “요양(遼陽)은 원래 우리 강토였다. 대군(大軍)이 또 출동하면 피해가 선량한 사람에게까지 미치게 될까 두렵다. 강을 건너와 우리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관청에서 양식과 종자로 쓸 곡식을 주어 각기 생업에 안정되도록 할 것이다.”라고 했다.

고려 조정에서 본국의 영토라고 선포하든 요동에 대하야 우왕이 다시 동원령을 내렸다고 하여 무엇이 불가한 일인가. 그 이유는 요동정벌의 최종 목적이 명나라 정벌에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당시에 요동은 고려의 옛 땅이라는 것을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기에 요동 정벌은 천명과 민심에 따른 것임을 말하였다. 그런데 역성혁명 이후 조선의 신하들은 이 요동 정벌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문제는 고려가 요동의 수복에 그치지 아니하고 명나라를 공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신숙주의 팔준마부(八駿馬賦)를 보면 이를 방증하는 내용이 있다.
저 앙큼스러운 애(우왕)가 자량치 못하고 / 彼狡不量
숫제 큰 나라를 공격코자 / 大邦是攻
6월에 군사를 일으켜 / 六月稱兵
요동을 지향하니 / 指遼之東
뭇 신하들 위태로이 여기고 / 群寮岌岌
인심이 흉흉한데 / 萬姓洶洶

다기로서 갑작스러이 반역죄 될 것이야 무엇잇스리오. 李太祖의 정벌할 때에는 반역죄가 되지 안코 崔瑩의 정벌할때에만 호올로 반역죄가 성립될 것인가. 물론 전자 출정과 후자 출정이 시간상으로 십 수년의 거리가 잇는 이만큼 時勢도 다소 변천하지 아닌 것이 아니로되 본국舊疆에 대한 회복운동이 明國天子에게 반역죄 될 것이 도모지 업는 것이다. 기탄업시 노골로 말하면 狐假虎威로 勃與하는 明國을 憑藉하야가지고 최영이하 征遼派를 일망타진하자는 계획에서 나온 것이다.




선인이 변하야 악인이 되고 충신이 변하야 역신이 됨은 윤리표준이 밧구게 되는 鼎革의 제에 흔이 잇는 사실이지만 麗末처럼 선악이 淆亂하고 忠逆이 전도한적은 업섯다.

최영가튼 剛直忠淸으로서 도리어 반역의 누명을 쓰어 一朝怨痛한 희생이 되고 말앗스니 최영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얏스리라. 사형하는 날에 國人이 撤市하고 街童巷婦까지도 모다 流涕하게 됨은 擧國이 최영의 그 죄 아닌데 寃死함을 통분히 녁임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그를 반역으로 몰아 죽이든 반대당까지도 그의 위대한 勳業을 찬미하야 功蓋一國이라고 칭하얏섯다.

그러면 功蓋一國한 元勳을 엇지하야 반역으로 몰아 죽엿느냐 하면 소국으로서 대국을 범하야 천자에게 得罪한때문이라한다. 「崔瑩事我玄陵, 定亂興王, 驅僧北鄙, 逮奉上王, 却倭寇於昇天, 以存社稷, ?群凶於今春, 以濟生民, 誠社稷之臣也, 然闇於大體, 不顧群議, 決策攻遼, 獲罪天子, 幾至覆國, 前功盡棄, 以瑩之功, 不幸有此叛逆之罪, 誠一國所不忍, 然在天下之議所謂人得而誅之者也」라 함은 반대당이 최영을 반역죄로 몰아죽이든 상소의 개요이다<2>. 이것은 위화회군한 이태조가 一戰에 征遼軍에 총사령으로서 본국에서 멀리 節度를 주든 최영을 執流하며 ?王을 폐출하고 어린 昌王을 세워 위세가 날로 성할때에 최영을 配所에서 巡軍獄으로 拿致하야 일편으로 推鞠하며 또 일편으로 상소하야 얼토당토아니한 뚱딴지가튼 그 실은 明天子가 아지도 못하는 「獲罪天子」라는 법전에 업고 선례도 업는 이상야릇한 明國에 대한 반역죄로 얼거 억지로 이유를 붓쳐 功蓋一國한 社稷之臣인 그를 誅戮한 것이다. 죽을적에 辭色이 自若하야 俯仰不?하는 대장부의 心胸이 생사를 통하여 坦然無碍함을 표시하얏지만 한번 征遼의 대경륜이 小武人의 야심으로 말미아마 수포에 終함을 생각하게 되면 그 얼마나 통분하얏스리오. 당시 요동으로 말하면 元國의 지배권이 이미 소멸되고 明國의 지배권이 아즉 확립치 못한 일종 空曠地域임으로 출병하면 영구이 점령할 수도 잇는 것이다. 요동은 본대 고구려의 舊疆으로서 이를 회복하려는 것이 고려의 국시이니만큼 기회만 잇스면 출병 점령하얏섯다. 恭愍王때에 대륙의 변란을 타서 關北을 회수하는 동시에 요동을 진공함이 전후 二次에 亘하얏섯는데 제二次의 出征 將은 李太祖이엇섯다. 太祖出征이 잇슨 翌年卽恭愍20년에 遼陽平章劉益等이 고려에 入朝하야 內屬함을 간청한 일까지 잇섯다.

지금은 만주를 남의 땅으로 인정하나 당시는 만주 즉 요동을 본국舊疆으로 간주하야 李太祖가 遼陽을 점령하얏슬적에도 北元에 咨文하되 遼瀋은 본국舊界이니 몽고와 한인은 관계가 업다하엿고 또 遼陽官民에게 曉諭하되 요하以東은 우리 彊域이니 爾等은 빨리 入朝하야 爵祿을 共享하자 하얏섯다. 李太祖 자기입으로 본국舊疆이라고 선포하든 요동에 대하야 崔瑩이 다시 동원령을 내리운다기로서 갑작스러이 반역죄 될 것이야 무엇잇스리오. 李太祖의 정벌할 때에는 반역죄가 되지 안코 崔瑩의 정벌할때에만 호올로 반역죄가 성립될 것인가. 물론 전자 출정과 후자 출정이 시간상으로 십 수년의 거리가 잇는 이만큼 時勢도 다소 변천하지 아닌 것이 아니로되 본국舊疆에 대한 회복운동이 明國天子에게 반역죄 될 것이 도모지 업는 것이다. 기탄업시 노골로 말하면 狐假虎威로 勃與하는 明國을 憑藉하야가지고 최영이하 征遼派를 일망타진하자는 계획에서 나온 것이다. 泰山이 微蟻에게 傾頹하는 일도 잇거니와 국가의 대 지도자로서 악착한 小朝廷의 반대당에게 용납되지 못하야 원약하게 죽엇스니 崔瑩의 死를 哭함은 곳 고려왕조의 亡을 哭함이다. 「崔瑩死而麗無人」은 적절한 評言이다. ?昌 兩王을 辛氏라하야 한 칼로 부자를 죽이고 鄭夢周를 「謀害忠良, 擾亂國家」란 죄목아레 椎殺하야 그 머리를 효시까지 하얏섯다. 그리하야 고려가 전복되고 말앗다. 이는 崔瑩이 죽은지 겨우 5년간 일이다.

국가가 일인으로써 흥하고 일인으로써 망함이 이를 두고 닐음이다. 어쨌든 麗朝가 망하고 이조가 창립되자 고등 정책상<3> 前朝 충신을 표창하야서 來世를 권장할 필요를 늦겨 鄭夢周가튼 순절한 이에게 대하야 ?閭?贈의 擧가 잇섯지만 崔瑩가티 국가주의에 순사한 이에게 대하야서는 최후까지 아무말이 업섯스니 그는 右文政策과 사대주의에 근본적으로 상반되는 인물을 장려할 수 업는 따문인가보다. 결코 최영의 인물이나 功業이나 충의이나 정몽주만 못하야서 그러함은 안이엿다. 「見金如石」「不事産業」「臨陣對敵神氣安閒」은 그의 풍격을 彷佛히 想見할 수 잇스며 「大小百戰, 所向有功, 未嘗一敗, 國賴以安, 人受其賜」는 그의 偉功을 것볼 수 잇스며 「每赴都堂, 正色直言, 不少隱」「吾於國事, 中夜思之, 詰朝語同列」은 그의 충의가 얼마나 絶倫한 것을 알 수 잇다.

이러한 고려一朝의 대표적 偉傑에게 대하야 國朝로서 비록 표창의 擧는 업슬지라도 國人들이야 엇지 참아 니저 버리랴. 그러나 최영의 사당이 겨우 무녀에게 의하야 지지할뿐이며 최영의 宅墟는 오즉 황초만 무성하야 아는 사람조차 업게쯤 되엇다. 누구든지 고려 고도를 방문할 때에 정몽주의 유적은 참배하되 최영의 유적은 참배하지 안이한다. 수학여행가는 학생들까지도 그러한 경향이 잇슴은 퍽 유감으로 생각한다. 수년 전 최영의 宅墟를 지내면서 都統征遼策, 堂堂國士風, 遺墟人不識, 寂寞夕陽紅, 이라는 감상적 拙句를 自吟한 일이 잇섯거니와 나는 국가주의라하야 崔瑩을 숭앙하는 것이 아니다. 絶大한 인물과 아울러 파격적 행동 그것을 장하다 한다. 조선인의 대륙에 대한 經略이 최영을 최후로 하고 말앗슴은 또한 엇지 할 수 업는 역사적 운명인지 그는 마치 모르되 厥後에 나는 인물이 아무리 偉傑일지라도 감이 대륙에 대하야 異志를 품지 못하게쯤 사대주의의 일정한 궤도를 버서나지 못하얏섯다. 그리하야 사상상으로 아주 반도민이 됨을 自甘하얏지만 한번 崔瑩을 想到하게 되면 저절로 眉揚神飛하야 襟度가 퍽 宏?하야짐을 깨다를 것이다.

一條鞭末定乾坤의 一句는 최영의 기상을 그대로 표시한 것으로서 三尺劍頭安社稷이라는 ??太祖의 一句에 비하야보면 두 인물의 대소가 일목요연하다 함은 前人의 評言이지마는 세상에 성패로써 가부여이 인물을 權衡하지 못할 것은 최영과 태조에 의하야 더욱 증명할 수 잇다. 성할수록 인격이 도리어 적어지기도 하고 패할수록 인격이 도리어 커지기도 한다. 최영가튼 이는 실패한 대인격자이다. 세상 사람은 아든 모르든 조선역사를 통하야 조선민족이 가진 가장 귀중한 국보의 하나이다.<4>

최 장군님은 진정한 장사이시니 / 崔將軍眞壯士
하늘이 우리나라 위해 이 땅에 보내셨지 / 天爲吾東生我地
손에 한 자루 검 들고 군흉을 섬멸하시고 / 手提一劍血群兇
좌로 홍건족 우로 왜적 물리치셨네 / 左?紅巾右黑齒
압록강에 출정한 군대 돌릴 길 없었으니 / 旌旗鴨綠無回路
동시에서 참형될 때 눈에 분노 가득하였지 / 東市衣冠眼猶怒
영혼이 적동에 돌아와 향사를 마련해 놓으니 / 魂歸赤洞鄕祠開
맹렬한 기운 생전처럼 고향의 곡식 드셨네 / 猛氣如存食故土
사후에는 되레 사람의 화복을 좌우하시어 / 死後還能禍福人
지금까지 분주히 홍양 백성들 분주하게 하셨네 / 至今奔走洪陽民
홍양의 백성들 장군을 제사하노니 / 洪陽之民祀將軍
금지며 취독이며 천세토록 받들리라 / 金支翠纛千千春
강림하여 흠향하시라 타고를 치고 / 迎神??伐?鼓
빚은 술 구운 고기에 무무를 벌이는데 / 釀酒?牲野巫舞
숲속 바람 불어와 지전 재 흩뜨리고 / 林風吹散紙錢灰
대낮에도 왕왕 신령스러운 비 내렸지 / 白日往往神靈雨
단청은 벗겨 나가 대낮에도 귀신 소리 들리고 / 丹靑剝落鬼晝嘯
철갑 옷 다 삭아 이끼 꽃 선명하네 / ?衣蝕盡苔花曉
한때의 공적이 만년토록 원한이 되었으니 / 一時之功萬世?
송악산은 창창하고 월산은 쇠락한 것을 / 松嶽蒼蒼月山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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