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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33
작성일 2020/04/06 (월)
첨부#1 20200505_훈민정음을_사랑한_대한제국검사_박승빈(철원문화원).hw (323KB) (Dow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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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됴션(朝鮮)’이라고 불러다오!

조선을 ‘됴션(朝鮮)’이라고 불러다오!
5천년 역사의 나라 이름을 되찾아야

고려의 명장 이성계가 건국한 나라의 이름은 조선이 아니고 됴션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종철 철원문화원 연구위원은 단군 이래 5천년동안 됴션(朝鮮)이라고 불러왔던 나라의 이름이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1930) 및 조선어학회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에 의하여 조선으로 변경됐다고 밝혔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한자어 발음을 규정한 제35항 및 제45항에 의거, 민중들이 보편적으로 발음하던 ‘됴션’이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조선으로 반강제적으로 바뀌어, 현재의 청소년들은 ‘조선’이 원래의 국명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연세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주미조선공사관 사진을 보면 ‘대됴션쥬미국공사관’으로 국호는 ‘조선’이 아니고 ‘됴션’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사진의 촬영 날짜는 1889년 4월 9일(음력)이다.

최종철 연구위원은 “철원 출신의 독립지사 우성 박용만이 우리말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의 이름도 ‘됴션말 교과서 둘재 책(1927)’이라”며 “조선어학회가 한자어의 역사적 발음을 무시한 철자법을 만들어 5천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 이름이 사라졌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학범 박승빈이 중심이 된 조선어학연구회는 기관지 <정음>에서 ‘됴션’의 이름을 ‘조선’으로 변경하여 버린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오구라 신페이 ‘언문일치’ 철자법 주장
한글 철자법은 문자와 발음을 동일하게 하는 것이 타당

조선어와 향가 연구로 평생을 바친 경성제국대학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 박사가 언문일치 철자법을 주장한 사실이 밝혀졌다.

최종철 철원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은 ‘오구라는 언문철자법 조사위원 시절 매일신보와의 인터뷰(1921. 3. 20)에서 조선어의 정리를 위해서는 문자를 발음과 동일하게 하는 방칙(方則)을 취함이 타당하다’며 ‘언문(한글)은 즉 언어를 표시하는 것으로 언어(言語)와 이를 표시하는 언문(諺文)과 상이할 것 같으면 조금도 언문의 필요를 느낄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즉 조선인의 발음을 본위로 하여 이에 적합한 문자로 철자법을 정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실지 언어의 발음과 조금의 차이만 있어도 불가하다고 지적했다.

오구라 신페이의 의견은 한글 맞춤법 총칙의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원칙과 같은 것으로 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철자법 정리인 것이다.

현행 문법은 조선어학회의 단어 고정 이론(어간 표의화)에 따라 ‘그러케’라는 말소리를 ‘그렇게’로 ‘업스니’를 ‘없으니’로 적도록 하고 있다. 또한 ‘머거’로 발음되는 것을 ‘먹어’로 적으라는 것은 발음 사실에 위배되는 비극적논리(悲劇的 論理)인 것이다.

이를 언문일치의 철자법으로 개선하려면 학범 박승빈의 학설에 따라 용언의 기본형을 문어체 ‘다’에서 구어체 ‘오’로 하여, 용언의 원형(원음)을 바로 잡으면 된다. 현행 맞춤법은 용언의 약음을 기본형으로 하고 있기에 많은 받침(새받침)이 생기면서, 학습과 실용에 막대한 부담을 주고 있다.

언어적, 역사적, 형태적으로 볼 때 머그오(머그-오), 미드오(미드-오), 기프오(기프-오)가 동사의 원형이다. 먹다(먹-다), 믿다(믿-다), 깊다(깊-다)는 동사 원형의 약음이다. 우리 민족의 공통 발음 및 용비어천가의 ‘불휘 기픈 남(뿌리 깊은 나무)’이  그 증거이다.

나아가 현재의 용언 어간 고정 이론을 용언 어미 활용 이론으로 수정하면서 겹받침을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할 것이다.

최종철 연구위원은 “오구라 박사의 조선어의 발음 위주 표기법은 역사적이며 대중적인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며 “청소년의 어문교육을 위해 소리 나는 대로 쓴다는 원칙을 기준으로 우리 문법이 재정립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오구라 신페이(1882~1944)는 미야기현 센다이에서 태어났다. 1906년 동경제국대학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으로 건너와 30여년 동안 옛 조선말과 향가의 연구에 학문적 정열을 다하였다.

오구라는 조선어의 방언과 역사적 연구를 토대로 1929년 향가 및 이두의 연구(경성제국대학)를 출간했다. 이 저서는 천여년 동안 아무도 풀지 못하였던 향가 25수를 최초로 해석하는 한편 이두 연구의 서막을 열어서 우리말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신라시대의 언어 및 한국고대문화의 뿌리를 찾는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오구라의 향가 연구에 자극을 받아 무애 양주동의 조선고가연구(1942)가 나왔다. 이어 이학수 박사(하와이대 교수)는 사뇌가연구(1959)를 로마에서 영어로 출간했다. 또한 향가부터 현대시까지 122편을 영역한 한국시(1974)도 간행하여 한국시가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렸다.

한국 방언학의 개척자인 그는 남부조선의 방언(1924) 및 조선어 방언의 연구(1944)라는 책을 남기고 1944년 2월 8일 자택에서 위궤양으로 별세했다. 그의 학문은 제자인 고노 로쿠로(河野六郞)가 계승했다. 1981년 우리나라 태학사에서는 소창진평 박사 저작집(전4권)을 영인했다.

한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은 일본 도쿄대학 소장 오구라 문고 한국전적(2018)을 발간했다.





잃어버린 말과 정신문화를 찾아서
조선왕실과 민족광복

우리 5천년 역사의 구비 구비에는 진실의 꽃이 피어 있다.
이제는 선입견을 벗어던지고 그 아름다운 진실의 꽃을 바라보자!

우리의 말글과 문화와 제도는 조선정신을 근간으로 하여야 한다.

우리는 식민지 시대와 자유당 독재를 거치면서 소중한 전통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조선왕실의 애민정신과 멋을 잊고 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총리대신이며 매국노인 이완용은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방의 전권대사로 임명됐다. 그는 조선왕실의 예우와 조선이라는 국호를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이를 수용했다. 한편 그는 기전체의 조선사(62권30책)도 편찬했으나 아직 그 내용이 일반 국민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일제가 패전할 때 까지 조선왕실은 이왕직(李王職)이라는 이름으로 그 정신과 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고종황제의 아들이며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왕 이은(일본육군중장)은 영국인 학자와 함께 영한소사전을 편찬했으며 한국어 교재도 만들었다. 그의 한국어 교재는 1962년 동경에서 발간됐다. 우아한 인품을 지닌 영친왕(英王)은 한국어, 일어,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하였다.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서양화는 일류 화가들이 인정할 정도의 실력이었다. 취미로 시작한 양란(洋蘭) 재배는 세계적 수준의 실력이었다고 한다.

군사전략가인 영왕을 자유당 정부에서 예우하여 장군으로 참전시켰으면 6.25전쟁 초기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연대급 이상의 병력을 실전에서 지휘한 장군이 한 사람도 없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장군으로는 홍사익 중장과 영왕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고종황제의 아들이요 순종황제의 아우인 의왕(義王) 이강은 의암 손병희와 함께 33인의 민족대표를 조직하여 기미만세운동을 일으켜 나라를 광복하는데 보이지 않는 공헌을 하였다. 의왕(1877~1955)은 3.1운동 직후 상해로 망명하려고 했으나 일경에 의하여 체포되면서 집중감시를 받았다. 한편 의왕은 독립운동자금을 유동열 장군에게 비밀리에 전달하기도 했다. 의왕은 6.25전쟁으로 무한한 고충을 당하기도 했으며 만년에는 천주교에 귀의했다.

4월 혁명으로 자유당 정부가 붕괴한 후 정릉에 살고 있던 윤비가 창덕궁 낙선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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