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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33
작성일 2020/03/26 (목)
첨부#1 박승빈_‘씨’라는_존칭어_보편화.hwp (12KB) (Down:3)
ㆍ조회: 17      

박승빈 ‘씨’라는 존칭어 보편화

박승빈 ‘씨’라는 존칭어 보편화

“상대방의 이름을 높여 부르는 씨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최종철 철원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은 철원 출신의 민권변호사이며 계명구락부 이사장이었던 박승빈(1880~1943)이 최초 제안자라고 밝혔다.

1921년 1월 16일 박승빈의 제안으로 계명구락부 총회에서 성명 아래 경칭어로 ‘씨(氏)’라는 말의 사용이 결의됐으며, 사회와 민중의 공감을 얻어 오늘날에도 보편적으로 쓰이게 됐다는 것이다.

최종철 연구위원은 “박승빈은 언어가 민족의 성쇠를 좌우하는 기본요체라는 생각으로 남녀 모두에게 평등한 존칭어로 씨라는 말을 제안한 것”이라며 “말은 그 사회의 실질적 사물을 유도하는 힘이 있으므로 보편적 언어는 평등사상을 유도한다”고 밝혔다.

박승빈의 손자 박찬도 씨는 “할아버지는 손자들의 인격을 존중하여 경어를 사용하셨다”며 “자유와 평등을 소중하게 여기셨다”고 술회했다.

계명구락부는 박승빈, 민대식, 김병로 등이 조선문화의 증진을 위하여 결성한 단체로 잡지 계명(啓明)을 비롯하여 삼국유사, 금오신화, 이능화의 조선무속고, 오세창의 근역서화징 등의 중요한 문헌을 발간했다.

계명구락부에서는 아동간 경어 사용, 조선어사전 편찬, 신생활운동도 펼쳤다.



박승빈 ‘씨’라는 존칭어 보편화

“상대방의 이름을 높여 부르는 씨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최종철 철원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은 철원 출신의 인권변호사이며 계명구락부 이사장이었던 박승빈(1880~1943)이 최초 제안자라고 밝혔다.

1921년 5월 박승빈의 제안으로 계명구락부 총회에서 성명 아래 경칭어로 ‘씨(氏)’라는 말의 사용이 결의됐으며, 사회와 민중의 공감을 얻어 오늘날에도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최종철 연구위원(50)은 “박승빈은 언어가 민족의 성쇠를 좌우하는 기본요체라는 생각으로 남녀 모두에게 평등한 존칭어로 씨라는 말을 제안하게 된 것”이라며 “말이 사회의 실질적 사물을 유도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계명구락부는 박승빈, 민대식, 장도 등이 친애도모와 조선문화의 증진을 위하여 결성한 단체로 잡지 계명(啓明)을 비롯하여 삼국유사, 금오신화, 이능화의 조선무속고, 오세창의 근역서화징 등의 중요한 문헌을 발간했다.

이 계명구락부에서는 아동간 경어 사용, 조선어사전 편찬, 신생활운동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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