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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최종철
작성일 2020/03/23 (월)
첨부#1 훈민정음을_사랑한_대한제국검사_박승빈(20200522).hwp (306KB) (Down:1)
ㆍ조회: 22      

민족국어학의 개척자, 박승빈

민족국어학의 개척자, 박승빈 변호사
조선어와 민족문화를 지킨 아름다운 사람

1. 여는 말
2. 학범 박승빈의 생애
 가. 출생과 청소년기
 나. 상경과 관직
 다. 동경 유학
 라. 귀국 및 대한제국검사
 마. 국제변호사대회 참가 및 인권옹호활동
 바. 보성전문학교 재건    
 사. 조선 체육 진흥에 기여    
 아. 총독부 학무국의 어문정책 비판                
3. 조선문화의 별, 계명구락부 ․ 조선어학연구회
 가. 계명구락부의 조선어강좌
 나. 조선어학회와 조선어학연구회의 철자법 전쟁
 다. 조선어학연구회의 정신적 계승자
 라. 훈민정음해례, 박승문 문법의 진실 증명
4. 학범 박승빈의 사회 활동
 가. 조선인의 신생활운동
 나. 사회기부와 조선어사전편찬 및 아름다운 인격
 다. 조선의 경제독립 희망 및 지행일치의 실천
5. 박승빈의 국어학 저서
6. 박승빈에 관한 종합적 저술 출간
7. 학범의 후손들
8. 음의문자와 한글 맞춤법 혁신방안
9. 맺음말

1. 여는 말

대한제국검사 박승빈은 고향이나 현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리 널리 알려진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한글연구초창기에 국어학자로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기었으며, 훈민정음의 진리를 온몸으로 지키려 한 잊을 수 없는 공로자이다.

박승빈, 그 진실의 꽃이 역사의 저편에 청초하게 피어 있으나 찾아가는 이가 별로 없다. 필자는 그의 복권을 간절히 희망하며, 훈민정음의 서광으로 우리 아이들이 글을 배우고 씀에 쉽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박승빈은 총독부의 언문철자법(1930) 및 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은 조선어의 근본을 파괴하는 것으로 정음(언문)의 역사적 학리에 모순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훈민정음을 근원으로 하는 역사주의와 민중적 입장에서 조선어를 연구한 것이다.

해방 이후 그의 국어사상과 문법이론은 선종(禪宗)의 신수(神秀)와 같이 많은 오해의 안개에 가려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훈민정음해례와 동국정운이 발견된 오늘날 학계와 사회에서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시대의 천재로 인격과 재력을 겸비한 그의 족적은 법조계, 교육계, 문화계, 체육계 등 다방면에 걸쳐 찬란하다. 그는 국어학자일뿐 아니라 장도 등 조선인 변호사 등과 함께 인권과 언론자유를 위해 활약한 조선 법조계의 기둥이었다. 1921년 1월 민대식, 고원훈, 김동성, 리용재 등과 계명구락부를 창설, 신생활운동 및 민족문화의 진흥에 불멸의 공헌을 하였다.

박승빈은 교육구국과 인재육성의 요람인 보성전문학교(1925-1932)의 교장을 7년간 역임하였으며, 보성전문과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조선어를 강의한 선생님이기도 하다. 스포츠 애호가인 그는 조선체육회 위원장(대한체육회장), 조선정구협회 회장, 조선축구협회(대한축구협회) 초대회장(1933. 9-1934)으로 활동했다. 그는 문맹퇴치를 위해 의무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예술협회 창립에 함께 했으며, 리충무공 유적보존회 위원 및 경성보육원 감사를 지냈다. 박승빈 그는 구한말과 일제하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선각자적인 역할을 감당하려고 진력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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