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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33
작성일 2020/03/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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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인’ 국내외 한글운동의 중심

‘철원인’ 국내외 한글운동의 중심
박승빈·박용만의 한글 연구 집대성 필요

철원인이 일제시대 한글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종철 철원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은 국권상실기에 학범 박승빈, 박승도, 최남선, 박용만 등이 한글의 연구와 수호에 헌신했다고 23일 밝혔다.

박승빈(1880~1943)은 철원 대마리에서 태어났으며 보성전문학교 교장 및 조선축구협회(현 대한축구협회) 초대 회장을 지낸 민족국어학자이다.

그는 조선어는 소리 나는 대로 적되 음절에 맞도록 하여야 한다며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 개정안(1930)을 통렬히 비판했다. 또한 훈민정음의 정신과 학문적 진리 및 역사적 표기법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문법이론을 세우고 조선어학회와 10년간 철자법 논쟁을 벌였다.

박승빈의 친척인 박승도(?~1940)는 한학자로 담원 정인보, 무애 양주동과 시문을 교류했다. 그의 묘소는 철원군 신서면(현 연천군 신서면)에 있다. 그는 조선어학연구회 기관지「정음」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단어 고정 이론(어간 표의화)의 모순을 비판하며 혼란 중의 조선어를 바로 잡기 위하여 노력했다.

동주 최씨인 육당 최남선은 박승빈과 함께 한글의 수호 및 조선어사전 편찬에 이바지 했다.

철원 중리에서 태어난 재미 독립운동의 선구자 우성 박용만(1881~1928)은 한인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1927년 조선말 독본 첫 책, 조선말 교과서 둘째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외국에서 만든 최초의 한국어 교재이다. 박용만은 조선말 교과서 둘째 책 서론에서 ‘한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모국어를 읽고·쓰고·들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책을 발행한다’고 했다.

최종철 연구위원(50)은 “일제시대에 민족의 생명인 한글을 연구하고 교육하며 진리를 위해 헌신한 철원의 국어학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강원도교육청과 청소년들의 관심을 소망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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