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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유미정
작성일 2019/03/21 (목)
첨부#1 나의_꿈(유미정)_-_고수정_3.hwp (52KB) (Down:2)
ㆍ조회: 34      

나의 꿈

                                                                           나의 꿈

                                                                                                                                                   
나의 꿈

유미정

 청소년 시절 제게는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연극인이 되는 것이었지요. 제가 처음 연극을 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강원도 종합실기대회에 나가기 위해 수업을 마친 빈 교실에서 친구들과 대본을 쓰고 연습을 했습니다.
 딱히 지도교사가 없었지만 우리는 열심히 연습을 했습니다. 한날은 연습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더라고요. 우린 함께 비를 맞으면서도 너무나 행복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도 대회에 나갔고 동상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해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뿌듯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연극동아리활동은 학교를 다니는 유일한 낙이기도 했습니다. 주말에 혜화동에 갔지만 연극을 볼 돈이 없어 포스터만 쳐다보다 누가 볼까 눈치 보며 그 포스터를 몰래 떼어 제 방에 붙여 놓고는 했습니다.
 한번은 국어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연극을 보러갔지만 돈이 모자라 같이 간 언니는 밖에서 기다리고 저 혼자 보기도 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해지고는 합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현실이 녹록치 않았던 저는 대학이 아닌 취업을 했지만 연극이 너무도 하고 싶어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연기학원 한 번 못 다녀보고 제대로 된 지도 한번 받아 본 적이 없는 제가 예술대학에 가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결국 저는 꿈을 접고 현실을 택해 다른 학과에 갔습니다.
 그런데 큰 시련이 닥치고 말았습니다. 집에 잠깐 다니러 왔다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사고는 크게 났고 팔과 손을 크게 다쳐 지체2급의 장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나이 23살이었습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길거리를 다닐 땐 항상 주머니에 손을 넣고 식당에 가면 탁자 밑에서 손을 빼지 않았습니다. 장애를 남들이 알아챌까 눈치를 보기 일쑤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비장애처럼 보일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만나려고 애쓰기 시작할 때쯤 제게도 좋은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가 말하길 ‘제 장애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임신한 지 3개월 때부터 한쪽 눈이 안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기를 낳고 치료를 했지만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한달이 넘는 딸꾹질과 구토로 몸무게가 13kg나 줄었습니다. 시신경척수염이었습니다. 뇌와 척수에 염증이 일어나 내 몸 어느 곳에든 장애를 남길 수 있는 희귀질환이었습니다. 재발 또한 잦은 병이었습니다. 이 병으로 시각장애2급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체장애에다 시각장애까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습니다. 지체장애만 가지고 있을 땐 “그래 신(神)은 참을 수 있는 고통만 주신다니까.” “이 정도는 감당해야지.” 했습니다. “이겨내야지” 했습니다.  
 그런데 눈까지... 앞이 보이지 않는 건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파리가 자꾸 달라붙고 윙윙 소리를 내며 제 주위를 돌아다녔습니다. 저 파리를 잡아야 하는데 잡지 못하는 제가 어찌나 한심하던지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고 체념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럴수록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고 감정은 가뭄이 든 우물처럼 말라가고 마음은 고슴도치 가시처럼 뾰족해져 갔습니다.
 그런 제가 안타까웠던지 한 지인이 복지센터에 나가보라고 권해 주시더군요. 그 때 웃음치료를 접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그동안 장애로 인해 느꼈던 절망과 슬픔이 점차 웃음과 긍정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삶의 변화 과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웃음치료를 배운 친구들과 함께 환우들과 보호자들을 위한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봉사를 더 즐겁게 하기 위해 공연단을 만들어 춤과 노래까지 배우면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춤을 배우기 위해서는 집이 있는 철원에서 구로디지털역이나 내방역까지 약4시간을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2시간 연습하고 다시 4시간이 걸려 집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제가 길을 다닐 때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길이가 어른의 중지만하고 굵기는 오백원짜리 동전만한 작은 망원경입니다. 작은 망원경으로 지하철노선을 확인하고 길을 찾아 다녔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목적지의 반대 방향의 전철을 타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타고 가던 전철이 고장 나서 도중에 내려야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생전 가보지도 않은 동네에서 택시를 타야 하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연습실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다른 사람들보다 더 긴장하고 신경을 바짝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동작을 틀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연습을 갔다 온 다음날은 온 몸이 두드려 맞은 듯 힘이 들었지만 힘이 든다는 생각보다 가슴에 채워지는 벅참이 더 컸습니다. 춤과 노래를 배운다는 것이 연극인의 꿈을 가지고 있던 제게는 너무도 행복한 일이었으니까요.
 공연 무대에 설 때는 학생 때 느꼈던 그 감정들이 다시 살아나는 듯 했습니다.
물론 공연을 할 때도 어려움은 있었습니다. 어느 공연에서는 신발을 짝자기로 가지고 가기도 하고, 무대 등장과 퇴장 입출구를 찾지 못해 여기저기 부딪치기도 하는 등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즐거웠습니다. 특히 공연 속에서 들려드리는 저의 이야기를 접한 분들이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말씀에, 자신의 삶에 감사를 느끼신다는 말씀에 저 또한 감사했습니다.
 어느 날 공연을 마치고 내려온 무대 아래서 함께 웃음을 배웠던 수녀님을 만났습니다. 수녀님께서 “자매님 꿈을 이루셨네요.” 하시더군요. 생각해 보니 그 말씀이 맞았습니다. 많은 길을 돌고 돌아 저는 꿈을 이룬 것이었습니다.  
 비록 수천 명 앞에서 하는 공연은 아니지만 소박한 무대에서 저의 삶을 나누며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일이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 꿈을 꿀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그 방법과 형식은 달라도 무대에서 긍정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저와 관객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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