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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내몰린 수몰민
강가로 내몰린 수몰민 옛말에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고 했다. 우리 주민들은 정부의 댐 정책에 희생되고 말았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러한 비극이 없기를 바라며 수몰민의 애한(哀恨)을 기록한다. 한평생 삶의 터전을 일구며 함께한 손때 묻은 가마솥, 퇴색된 문풍지, 정감어린 아랫목, 남은 여생을 함께하고자 했던 이곳에 한탄강댐 건설로 대책 없이 길거리에 내몰린 사람들의 절규가 한탄강가에 메아리친다. 연천군 고문리는 “포탄에서 떨어진 파편이 주민들에게 중요 수입원이며 생계수단”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다락터 사격장에서 밤낮으로 포탄 훈련을 했기 때문에 사격장 주위는 파편으로 즐비했다. 사격이 없는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이 되면 의정부와 포천 지역에서 파편을 줍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당시 고철 1관에 쌀 3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까지 와서 파편을 주었다. 고문2리는 다른 농촌 지역과 달리 사격장과 재인폭포가 있어 노인들이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생활할 수 있었지만 한탄강에 댐이 건설되면서 주민들은 생계수단을 잃게 되었다. 한탄강댐에 대해 고문2리 주민들의 65%는 찬성한 반면 나머지 35%는 반대했다. 찬성 측으로 이뤄진 수몰민종합대책위와 반대 측 주민들이 모인 한탄강댐제1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댐 건설 문제가 주민들간의 대립으로 촉발되면서 평화로웠던 마을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이로 인해 노인들이 대다수인 고문리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늘어가는 한숨소리와 답답하고 서글픈 현실에 괴로워하는 수몰민 어버이들이 늘어갔다. 사격장에서 고철을 줍고 강과 산으로부터 생계를 꾸리며 고단하지만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온 주민들을 거센 풍랑 속으로 몰고 갔다. 마을 주민들 중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많다. 황혼기에 만나 가정을 꾸린 한 80대 노부부의 경우 고문리에 정착해 구멍가게를 운영했는데, 한탄강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위기에 처하면서 헤어지게 됐다. 할아버지는 보상금을 받아 서울 막내아들 집으로 가게 됐다. 거취를 놓고 잦은 다툼과 충격으로 치매 증상을 보이던 할머니는 ‘어디로 가서 살란 말이냐’며 이불과 살림 도구가 널브러진 폐가 빈집을 홀로 지키다 2010년 5월경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그분들의 삶의 터전이던 ‘장미상회’는 중장비의 굉음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산골 농촌 마을에서 희망의 씨앗을 묻고 살아온 김수복 할머니(70대 중반)의 말씀이 지금도 가슴을 아려온다. 고령이지만 농사를 지을 만큼 건강했던 할머니는 눈앞에 다가온 절망에 심신이 지쳐갔다. 등골이 휘도록 일을 하며 살아왔지만 지금처럼 막막하기는 처음이며 즐거움과 행복이 무엇인지도 잊어 버렸다고 한다. 희망의 빛과 시간의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는 힘든 나날의 연속에서 불안과 서러움에 눈물을 훔치며 절망과 체념의 힘없는 목소리로 “약 먹고 죽어 버리지 뭐”는 지금도 폐부를 휘저어놓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땅이 있어야 농사를 짓지. 파출부를 해보려고 해도 나 같이 늙은 사람은 안 써줘.” 댐 건설에 반대해 온 강용식 할머니는 대책위가 조성한 재인마을로 이사했지만, 먹고 살 일이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45년간 집 앞 텃밭에 의존해 살았는데 그 밭이 없어지자 우물물 퍼서 밥 짓던 고문리 집을 그리워하며 지내던 중 갑자기 쓰러져 이 땅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감 하셨다. 2007년 2월 임진강건설단 앞에서 한탄강댐 반대 집회 도중 이웃 어르신께서 뼈만 앙상한 두 팔을 걷어붙이시고 인의 장막에 처절한 외침과 함께 달려드시는 모습. 저러시다 다치시면 안 되는데 오랜 세월 이웃에서 살아오시며 늘 웃으시던 인자한 분이 오늘같이 분개 하시는 모습은 처음이다. “우리를 차라리 다 죽이라”는 외침은 부도덕한 국책사업을 향한 마지막 절규이자 한탄강댐 건설사업에 종언을 선고하는 외침이었다. 지난 2010년 KBS 시사투나잇을 통해 한탄강댐 수몰민의 안타까운 사연이 방송 됐다. 김옥자 할머니(78)는 치매에 걸린 남편을 데리고 2000년도에 고문2리로 온후 주인이 세간까지 버리고 간 빈집을 수리해 살았다. 그는 병든 남편(84세)을 돌보며 재인폭포 화장실 청소와 파밭에서 일하고 받은 일당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한탄강댐 건설로 인해 마을에서 떠나게 되었지만 할머니 부부에게 지급되는 것은 이주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주비로 받은 돈은 780만원이 전부였다. 할머니는 근본적인 생계대책을 마련해 달라며 수자원공사 사무실(임진강건설단) 앞에서 한달 넘게 1인 시위를 하였다. 수자원공사는 이미 결정된 이주비의 재검토는 없다고 했다. 잘못된 사업결정으로 익숙한 풍경과 삶의 전부가 부서져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수몰민들은 무력감을 느낀다. 외줄 타기처럼 버티거나 혹은 추락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고독한 결정을 내리고, 평생을 지켜온 삶의 터전을 대책 없이 내주고 등 떠밀러 떠나야 하는 대다수 노인층은 낯선 땅으로의 정착이 한없이 두렵다. 가난한 수몰민에게는 감내하기 힘든 일방적 선택만이 기다리고 있다. 이산가족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지만 모든 것을 수장시키는 댐 건설은 마음의 고향으로만 남을 것이다. 친환경적인 목적물을 만든다지만 잘 짜인 시나리오대로 농촌공동체와 가정은 파괴되고 절망과 빈익빈 부익부의 구렁으로 밀어 넣는다. 상식을 벗어난 실태조사와 감정평가를 실시하고 주어지는 보상금은 재정착의 비용으로는 터무니없는 액수에 망연자실하며 절박함을 호소하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이다. 특히 삶의 터전을 잃은 혼자 사는 노인들과 보상받을 토지가 없는 소작농들은 “가면 어딜 가냐고 보상 받을게 뭐 있어 남의 땅에 집짓고 사는 사람인데” 그래도 그 땅에서 평생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은 댐과 더불어 사라졌다. 한탄강 댐 건설로 사라지는 마을 공동체에 시행되는 댐 주변 지원사업은 남은 자의 커다란 혜택이 되고, 가진 자에게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의 터전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가 노년층으로 삶의 터전을 떠난 고문리 주민의 눈물과 설움이 한탄강에 흘러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라도 국토부와 수공은 농촌공동체와 노년의 연약한 수몰민을 홀대하고 배제한 비극적 사업결정이 얼마나 무모하고 구시대의 퇴행적 산물인 것을 깨달고 바로 잡기를 바랄 따름이다. 2016.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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