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의 추억-이철우의원 간첩논란 (2) 고문의 추억-이철우의원 간첩논란 (2)
: 498 : 463
간첩논란(1)에서 이어진 칼럼입니다.
공소장에 기록된 김부자 초상화와 노동당 깃발은 그 상징성 때문에 대단히 선정적인 효과를 낸다. 한나라당에서는 이를 물고 늘어지며, 이철우 의원을 사실상의 간첩, 사실상의 노동당원으로 모는 중이다. 이에 맞서 이철우 의원은 공소장이나 수사기록에 나온 사실은 고문에 의한 강제적 자백일 뿐,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논란의 초점은 고문이 있었는지 여부로 옮겨졌다. 일부 보수언론은 당시 판검사의 말을 인용해 고문이 없었다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철우 의원이 고문을 당했음을 시사하는 정황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미 사건 당시에 대한변협 인권위원회에서는 강압수사를 문제 삼아 고소고발장을 제출한 바 있다.
재미있게도 당시 이상연 안기부장을 상대로 한 이 소송에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도 참여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한나라당 소속 의원도 당시에는 고문에 의한 강압수사가 이루어졌음을 인정했다는 얘기다.
민변, 민가협, 천주교 인권위, 불교 인권위 등에서 공동 제작한 자료집(1992)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철우(시립대 84학번)의 경우 연행(9월14일) 후 2~3일 동안 주먹 쥐고 물구나무서기와 무차별 구타를 당했으며 변호인에게 양손 약지 윗부분에 1센티미터 정도의 딱지 자국의 고문흔적을 보여주었음. 이와 같이 대부분의 피의자들이 잠 안 재우기, 집단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안기부에 끌려가면 고문을 받는 것이 당시의 상식(?)이었고, 이미 당시에 이 사건에서 고문이 이루어졌음을 말하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한나라당 의원조차도 안기부장을 상대한 한 소송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 이철우 의원이 고문 받은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철우 의원도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에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남산에서의 40일을 이렇게 추억하고 있다.
“물론 잊지 못할 남산에서도 40일을 살았다. 그 40일은 40년보다 더 긴 시간인지도 모른다. 지하실에서 검찰로 송치될 때의 기분은 새색시 시집가는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검찰로 송치되는 것이 “새색시 시집가는 기분”이었으니 남산 지하실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이철우 의원의 상급자였던 양홍관씨도 고문 받은 사실을 일관되게 증언했다.
“안기부에 끌려간 첫날, 수사관들은 팬티 하나 남기지 않은 채 모두 옷을 벗겼다. ‘뒤로 돌아서라’고 하더니 그들은 여기에 온 이유를 스스로 알 거라며 자백하라고 재촉했다.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니 갑자기 7명의 수사관들이 달려들어 양팔을 꽉 붙잡고는 주먹으로 사정없이 구타하기 시작했다. 창문에 묶어놓고 때리기도 하고 팔을 비틀고 각목으로 때리고 심지어 손가락에 나무를 찌르는 고문도 했다. (중략)하루종일 반복적으로 고문을 당하면서 그렇게 첫날이 흘렀다.”
심지어 그는 이 사건을 담당한 정형근 의원이 직접 고문을 했다는 증언까지 했다. 그런데 그 고문의 내용이 맨 귀로 들어주기가 상당히 남세스럽다.
“안기부에 끌려간 둘째 날 책임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들어왔다. ‘이 자식, 아직 안 불었어’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깡다구도 없어 보이는데 왜 안 불어’라고 화를 냈다. 그는 30cm 가량 길이의 막대기로 귀두를 때리기 시작했다. ‘포경수술도 안한 놈이 이거 완전 꼴통 아냐’고 말했다. 성적 혐오감과 인간적 비애를 느끼게 하는 성기고문을 통해 진술을 얻어내려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습관화된 모습으로 보였다. 그 당시는 몰랐지만 그가 나중에 국회의원이 된 정형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한 마디로 고문에 성 취향이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두 번째 성고문 사건인 셈이다.
이 증언의 진위는 국정조사를 해서라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일단 국정조사를 열어 당시 고문의 피해자들을 증인으로 초청해, 그들이 어떤 고문을 받았는지 청취해야 한다. 본디 반(反)인륜적인 범죄에는 시효가 없다. 10여년 전의 사건이지만 이제라도 당시에 비인간적 고문에 직접 참가한 자들하고, 그리고 그들을 지휘한 자들을 색출해서 엄벌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고문을 당한 피해자와 성고문의 가해자로 지목된 정형근 의원의 대질심문이 필요하다. 이미 여러 사람이 정형근 의원의 고문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이들을 모두 국회에 증인으로 불러 정형근 의원과 대질을 시킬 필요가 있다.
정형근 의원도 “고문을 했다면 이제까지 안 잡혀갔겠냐”고 빼지 말고, 피해자와의 대질에 당당하게 나섬으로써 이 참에 자신에게 늘 따라다니곤 하던 여러 고문 의혹을 확실히 해명할 필요가 있다.(간첩논란(3)으로 이어집니다)
진중권 / 문화비평가
입력: 2004년 12월 15일 15:04:33 / 최종 편집: 2004년 12월 15일 15:5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