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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탄강댐 건설반대 철원군대책위원회 [관련기사]
     
 
이름: 민족21
2004/3/11(목)
한탄강 특집기사  
갈대밭 갈아 옥답 일구었듯 한탄강 따라 의식은 자란다
2004 지역운동 현장을 가다|강원도 철원

 

박지수 기자 parkjs@minjog21.com

 

전쟁 전에는 북녘땅, 전쟁 중에는 전쟁사의 신기록을 남긴 격전지, 전쟁 후에는 군부대의 통제를 받는 반공의 고장. 중부전선 최접경지 철원의 이력이다. 그러나 어느 새부턴가 이곳에는 내음을 알 수 없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한탄강 물줄기를 따라 협곡을 타고 번지는 바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강원도 철원으로 가보자.

   
  철원 노동당사.  

“여긴 정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건데요…, 그런 데 날 만한 곳이 아직은 아닙니다.”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하기 전 기자와 전화통화를 한 철원 지역단체 인사들은 한결같이 이 같은 말로 얘기를 시작했다.
이들의 말대로 ‘지역 운동’을 소개한 자료에서 철원의 지명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군사지역이라는 이유로 1970∼80년대 ‘개발’에서 소외되었을 뿐 아니라 ‘운동권’들도 큰 관심을 돌리기 힘든 지역이었다. 그저 ‘재수 없이’입영열차를 오래 탄 이들이 20대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기자는 이 지역에서 한 가지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정부와 수자원공사가 홍수조절을 이유로 추진하던 한탄강댐 건설 계획이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사실상 백지화된 것이다. 2003년 12월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예산안 조정소위원회는 정부 예산안 중 한탄강댐 건설 관련 예산 199억 3800만 원 대부분을 삭감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12월 31일, 한탄강댐 문제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함께 싸움을 벌여 온 철원·연천·포천 세 지역의 송년회 자리는 승리를 자축하는 잔치가 되었다.

“여러분이 헌신적으로 노력한 결과로 이런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탄강댐 건설은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제 국토의 중심을 흐르는 한탄강을 평화와 통일의 강으로 가꿔 나갑시다.”

철원군 의회 장진혁(47) 의장의 인사말이다.
그동안 철원은 어떻게 싸워 온 것일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정부의 시책을 뒤바꿀 수 있었을까. 게다가 철원은 접경지대, 군사지역, ‘반공의 보루’가 아닌가. 설레임을 안고 북으로 난 길을 따라 떠났다.

 


‘반공의 추억’은 없다


얼마나 달렸을까. 길가에 우뚝 선 표식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통일의 길목 금강산 76km”.

서울에서 한 시간 반이면 가 닿을 수 있는 곳에 철원이 있었다. 서울과 전방이라는 마음의 거리에 비해 너무나도 가까운 곳이다. 그대로 밟으면 한 시간 안에 금강산에 도착할 수 있다. 뱃길로 가면 서울에서 한나절이 꼬박 걸리는 길이다.

철원에 들어서면 졸음운전을 할 우려는 없다. 대낮에도 상향등을 켜고 일렬로 마주 달려오는 군용 트럭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개구리 무늬가 현란한 트럭의 기세에 눌린 기자 일행의 승용차는 갓길에 바싹 붙어 슬슬 걸어가야 했다.
농기계를 싣고 앞서 가던 트럭은 항상 겪는 일이라는 듯 운전석 창문 밖으로 담배연기를 뿜으며 여유롭게 질주하고 있었으니 뒤에 오던 차는 우리 차의 서울 번호판을 보고 얼마나 웃었을까.
“부대 앞 천천히 30km”, 노란 경고 표지판이 도로 곳곳을 차지하고 있는 곳.
‘군인들의 도시’ 철원이다.

463번 지방도로를 따라 도착한 곳은 승일교 앞 농성 천막. 한탄강댐건설반대 철원군 대책위원회가 이곳에서 지난해 9월 12일부터 시작한 농성이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농민회를 비롯한 사회단체들이 농성을 시작했으나 11월부터는 철원군 내 모든 마을들이 돌아가며 하루씩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승일교 앞 농성장에서 만나 마현1리 사람들. 맨 왼쪽이 김종회 이장이다.  


농성 103일째. 이 날은 마현 1리 주민들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이 마을은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생계를 잃은 주민들이 이주하여 형성되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이른바 ‘자립안정촌·재건촌 건설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주민들이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는 민간인의 귀농을 규제하기 위해 설정한 ‘귀농선’에 묶여 사람이 살지 못했던 땅이어서 온통 갈대밭뿐이었다고 한다.

“아침저녁으로 군인들과 함께 점호를 받으면서 황무지를 개간했습니다. 지뢰사고도 많았죠. 저야 어릴 때여서 직접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형님이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었고 어른들이 많이 돌아가셨습니다. 또 마을 입구에서 북쪽 군인들과 충돌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밤중에 벌어진 일이었죠. 주민들은 낯선 사람들을 보면 무조건 신고하는 게 지금도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김종호(49) 이장이 전해준 마을 내력이다.
주민들의 ‘반공정신’은 처음부터 이렇게 생활 속에서 싹튼 것이었다. 이 같은 의식과 군대식의 생활은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순종적 정치의식을 갖도록 만들었다. 1956년부터 1992년까지 있었던 모든 대선에서 전통적 여당 계열이 압도적 우위를 보였던 선거 결과는 이러한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이장도 이런 인식이 자연스러웠다고 설명했다.

“누가 강제로 여당 찍으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주민들 스스로 ‘투표 결과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생활이 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02년 대선 때 철원 지역에서 노무현 후보가 1000표 정도의 우위를 보인 것이 철원에서는‘사건’이 되었다.

   
  농성천만 전경.  

 

21세기 철원의 테마는?


철원에서는 2003년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10월 21일 열린 한탄강댐반대 철원군민 궐기대회에 1만여 명이 참석한 것. 전체 군민이 1만7000여 가구에 5만여 명인 데 비해본다면 한집 건너 한사람씩, 전체 주민의 5분의 1이 집회에 참석한 셈이다. 주민들이 말한 대로 ‘반공정신이 투철하고 순종적인’ 철원에서 정부 시책을 반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어려움은 없었을까.

철원 대책위 김동일(41) 사무국장은 “맹종하는 시대는 갔다”고 단언했다.

“어른들이나 그렇지 젊은 사람들은 철원이 살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안보’보다 ‘통일’을 테마로 해야 한다는 인식이 뚜렷합니다. 경의선, 동해선보다 여기 경원선이 먼저 열려야 통일로 직통하는 길이죠. 지난번 대선에서 노 대통령 표가 많이 나온 것도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주리라는 기대감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가 이장으로 있는 대마리의 경우 경원선이 연결되면 간이역을 유치하여 ‘통일촌’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02년 우수농촌마을로 지정되어 강원도로부터 받은 상금으로 ‘두루미평화관’을 건립한 것이다.

식당과 숙박시설로 이용하기 위해 지어진 이 건물은 인근의 노동당사를 그대로 본 따 통일의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또 건물 입구에는 통일대장군 평화여장군 장승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그는 철원 서쪽 끝인 이곳에서 동쪽 끝인 마현리까지 철책선을 따라 장승거리를 만들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곳 역시 예비군들이 이주해 와 세워진 ‘향군촌’이라는 과거를 가지고 있다.

   
  철원군 대마리 입구에 지어진 두루미 평화관.  


서울 용산에서 출발하여 의정부 신탄리 철원 월정 평강 등을 거쳐 원산으로 향하던 경원선은 남쪽으로는 신탄리에서 월정리까지 16.2㎞, 북으로는 월정리에서 평강까지 14.8㎞를 더해 31㎞ 구간이 단절되어 있다.

특히 원산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중요한 물류 혈관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현재의 철원군 동송읍은 전쟁 전에 철원 역이 있던 구 시가지이며 월정리 역은 남방한계선 직전에 위치해 있다. 경원선 복원이 현실화될 경우 철원이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예상은 근거가 충분하다.

철원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움직임은 민중연대의 결성이다.
2003년 6월 결성했지만 아직 홈페이지도 사무실도 마련하지 못한 민중연대를 찾아 나섰다.
동송읍내를 벗어나 노동당사로 향하는 길목에 작은 주유소가 하나 있다. ‘농민주유소’. 5명이 일하는 주유소 안쪽이 농민회 사무실이다.

   
  철원 민중연대 전홍준 의장.  


“여기까지 취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유소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우리영농법인 전흥준(41) 대표이사가 민망한 인사말을 건넸다.
그도 며칠 전 전화통화에서 ‘여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던 사람 중 하나다. 농민회 부회장이기도 한 그는 철원 민중연대 초대 의장을 맡고 있다.

“2002년부터 농민회에서는 지역 민중연대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어요. 운동이란 게 단결해야 하는 거니까 각 단체들의 상황이 어렵긴 하지만 일단 모여보자 이거죠. 2003년 들어서면서 뜻을 모은 단체들이 가끔 모임을 갖다가 6월에 출범했지만 지금은 비정기적이던 모임을 정기적인 모임으로 하고 있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민중연대, 작지만 소중한 연대를 위하여


‘뜻을 모은 단체’는 철원군 농민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철원지부, 축협 노동조합, 사회보험노동조합 철원지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철원군지부, 전국금속산업연맹(이하 금속연맹) 성람지부 등 6개 단체다. 대표자들은 한 달에 한 번 회의를 갖고 각자 조직의 현황을 공유하는 한편, 지역 문제를 비롯한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전 씨가 의장을 맡은 이유는 농민회가 민중연대 결성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농촌 지역이 그런 것처럼 철원에서도 농민회가 가장 뿌리깊은 운동단체다. 1970년대 결성된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이 전국농민회총연맹 결성 이듬해인 1991년 철원군 농민회를 결성한 것이다. 지금은 활발한 노동조합들이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철원에 민중운동 단체는 농민회가 유일하다시피 했다.

“1998년에는 농민회가 집회를 하는데 경찰에서 ‘미국반대’현수막이 걸려 있다고 해서 집회를 못 열게 한 적도 있습니다. 결국 현수막을 걷을 수밖에 없었죠. 사실 그 전에는 현수막 자체도 생소한 곳이었죠.”

농민회 철원읍 김학진(47) 지회장의 말이다.
땅은 옥토로 바뀌었지만 운동은 황무지였던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농산물 수입개방의 지속적인 확대와 농협의 농촌지원사업 축소 등 농가의 악재가 겹치면서 농민단체들 사이에 공동대응의 필요성이 높아진 것이다.

“한국농업경영인협회, 농협 작목반, 농촌 지도자연합회 등 수많은 농민단체들 사이에서 함께 투쟁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졌습니다. 그 결과로 2002년 농민대회에는 철원에서만 2000명이 넘게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이경해 열사 사건을 계기로 해서 농민들의 단결력이 더 높아졌습니다.”

철원군 농민회 김희용(45) 회장의 말이다.
농민회는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농가 회생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기획하고 있다. 이른바 ‘농민회 공동체 방안’.

“어느 농촌이나 그렇듯이 농가 인구가 줄어들면서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합리적인 공동경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구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 회장이 설명하는 새로운 시도는 한마디로 ‘공동경작에 기초한 복지사회주의 방안’. 공동경작을 통해 나온 소출의 절반을 토지 소유분에 따라 분배하고 나머지 절반은 노동량에 따라 나누는 방식이다. 농자재 공동구매와 농기계 공동사용은 기본이다. 농민회는 이 사업을 통해 소득을 늘리고 농민회도 활성화 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터.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 못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좋은 반응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올 겨울동안 준비해서 내년부터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김 회장의 자신에 찬 목소리에 듣고 있던 농민회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성과를 기대해 볼 일이다.

농민회가 이처럼 농촌의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는 동안 다른 부문의 운동단체들도 서서히 활동의 폭을 넓혀 갔다. 1999년 전교조가 합법화되면서 철원군 지회도 30개 학교에 120여 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조직으로 성장했고 2002년에는 공무원 노조도 결성되었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새로운 노동조합도 하나 탄생했다. 금속연맹 성람분회가 그것이다.
지난해 2월 설립신고를 한 성람분회의 사업장은 ‘공장’이 아니라 장애인 복지시설이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승현(46) 분회장의 설명을 들어 보자.

“저희가 노조 결성을 위해서 처음에는 민주노총 강원연맹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강원도 중심지인 춘천하고 거리가 멀다 보니 경기연맹과 연계를 갖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죠. 근데 여기서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업장 성격으로 보면 공공연맹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거기는 큰 사업장이 많아서 작은 사업장에 관심을 갖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결국 금속연맹 경기지부에 가입하게 된 것입니다.”

강원도의 변두리, 접경지역에서 시작하는 작은 출발임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2월 어렵게 노조 결성에 성공했지만 문제는 계속됐다. 노조측이 원생 복지비 투명화 등을 요구하며 3월부터 교섭에 들어갔지만 사용자인 청람재단 측이 지난해 7월 잠정합의를 깨면서 시작된 분규가 벌써 해를 넘겼다.

이 과정에서 결성 당시 98%에 육박하던 조합원 수는 70%대로 떨어졌다. 노조측은 조합원에 대한 사측의 탈퇴 협박과 회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합원들은 10개월 넘게 이어져 온 싸움에 지쳐 있지 않을까.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50대 조합원의 말이다.

“분회장을 만나기 전에는 노조라는 것은 꿈도 못꿨죠. 전에는 TV에서 노동자들 시위하는 것이 이해가 안되었는데 이제는 다릅니다. 아직은 어렵고 힘들지만 노조 결성에 참여한 것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요. 함께 싸우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철원에서 40년을 넘게 살아 온 그녀의 목소리에는 오랜 갈증이 배어 나왔다.

 

 

‘반공’이 사라진 자리엔…


철원 민중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단체들도 사정이 크게 좋은 곳은 없다. 단체 규모도 규모지만 오랜 역사와 풍부한 경험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그러나 이들은 ‘작지만 소중한 연대’를 경험하고 있다. 사회보험노조 철원지부 유기호(38) 지부장이 술잔을 권하며 말했다.

“정말 어렵고 힘들지만 서로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습니다. 연대의 소중함이라는 것이 그렇게 거창한 의미가 아니더라구요.”

‘철원 사람들은 상상보다 훨씬 보수적이지 않을까’

기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사람들의 생활에서, 꿈에서, 미래에서 더 이상 ‘반공’은 없다. 철원 사람들의 생활에는 ‘한탄강댐 건설 반대투쟁’이라는 소중한 경험이 있고 여기서 ‘연대’의 꿈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통일의 중심지’라는 거창한 계획을 차근차근 실현해 가려 하고 있다.

청정지역 철원에서 생산되는 ‘오대쌀’은 수랏상에 올랐던 최고급 쌀이다. 황무지를 갈아 최고의 논을 만들어 낸 농부들은 그것이 ‘땅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한탄강을 지키려고 그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그 땅에 배인 땀 냄새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열정이 땅에 흠뿍 배어 있기 때문에, 남북을 흐르는 말 없는 한탄강을 따라 오늘도 운동은 자란다. [2004년 2월호]


 

<인터뷰>원산시와 자매결연 꿈꾸는 생창리 김영인 이장

“원산항 해산물과 철원 오대쌀 맞바꾸던 분단 전 그때처럼…”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는 뒷산을 넘어 가면 비무장지대인 그야말로 ‘경계’를 ‘접’한 곳이다.
지난해 10월, 이 마을은 통일부장관 앞으로 북의 원산시와 자매결연을 맺기를 희망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K-2 소총을 맨 군인에게 신분과 용무를 확인받고 김영인(44) 이장을 만났다.

통일부 장관 앞으로 보낸 편지는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수입개방으로 인해서 쌀 농가들이 어려움에 빠져 있는데 우리 고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해결 방법은 소비를 늘이는 것이죠. 정부가 북에 쌀 지원을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 아닙니까. 그런데 자꾸 퍼주기다 뭐다 하니까 안되는 건데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정당한 교역을 하자는 것입니다. 전쟁 전에 원산항에서 오는 해산물과 철원평야의 쌀을 물물교환하던 곳이 저 너머 복계역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이 지역 군사분계선만 개방을 하면 교육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자매결연을 비롯해서 다양한 사업을 펼쳐 보자는 제안을 낸 것입니다.”

답장은 왔습니까.
“두 번에 걸쳐 통일부에서 답을 보냈고 관계 부서인 철도청과 건설교통부에서도 답장이 왔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아직은 어렵다는 입장이에요. 다만 철도청에서는 적극적으로 추진해볼 의사가 있다는 정도입니다. 계속 노력해야죠.”

주민들의 반공의식이 대단하다고 들었는데요
“정확히 말하면 안보의식이죠. 전쟁이 싫었던 거지 덮어놓고 북쪽 사람을 미워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는 실향민들도 많이 살고 계시는걸요.”

북쪽 사람과 직접 만나겠다는 것을 불순하게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북도 남에서 쌀을 보내주지 않으면 힘들고 또 분단이 계속되면 군사지역이라는 이유로 이 지역은 더욱 소외될 것 아닙니까. 서로 잘 살기 위해서 이제는 만나야 한다고 봅니다. 게다가 여기 사람들은 북에서 하는 방송을 하도 오래 들어서 오히려 거부감이 없습니다.”

‘세계적인 관광지 금강산의 출발점’ ‘남북이 함께 만드는 전통 장터’. 김 이장이 꿈꾸는 지역의 미래다. 그는 이런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김화면 내 다른 이장들과 함께 김화번영회를 결성하고 인터넷을 통해 지역의 역사를 소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열정의 이유는 간단했다.
“명절 때 군인 초소에 올라가서 전에 살던 집터를 내려다보며 눈물짓는 어른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통일이 빨리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철원으로 떠나는 통일역사기행

“6·25전쟁의 최대요충지이며 국민수탈의 본거지인 노동당사 등 수많은 전적지와 남침용 ‘제2땅굴’등이 안보교육장으로….”
철원 군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관광안내문이다. 80년대 이전에 중·고교 시절을 보냈다면 한번쯤 이곳에 견학 온 기억을 가지고 있으리라. 이제 냉전시대의 명승지로 통일관광을 떠나 보자. 관광지는 관광객 하기 나름이다.


●●승일교
전쟁 전까지 북에서 건설하다가 전쟁 후에는 남쪽에서 완성한 두 개의 아치형 다리로, 자세히 보면 두 아치의 모양이 서로 다르다.
이런 사연으로 이승만의 ‘승’과 김일성의 ‘일’을 따 이름을 지었다. 한탄강의 지류인 남대천을 건너는 다리로, 현재는 새 다리를 지어 사용하지 않으나 관광지로 보존되어 있다.

   
   

●●철의삼각 전망대
월정리역 앞에 위치한 전망대.
6·25 전쟁 당시 포탄과 시신으로 뒤덮였던 격전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군사분계선을 베고 누운 태봉국 옛 성터 자리도 확인할 수 있다.

●●노동당사
해방 후 노동당 철원당사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철근을 사용하지 않은 콘크리트 건물에 2층부터 지붕까지는 나무로 지어졌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내부는 거의 붕괴되었지만 형체는 그대로 남아 있다.

●●승리전망대
예로부터 금강산 여행객들이 아침을 먹고 걸어서 출발한데서 이름이 유래한 아침리가 내려다보인다. 북쪽지역인 아침리는 36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시계가 좋은 날이라면 밥짓는 장면을 볼 수 있을지도.

●●월정리역
경원선의 간이역이었던 월정리역은 남방 한계선에 근접한 최북단 종착지점에 위치해 있다.
역사 앞에는 6·25 전쟁 때 파괴되어 비무장지대 내에 버려져 있던 열차를 전시해 두고 관광지로 개발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지판이 유명하다.

   
   

●●도감포
북의 장암산 정상에서 발원한 한탄강이 임진강과 합류하는 곳. 두 강이 만드는 여울 뒤로 현무암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남북을 흐르는 두 강이 합쳐지는 이 곳은 우연하게도 정확하게 북위 38도선에 위치해 있다.

●●제2땅굴
1975년 3월 19일 발견된 지하 터널. 입구에서 군사분계선까지는 1.1km다. 답답한 굴속에서 “북에서 파내려 온 것이 확실합니다”를 자꾸만 강조하는 병사의 설명을 들으며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진 분단의 땅굴을 느껴보시길.
   
   

●●고석정
한탄강 중류에 외로운(孤) 바위(石) 하나가 떠 있다. 고석정은 신라 진평왕 때 건설된 정자로, 조선시대 의적 임꺽정이 이곳에 은거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지금의 고석정은 6·25 전쟁으로 파괴된 것은 1971년 재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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