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읽는 소리
글 읽는 소리
필자 : 고병익 (본회 이사장) 호수 : 제67호
- 한문(漢文) 한시(漢詩)의 독습(讀習) -
본회 국역연수원 학생들이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고전한문을 공부하기 위해 지방의 한 유서 깊은 서원에 들어가서, 글 읽고 익히는 데에 옛날 식으로 소리내어 읽는 방식을 위주로 했다고 한다. 서원의 넓고 탁 트인 마루에 여럿이 둘러 앉아 함께 고전한문을 낭랑한 목소리로 읽는 광경은 상상으로도 자못 흥미와 흐뭇함을 자아내게 하는 장면이다.
한문을 소리내어 읽는 것은 비단 글 이해에 도움될 뿐 아니라 목청 좋은 사람이 글 내용을 알면서 낭송한다면 그때의 선율은 하나의 음악이라고 할만도 한 것이다. 동네 서당이나 사랑채에서 글 읽는 소리가 쩌렁쩌렁 흘러나온다면 그 동네는 일단 번성하고 평화로운 동네라고 보아도 좋다. 글 읽는 소리를 과거시험을 위한 공부와 결부시키는 것은 틀린 것은 아니나 그것만으로 그친다는 생각도 잘못이다.
조선조 순조 때(1818) 영남의 선비 최두찬(崔斗燦)이 제주도에서 귀환 길에 폭풍으로 배가 표류하여 남녀 50명이 사경에서 떨면서 싣고 가던 말 60마리 가량을 할수 없이 바다에 던져넣고 살아야 할판인데, 그 와중에서 지휘자 격이 된 최선비는 소동파의 `적벽부'를 소리높여 낭송했다고 그의 표류기에 기술되어 있다. 적벽부란 것이 내용상 강상의 선유기록이기는 하나 바다의 난파상황과는 관련도 없는데, 한문의 명문장 한 편을 소리내서 외워대는 것으로 아마 마음의 진정을 되찾은 것 아닌가 짐작된다. 더구나 적벽부는 제갈공명의 `출사표'나 도연명의 `귀거래사' 등보다도 더 알려져, 조선조의 한문 잘 모르는 가정 부녀자들에게까지 암송되던 글이니, 혹 선중(船中)의 다른 표류자들도 적벽부 소리에 공감하여 마음의 진정 효과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한문 글을 소리 내서 읽는 일은 중국, 일본에도 마찬가지였으나 조선조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일본인들은 한문을 도입하면서 독특한 독법을 고안해서 계승해 나갔다. 즉 한문 문구를 자기네 언어로 번역해서 어구 순서도 뒤집어서 오르내리며 읽었으니, 이는 일본어의 번역 문장을 읽는 셈이었다. 한문 원문은 자음도 순서도 모두 바뀌고 만 것이다. 중국인들은 물론 한 자음을 그대로 발음하면서도 순서대로 읽었으나, 시기와 지역에 따라 자음이 많이 변하였다. 그런데 고전한문은 글자 하나하나가 함축된 뜻이 폭 넓고 문장이 간결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변화된 자음으로 읽는 것을 듣기만 해서는 의미 파악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한국은 한문에 토를 붙여서 주어, 술어, 수식어 등을 구분하고, 문구의 단절을 표시하며, 문장의 종말을 분명히 했다. 심지어 토에 존자에 대한 경어 표현까지도 나타내면서 읽게 하였다. (-하사, -하시온데 등) 이런 현토 방식은 한문 원문을 그대로 두고 그 순서대로 읽으면서 문장의 구조와 의미를 더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독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조 사인(士人)들의 한문 교습에는 중국인의 글읽기와는 또 다른 특색이 있었으니, 그것은 조선의 한자음이 중국 고대의 옛 음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과, 한자의 성음 종류가 더 풍부했다는 점이다. 즉 한국에서는 중국의 선진(先秦)시대의 한자음을 그대로 간직하여, 특히 한자의 종자음(終子音) 즉 입성(入聲) 받침을 간직하였으니, 이것이 중국음과의 차이를 크게 벌어지게 하였다. 예컨대 甲, 乙, 丑을 우리는 갑, 을, 축 등으로 읽어서 종자음 받침인 -ㅂ, -ㄹ(-ㅌ), -ㄱ {-p, -t(-l), -k}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대해서, 근대 중국어에서는 이런 종자음 받침이 전적으로 사라지고 각각 쟈, 이, 츄로 단순화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뿐 아니라 중국의 상해 광동지방이나 또 월남, 일본에도 한자의 종자음이 변화된 형태로 남아 있다. 그런데 북부 중국에서는 당 · 송 시대까지 뚜렷하던 종자음이 북방 유목민족인 거란, 여진, 몽고족과의 접촉을 거치면서 사라지고, 명 · 청시대에는 현대 중국어같이 단순화 되어 버렸다.
고전 한문은 원래 글자 모양을 눈으로 보아야 그 뜻이 제대로 파악될 수 있게 되었지, 글자의 음만을 귀로 듣고서는 뜻을 알기 어렵게 되어 있다. 동일한 단철음(單綴音)으로 뜻이 다른 글자가 너무도 많은 터에, 여기에 입성 받침까지 사라지니 음의 차별성이 더욱 줄어든 것이다. 입성 받침은 그 발음이 짧고 급촉(急促)하기 때문에 단어가 격동적인 동작이나 감정을 표현할 적에는 평성(平聲)보다 더 적절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 중국인들과 달리, 한국인들은 공자 · 맹자의 경전이나 이백 · 두보의 시나 한유 · 왕안석의 글들을 그 저자 자신들이 발음하고 느끼던 음의 가장 가까운 음으로 읽고 있는 셈이다. 근자에 텔레비전의 중국고전 강의에서 그 강사가 한시를 인용하면서 그것을 현대 중국어로 낭독하면서 한시의 맛은 역시 중국어로 읽어야 된다고 하는 것을 들었는데, 큰 착각이다. 오히려 한문과 한시는 음의 종류가 빈약한 현대 중국어로가 아니라, 한국음으로 읽어야 참 맛이 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구나 고대 중국의 경전이나 문학작품은 대개가 운문적인 요소를 띠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고대의 한국인은 가무를 좋아했고 근대의 한국인은 성대 좋기로 이름났으며 한글은 인간 언어를 표기하는 데에 아주 훌륭한 문자 조직의 하나이니, 고전 한문의 원래 음에 가까운 발음으로 낭랑하게 읽어내는 목소리는 당사자의 글공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예능적인 연출이 되기도 하고, 지방의 문화존중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글과 책의 균형을 잃을 정도로 지나치게 존중하던 것은 조선시대 사회문화의 하나의 특징이기도 했지만, 오늘날 한문과 전통문화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고전 한문 · 한시의 낭독 · 낭송은 한자문화권 속에서도 자부할 수 있는 정통 학문 문화활동의 하나라 할 수 있다.
2002년 9월 민족문화추진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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