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개혁정부’를 자처하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개혁하는가? 시민의 참여로 ‘친일-독재 기득권 세력’을 개혁하겠다고 한다.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개혁은 단순히 ‘친일-독재 기득권 세력’의 개혁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친일-독재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사회체계의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참여정부의 개혁은 단순히 지배세력을 바꾸는 것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친일-독재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사회체계는 계속해서 이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 것이다.
‘친일-독재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사회체계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이른바 ‘토건국가’로 불린다. 토건업체의 배를 불리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대규모 개발사업을 벌이고, 이로써 토건업체와 정치인 사이에 혈세를 나눠먹는 정경유착의 구조가 확립되며, 그 결과 엄청난 혈세의 낭비와 자연의 파괴와 지역사회의 해체가 이루어진다.
한국에서 ‘토건국가’는 박정희의 군사적 성장주의를 통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정치적 정당성을 원천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았던 박정희 정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제성장을 이루어야 했으며, 가장 빨리 경제성장을 이루는 방법은 대규모 개발사업을 전국의 곳곳에서 쉬지 않고 벌이는 것이었다. 이 방식은 그 뒤 전두환의 한강개발사업과 노태우의 신도시건설사업, 서해안개발사업 등으로 이어졌다.
민주화에 따라 ‘토건국가’의 개혁이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도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개발사업을 벌여서 토건업체의 지지를 받고 국민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그리고 참여정부에 이르러 마침내 그 결정판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이른바 국가균형발전의 이름으로 참여정부가 벌이려는 대규모 개발사업, 정확하게 말해서 대규모 파괴사업의 종류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수도권 규제완화 조처, 기업도시, 혁신도시는 그 대표적인 예일 뿐이다.
참여정부는 ‘친일-독재 기득권 세력’이 남긴 가장 무서운 유산인 ‘토건국가’를 개혁하기는커녕 오히려 대대적으로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지율스님의 목숨을 건 항의에도, 문규현 신부님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삼보일배 항거에도, 이 정부는 사실상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토건국가’를 확대재생산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우기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노무현 정부는 노태우 정부의 재판으로 기록될 것이다. 노태우는 신도시건설사업과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이 나라에서 ‘토건국가’의 확립에 한 획을 그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 노태우 정부에 이어서 ‘토건국가’의 확대재생산을 향해 치달리고 있다. 이러한 반개혁적 파괴정책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토건국가’의 해체와 산업의 생태적 전환만이 진정한 개혁이다. 자연을 살리고 삶의 질을 높이면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
진정한 개혁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환경비상시국회의’를 열고 항의농성을 벌이고 있다. 참여정부가 정말로 개혁을 이루고자 한다면, ‘환경비상시국회의’의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토건국가’의 확대재생산은 망국의 길이다. 노무현 정부는 노태우 정부의 재판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홍성태/상지대 교수, 참여연대 정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