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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 유인석 선생의 증손자인 유연창씨가 안중근 의사가 거사 전 유인석 선생을 만나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 저격을 지시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는 의암유선생약사를 11일 의암기념관에서 읽어보고 있다. 이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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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jyp@kado.net -->올해로 꼭 60주년이 되는 광복절을 앞둔 가운데 대한민국의 독립의지를 만천하에 떨친 안중근(1879∼1910) 의사의 거사 배후에는 춘천 출신 항일의병장인 의암 유인석(1842∼1915) 선생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주목된다. 또 유인석 선생은 구한말 애국지사인 안창호, 홍범도, 이상설 등의 항일독립운동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만주망명 시절 거사전후 세세하게 기록 안창호, 홍범도 수하 항일 총괄 지휘도 '약사' 신빙성…독립운동사 한 획 전망
11일 유인석 선생의 증손자인 유연창(66·춘천 남면 가정2리)씨가 공개한 '의암유선생약사'에 따르면 안중근 의사는 거사 전 유인석 선생을 만나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 저격을 지시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의암유선생약사'는 의암선생의 아들인 해동 씨가 91세를 일기로 마감하기 20여년 전(70년대 중반) 후손들이 유인석 선생의 활약상을 알게 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16절지 크기의 한지 16쪽에 국·한문을 섞어 표기했으며 의암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내용을 포함해 선생의 행적이 소상히 적혀 있다. '의암유선생약사'에 따르면 의암은 만주 망명시절인 1909년 봉천에서 '13도의군도총재'를 맡아 안중근, 안창호, 홍범도, 이상설, 정재관 등을 수하에 두고 독립전쟁을 총괄해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한문학자인 허준구 한림대 강사는 "'의암유선생약사'에는 적괴 이등박문(伊藤博文)이 중국을 분할할 음모를 러시아 대신과 상회(相會)코자 북만(北滿)으로 온다는 정보를 정재관씨가 신문에서 보고 안중근씨에게 알리니 안중근씨가 용약(踊躍)하여 격살(擊殺)을 스스로 맹세(盟誓)하고 재관씨와 같이 선생 계신 맹령(孟嶺)에 찾아가 거사할 것을 고(告)하여 '다행히 죽이면 국가 원수뿐 아니라 동양평화를 교란한 죄를 더욱 용서 못한 것이라는 대의(大義)를 천명(闡明)하여 세계인을 인식(認識)시키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듣고(중략)' 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해석했다. 또 '약사'에는 "의암은 이 의거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자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열어 독립군 동지들과 자축했다"는 내용 등이 기록돼 있다. 유연창씨는 "'의암유선생약사'는 할아버지(해동씨)가 증조할아버지와 같이 생활하며 목격한 것을 적어놓아 모두 사실이다"고 말했다. 실제 의암 유인석 선생은 안의사 거사(1909년 10월 26일) 직전인 1908년 7월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연해주 일대에서 항일운동을 계속했던 점과 안중근은 그 해 9월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원동보'와 '대동공보'의 기사를 통해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대장대신 코코프체프와 하얼빈에서 회견하기 위해 만주에 오게 됨을 알고 있었던 점을 미뤄 '약사'에 기록된 세세한 내용이 모두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국내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의암유선생약사'는 현재 춘천시 남면 가정리 유인석기념관에 소장돼 있다. 박지영 jyp@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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