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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소녀가 국회에 보낸 편지(2013.12)
한탄강 소녀가 국회에 보낸 편지 "힘겹게 지켜낸 우리 학교를 이번엔 댐이..." 정지환/이종호 기자 lowsaejae@dreamwiz.com 오늘부터 '연속기획: 한탄강은 흘러야 한다' 연재를 시작합니다. 건설교통부는 2011년까지 8조 원을 투입하여 12개의 댐을 완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건교부와 수자원공사는 한탄강댐(경기 포천), 적성댐(전북 순창), 화북댐(경북 군위), 평림댐(전남 장성) 등 4개 댐 건설 착수를 위한 예산 약 1200억 원을 이번 정기국회 회기에 상정해놓은 상태입니다. 우리는 그 중에서도 댐 건설 논쟁의 분수령이 될 한탄강댐 찬반논쟁의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이 긴급기획을 통해 우리나라 수자원정책 전반을 근본적으로 짚어보는 작업도 병행할 예정입니다. 수몰예정지 중리초등학교 이일완 양의 구술을 편지 형식으로 정리한 기사와 학예회 풍경을 담은 화보를 이 연재의 첫 번째 기사로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포천군 관인면 중리초등학교 6학년 이일완입니다. 제가 비록 열세 살 소녀에 불과하지만 이래봬도 전교생이 78명인 우리 학교에선 최고 학년이랍니다. 그래요. 이제 내년이면 여덟 명의 우리 6학년 친구들은 정든 중리초등학교를 떠나 10리나 떨어져 있는 관인중학교에 진학해야 해요. 며칠 전인 12월 11일 우리 학교 전교생은 이번 가을에 새로 지은 강당에서 학예회를 가졌답니다. 여든 여섯이나 되시는 삼율리 윤서네 할아버지부터 갓난아이까지 동네 사람들이 모두 다 학교에 오셨지요.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마 우리 6학년들의 '환상적인' 리듬밴드 공연도 한몫을 했을 겁니다. 정말이지 졸업을 앞둔 우리 6학년 친구들에겐 이번 마지막 학예회가 영영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리듬밴드팀을 구성해서 열심히 연습을 했거든요. 여름방학 때는 아예 학교에서 먹고 자며 합숙훈련까지 했지요. KBS 관현악단에서 드럼을 치셨다는 이근도 선생님이 거의 매일 오셔서 열성적으로 가르쳐주셨지요. 이 자리를 빌어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씀을 꼭 전해드리고 싶네요. ⓒ 오마이뉴스 이종호 참, 저희 리듬밴드팀 멤버들을 소개해야겠군요. 먼저 기타는 윤은구와 신선우가, 베이스는 김경태가, 오르간은 신지혜가 맡았어요. 특히 키가 커서 듬직한 은구는 후배들이 하기 힘든 일을 도맡아 해결해줘서 남학생 후배들에겐 인기가 짱이랍니다. 영화 <와이키키 브러더스>에서 주인공을 맡은 이얼 아저씨를 닮았죠? 저는 어떤 악기를 맡았냐고요? 드럼이랍니다. 여러분 드럼 치는 게 얼마나 신나는 줄 아세요? 아마 직접 쳐보지 않은 분은 제 기분 이해가 안 될 거예요. 그리고 저는 우리 리듬밴드팀의 보컬리스트이기도 하답니다. 제 노래를 직접 들려주지 못하는 게 아쉽기만 하네요. 그러나 너무 걱정은 마세요. 이번 12월 21일 우리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서울의 외환카드 노동조합에서 공연이 있거든요. 마침내 서울로 진출(?)하는 날이어서, 우리는 얼마나 가슴이 떨리는지 몰라요. 물론 이날 학예회에서 우리만 공연을 한 것은 아니랍니다. 포천군 동극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한 연극팀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작년에 은상을 수상했지요), 1, 2학년들의 연극 <개미나라 개미>, 풍물팀의 신명나는 사물놀이 공연, 유치원생들의 앙증맞은 무용 <월드컵> 등이 동네 어른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성황리에 진행됐지요. 동네 어른들은 학예회의 서막을 장식한 연극팀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어요. 특히 주인공 제제 역을 맡은 4학년 김나단의 연극배우 뺨치는 연기와 뽀루뚜까 역을 맡은 5학년 어경일의 익살맞은 어른 연기는 감탄을 자아냈지요. 나단이는 우리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중리교회 목사님 아들이고, 경일이는 인천에서 전학을 온 아이랍니다(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서로의 이름을 다 알아요). 물론 학예회는 우리들만 신나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실 학예회는 운동회와 더불어 우리 동네의 가장 큰 잔칫날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번에도 학예회가 끝난 뒤 가족노래자랑이 열렸고, 어른들을 위한 품바타령 공연이 있었지요. 그리고 이 날은 모든 선생님과 어른들이 우리와 함께 행사를 준비하고 즐긴답니다.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이 직접 전단을 배포하셨고, 우리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군부대 장병 아저씨들과 운영위원장님과 학부형들이 직접 무대를 꾸미셨지요. 어머니회 회장님을 비롯한 어머니들은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주셨고, '한탄강네트워크'라는 우리 지역 시민단체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우리 아빠는 접수를 맡았고요. 우리 지역 예술단체인 '극단 한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저씨와 누나들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 분들은 조명과 음향 등 행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일일이 도와주셨거든요. 경복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오빠와 포천여고에 다니는 언니가 각각 섹스폰과 트럼펫을 가지고 와서 우리와 함께 연주를 하기도 했지요. 우리 학교가 부럽다고요? 그럼요. 어떻게 지켜낸 소중한 학교인데요. 2년 전인 1999년 교육부가 전교생 100명 이하의 학교(전국 1200개 학교 포함)를 통폐합시키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던 아빠와 동네 어른들이 전국의 '작은 학교'들과 힘을 모아 결국엔 학교를 지켜낼 수 있었지요. 그날 우리들은 너무 기뻐서 모두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답니다. 사실 경일이네 식구도 그때 텔레비전 프로그램(MBC <시사매거진 2580>)에 소개된 우리 학교의 아름답고 정겨운 모습을 보고 감탄해서 아예 '시골학교'인 중리초등학교로 전학까지 왔거든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 장애우인 5학년 이승호도 철원에서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어요. 우리 학교 친구들은 승호의 휠체어를 서로 먼저 밀어주려고 아우성이랍니다. 참, 그런데 우리 학교와 동네엔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답니다. 다름이 아니라 건설교통부와 수자원공사가 한탄강에 댐을 짓는다고 해서, 동네 어른들이 '한탄강댐 백지화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서 싸우고 있거든요. 댐이 들어서면 힘들게 지켜낸 우리 학교는 물에 잠긴답니다. 그렇게 되면 오순도순 살아왔던 우리 동네 사람들도 뿔뿔이 헤어져야 하겠지요? 사실 오늘 학예회에 오신 어른들도 박수를 치시며 즐거워하시다가도 "댐이 들어서면 이 강당도 다 쓸모가 없겠구먼"이라고 하시며 한숨을 쉬시더군요. 더욱 걱정인 것은 댐이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서로 도우며 정겹게 살던 동네 분위기가 자꾸만 이상해지기 시작한 겁니다. 땅도 제법 있고 빚을 많이 진 몇몇 분들은 이번 기회에 보상비를 받아서 고향을 뜨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댐 건설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보상비를 더 챙기기 위해 빚을 내서 논에다 자라와 미꾸라지 양식장을 만들거나 비닐 하우스를 설치하기도 하고, 모를 심듯이 밭에다 촘촘하게 배나무를 심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댐 건설을 반대하는 대다수 동네 사람들과 그분들 사이가 자꾸만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님들이 그렇게 갈라지니 학교 분위기도 말이 아니랍니다. 사이좋게 지내던 친구들끼리 서먹해지고 뭔가 표현할 수 없는 벽이 생겼습니다. 우리야 중학교로 진학하면 학교를 떠나지만 학교에 남아있어야 할 선생님과 후배들이 걱정됩니다. 오늘도 학예회가 끝난 뒤 동네 어른들은 포천읍으로 몰려가셨습니다. 포천군민회관에서 주민들과 수자원공사 관계자들이 댐 건설을 둘러싸고 토론회를 갖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오늘도 주민측 대표로 토론 발제를 맡으셨다고 합니다. 동네 어른들은 떠나기 전에 모두 '댐건설 반대'라는 머리띠를 매시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 고향을 뺏길 수 없다"고 결의를 다지기도 하셨습니다. 한탄강. 여름방학 때면 우리들이 수영도 하고 고기도 잡으면서 살다시피 하는 이 강에 댐이 들어선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한탄강은 우리 학교 교가에 나올 정도로 우리 동네와 우리 학교의 생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우리 학교 교가를 들어 보실래요? 향로봉과 궁예성 양옆에 끼고 한탄강의 푸른 물이 굽쳐 흐른 곳 바라보아라 기름진 땅 중리의 벌판 모든 것이 이 땅에 자랑 아닌가 한탄강에 댐이 들어서게 되면, 푸르게 굽이쳐 흐르던 한탄강은 멈춰버리게 될 겁니다. 우리 동네 중리의 '기름진 땅'도, 우리가 힘겹게 지켜낸 소중한 학교 중리초등학교도 물에 잠기게 될 겁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모두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게 될 겁니다. 아빠 말씀에 따르면, 건교부와 수자원공사가 댐 건설 예산 1200억 원을 국회 건교위원회에 상정했고, 건교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아저씨들이 이 예산을 통과시켜서 현재 예결산위원회에 상정돼 있다고 합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러한 중요한 사업을 결정하면서, 그리고 국민의 혈세를 통과시키면서 단 한 분의 국회의원도 현장조사를 하러 오거나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보지 않았다는 겁니다. 저의 꿈은 정치가이고 존경하는 인물은 장준하 선생입니다. 특히 저는 나중에 커서 정치인이 되면 제 이름 '일완'처럼 '통일완수'를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예비 정치인' 일완이가 예결산위원회에 계신 국회의원 아저씨, 아줌마들에게 호소 드립니다. 댐건설 예산 통과를 연기해 주세요. 아저씨, 아줌마들이 그 예산을 통과시키게 된다면 우리의 희망은 사라집니다. 더 충분히 조사를 하시고 주민들의 의견도 들으신 뒤에 예산을 통과시켜도 늦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결정 여부에 따라 우리 가족, 우리 학교, 우리 동네의 운명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한탄강댐을 반대하는지는 우리 아빠를 비롯한 동네 어른들과 오마이뉴스 기자 아저씨들이 앞으로 며칠 동안 밝혀줄 것입니다. 아직은 어리지만 가능하면 저도 중간 중간에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발 예산 통과를 연기해 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2001. 12. 13. 중리초등학교 6학년 1반 이일완 올림 ⓒ 오마이뉴스 이종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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