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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원고(청춘근_오근성).hwp
철원의 시인 글 모음
곰보돌 1 - 한탄강 강물이 천년을 흘러도 자갈에 구멍 하나 만들지 못하는데 강가 철쭉보다 곱던 어머니 뼈마디는 백년도 안 되었는데 구멍이 생겼다네요 배부르게 먹고 싶다던 시장 해장국에 선지덩이 마냥 서러운 구멍이 생겼다네요 겨울 둑길에서 제게 업힌 어머니는 뼛속까지 시린 바람 들어 너무 가벼웠네요 저녁 강 - 한탄강 예전 같지 않다고 투정을 받는 강에 저녁이면 몸을 씻는 것이 많다 모내기 끝내고 삽을 멘 채 천천히 걷던 농부는 긴 그림자를 금빛 물결에 씻고 두어 걸음 뒤에서 달그락거리는 함지박을 이고 가는 농부의 아내도 그림자를 잔 여울에 씻는다 마을 저녁연기는 강에 몸을 씻어 맑은 정신으로 하늘로 가고 희미한 등불도 강물에 씻은 뒤에야 집집마다 초롱초롱 내 걸린다 더 늦은 저녁 강에는 초저녁 별들이 내려와 몸을 씻는 소리가 들린다 지뢰꽃 월하리를 지나 대마리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서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긋이 밟고 제 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꺾으면 발밑에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꽃들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흘깃 스쳐 가는 병사들 몸에서도 꽃 냄새가 난다 백마고지역에서 철길처럼 마주보는 우리 팽팽한 기다림의 종착역은 어디쯤일까 방금, 지상의 마지막 역에 내린 백발 할머니가 절벽 같은 철길 끝에서 지평선 너머 세상을 까치발로 넘겨다본다 슬쩍 눈물을 닦는 할머니 손가락에 외가락지 이제는 다 닳아 끊어질 것 같은데 쌍가락지를 다시 끼워줄 그날은 아직 멀었는지 무심한 풋소리만 녹슨 철조망 흔든다 그래도 촉촉한 눈길이 끝나는 곳에서 뒷짐을 진 할아버지가 백마고지역을 바라보고 있었으면 좋겠다 청자빛 하늘 시골 할머니 항아리 자판에 앉아 이놈 저놈을 유심히 고르다 순전히 수전증 때문에 에구머니나 잘생긴 항아리를 그만 놓쳐 쨍 하고 금이 갔네 실금이 난전을 한 바퀴 휘감은 뒤에 주름살 할머니 가슴이 쩍 갈라지는 소리를 냈네 안절부절 할멈 앞에 수염 덥수룩한 주인 할배 전생에 부부라고 해도 어울리는 할배 “원래 깨진 항아리가 오늘은 진짜로 깨졌네”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는 굽은 할멈 등을 떠미는 할배 사이에 하늘이 오늘만큼은 고려청자 빛이다 겨울 - 금 학 산 일곱 살 때 겨울이던가요 부모님은 내게 두 동생을 맡기고 나무하러 가시고는 했지요 문 앞에 서있던 우리 삼 남매를 몇 번이고 돌아보시며 금학산으로 나무하러 가시고는 했지요 기다리다 지쳐 잠들은 아득한 꿈결 속이던가요 삼 남매를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에 문을 열면 산비탈을 내려온 바람이 우리 귓불을 먼저 쓰다듬었고 저만치 아버지 지게 뒤에서 저녁 햇살에 빛나던 산등성이를 눈이 부셔 바로 볼 수 없었지요 물론 겨울밤 아랫목을 데워 삼 남매 뼈마디를 키워준 것도 지금은 꾸부정한 부모님 등허리와 금학산 자락 나무였지요 봄 - 금학산 입술이 새파래지도록 따먹던 진달래 철쭉꽃이 지고 우리 집 쌀독 바닥이 보일 때면 어머니는 금학산으로 나물 뜯으러 가셨지요 식모살이 간 이모 분 냄새나는 아카시아 꽃그늘에서 놀다 금학산을 향해 어머니를 부르면 빈 메아리만 돌아 왔지요 날이 저물어서야 산길을 따라 오시던 어머니 머리 위에 흰 수건이 보이면 나는 검정 고무신을 벗어 던지고 달려갔지요 괜스레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달려갔지요 된장 나물국 냄새 자욱한 저녁 사방공사에 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아도 산마루에서는 뻐꾸기가 울고 있었지요 여름 - 금학산 텃밭에 자주 감자 꽃이 필 때면 어머니는 금학산에서 구절초를 캐오셨지요 타래타래 엮어 처마에 걸어 두었다가 닷새 동송場날이면 개울건너 약초 집에 팔아 쌀 됫박이나 생선을 사오셨지요 화덕 불에 생선을 구워 먹은 그날 저녁 어머니는 평북 정주 곽산에 두고 온 외할아버지 외삼촌 이야기를 하셨지요 눈을 감고 고향 추억 하나하나를 끄집어내어 다시 확인 하셨지요 가끔 별똥이 떨어질 때 어머니 눈가에서 반짝이던 눈물 의미를 모르는 내가 슬며시 돌아누워 잠이 들면 어머니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것은 저 금학산이었지요 가을 - 금학산 운동회 날에도 어머니는 금학산으로 도토리 따러 가셨지요 흰 운동화 대신 검정 고무신 군복에 물들인 반바지 입혀 놓고쌀밥 도시락을 쥐어 주시면서 금학산 도토리 따러 가셨지요 오색풍선 만국기 걸린 운동장 엄마 손잡고 달리기 경주에서 출발 호루라기 울려도나는 가슴이 터져라 달리지 못하고 금학산을 바라 봐야했었지요 친구들이 화약 총을 가진 것도도시락 혼자 먹은 것도 정말 서럽지 않았는데 집 마당에 널린 알 도토리에 왈칵 눈물이 났었지요 도토리 까시던 어머니가 슬쩍 닦던 눈물은 아직도 내게는 소중한 비밀이지요 소녀 Ⅰ 생기어린 볼 수줍은 미소 그대의 청춘 소녀이어라! 아! 그대는 나의 넋을 앗아간 사랑! 삶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움직일 수 있으면, 희망希望이 없다고 마라! 가진 것이 없다고 마라! 생명生命을 가졌으면 모든 것을 다 가졌거늘 무슨 욕심慾心에 가진 것이 없다고 하나! 아버지 Ⅱ 먼 곳으로 가신 그 이름! 살과 피로써 제 속에 살아계시며 사람되게 키우시는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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