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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33
작성일 2023/09/01 (금)
첨부#1 사상의_자유와_홍범도_의병장(20230904).hwp (30KB) (Down:0)
ㆍ조회: 137      

사상의 자유와 홍범도 장군

                                                           사상의 자유와 홍범도 장군

                                                                                                              최종철

최근 국방부 장관은 육사에 있는 홍범도 의병장의 흉상을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봉오동전투의 영웅인 홍범도 의병장(1868~1943)의 흉상이 우리 철원에 오기를 바라며, 자유와 진실의 문제에 대하야 함께 생각하고 싶다.

먼저 장관은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역사적 사안에 대해 말씀을 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과 절차에는 하자가 있다. 이러한 역사 문제에 대하야는 군사편찬연구소 등 관계 전문기관의 자문 및 숙의를 통해 공론화하는 것이 순리이다.

또 홍범도 장군의 한 가지 경력(당원)을 거론하며 육사에 그 흉상이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홍 장군 흉상 이전과 관련 하야 더 심각한 문제는 의사 결정 과정의 비민주성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부인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국방 장관은 다음의 질문에 답을 하야야 한다. 장관이 생각하는 ‘공산주의의 개념과 범위 및 우리 민족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었는지 소명해야 할 것이다.’ 같은 자유민주주의라도 그 운용방식은 다르다. 스웨덴과 벨기에는 입헌군주제이고,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식 민주주의이며, 미국은 카우보이식 민주주의이다. 불교에 조계종, 천태종, 진각종, 신인종 등이 있는 것처럼 공산주의도 그 사상 계통이 다양하다. 홍 장군이 활동하던 당시의 소련 공산주의는 레닌주의로 약소민족의 해방과 죠선 독립에 호의적이었다. 스탈린시대에는 가혹한 탄압을 받아 독립지사들이 옥사하는 등 수난을 당했다. 북한의 공산주의는 김일성 장군 제일주의이며 무력통일주의였다. 현재의 중국 공산당은 모택동주의로 북한 로동당과는 그 결이 다르다.

현재 소련은 해체 되었고 소련 공산당은 역사의 유물이 되었다. 소련 공산주의와 북한의 공산주의는 이름은 같으나 그 사상과 활동은 다른데 어찌하야 홍 장군이 소련 볼셰비키에 가입한 것이 문제가 되는지 묻고 싶다. 역으로 북한이 공산주의를 버리고 민주주의로 전환한다면 우리의 주적(主敵)이 아닌가. 핵심은 그 정치사상이 아니라 침략주의와 무력주의가 아닌가.

국방 장관의 기준으로 과거사를 본다면 남로당원인 박정희 소령은 당시 여순사건으로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가 감형됐다. 그러타면 박 장군의 5·16 군사혁명은 전 남로당 간부의 성공한 쿠데타인 것이다. 또한 5·16 당시 북한군이 전방에 군사력을 집중해 거사를 도운 정황 및 5·16 이후 남로당 관계 명부를 폐기한 사실을 재조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가진 일본의 외교가들은 패전 직전 미국과 소련에 밀사를 보내 한반도의 ‘분할 점령’을 제의했다. 또 죠선총독부 엔도 류사쿠(遠藤柳作) 정무총감은 일본인의 무사 귀환 및 전후 부흥을 위해 총독부의 행정권을 건국동맹(위원장 몽양 려운형)에 위임했다. 총독부의 행정권 이양은 우리의 정치적 독립능력을 증명하는 것이었으나 사상적, 경제적, 군사적 갈등을 조장하야 동족상잔의 비극을 양성(釀成) 했다.

리승만 박사는 총알 하나 만들 능력이 업슴에도 북진통일 운운하며 선동정치를 했다. 이에 앞서 리 박사와 매카더 장군은 미첩보기관 정의사(대장 금종태), CIA 등에서 ‘6월 남침 정보’를 제공했음에도 이를 묵살했다. 이 정보에 따라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유사시 미 지상군 투입 약속을 했더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안았을 것이다. 안이면 리승만 박사와 영친왕, 김규식, 조소앙, 최남선, 려운홍 선생 등을 중심으로 남북평화를 위한 단식투쟁을 하였더라면 전쟁을 예방할 수 있었다. 남북한 모두 서로를 너무 미워한 것이 문제였다.

일국의 국방부 장관이 남북 분단과 6·25전쟁의 원인 및 최고 지도자의 무능에는 눈을 감으면서 죠선 독립에 평생을 바친 홍 장군의 이력을 문제 삼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참 슬픈 상황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순국선열(殉國先烈)의 피와 땀으로 건국된 나라이며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국가이다. 주자학을 반대하면 사문난적으로 몰리거나 귀양을 가야 하는 조선 후기 사회가 아니다.

홍 장군이 1927년 볼셰비키에 가입한 것이 순수한 동기인지, 광복운동의 차원인지, 한국과 러시아 사학계의 공동연구가 필요하다. 후일의 국제정세를 보면 한국의 독립은 기미만세운동 및 중국, 미국, 소련, 영국 등 연합군의 승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우리 민족사를 보면 자주흥방(自主興邦)이고 친중보국(親中保國)이며 친일망국(親日亡國)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과 러시아가 존경하는 항일독립영웅의 흉상 논란을 보면서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자유정신과 민족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사대주의와 군산검언복합체를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하려면 국민의 자각과 보살행이 필요하다. 제도적으로는 중고등학교와 사관학교의 교육과정에 헌법과 무경칠서를 포함하길 희망한다. 헌법은 자유와 정의의 학문이며, 육도삼략 등의 무경칠서는 자유와 정의를 지키는 힘의 원리와 운용에 관한 지혜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1894년 홍범도 장군이 산포수를 중심으로 3백명 규모의 의병 부대를 처음 창설한 곳이 바로 철원이다. 철원 보개산(寶蓋山)을 기점으로 병력을 1천4백명까지 증원하야 1894년부터 1899년까지 강원도와 함경도에서 일본제국주의자들과 혈전을 벌였다. 1920년 6월 간도 봉오동에서 유격전으로 일본군을 격파하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1923년에는 연해주에서 열린 독립군정서회의에 참여해 김좌진, 리병채, 지청천 장군 등과 함께 국내진공작전을 결의했다.

하늘에 계신 홍범도 의병장이 희망하는 것은 자유와 평화이다. 이제는 역사적 은원을 잊고 인간의 존엄과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는 멋진 사회로 나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한국과 북한은 공무원시험에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만주어를 포함하야 사랑과 문화를 꽃 피우며 동양평화에 이바지하길 소망한다.




최근 국방부장관은 육사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의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봉오동전투의 영웅인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우리 철원에 오기를 바라며, 자유와 진실의 문제에 대하야 함께 생각하고 싶다.

먼저 장관은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역사적 사안에 대하야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그 과정과 절차에는 하자가 있다. 이러한 역사 문제에 대하야는 군사편찬연구소 등 관계 전문기관의 자문 및 토론을 통해 공론화하는 것이 순리이다.

또 홍범도 장군(1868~1943)의 한 가지 경력을 거론하며 육사에 그 흉상이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홍 장군 흉상 이전과 관련 하야 더 심각한 문제는 의사 결정 과정의 비민주성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부인이라고 할 것이다.

참고로 지난 2021년 녀름 군 부실 급식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자 당시 국방부차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군급식체계를 경쟁입찰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때 안규백 의원은 토론회를 통해 국방부의 정책을 옹호하고 나섰다.

안타까운 것은 공정경쟁이라는 미명하에 군 부식의 기업 독점 및 다국적 자본의 군납시장 참여 우려에 대해 김병주 의원(전 육군대장)이 침묵을 지켰다는 것이다. 손자병법을 강의했으며 군량(軍糧)의 신뢰성·안정성이 용병(用兵)의 기본임을 아시는 분이 잘못된 급양정책을 바라만 보았다.

하늘의 도움으로 지난 8월 ‘군급식 기본법안’이 국방위 법안소위(위원장 김병주) 및 국방위 전체회의(위원장 한기호)를 통과했다. 대승적으로 볼 때 김병주 의원은 결자해지를 했으며 국리민복을 위한 큰 토대를 마련하셨다고 할 것이다.

필자가 군 부식 정책의 오류와 그 입법적 수정과정을 말씀드리는 것은 군 지휘부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비민주적 의사 결정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섭 장관의 기준으로 과거사를 본다면 남로당원으로 여순사건 관계자인 박정희 소령은 당시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감형됐다. 그러타면 박 장군의 5·16 군사혁명은 전 남로당 간부의 사회주의 혁명인 것이다. 또한 5·16 당시 북한군이 전방에 군사력을 집중해 거사를 도운 정황 및 5·16 이후 남로당 관계 명부를 폐기한 사실을 재조사해야 할 것이다.

리승만 박사는 미국 대통령에게 ‘대미위임통치청원(1919.2)’을 하여 우성 박용만 선생에게서 국적(國賊)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리 대통령과 매카더 장군은 미첩보기관 정의사(대장 금종태), CIA 등에서 ‘6월 남침 정보’를 제공했음에도 이를 묵살했다. 이 정보에 따라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유사시 미 지상군 투입 약속을 했더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안았을 것이다. 이러한 진실(정보실패로 인한 전쟁발발)에는 눈을 감으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홍범도 장군의 경력을 문제 삼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순국선열(殉國先烈)의 피와 땀으로 건국된 나라이며 사상(思想)의 자유(自由)를 존중하는 민주국가이다. 주자학을 반대하면 사문난적으로 몰리거나 귀양을 가야 하는 조선 후기 사회가 아니다.

홍 장군이 1927년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다고 하는데 순수한 동기인지, 광복운동의 차원에서 가입한 것인지, 한국과 러시아 사학계의 공동연구가 필요하다. 후일의 국제정세를 보면 한국의 독립은 기미만세운동 및 중국, 미국, 소련, 영국 등 연합군의 승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반공주의가 곧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착각이다. 북한은 공산주의라고 하나 실상은 김일성 주체사상주의이며 선군정치의 나라인 것이다.

지금의 홍 장군 흉상 논란을 보면서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군인정신 및 장교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에 육사, 해사, 공사 등의 교과목에 헌법과 무경칠서를 포함하길 희망한다. 헌법은 자유와 정의의 학문이며, 육도삼략 등의 무경칠서는 자유와 정의를 지키는 힘의 원리와 운용에 관한 지혜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1894년 홍범도 장군이 3백명 규모의 의병 부대를 처음 창설한 곳이 바로 철원이다. 철원 보개산(寶蓋山)을 기점으로 병력을 1천4백명까지 증원하야 강원도와 함경도에서 일본제국주의자들과 혈전을 벌였다.

홍 장군의 흉상은 태봉의 수도이며 아름다온 한탄강이 흐르는 철원으로 오기를 희망한다. 해동명장인 최영 장군의 고향이며 조국을 위기에서 구한 푸른 별 청성부대가 있는 철원이야말로 홍 장군이 편안히 쉴 최고의 땅인 것이다.



최근 국방부 장관은 육사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봉오동전투의 영웅인 홍범도 장군(1868~1943)의 흉상이 우리 철원에 오기를 바라며, 자유와 진실의 문제에 대하야 함께 생각하고 싶다.

먼저 장관은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역사적 사안에 대해 말씀을 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과 절차에는 하자가 있다. 이러한 역사 문제에 대하야는 군사편찬연구소 등 관계 전문기관의 자문 및 숙의를 통해 공론화하는 것이 순리이다.

또 홍범도 장군의 한 가지 경력(당원)을 거론하며 육사에 그 흉상이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홍 장군 흉상 이전과 관련 하야 더 심각한 문제는 의사 결정 과정의 비민주성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부인이라고 할 것이다.

참고로 지난 2021년 녀름 군 부실 급식 문제가 보도되자 당시 박재민 국방부 차관과 엄혜선 서기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군급식체계를 경쟁입찰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이때 김부겸 총리와 안규백 의원은 국방부에 박수를 보냈으며, 농어촌을 지역구로 둔 민홍철 의원, 한기호 의원 등은 이를 비판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군 부식의 기업 독점 및 다국적 자본의 군납시장 참여 우려에 대해 김병주 의원(전 육군대장)이 침묵을 지켰다는 것이다. 손자병법을 강의했으며 군량(軍糧)의 신뢰성·안정성이 용병(用兵)의 기본임을 아시는 분이 잘못된 급양정책을 바라만 보았다.

하늘의 도움으로 지난 8월 ‘군급식 기본법안’이 국방위 법안소위(위원장 김병주) 및 국방위 전체회의(위원장 한기호)를 통과했다. 대승적으로 볼 때 김병주 의원은 결자해지를 했으며 국리민복을 위한 큰 초석을 마련하셨다고 할 것이다.

필자가 군 부식 정책의 오류와 그 입법적 수정과정을 말씀드리는 것은 군 지휘부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비민주적 의사 결정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기준으로 과거사를 본다면 남로당원으로 여순사건 관계자인 박정희 소령은 당시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감형됐다. 그러타면 박 장군의 5·16 군사혁명은 전 남로당 간부의 성공한 쿠데타인 것이다. 또한 5·16 당시 북한군이 전방에 군사력을 집중해 거사를 도운 정황 및 군사혁명 이후 남로당 관계 명부를 폐기한 사실을 재조사해야 할 것이다.

리승만 박사는 미국 대통령에게 ‘대미위임통치청원(1919.2)’을 하야 북경군사통일회의 대표인 우성 박용만에게서 국적(國賊)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리 대통령과 매카더 장군은 미첩보기관 정의사(대장 금종태), CIA 등에서 ‘6월 남침 정보’를 제공했음에도 이를 묵살했다. 이 정보에 따라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유사시 미 지상군 투입 약속을 했더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안았을 것이다. 이러한 진실(정보실패로 인한 한국전쟁 발발 및 군산복합체의 성장)에는 눈을 감으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홍범도 장군의 이력을 문제 삼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참 슬픈 상황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순국선열(殉國先烈)의 피와 땀으로 건국된 나라이며 사상(思想)의 자유(自由)를 존중하는 민주국가이다. 주자학을 반대하면 사문난적으로 몰리거나 귀양을 가야 하는 조선 후기 사회가 아니다.

홍 장군이 1927년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다고 하는데 순수한 동기인지, 광복운동의 차원에서 가입한 것인지, 한국과 러시아 사학계의 공동연구가 필요하다. 후일의 국제정세를 보면 한국의 독립은 기미만세운동 및 중국, 미국, 소련, 영국 등 연합군의 승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우리 민족사를 보면 자주흥방(自主興邦)이고 친중보국(親中保國)이며 친일매국(親日賣國)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과 러시아가 존경하는 항일독립영웅의 흉상 논란을 보면서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자유정신과 민족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친미일 보수세력(계해정변세력)과 군산검언복합체(軍産檢言複合體)를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하고 왕도정치를 꽃 피우며 대동사회를 이루려면 국민의 자각과 보살행 및 동양연합(OU)의 창립이 필요하다. 제도적으로는 초중등학교와 사관학교 및 언론사 시험에 헌법과 무경칠서를 포함하길 희망한다. 헌법은 자유와 정의의 학문이며, 육도삼략 등의 무경칠서는 자유와 정의를 지키는 힘의 원리와 운용에 관한 지혜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1894년 홍범도 장군이 3백명 규모의 의병 부대를 처음 창설한 곳이 바로 철원이다. 철원 보개산(寶蓋山)을 기점으로 병력을 1천4백명까지 증원하야 강원도와 함경도에서 일본제국주의자들과 혈전을 벌였다.

홍 장군의 흉상은 후고구려의 수도이며 아름다온 한탄강이 흐르는 철원으로 오기를 바란다. 해동명장인 최영 장군과 김응하 장군의 고향인 철원이야말로 홍 장군이 편안히 쉴 최고의 땅인 것이다. 이 철원에서 통일강국과 동양평화의 대도로 함께 나아가자!



최근 국방부장관은 육사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의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봉오동전투의 영웅인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우리 철원에 오기를 바라며, 자유와 진실의 문제에 대하야 함께 생각하고 싶다.

먼저 장관은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역사적 사안에 대하야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그 과정과 절차에는 하자가 있다. 이러한 역사 문제에 대하야는 군사편찬연구소 등 관계 전문기관의 자문 및 토론을 통해 공론화하는 것이 순리이다.

또 홍범도 장군(1868~1943)의 한 가지 경력을 거론하며 육사에 그 흉상이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홍 장군 흉상 이전과 관련 하야 더 심각한 문제는 의사 결정 과정의 비민주성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부인이라고 할 것이다.

참고로 지난 2021년 녀름 군 부실 급식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자 당시 국방부차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군급식체계를 경쟁입찰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때 안규백 의원은 토론회를 통해 국방부의 정책을 옹호하고 나섰다.

안타까운 것은 공정경쟁이라는 미명하에 군 부식의 기업 독점 및 다국적 자본의 군납시장 참여 우려에 대해 김병주 의원(전 육군대장)이 침묵을 지켰다는 것이다. 손자병법을 강의했으며 군량(軍糧)의 신뢰성·안정성이 용병(用兵)의 기본임을 아시는 분이 잘못된 급양정책을 바라만 보았다.

하늘의 도움으로 지난 8월 ‘군급식 기본법안’이 국방위 법안소위(위원장 김병주) 및 국방위 전체회의(위원장 한기호)를 통과했다. 대승적으로 볼 때 김병주 의원은 결자해지를 했으며 국리민복을 위한 큰 토대를 마련하셨다고 할 것이다.

필자가 군 부식 정책의 오류와 그 입법적 수정과정을 말씀드리는 것은 군 지휘부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비민주적 의사 결정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장관의 기준으로 과거사를 본다면 남로당원으로 여순사건 관계자인 박정희 소령은 당시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감형됐다. 그러타면 박 장군의 5·16 군사혁명은 전 남로당 간부의 성공한 쿠데타인 것이다. 또한 5·16 당시 북한군이 전방에 군사력을 집중해 거사를 도운 정황 및 5·16 이후 남로당 관계 명부를 폐기한 사실을 재조사해야 할 것이다.

리승만 박사는 미국 대통령에게 ‘대미위임통치청원(1919.2)’을 하여 우성 박용만 선생에게서 국적(國賊)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리 대통령과 매카더 장군은 미첩보기관 정의사(대장 금종태), CIA 등에서 ‘6월 남침 정보’를 제공했음에도 이를 묵살했다. 이 정보에 따라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유사시 미 지상군 투입 약속을 했더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안았을 것이다. 이러한 진실(정보실패로 인한 전쟁발발)에는 눈을 감으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홍범도 장군의 경력을 문제 삼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순국선열(殉國先烈)의 피와 땀으로 건국된 나라이며 사상(思想)의 자유(自由)를 존중하는 민주국가이다. 주자학을 반대하면 사문난적으로 몰리거나 귀양을 가야 하는 조선 후기 사회가 아니다.

홍 장군이 1927년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다고 하는데 순수한 동기인지, 광복운동의 차원에서 가입한 것인지, 한국과 러시아 사학계의 공동연구가 필요하다. 후일의 국제정세를 보면 한국의 독립은 기미만세운동 및 중국, 미국, 소련, 영국 등 연합군의 승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반공주의가 곧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착각이다. 북한은 공산주의라고 하나 실상은 김일성 주체사상주의이며 선군정치의 나라인 것이다.

지금의 홍 장군 흉상 논란을 보면서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군인정신 및 장교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에 육사, 해사, 공사 등의 교과목에 헌법과 무경칠서를 포함하길 희망한다. 헌법은 자유와 정의의 학문이며, 육도삼략 등의 무경칠서는 자유와 정의를 지키는 힘의 원리와 운용에 관한 지혜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1894년 홍범도 장군이 3백명 규모의 의병 부대를 처음 창설한 곳이 바로 철원이다. 철원 보개산(寶蓋山)을 기점으로 병력을 1천4백명까지 증원하야 강원도와 함경도에서 일본제국주의자들과 혈전을 벌였다.

홍 장군의 흉상은 태봉의 수도이며 아름다온 한탄강이 흐르는 철원으로 오기를 희망한다. 해동명장인 최영 장군의 고향이며 조국을 위기에서 구한 푸른 별 청성부대가 있는 철원이야말로 홍 장군이 편안히 쉴 최고의 땅인 것이다.



                                                                                                                           

최근 국방부장관은 육사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의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봉오동전투의 영웅인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우리 철원에 오기를 바라며, 자유와 진실의 문제에 대하야 함께 생각하고 싶다.

먼저 장관은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역사적 사안에 대하야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그 과정과 절차에는 하자가 있다. 이러한 역사 문제에 대하야는 군사편찬연구소 등 관계 전문기관의 자문 및 토론을 통해 공론화하는 것이 순리이다.

또 홍범도 장군(1868~1943)의 한 가지 경력을 거론하며 육사에 그 흉상이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홍 장군 흉상 이전과 관련 하야 더 심각한 문제는 의사 결정 과정의 비민주성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부인이라고 할 것이다.

참고로 지난 2021년 녀름 군 부실 급식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자 당시 국방부차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군급식체계를 경쟁입찰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때 안규백 의원은 토론회를 통해 국방부의 정책을 옹호하고 나섰다.

안타까운 것은 공정경쟁이라는 미명하에 군 부식의 기업 독점 및 다국적 자본의 군납시장 참여 우려에 대하야 김병주 의원(전 육군대장)이 침묵을 지켰다는 것이다. 손자병법을 강의했으며 군량(軍糧)의 신뢰성·안정성이 용병(用兵)의 기본임을 아시는 분이 잘못된 급양정책을 바라만 보았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지난 8월 ‘군급식 기본법안’이 국방위 법안소위(위원장 김병주) 및 국방위 전체회의(위원장 한기호)를 통과했다. 대승적으로 볼 때 김병주 의원은 결자해지를 했으며 국리민복을 위한 큰 토대를 마련하였다고 할 것이다.

필자가 군 부식 정책의 오류와 그 입법적 수정과정을 말씀드리는 것은 군 지휘부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비민주적 의사 결정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장관의 기준으로 과거 역사를 평가한다면 남로당에 가입하였던 박정희 대통령의 육군대장 계급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5·16 군사혁명 당시 육군소장이었으며 중장과 대장으로 승진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에 그 계급은 소장으로 재조정하는 것이 순리이다. 또 5·16 당시 북한군이 전방에 군사력을 집중하야 거사를 도운 정황 및 황태성 밀사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에게 ‘대미위임통치청원(1919.2)’을 했으며, 1950년 7월 15일 외무부 장관과는 상의도 없이 미군에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넘겨준 리승만 박사가 참 애국자인지 다시금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순국선열의 피와 땀으로 건국된 나라이며 사상(思想)의 자유(自由)를 존중하는 민주국가이다. 주자학을 반대하면 사문난적으로 몰리거나 귀양을 가야 하는 조선 후기 사회가 아니다.

홍 장군이 1927년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다고 하는데 순수한 동기인지, 광복운동의 차원에서 가입한 것인지, 한국과 러시아 사학계의 공동연구가 필요하다. 후일의 국제정세를 보면 한국의 독립은 기미독립운동 및 중국, 미국, 소련, 영국 등 연합군의 승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반공주의가 곧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착각이다. 북한은 공산주의라고 하나 실상은 김일성 주체사상주의이며 선군정치의 나라인 것이다.

지금의 홍 장군 흉상 논란을 보면서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군인정신 및 장교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에 육사, 해사, 공사 등의 교과목에 헌법과 무경칠서를 포함하길 희망한다. 헌법은 자유와 정의의 학문이며, 육도삼략 등의 무경칠서는 자유와 정의를 지키는 힘의 원리와 운용에 관한 지혜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1894년 홍범도 장군이 일제에 대항하야 3백명 규모의 부대를 처음 창설한 곳이 바로 철원이다. 철원 보개산(寶蓋山)을 기점으로 병력을 1천4백명까지 증원하야 강원도와 함경도에서 일본제국주의자들과 혈전을 벌였다.

홍 장군의 흉상은 태봉의 수도이며 아름다온 한탄강이 흐르는 철원으로 오기를 희망한다. 해동명장인 최영 장군의 고향이며 조국을 위기에서 구한 푸른 별 청성부대가 있는 철원이야말로 홍 장군이 편안히 쉴 최고의 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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