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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최종철
작성일 2021/03/24 (수)
ㆍ조회: 29      

철원 출신 김영관 전 해군참모총장 별세

철원 출신 김영관 전 해군참모총장 별세
위대한 군인·외교관·행정가로 제주도 발전의 설계자

강원도 철원이 고향으로 제주도를 사랑한 김영관(金榮寬) 제8대 해군참모총장이 3월 21일 밤 10시경 별세했다.

고인은 김해 김씨로 1925년 9월 김화군(현 철원군) 원남면 개야리 510번지에서 태어났다. 금성심상소학교와 일본 효고현의 에바라(荏元)중학교를 졸업하고 원남국민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했다.

1946년 2월 해군병학교(현 해군사관학교) 1기생으로 입교해 1947년 2월 해사를 졸업했다. 이후 해사 훈육관을 시작으로 강릉정장, 한라산함, 강원함 등 함정 근무와 부산경비부사령관, 해군본부 작전국장, 진해통제부사령관, 해군대학총장, 한국함대사령관을 지냈다.

41세의 나이로 해군참모총장(1966.9~1969.4)에 취임해 구축함 등 28척의 함정을 도입했으며, 해상근무 장병의 처우개선 및 주택지원에 노력했다.

6·25전쟁 때는 901함장(수송함)으로 인민군이 삼천포에 구축해 놓은 진지를 함포사격으로 파괴해버려 삼천포에서 부산으로 기습하려던 그들의 해안작전을 막았다. 통영상륙작전에서도 큰 공을 세워 부산·마산·진해가 적의 위협에서 벗어나 전세를 호전시킬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1967년 1월 19일 오후 해군 당포함(함장 김승배 중령)이 북방경계선 이북 해안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50여척의 어선을 구하고 전투중에 침몰하자, 해군참모총장이었던 고인은 1월 20일 새벽. 동해상에 집결한 모든 해군함정을 전투배치 시키고 북한이 만행 재개시 즉각 보복하라고 긴급명령을 내렸다.

해군 대장으로 전역 후 영남화학 사장, 대한아마추어레슬링연맹회장, 주베트남대사, 해군사관학교 교육진흥재단 이사장, 한국가스공사 이사장, 대한민국해양연맹총재, 제7대 성우회장 및 한·베트남친선교류협회 초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5.16 직후 해군 준장 신분으로 제주도지사(1961.5.24~1963.12.20)를 맡아 봉사했다. 제주지사를 하는 동안에 제주∼서귀포 횡단도로(5·16도로) 개통, 지하수개발과 상수도 보급, 4·3사건 이재민 원주지 복귀사업, 제주관광호텔 건립, 감귤산업 육성, 제주도 왕벚나무 보호 등을 추진해 제주발전의 신기원을 열었다. 또한 재정난으로 폐교 위기에 직면한 제주대학(도립대학)의 국립대학교 승격을 이루어 인재육성과 문화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현재 제주민군복합항에는 그의 이름을 딴 ‘김영관센터(복합문화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고인은 한국함대사령관으로 있으면서 북극성장학회(1965.11)를 만들어 함대의 준사관 및 하사관의 중학생 이상 자녀로서 성적 및 품행이 좋은 자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1966년 10월에는 이 장학회를 확충하여 해군 장병 자녀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해군북극성장학회로 발전시켰다.

영남화학사장으로 있던 1972년 3월 6일 신철원농고(교장 이병철)와 지포리에서 자매결연식을 가지면서 실습농장(농경지3만5천평·임야2만2천평)을 마련해 주었다. 또 신철원중학교 및 신철원농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신철원농고 과학실험실습관(1백26평) 준공도 도왔다.

바다를 사랑한 고인은 국방대학원 졸업논문으로 평화선에 관한 국가정책(1961.6)을 남겼다. 80대 후반에는 국가안보와 평화통일을 위해 한미연합사 체제 유지 및 북핵 폐기 운동을 범국민적으로 펼쳤다.

손원일 제독과 충무공 이순신을 존경한 고인의 장례식은 해군장으로 치러졌으며 서울 국립현충원에 영면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현병화(玄炳和) 여사와 아들 홍겸, 딸 인겸·미겸·혜겸·희겸, 사위 박영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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