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내일신문 2007/1/2(화) | |
동강댐 백지화에서 배우세요 삼옥리 주민들이 백지화의 견인차 … “앞으로도 동강은 우리가 지킨다”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영월댐은 세계 최초의 신종으로 추정되는 7종의 동식물과 20여종의 멸종위기 동식물들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겠습니다.” 6월5일 세계환경의 날 기념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동강댐 백지화’를 공식 선언했다. 이 선언으로 지난 97년 이후 영월댐 건설을 둘러싼 오래고도 치열한 논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이 선언이 나오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동강을 지켜왔다. 부부가 함께 반대운동의 선봉에 서기도 영월 동강댐 백지화의 1등 공신은 누가 뭐라 해도 ‘영월댐 백지화 3개군 투쟁위원회’(백투위) 소속 영월·정선·평창군민들이다. 특히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주민들은 영월댐 반대의 열기가 주춤하던 98년 이후 끈끈한 조직력을 기반으로 전체 영월군민들의 반대운동을 이끌어냈다. 98년 초반까지만 해도 영월읍내에서는 댐 건설이 지역경제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여론이 팽배했다. 이런 읍내 사람들의 여론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백투위에 명노명 부위원장이 참여하면서부터. 영월 읍내에서 온풍·냉방기 설비업을 하던 명 부위원장은 자기 건물 3층을 백투위 사무실로 내놓고 본격적인 반대운동에 뛰어들었다. 영월댐건설사업소에서 신분을 숨기고 수천만원에 달하는 냉방기와 온풍기를 주문했으나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는 납품을 포기,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수자원공사에 물건 팔아놓고 어떻게 댐 반대운동을 떳떳하게 하겠는가”라는 그의 말 속에는 환경파괴를 위한 연구용역을 스스럼없이 하는 일부 학자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들어 있다. 정규화 부윈원장과 부인 엄필례씨는 부부가 함께 동강댐 백지화 운동에 뛰어든 원앙 커플. 교회 집사인 정 부위원장은 타고난 목청과 순발력으로 수많은 전투(?)를 이끈 선봉장이기도 하다. 영월댐을 조기착공하라는 수몰민들 사이에서 많은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주민들과 함께 경향각지를 누볐다. 작년에는 혼자만의 결단으로 ‘백지화를 위한 단식투쟁’ 16일을 버텨내기도 했다. 마을 이장으로 반대운동에 참여한 정동수 위원장은 흔들림없는 신념으로 삼옥리 주민들을 조직해왔다. ‘삼옥리 골짜기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국책사업이 바뀌지 않는다’는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반대운동에 나서 결국 전체 영월군민들의 반대여론을 이끌어냈다. 영월댐백지화3개군 투쟁위원회의 3총사. 왼쪽부터 명노명 부위원장, 정동수 위원장, 정규화 부위원장. 이들은 “아무리 반대한다고 해서 국책사업이 백지화될 수 있나”라던 영월지역의 여론을 동강댐 반대쪽으로 돌려낸 결정적 공로자들이다. 백룡동굴 지킴이 정무룡씨. 그가 평소 조사해 놓았던 동강 일대 동굴분포 지도는 수자원공사의 환경영향평가서를 단숨에 부실로 만들어 버렸다. 환경연합 김혜정 조사국장. 3년이 넘는 긴 싸움을 성공적으로 조직해 낸 탁월한 조직가로 평가받는다. 지금은 서울환경연합에서 일하고 있다. 동강지킴이 엄상용씨. 인터넷에서 동강살리기 운동을 하다 작년 여름 회사생활을 포기하고 동강 현지에 내려간 열혈청년이다. ‘엉켜버린 옥빛 실타래 물길 100리’ 모든 운동의 출발점에는 제일 먼저 호루라기를 분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 비경지대인 영월 동강에 댐이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경고 호루라기를 제일 먼저 분 사람은 ‘트렉코리아’란 오지탐험업체를 운영하는 치과의사 이승건씨. 90년대 중반부터 방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깊은 맛’을 보여주기 위해 영월 동강을 찾았던 그는 ‘청록빛 연봉 사이로 엉켜버린 옥빛 실타래 물길 100리’(이승건씨가 제일 먼저 사용한 표현임)을 지키기 위해 무작정(!) 반대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97년 여름부터 우이령보존회(회장 김인식)를 찾아 동강 보전운동의 중요성을 설득하는 한편, <경향신문> 매거진X 팀이나 <내일신문> 등 언론매체 담당자들을 찾아 숨어 있는 동강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승건씨의 이런 노력은 97년 10월 ‘동강댐 반대 수상시위’와 11월6일 ‘무분별한 댐건설반대 국민연대’(35개 환경·사회단체 및 지역 대책위 참여) 결성과 집회로 확산됐다. 언론매체 가운데 동강댐 문제를 제일 먼저, 지속적으로 보도해 온 매체는 영월의 조그만 주간신문인 <영월저널>(대표 최홍식)이다. <영월저널>은 이미 93년부터 영월댐 건설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기획기사들을 연재했다. 당시 거의 모든 군민들이 영월댐을 찬성하던 분위기에서 <영월저널>의 보도는 선도적인 결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백룡동굴 지킴이 정무룡씨의 동굴탐사 98년 5월, 동강의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지고 댐 안전성 문제가 제기됐을 때, 수자원공사의 환경영향평가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백룡동굴 지킴이’ 정무룡씨. 98년 5월15·16일 본지와 환경운동연합, 우이령보존회, 동강포럼 탐사팀은 정무룡씨의 사전 안내와 한국동굴환경학회, 강원대 동굴탐사반, 고려인(래프팅업체)의 실무지원을 받아 탐사 3시간만에 100m급 동굴 2개를 찾아내는 등 실로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본지 232호 특종보도) 이 탐사 직전, 5월7일에 열린 ‘영월댐 관련 전문가 토론회’에서 수자원공사 정성채 건설본부장은 “수몰지 내 동굴은 모두 6곳이며 백룡동굴을 제외한 나머지 동굴은 모두 30m 이하”라며 “댐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었다. 정무룡씨는 이 탐사 이후 자신이 오랫동안 조사해 온 동강 일대 동굴분포 조사자료를 공개, 수자원공사의 환경영향평가가 얼마나 조작된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이후 실시된 산림청과 환경부의 현장 식생조사 결과도 환경영향평가의 부실을 여실히 증명했다. 98년 겨울 실시된 국립민속박물관의 동강지역 민속·역사문화 조사에서는 동강댐 수몰예정지 일대가 신석기에서 철기시대에 이르는 대규모 유적층이라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사상 최다, 최대가 참여한 환경운동 동강댐 반대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을 이 짧은 지면에서 다 소개한다는 곳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건교부와 수자원공사라는 거대한 국가기관을 상대로 3년 넘게 반대운동을 조직한 환경연합의 김혜정 국장, 인터넷을 통해 동강살리기 운동을 하다 직장까지 그만두고 동강 현지로 내려간 엄상용 동강보전본부 사무국장, 수많은 예술가들을 동강댐 반대운동으로 조직해 낸 건축가 김 원씨 … 동강댐 문제만큼 많은 언론보도와 시민참여를 이끌어 낸 환경운동은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글·사진 남준기 기자 jknam@nae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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