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한탄강사랑 (nch3866@hanmail.net)
2004/7/7(수)
이태준의 철원(도민일보펌)  
이태준의 철원


 

 
 

 이태준은 묘한 암시를 남기듯 '해방전후'를 써놓고 북으로 갔다. '한 작가의 수기'란 부제가 그렇듯 그는 '해방전후'에서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다. 시국에 협력할 수 없는 작가, '현'이 낙향한 강원도 산읍(山邑)을 그의 고향 철원읍일 거라고 단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막연히 철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방향치적 해석이다. 그는 산읍을 '철도에서 팔십 리를 버스로 들어오는 곳', '예전엔 현감이 있었던 곳', '가까이 임진강 상류가 있어 낚시질로 세월을 기다릴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고향 용담을 '철원역에서 내려 철길을 따라 남쪽으로 오리'라고 했다. 그러니 산읍은 고향집이 있는 철원읍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고향집을 꼭 꼬집어 용담이라고 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6살 때 개화파 아버지를 따라 연해주로, 그해 8월 아버지의 죽음으로 함북 배기미(梨津)로, 9살 때 어머니의 죽음으로 철원 용담 친척집으로, 12살 때 안협 오촌집으로, 다시 용담 오촌집으로…. 역마살 낀 지지리 기구한 소년 역정만으로도 소설이다.
 그의 12살 적 고향 안협이 임진강 상류, 현감이 있던 '철도에서 팔십 리를 버스로 들어오는 곳'이다. 그는 지리적 감각이 탁월했던 사람이었다. 안협의 그것처럼 소설 속의 지명들은 늘 그림지도처럼 선명하다. 그의 소설 속 '봉우재', '떡전거리', '서문거리', '선왕댕이', '밤까시' 등은 까마득히 잊힌 지명이다. 그 옛 철원이 요즘 '평화시' 구상과 함께 새철원에서 부활하고 있다.
 다만 올해로 만 100살이 되는 이태준만 그의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데뷔작 '오몽녀'가 나온 날, 7월 13일에 맞춰 추모제를 지내오던 철원 문인들이 작심하고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보려고 했으나 알량한 이데올로기 시비가 그의 귀향길을 막고 있다. 한탄강가 세우려던 문인비마저 군청 반대로 지지부진해졌다는 것은 최근 소식이다.
함광복 논설실장 hamlit@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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