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최종철
2004/7/5(월)
철원제일교회(성지로 되살아나야...)  

 

聖地로 되살아나는 반세기전 바이블루트 요새 - 철원제일교회

◇…에게해의 고도 에베소에는 바다가 없었다. 그 옛날 항구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고, 바다는 8㎞ 밖으로 도망가 있었다. 어린이들 상상에서 가능할 것 같은 이상하고 비능률적인 도시가 집짓기 놀이를 하다 내팽개친 놀이방처럼 언덕 위에 부서져 있었다.

여기선 성경에 '들의 백합화'로 등장하는 터키 양귀비 겔란직이 잡초였다. '시집갈 나이가 다 된 처녀'라는 고상한 꽃말을 지니고도 그 꽃은 관리인의 손길이 닿지 않는 유적지 밖에서나 무리 지어 피어있었다.

'누가의 묘'.

영어도, 터키어도 아닌 한글 안내판이 겔란직 꽃밭에 서있었다. 그 뒤로 집채만 한 돌덩이와 돌기둥이 얼기설기 뒤엉킨 폐허가 잡초를 뒤집어쓰고 주저앉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 옛날 로마로 복음이 전파되던 바이블 루트였으며 사도 요한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묻혀있는 한때 기독교의 요새였던 나라. 그러나 지금은 온 나라를 깡그리 뒤져도 단 하나 십자가를 찾아볼 수 없는 무슬렘의 나라에 사도 바울의 동행자 누가(Luke)를 기리는 한글 안내판은 정말 상상 밖이었다.

한글 안내판 '누가의 묘'는 "여기에 누가가 묻혀있다"고만 말하지 않으려는 게 분명했다. 그건 무슬렘 땅에 들어 온 한국 선교사들의 말없는 '성전 선언'처럼 보였다.

나는 철원 관전리 DMZ 언덕 위에 주저앉은 무너진 철원제일교회와 늘 그 성지 옆을 서성이던 이금성장로(철원군 동송읍 장흥교회)를 생각했다.

1905년 철원에 기독교가 전파된 이래 해방 직전까지 금강산 길목에는 철원제1, 철원제2, 김화. 금성, 창동, 내금강, 철원동, 철원서, 평강, 안협, 월정, 연천, 삭령 등 13개 구역에 수많은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철원제일교회는 추가령 열곡대를 따라가던 이 한국판 바이블 루트에 기독교 씨앗을 뿌린 교회.

이 선교 요새는 1920년 5월 철원읍교회로 낙성됐다. 그리고 1937년 9월 30일 대지 1천200평(어떤 기록은 1천713평), 건평 198평(어떤 기록은 194평)에 3층 갤러리가 있는 고딕 건축물을 준공했다. 당시 돈 2만7천200원을 들인 이 교회는 일본에서 활동하던 미국인 건축가 보리스(W. M. Voris)가 설계했다.

 한국전 당시 공산군은 미군기가 교회는 폭격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예배당을 주요 진지로 활용했다. 이 때문에 미군은 한국전에서 교회도 폭격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폭격은 마지못해 이뤄졌는지 모른다. 구철원이 모두 초토화됐는데도 교회는 지붕만 날아갔을 뿐 성성한 모습으로 종전을 맞았다. 교회는 전쟁 후의 혼란이 박살낸 셈이다. 어떤 이는 "수복 후 민간인과 군인들이 화강암을 뜯어다 내어 파는 바람에 이 지경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장로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무너진 교회의 땅문서를 찾고 있었다. 철원은 해방 후 5년 동안 북한 땅이었으며, 그후 3년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전장의 한 복판이던 땅,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옛 주인들이 찾아오기까지는 또 2∼3년이 걸렸다.

 '내 땅'을 주장할 수 없었던 이 10여 년 사이 제일교회 땅 846평은 사유지, 나머지 867평은 국유지가 되어있었다. 장로는 잃어버린 그 땅을 찾고 있었다. "제일교회는 내가 성장한 장흥교회의 모(母)교회이지요. 모

교회의 땅을 아무도 찾지 않는다면 자(子)교회 토박이라도 나서야지요. 교회땅은 하나님 재물이니까요." 나는 깐깐한 성품인 그가 꼭 그 일을 해놓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3년쯤 후 나는 정말 그가 그 땅을 찾아 감리교회 유지재단에 등기해 놓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무너진 교회의 24계단은 초대교회의 12 지파, 12 사도를 의미했을 것이다. 돌 틈새를 비집고 노란 돌나물 꽃이 가득 돋은 12 계단을 오르면 다시 12 계단이 이어졌다. 거기에도 녹슨 안내판이 시커먼 곰보돌과 화강암 기둥이 뒤엉킨 유적을 가르키고 서있다.

그 안내판도 그냥 "여기가 옛 교회 터"라고 만 말하지 않았다. 차마 글귀에 올릴 수 없는 '교회를 빼앗아 간 자들에 대한 증오', '여기가 성지인지 조차 모르고 있는 후세 기독교도들의 반성과 질책'이 행간마다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교회 터를 찾아갈 때마다 저 안내판의 글은 옛 바이블루트를 재건하겠다는 '성전 선언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처음 에베소의 한글 '누가 무덤'이 담고 있는 '성전 선언'을 무모하거나 가소롭다고 생각했다. 우선 국민 99.8%가 단 한번도 성경을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수세기에 걸쳐 단단히 무슬렘으로 무장한 나라에 그것도 한국인의 터키 선교는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에게는 고대 유적의 낙서 정도에 불과할 텐 데도 혼신의 힘으로 그 글을 써 붙일 만큼 한국 사람들의 오기와 집착은 어디서나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요즘 "만일 터키 사람들이 우리네 신라나 백제 고분 앞에 터키어 안내판을 세웠다면 저 국제적 비양심을 우린 어떻게 볼까?"라던 에베소 여행소감에 대해 좀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기독교 미전도국이라는 그 나라에 들어가 있는 한국 선교사들을 오기와 집착으로 매도한 것도 솔직히 두렵다.

최근 철원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무너진 그 교회 터에 그 교회의 기념관을 세운다는 것이다. 그 교회의 처연한 모습을 보고 한 독지가가 나타났으며 이미 7∼8억 짜리 건물설계가 착수됐다는 것이다. "제발 무너진 그 터를 그대로 보존시키며 새 건물을 짓도록 해야될 텐데…."하는 근심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나는 성지를 일으켜 세우려는 장로의 고집도 기독교인들의 지독한 오기와 집착에서 나온 것이며 그 이루려는 계획도 무모하거나 가소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달리 장로는 엄청난 힘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어떤 생명력에 대해 처음부터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에베소의 한글 안내판 '누가의 무덤'도 그런 확신으로 서있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곧 이금성 장로를 만나러 철원으로 갈 예정이다. 목원대 김정동 교수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 몇 줄을 베꼈다.

"본격적인 교회 건물은 정확히 1936년에 다시 석조 교회 건물로 세워졌다. 194평에 2층 건물이었다. 1층은 소예배실과 10개의 분반 공부실이 있으며, 2층은 대예배실로 설계했다. 미국인 스톡스(都瑪蓮時) 선교사가 미국인 건축가 보리스(William Merrell Vories 1880∼1964)에게 설계를 의뢰했던 것이다.

<중략> 보리스는 1905년이래 일본에서 활동했다. 철원읍 감리교회는 보리스 의 자료에 'Chulwon, 1936, Church for Methodist Mission - Dr. M. B. Stokes'로 남아있다. 보리스는 2년 후인 1938년 목사를 위한 주택(牧師館)도 이 부근에 짓는다. 이는 'Chulwon, 1938, Methodist Mission House'로 남아있다. 이 도면은 모두 일본 오사카 예술대학 건축과에 남아있다."

일제 때 중국 석공의 손으로 지어졌다고만 알려진 이 기막힌 건축물, 어떤 이는 2층 건물이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3층이었다고 하며, 대지나 건평도 기록마다 다른 이 교회의 설계도면이 지금 일본의 한 대학에 보존돼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들려주러 철원으로 가는 것도 한 기독교인의 확신에 대해 어떤 거대한 힘이 작용한 '응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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