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방송대 강경선 2004/6/22(화) | |
법으로 무엇을 할것인가? 법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강 경 선 (방송대 교수, 법학) 1. 80년대 우리 사회에서 민중민주주의가 한참 외쳐질 때, 민중은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경제적으로 착취당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라고 이해되었다. 그리고 현대 산업사회에서 이는 구체적으로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도식적으로 받아들여 민중은 오로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만을 가르킨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사고가 탄력성을 잃게 되어 위험에 빠지게 된다. 민중은 일정한 시점과 상황하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은 상황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80년대의 우리 상황에서 특히 외세와 군사독재와 대재벌의 엄청난 구조적 지배세력 속에서 대표적으로 억압받는 계층으로 노동자와 농민과 도시 빈민을 대표적인 민중으로 규정짓고 이들의 권리와 정치적 진출을 외쳤던 것은 아주 의미있었다고 본다. 그후 이들 계층에 대한 민주화가 충분히 실현되지도 않았지만, 93년의 문민정부수립과 98년도의 국민정부의 출범 등은 현재 상황에서 민중의 개념규정을 보다 다양하게 할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과거의 민중은 그 지위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전체국면에서는 정치적으로 우위에 서는 측면을 갖고 있다. 반면, 과거의 집권세력은 여전히 경제적으로나 사회구조적으로 공고한 권력기반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배후로 밀린 그런 상황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훨씬 다양한 배려 속에서 피억압의 상처를 받는 사람을 줄여가면서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법의 관점에서 보면 민중은 '소수자' 혹은 '약자'의 개념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소수자 보호에 있다고 배우고 있다. 그렇듯이 법의 해석과 판단은 궁극적으로 소수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이럴 때 소수자는 상황에서의 민중을 의미한다고 본다. 현실에서 우리의 삶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의 숲을 지나간다.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이런 과정의 연속이다. 이들의 관계는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욕망과 욕망으로 얽힌 갈등과 질시, 싸움의 숲이 많은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정의로와야 한다면 이런 숲속에서 평화의 전쟁을 치루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갈등관계를 보고도 그저 지나치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적어도 우리의 관심 안으로 들어오는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들은 일정한 판단을 하면서 그것을 바르게 정리함으로써 갈등 대신에 평화를, 부정의 대신에 정의를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문제상황에 도달할 때 우리는 소수자의 권리, 약자의 보호와 같은 원칙들을 상기하게 된다. 이런 문제의식이 곧 민중적 법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약자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 약자와 함께 하는 태도, 이것이 민중과 함께 하는 생활이라고 본다. 2. 민중을 법학에서 이해하고자 할 때 그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주권을 선언한 규정인 것이다. 이 규정은 존재이자 당위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 조문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어야 하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의미로도 읽혀야 된다는 말이다. 현실과 당위 사이의 간격을 메꾸는 것이 헌법의 역할인 것이다. 실제로 우리 국민들은 주권자로서 마땅히 국가에 관한 최고의사결정권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였다. 과거에는 매우 심했고, 현재도 여전히 마찬가지인 부분이 존재한다. 주권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국민들은 헌법과 부합되지만, 주권자로서의 실질적 지위를 상실하거나 박탈당한 국민들은 헌법의 뜻에 반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현실에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을 우선 민중으로 부를 수 있다. 국민주권국가에서 국민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들, 즉 참정권, 공무담임권, 그리고 많은 기본적 권리들에 대한 보장,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다소간에 이런 권리들을 제약당하거나 아주 박탈당한 그런 상황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극복해서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그런 완전한 지위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민주법학의 운동이란 바로 이런 노력을 말한다. 당연히 민주법학의 지향점은 자유권과 사회권의 보장을 통해서 국민주권의 완전한 실현을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국민주권의 완전한 실현은 국내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민주화도 동시에 요구한다. 세계국가들 사이에 권리의 동등성이 실현되지 않는 한, 한 나라의 국민주권은 유지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법학의 운동은 바로 이웃의 문제로부터 우리와 가장 멀리 떨어진 또다른 이웃과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당연히 법과대학생들은 학생이기 때문에 우선 열심히 그리고 훌륭히 학업을 성취해야 한다. 현재의 법학들의 주요 내용은 서양법학을 수용한 것이다. 서양법학도 생각해보면 다시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 쌓여진 법규범들을 정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생활에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런데 그 법들의 내용이 과연 민중지향적인 것이냐 아니냐는 별도로 검토해봐야 한다. 너무나 많은 법들이 우리의 일상사에서 다툼이 일어날 때 개인주의적으로, 혹은 일정한 기득권 집단을 위하는 쪽의 해석에서 굳어진 것들이 많다. 그런 것들은 문제해결에는 능할 수 있으나 가치적으로나 이념적인 측면에서 정의롭지도 민중적이지도 않다고 말 할 수 있다. 가깝게 우리의 주변 민사사건, 형사사건, 노동사건, 헌법사건 등에서 다양한 법률해석들이 나와있고, 또 그들이 나름대로의 방향성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사회정의에 부합된다고 할 수 없는 판결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보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학을 많이 공부하면서 그런 문제점들을 판별해나가도록 훈련을 쌓을 수밖에 없다. 우선은 법이 명백히 정한 권리보장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다음엔 법이 명백히 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이념적 지향의 측면에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법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조문이 있다면, 이 조문의 정신에 따라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불필요하게, 불합리하게 차별받는 영역과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일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렇게 배우고 또 그들에게 합당한 권리를 돌려주고자 하는 합당한 노력을 한다면 그야말로 훌륭한 법학도들이 아니겠는가? 4. 한국의 법학교육이 파행을 겪어왔고 현재도 그렇다는 것은 변함 없는 사실이다. 법과대학의 교육은 전적으로 사법시험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다. 교수들이 법과대학생들을 바로 교육하는 것도 한계를 가진다. 왜냐하면 학생들도 사법시험에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과대학생들도 특별한 대안이 없는 한 그들은 부모들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사법시험을 보아야 하고, 따라서 사법시험과 무관한 수업을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법시험을 위한 법률공부도 법학의 일종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대학의 강의실에서 법을 통한 여러 가능성을 탐구하고 토의하는 것을 차단한다. 시험에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기초법학들에 대한 관심이 비정상적으로 저하된다. 무엇보다도 사법시험을 하고자 하는 동기가 매우 개인적인 곳에 있기 때문에 사법시험의 과정 모두가 성숙한 공인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때마침 지난 1994년 문민정부 초기 사법시험에서 합격자선의 대폭 증원을 통한 사법개혁, 법학교육개선이 제기된 바 있었다. 여러 가지 점에서 잘만 했으면 성공의 확률이 높이 주어졌던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결정적으로는 이를 주도한 청와대팀의 독주와 에리트의식으로 인하여 사법개혁이 법학자들과 법조인들 사이의 밥그릇 싸움으로 치달았다. 미국식 로스쿨제도의 시행도 우리 나라의 전국의 법과대학의 수준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일부 소수 대학의 전횡적 발상에 지나지 않아 이윽고 지방대학의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사법시험의 연차적 증원계획만을 건졌을 뿐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끝이 나고 말았다. 지금도 가능하다면 사법시험제도의 변경, 사법개혁, 법학교육의 변화는 한시바삐 추진되었으면 한다. 사법개혁은 법조일원화가 바람직할 것이다. 그것은 곧 사법시험합격인원을 대폭증원하면서 변호사를 늘리는 것이다. 변호사를 늘리기 위해서는 변호사의 임무를 늘리고, 결국은 국민들의 변호사조력의 권리를 증대시키는 쪽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형사사건의 경우 모든 국민들이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국선변호의무화제도를 추진하는 것도 한 예가 될 것이다. 변호제도의 사회화방법은 보험제도를 비롯한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동시에 법과대학의 규모와 교육정상화가 요구된다. 역시 실무와 이론의 결합을 위한 법학교육은 필요할 것이다. 현재의 법률가와 교수들 사이에 교류가 필요하다. 성격상 법률가들이 학교로의 진출 빈도수가 더 많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법학교수들도 약간의 실무연수를 조건으로 해서 해당 전문분야에서의 변호인 자격을 부여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면 대학에서 실천으로 연결되는 이론 강의가 많이 행해질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로스쿨의 설치는 좋다. 지방대학의 경우에도 학점교류를 통한 로스쿨운영을 도모할 수 있다. 변호사시험 합격후에 많은 수의 연수생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적어도 고등법원소재지에 하나씩의 사법연수원이 필요하고(혹은 실무수습의 방식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향토법관 같은 제도가 정착이 되게 함으로써 지방자치시대의 이념에 부합하는 사법제도를 함께 실현할 수 있도록 한다. 또 하나, 모든 법과대학에서 인권교육을 실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인권운동의 실무자들이 법과대학에 와서 강의를 하는 진취적인 분위기의 형성이 꼭 필요한 것이다. 5. 경제가 어려워져서 진보운동이 힘들어진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되는 것이다. 어찌보면 진보운동이 동력을 잃어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책임감도 가져야 할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짐으로써 실제로 생활의 고통을 받게 된 사람은 그야말로 민중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제난국은 그 원인이 내인, 외인 모두 있겠지만, 역시 우리 내부의 문제점을 크게 통감하고 그것을 시정해나가는 기회로 삼아야 하리라고 본다. 군부독재의 잔재가 대재벌지배구조로 상속된 우리 사회는 하루빨리 재벌지배구조를 청산하고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할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재벌구조를 청산한다고 해서 재벌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는 방식을 선택하자는 것은 아니다. 모든 국민들이 스스로 보다 민주화된 의식과 생활태도를 갖도록 노력하는 가운데 재벌청산이 되어야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은 민주화과정은 오히려 부작용도 심하고 결국 실패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약자를 깔보지 않고 항상 자신의 위치를 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진보운동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가장 큰 결함은 이념도 좋고 말도 좋고, 성실과 열심도 좋은데 자기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호사스러운데 있는가를 모르고 남들의 약점만을 들추어내려는데 있다. 남의 약점을 감춰주면서도 결국 상호발전할 수 있는 그런 운동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IMF상황은 우리 나라 국민 전체가 규범의 재무장을 할 것을 요구하는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6. 그동안의 사상전향제가 위헌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난 8월 중 법무부에 의해서 실시된 준법서약제는 어떠한가? 사상을 이유로 수감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특별사면을 시켜는 주되 최소한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정도의 서약은 받아야겠다는 것이 법무부의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학계와 인권운동집단들 사이에서 의견들이 갈렸다. 일부는 이 정도의 요구는 헌법위반이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또 일부는 준법서약은 외형만 바뀐 것이지 내용상으로는 사상전향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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