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예측 근거로 '2020년 사회'전망…"산업·과학기술 변화로 전분야서 여성이 리드"
2020년 영국의 런던. 찰리 크로프트는 17세 된 여대생이다.
그녀가 가족 소개를 하려는 순간 TV화면 속에서 미국의 여성 대통령 캐서린 가르시아가 곧 영국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며, 이를 계기로 한동안 소원했던 미·영 관계가 개선될 전망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크로프트의 어머니 앨리스(52)는 외국 기업을 사고 파는 다국적 투자회사의 잘 나가는 CEO(최고 경영인)이다. 아버지 필 크로프트(51)와는 오래 전에 이혼한 뒤 일에만 매달려 산다.
50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 냉동 보관시켰던 자신의 난자와 정자은행에서 구입한 정자로 시험관이나 인공자궁 수정을 통해 딸 하나를 더 낳겠다고 우기고 있다.
크로프트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 모처럼 아버지를 만나 30여분간 얼굴을 다시 익혔다.
가물에 콩 나듯 만나보기 때문에 생물학적인 아버지라는 사실만 알 뿐 어디서 어떻게 사는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른다. ‘아버지 권리찾기 모임’의 회원이라고 한다.
언니 사라(26)는 옥스퍼드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했고, 2018년 총선에서 당선돼 촉망받는 하원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일 외에 다른 취미나 이성(異性)에 대한 관심은 없으며, 독신으로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다.
남동생 매트(22)는 한 기업에서 디지털마케팅을 담당하는 여성 상사의 개인비서 보조로 일한다. 5년 만에 보조 딱지를 떼려고 승진 신청을 했는데, 그나마 입사 8개월밖에 안된 어린 여자 후배에게 자리를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크로프트가 “너도 머리는 나쁘지 않은 편인데…”라고 말할 때마다 자신을 빈정댄다고 샐쭉대곤 한다.
정치·경제·학문·기술 등 전분야서 “여성”
영국 BBC2 방송이 지난 3월 31일 방영한 ‘여성이 세상을 지배한다면…’이라는 가상(假想) 다큐멘터리의 일부 장면과 인물들이다.
이 프로그램은 영국 왕립연구원 원장이자 약학 교수인 수전 그린필드 박사와 런던대학교 유전학 교수인 스티브 존스 박사 등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예측을 근거로 미래의 세상을 드라마 형식으로 구성해본 것이다.
BBC가 미리 가본 2020년 세계는 온통 ‘여인천하’가 돼 있었다. 최소한 영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정치·경제·교육·학문·기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을 압도하고 있었다.
유아원에서 대학교에 이르는 교육과정에서도 남성은 여성에게 역전을 허용, 제2의 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거의 모든 단계의 성적이나 평가에서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을 멀찌감치 앞섰다.
영국의 경우, 대학 학위 취득자는 남성 2명에 여성 3명 꼴로 여성이 더 많아졌다.
1990년 12 대 1이던 기업의 매니저급 직원 남녀 성비(性比)가 올해는 4 대 1로 좁혀지더니, 2020년엔 급기야 1 대 1로 바뀌었다. 시가 연기로 자욱했던 중역 회의실에는 자택 근무를 하며 자신의 집 거실이나 안방에서 보내오는 여성 임원들의 화상(畵像)이 대신 들어섰다.
15세 이하 소녀들은 또래 소년들보다 더 많은 흡연과 음주를 한다. 한 해에 1인당 250ℓ의 주류를 소비, 과거 남성들이 그랬듯이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급증한다.
그렇다면 미래가 여성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이유와 배경은 무엇일까. 영국 왕립연구원 원장 그린필드 박사는 우선 산업구조가 남성적인 근력을 필요로 하던 제조업에서 스크린 앞에서 뇌를 사용하는 창의력 중심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따라서 여성은 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더 이상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될 것이며, 특히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유연한 근무 체제로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포용력, 비폭력적인 협상력 등이 강점이 된다.
남성 정자 감소…2020년쯤 임신 어려워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회 활동을 원하는 여성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던 출산 문제 해결도 가능해진다.
난자가 최상의 상태를 보이는 18세를 전후해 난자를 채취해 냉동 보관했다가 원하는 시기에 인공수정해 대리모나 인공자궁을 통해 출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유전공학은 출산과 가족 개념에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언젠가는 남성의 정자 없이 여성 자신의 신체 어떤 세포에서든 유전물질을 추출, 난자와 수정하는 것도 가능해져 출산에 남자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딸·아들 성별은 물론, 아기의 신장과 체중, 건강상태, 머리카락과 눈의 색깔, 심지어 지능까지 어느 정도 ‘주문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렇게 되면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부모가 될 수 있고 유전물질 기증자와 난자 기증자, 자궁 제공자, 실제 길러준 부모 등이 모두 부모가 될 수 있어 부모와 가족의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일인일 수도 있으며, 아버지가 엄마 이외의 여성일 수도 있다. 형제·자매의 아버지가 모두 다르거나 언니가 아버지이고 누이동생이 생물학적인 어머니일 수도 있다.
과거 개념의 수컷 필요성이 사라지는 마당에 남성의 정자 수마저 갈수록 적어져 어차피 제 구실을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런던대학교의 존스 박사에 따르면, 남성 정액 1㎖당 정자수는 1940년대 1억마리에서 1990년대에는 6600만마리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소세가 이어질 경우, 2020년쯤엔 남성 상당수의 정자수는 여성에게 임신을 시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며, 2100년엔 정자를 전혀 만들어내지 못하는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존스 박사는 한술 더 떠 남성 염색체에도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내린다. 여성은 XX 염색체, 남성은 XY 염색체를 가지고 있는데 남성의 Y염색체는 소멸해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길이가 X에 비해 3분의 1에 불과하고, 함유하는 유전자 정보도 X의 1만5000여개에 비해 수십여개에 지나지 않는 Y염색체는 이미 1억여년 전 포유류 등장 무렵부터 이미 서서히 쇠퇴해왔다고 주장한다.
‘육체적 남성 기능’ 계속 존재할 것
BBC의 가상 다큐멘터리 ‘여성이 세상을 지배한다면…’에 따르면 머지않은 장래에 남성은 이래저래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다만 “남성의 필요성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한다.
가상현실 등 사이버 기술로도 감성적인 사랑이나 육체적 관계를 대신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란다. 남성이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는 장면과 멘트는 이 대목밖에 없다.
그런데 여성이 지배한다고 해서 세상이 온통 평화스러워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과거와 현재는 어릴 때부터 남성은 남성답게, 여성은 여성답게 양육돼서 그렇지 앞으로 여성이 권력을 잡고 두려울 것이 없어지면 여성도 남성처럼 거칠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게 되면 가느다란 안도의 한숨마저 거둬야 한다는 얘기인데….
윤희영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hy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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