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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3/9(화)
Re..역사의 중요성[고구려사 빼앗기와 지키기 그리고 역사의 함정]  

                              고구려사 빼앗기와 지키기 그리고 역사의 함정
                                       
                                                          홍성태 상지대 교양과 교수


1. ‘역사 빼앗기’의 배경

2002년 2월부터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연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5년에 걸쳐 추진되는 이 연구사업에 중국 정부는 200억 위안(약 3조원)의 거금을 쓸 것이라고 한다. 엄청난 크기의 연구사업이 아닐 수 없다.
‘동북’이란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3개 성을 가리키며, ‘동북공정’이란 이 지역의 고대사에 관한 집중적인 연구사업이다. 그런데 왜 이 연구사업이 문제인가?
이 연구사업은 이를테면 순수한 학술연구사업이 아니다. 이 연구사업은 순수한 학술연구사업의 탈을 쓴 ‘역사 빼앗기’ 사업이다.
따라서 이 연구사업에 대해 국내의 학계는 물론이고 많은 시민들이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러시아의 동북아 고대사 연구자들까지도 이 연구사업을 ‘신대국주의’의 발호로 비판하고 나섰다.

‘동북공정’에서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의 역사를 다루게 되는데, 특히 중요한 목표는 고구려를 ‘중국 변방의 소수정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고대사는 그 진실을 밝히기가 어렵기 때문에 흔히 ‘전쟁터’가 되곤 하는 데, 중국이 고구려사를 새로운 전쟁터로 만들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중국에서는 고구려를 포함한 동북지역이 언제나 중국의 정치적 지배 아래 있었으며, 또한 고구려의 유민들이 뒤에 중국화했기 때문에 고구려는 ‘중국 변방의 소수정권’이라고 우긴다.
사실 이런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사실은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동북지역이 오래 전부터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지역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독자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고구려의 유민들이 뒤에 중국화했다는 인구학적 주장도 사실과는 크게 다르다. 고구려인은 대부분 예맥족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들이 결국 한족(漢族)화 되었다고 보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중국은 평양 천도(서기 427년) 이전의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평양 천도 이후의 고구려도 ‘중국 변방의 소수정권’으로 만들려고 한다.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중국이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들여서 이렇듯 잘못된 ‘역사 빼앗기’를 하는 실제적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두 가지로 줄여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한·중 수교 이후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을 찾고 있다. 여기서 나아가, 최근의 ‘국적회복운동’ 논란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을 ‘조국’으로 여기게 되었다. 중국 정부로서는 우려할만한 상황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조선족 중국인의 국가 정체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뜻하고, 따라서 다민족국가인 중국의 국가적 통합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고구려사 빼앗기’는 이런 변화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고구려 때부터 만주는 ‘중국 땅’이었으며, 고구려인의 후손인 조선족도 당연히 ‘중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둘째, 좀더 장기적으로 남북통일 이후에 빚어질 것이 분명한 ‘국경획정문제’에 대한 준비이다. 우리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우리와 중국의 국경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일제가 제멋대로 청과 맺은 협약의 산물일 뿐이다.
남북통일 이후에 ‘국경획정문제’는 한국과 중국 사이의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이 논란은 당연히 고대사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고, 이 경우에 고구려사는 우리에게 아주 유리한 역사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중국 정부가 ‘고구려사 빼앗기’라는 전격전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동북공정’은 ‘역사전쟁’의 모습으로 ‘영토전쟁’을 벌이는 철저히 정치적인 사업이다.


2. ‘영토전쟁’에 앞선 ‘역사전쟁’

지금의 중국이라는 나라는 1949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이 나라의 영토는 청의 영토를 물려받은 것이다.
잘 알다시피 청은 만주족이 세운 나라였다. 만주족은 아주 싸움을 잘 해서 청은 중원을 차지한 제국들 중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제국이 되었다. ‘만주’라는 지역, 곧 ‘동북’지역이 중국의 ‘변방’이 된 것은 이렇듯 만주족이 한족의 땅을 제패해서 청을 세웠기 때문이다. 청 이전의 만주는 당연히 독자적인 역사를 가진 지역이다.
청을 세운 만주족은 자신들의 고향인 만주를 신성시했다. 이 때문에 조선과의 ‘국경획정문제’가 나타나게 되었다.
조선이라는 국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인은 옛 조선을 잊지 않았다. 만주는 옛 조선의 주무대이기도 했다. 또한 조선 때에도 많은 조선인이 만주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청과 조선 사이에서 ‘국경획정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진 것은 필연적이었다. ‘백두산 정계비’부터 ‘동북공정’까지의 주요 경과를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1712년 ‘백두산 정계비’ 건립(조선 숙종, 청 강희제). 백두산 천지는 청의 영토로 하고, 송화강 지류인 ‘토문’을 조선의 영토로 함. 이것은 두만강 이북의 동간도 지역을 조선의 영토로 인정한 것.
1718년 강희제, 레지 신부에게 의뢰해 ‘당빌 지도’ 제작. 이 지도에는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만주지방도 조선의 영토로 표시.
1883년 청, 토문을 두만강이라고 우기며 동간도 지역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에게 두만강 이남으로 이주할 것을 명령.
1885년 을유담판. 성과없이 끝남.
1887년 정해담판. 성과없이 끝남.
1909년 ‘중·일 간도협약’.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국경 획정. 그러나 을사조약으로 일본이 조선의 국권을 빼앗은 상황에서 중국과 일본이 맺은 협약으로 무효임.

1964년 ‘조·중 변계조약’. 아직까지 아무런 내용도 알려지지 않았음. 남북통일 이후에는 무효가 될 것임.
1995년 ‘동북공정’ 준비 시작.
1997년 북한, 『조선전사』 발간.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특별히 강조.
2001년 북한, 고구려 벽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 중국은 북한에 고구려 유적을 공동으로 등재하자고 제안했으나 북한은 이를 거절. 중국도 독자적으로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  

2002년 2월 중국, 동북공정 시작.
      중국, 고구려 유적정비 5개년 계획 시작.
2003년 7월 유네스코, 북한의 고구려 세계문화유산 등재 거부.
2004년 6월 중국 소주에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위원회 개최 계획.

북한과 중국 사이의 현 국경은 1909년 중국과 일본이 맺은 ‘간도협약’의 산물이다. 그러나 1712년의 백두산 정계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간도협약’의 국경은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그것은 일제 침략의 산물로서 원천적으로 무효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와 중국 사이의 ‘국경획정문제’는 이미 끝난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시작될 문제이다. ‘간도협약’의 산물인 현 국경을 마치 완전히 획정된 국경인 것처럼 우리가 배우고 있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우리의 잘못된 국경 교육부터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옛 조선에서 고구려로 이어지는 고대사를 들어서 오랜 옛날부터 만주가 ‘우리 땅’이었고, 또한 조선과 청의 국경획정에서도 ‘토문’을 국경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들어 만주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다. ‘동북공정’의 정치적 목적은 만주지역에 대한 우리의 연고권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와 중국 사이의 ‘영토전쟁’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전쟁은 ‘역사전쟁’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이 전쟁에서 중국이 승리하게 된다면, 우리가 잃는 것은 단지 만주지역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의 역사적 정체성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3. 중화주의 - 한족 패권주의

‘동북공정’을 통해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중국의 ‘고구려사 빼앗기’는 역사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하는 성찰적 계기이기도 하다.
역사란 단순히 옛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민족을 만들고 나라를 빚어낸다. 이런 점에서 모든 역사를 무조건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역사를 단순한 이데올로기나 상상의 산물로 여기는 것도 잘못이다.
민족사를 하나의 시조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혈연사로 보는 것은 결코 사실에 들어맞는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이라는 인종적 문화적 실체를 부정하는 것도 역시 사실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고구려사 빼앗기’는 어떤가?
중국은 13억명이 넘는 인구로 이루어져 있는 나라이다. 그 민족적 구성을 보면, 한족(漢族)이 93%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55개의 소수민족이 7%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이 다민족국가이기는 하지만, 그 민족적 구성은 이처럼 완전히 불균형적이다. 그런데 소수민족은 중국 영토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만일 소수민족이 독립해서 저마다 민족국가를 수립하게 된다면, 중국의 영토는 지금의 절반 크기로 줄어들고 말 것이다. 실제로 오래 전부터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소수민족들도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민족통합을 중대한 정치적 과제로 추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민족국가 중국의 민족적 구성과 영토적 구성의 불균형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 중국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것은 황하문명을 일군 한족의 문화이다. 중국인은 사실상 한족을 뜻하고, 중국문화는 사실상 한족의 문화를 뜻한다.
중국의 인구문제는 세계적으로 심각한 사회문제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사실 한족의 급증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중국의 인구문제는 한족의 인구문제이다.
중국의 민족통합은 이처럼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을 중심으로 다른 소수민족들을 포섭하는 것을 뜻한다.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들을 존중하는 민족정책을 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티벳처럼 적극적인 이주정책을 통해 인구 구성 자체를 아예 한족화하는 곳도 있다.

‘고구려사 빼앗기’도 같은 맥락에 있다. 고구려가 ‘중국 변방의 소수정권’이었으며, 그 민족은 중국화되어 사라졌다는 주장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전제로 한다.
물론 현대 중국은 고구려의 영토와 그 민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옛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옛 중국에게 고구려는 남의 나라였고, 그 민족은 결코 중국인이 아니었다. 고구려는 고구려였고, 중국은 중국이었다. 따라서 현대 중국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고구려에 대해 논할 수는 있겠지만, 고구려를 아예 ‘중국 변방의 소수정권’으로 다루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국가사에서 민족사로 시야를 옮겼을 때, 이런 문제는 더욱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중원이라는 땅과 한족이라는 민족을 전제로 한다.
현대 중국에서 중원은 전체 영토의 1/10 정도밖에 되지 않는 땅이다. 그러나 현대 중국의 정체성과 지배권은 중원의 민족인 한족이 장악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사실 한족이지 신강족이나 조선족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고구려사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주장은 고구려사를 한족사의 일부로 다룬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현대 중국은 한족의 ‘중화주의’ 위에 서 있다. 중화주의는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본래 중화주의는 다른 나라와 민족을 중국화하거나 한족화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현대의 중화주의는 주변의 모든 민족들을 중국화하고 그들의 땅을 중국의 영토로 포섭하는 것을 뜻한다.
중국이 한족의 나라에서 다민족국가로 바뀌면서 나타난 변화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 중국은 다민족국가의 꼴을 하고 있는 ‘한족 패권주의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한족 패권주의의 문제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곳은 티벳이다.
1959년에 티벳의 독립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중국은 한족의 이주를 적극적으로 장려해서 티벳의 인구 구성 자체를 한족화해 버렸다.
지금 티벳에서는 티벳인보다 한족이 더 많이 살고 있다. 이런 변화는 티벳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민족들의 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고구려사 빼앗기’는 ‘영토의 한족화’와 같은 맥락에서 펼쳐지는 ‘역사의 한족화’라고 할 수 있다. 한족이 지배하는 중국 정부는 한족 패권주의의 중국을 지키기 위해 ‘영토의 한족화’를 넘어서 ‘역사의 한족화’마저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중국화’ 정책, 좀더 정확히 말해서 ‘한족화’ 정책은 과거 일제의 식민지 정책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일제는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대사를 날조했다. 중국도 국가의 통합성을 강화하기 위해 고대사를 적극적으로 왜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의 통합성은 이런 식으로 한족 패권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약화하는 것으로 이를 수 있다. 중국 정부의 잘못된 역사정책은 잘못된 민족정책의 산물이다.


4. 역사의 함정

중국의 ‘고구려사 빼앗기’를 계기로 국내에서는 고구려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와 함께 민족주의의 기운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옛 조선과 고구려가 우리의 뿌리인 것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이므로 중국의 ‘고구려사 빼앗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새로운 역사의 함정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 함정을 없애려는 노력에는 크게 두 줄기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민족주의적 노력으로서 식민지 지배와 분단으로 말미암은 민족 이산의 고통을 해소하려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은 ‘고구려사 빼앗기’라는 황당한 도둑질이 중국의 국가사업으로 추진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리가 분단된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고구려사를 경시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고구려사 빼앗기’를 계기로 남북교류를 한층 강화하고, 조선족을 포함한 500만 해외동포에 대한 지원에 힘을 쏟으려 한다.

다른 하나는 국가주의적 노력이다. 만주는 잃어버린 우리의 옛 땅이고 언젠가는 되찾아야 할 땅이라는 주장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분명히 ‘국경획정문제’는 앞으로 중대한 쟁점이 될 터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만주를 잃어버린 우리의 옛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민족을 국가와 동일시하며 국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민족을 동원하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이다. 이러한 국가주의는 무엇보다 다른 나라와 불필요한 마찰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중국의 한족 패권주의에 맞서서 국가주의로 대응하는 것은 잘못이다. ‘고구려사 빼앗기’는 식민과 분단으로 말미암아 뒤틀린 민족사를 보듬고 다듬는 좋은 계기이다. 영토문제를 앞세운 국가주의적 대응은 이 계기를 다시금 왜곡시킬 것이다. 또한 ‘고구려사 빼앗기’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이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이와 관련해서 서울대 김호동 교수가 쓴 『황하에서 천산까지』라는 책을 꼭 읽어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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