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33
2004/3/8(월)
출처진퇴와 창생안위  

■ 출처진퇴와 창생안위

<논제>

 다음 제시문에는 삶의 방식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가지 입장이 함께 드러나고 있다. 이 두 가지 입장은 현대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부딪히는 문제이다. 이 가운데 한 가지를 골라 1600자 안팎으로 현대 사회의 맥락에서 정당화하시오

<제시문>

 진(陳)나라의 영공(靈公)이 신하의 아내와 통정을 하고 그녀의 속옷을 입고 조정에 나아가 이를 모두에게 자랑해 보이자, 신하인 설야(渫冶)가 간언을 했다가 죽임을 당했다. 1백여 년 후 이 사건에 대하여 한 제자가 공자에게 질문했다.

"설야가 바른 말을 하여 죽임을 당한 것은 옛날 주왕(紂王)의 숙부로서 그의 폭정을 비판한 비간(比干)의 죽음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를 인(仁)이라 칭하여 옳은 것인지요"
 
그러자 공자가 대답했다.
"아니지. 비간과 주왕과의 관계는 혈연이기도 하고 또 관직으로는 소사(少師)의 자리에 있었지.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버리면서까지 세찬 간언을 한 것은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주왕이 후회하기를 기다렸던 때문이야. 이는 마땅히 인(仁)이라고 해야 하지.

그러나 설야는 영공과 혈육의 관계도 아니고, 또 지위도 일개의 대부(大夫)에 불과하지 않은가? 군주가 올바르지 않고 나라가 올바르지 않으면 깨끗하게 관직에서 물러나야 하는데,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구구한 몸으로서 일국의 어지러움을 바르게 하려고 하다니, 이는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함부로 버린 게야. 인은 커녕 한 소동에 불과한 것이라네"
 
그 제자는 공자의 말을 듣고 납득하여 그 자리를 물러났으나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제자 자로(子路)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물었다.
 "인·불인은 둘째치고 어쨋든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국의 문란함을 바르게 하고자 한 것에는 지(智)·부지(不智)를 넘어선 훌륭함이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결과야 어떻든 생명을 헛되이 한 것이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대는 그러한 소의(小義) 속에 있는 훌륭함만을 볼 수 있고 그 이상의 것은 보지 못하는가?
옛 사대부는 나라에 질서가 있으면 충성을 다함으로써 이를 도왔으나 나리에 도가 없으면 물러남으로써 이를 피하였다네. 자네는 아직 이러한 출처진퇴(出處進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군.
시경(詩經)에 백성에게 부정한 생각이 횡행하면 스스로 법령을 지키기가 어렵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네. 생각건대 설야의 경우에 해당이 되는 듯하구나"
 "그러면……"
 하고 자로가 상당히 오랜 시간 생각한 끝에 말했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신의 안전을 꾀하는 것에 있습니까?
몸을 버려 의를 세우는 것에는 없습니까? 한 인간의 출처진퇴가 적합한지 부적합한지의 문제가 천하창생의 안위보다도 더 소중한 것일까요? 왜냐하면 지금의 설야가 만약 목전의 어지러운 윤리를 비난하며 지위에서 물러낫다고 하면 그의 일신을 그것으로 좋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진나라의 백성에게 그것이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될까요? 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언하여 죽는 쪽이 국민의 기품에 주는 영향으로 말하면 훨씬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일신의 보전만이 소중하다고 말하지는 않겠네. 그렇다면 비간의 죽음을 인이라고 칭하지도 않지. 단지 도(道)를 위하여 버리는 생명도 그 버릴 때와 장소가  있는 법, 그것을 지혜롭게 헤아리는 데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네. 서둘러 죽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거든"


<개요표>

서론 : 제시문의 요약
        삶의 방식의 두가지 평가로 인한 문제제기
본론 :'출처진퇴'와 '창생안위'의 의미
        현대에서 의미있는 측면은?
        왜 의미있게 평가되는가?
결론 : 앞으로의 삶에 대한 전망

<예시답안>

 제시문에서는 설야와 비슷한 경우로 인해 죽은 비간을 비교하여 삶을 평가하는 두가지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설야는 영공의 부도덕성을 비판하다 죽임을 당했고 비간은 주왕에게 실정을 비판하다 죽임을 당한 것인데, 이 두가지 경우 모두 군자의 잘못된 점은 비판하다. 죽임을 당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을 띄고 있다. 그러나 공자와 자로는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공자는 비간의 죽음만이 가치 있는 죽음이라 한 반면 자로는 두 경우의 죽음 모두를 가치 있는 죽음이라고 했다. 설야의 죽음을 놓고 상반된 평가를 내리는 것은 무엇일까?
공자와 자로는 그들이 생각하는 삶의 방식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린 본문에서 제시된 '출처진퇴'와 '창생안위'의 용어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출처진퇴'란 나아가고 물러갈 때는 때와 장소를 가려한다는 입장이고, '창생안위'란 불위에는 때와 장소를 가릴 겨를이 없다는 입장이다.
공자는 사대부가 나라에 도가 있으면 나아가 충성을 다하고 도가 없으면 물러남을 들어 출처진퇴가 중요하다고 했고, 자로는 설야가 몸을 버려 국민의 기품에 영향을 끼쳤음을 들어 천하 창생의 안위가 중요하다고 했다.
즉 공자는 '출처진퇴'의 삶의 방식으로 삼고 있는 데 비해, 자로는 '창생안위'를 삶의 방식으로 삼고있다. 그들이 가치있게 생각하고 있는 삶의 방식이 다르므로 다른 평를 내린 것이다. 오늘날 어떤 방식의 삶이 바람직한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출처진퇴'의 방식은 위급한 일에 대응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되고,'창생안위'의 방식은 불의에 대응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되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방식은 상황에 따라 판단할 문제라 하겠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는 곳곳에는 집단 이기주의가 횡행하고 외국 문화를 아무런 비판 없이 수용하기에 급급한 실정이니, 나라가 위기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가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주체성이 상실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병폐를 감안해 보면 '출처진퇴'의 방식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출처진퇴'의 의의는 신중히 생각하되 일단 때와 장소를 선택하면 분연히 일어서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사회의 병폐 속에서 '출처진퇴'의 방식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분연히 일어서야 마땅한 것이다.
오늘날은 사회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므로 한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출처진퇴'의 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현대 사회적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출처진퇴'의 방식이 필요하다. 개인은 주어진 위치에서 '출처진퇴'의 교훈을 되새기며 맡은 바 최선을 다한 실천궁행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사회는 각 개인의 다른 처지와 성향을 파악하여 개인이 실천하는 '출처진퇴'를 일정한 범주를 제시해야 한다. 일정한 범주란 효율성을 제고하고 일반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과 사회의 상호보완적인 유기적인 결합이 원활하게 돌아갈 때 사회가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름   메일
  내용 입력창 크게
                    답변/관련 쓰기 폼메일 발송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