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최종철 올림
2004/2/29(일)
거리에서 미인을 보고[정민교수님 홈피에서..]  

거리에서 미인을 보고
     
路上所見 / 姜世晃



비단 버선 사뿐 사뿐 가더니만은                          
중문을 들어서곤 아득히 사라졌네.                        
다정할 사 그래도 잔설이 있어                            
그녀의 발자욱이 담장 가에 찍혀 있네.                      
凌波羅襪去翩翩  一入重門便杳然
惟有多情殘雪在  극痕留印短墻邊 (나막신 극)    

능파凌波는 미인의 가볍고 우아한 걸음걸이/ 나말羅襪은 비단 버선/ 편편翩翩은 자득自得한 모양/ 극흔 痕은 발자욱/ 유인留印은 자욱을 남기다.


길을 가다 앞서 가는 어여쁜 아가씨의 뒷 모습에 그만 넋을 놓고 만 연모의 노래다. 마치 물결 위 잎새인양 사뿐사뿐한 그녀의 걸음걸이. 저도 모르게 그녀의 뒤를 쫓아 왔지만 무정하게 그녀는 눈길 한 번 주는 일 없이 대문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뉘집의 아가씨일까. 어떻게 생겼는지 미쳐 보지도 못했는데 굳게 닫힌 대문 앞에 무연히 갈 길도 잊은 채 그는 서 있다.


혹시 다시 나오지는 않을까. 담장 너머로나마 그 모습을 한번 더 볼 수는 없을까. 두근대는 마음으로 서성이다가, 채 녹지 않은 담장 밑 그늘의 잔설 위로 너무나 또렷히 찍혀 있는 그녀의 발자욱을 보았다. 눈 위의 발자욱, 그녀가 남기고 간 발자욱. 그러나 그녀가 밟고 간 것은 눈 아닌 그의 철렁 내려 앉은 가슴은 아니었는지.


4구의 낮은 담장이란 표현 속에도 까치 발로 돋워 들여다 보고픈 설레임이 담겨 있다. 그런데 그녀는 바깥문 만이 아니라 중문까지 닫아 걸었으니. 잔설 위에 선명하게 남겨진 무심한 사랑의 모습 앞에, 연모의 불길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다.


이 시는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詩中有畵 畵中有詩"는 말 그대로 시인의 감정은 극도로 절제되면서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영상 속에 높은 미학적 형상화를 이룩하고 있다. 능파凌波와 중문重門으로 미인의 우아한 자태와 정숙한 몸가짐을 그려 보였고, 다정多情과 유인留印이 서로 호응하여 경과 정이 교융되면서 연모하는 마음을 말 밖에 잘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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