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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빚…빚…벼랑끝 농촌 ①참담한 농가부채 현실 2003-5-15 살인적 빚독촉·연쇄도산 공포…하루하루 ‘살얼음’
합천군 대양면 정규연씨 부부는 대형하우스로 연간 1억이 넘는 소득을 얻고 있지만, 빚을 제하고 나면 인건비조차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무차별 시장개방과 농산물 가격하락, 그리고 농협을 통한 전근대적이고 비효율적인 농업금융과 소득을 보장하지 못하는 농정.
그것은 결국 감당하기 어려운 농가부채의 누적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는 다시 농민이 주인이어야 하는 농협에 의한 가혹한 채권추심과 농가 파산으로 이어지고, 심지어 수많은 농민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죽음의 행렬로 몰아가기도 한다.
늘어가는 농가부채를 견디지 못한 농민들의 투쟁으로 2001년 국회와 정부가 농가부채특별법을 제정했지만, 이는 부채 문제의 일시적 유예일 뿐,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농촌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그동안 부채대책으로 유예된 자금들이 올 7월부터 다시 상환이 도래하는 등 농가부채 문제는 또다시 농정 최대의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는 지난 4월 4일자로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인 농가부채 겸감을 위해 ‘농업인부채대책위원회’를 구성, 6월 말까지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본보는 이번 부채대책 만큼은 제대로 만들어서 참여정부의 약속대로
‘다시는 농가부채가 문제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농민들의 열망을 담아 농가부채 실태와 대책을 3회에 걸쳐 진단하고자 한다.
●부채 실태/“현재 소득으론 상환 어렵다” 49.9% 달해
농가부채는 문민정부때인 97년 호당 1301만2000원에서 2001년 2037만6000원으로 국민의 정부 기간 동안 거의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여기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충격 직후인 98년 농가부채가 무려 30.7% 증가하는 등 문민정부로부터 이어온 농정실패도 큰 역할을 했다.
농가부채의 총 규모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농림부는 현재 검토대상 농가부채 규모를 정책자금 15조1000억원, 상호금융 및 기타 12조5000억원 등 27조6000억원으로 보고 있다.
반면 농민단체들은 2000년 7월말 기준으로 농협대출금이 39조7565억원인 것을 감안 할 때 농가부채 총액은 40조~50조 규모라고 보고 있다.
농가부채에서 주목할 것은 경지규모가 클수록, 경영주가 젊은층 일수록, 정부가 권장하는 기술·자본집약적 유망작목일수록 더욱 금액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지규모별로는 2001년 현재 전국 평균이 2037만6000원인데 비해 0.5ha미만 1273만4000원, 0.5~1ha 1534만1000원, 1~1.5ha 1709만4000원, 1.5~2ha 2264만2000원, 2~3ha 2639만9000원, 3~5ha 4534만3000원, 5ha 이상 7778만3000원이다.
경영주 연령별로는 30~39세 4984만5000원, 40~49세 3924만1000원, 50~59세 2469만7000원, 60~69세 1296만5000원, 70세 이상 537만3000원이다.
영농형태별로는 논벼 1766만4000원, 과수 2814만8000원, 채소 2400만1000원, 특작 2557만5000원, 축산 2667만4000원, 전작 1583만1000원, 화훼 3955만7000원이다.
본보가 최근 농업경영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농가부채설문조사<본보 1월2일자> 결과 응답자들의 평균 부채규모는 1억1674만원으로 통계상 전국평균 보다 6배나 많았고, 이 가운데 29.9%는 평균 7610만원의 부채를 연체하고 있다.
농가부채는 이렇게 농업경영인·전업농 등 젊고 규모화됐으며 나름의 투자를 통해 농촌발전의 견인차가 될 농민들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높이고 있다.
농가부채 문제의 심각성은 그것이 대부분 농민들이 현재의 농가소득으로 갚기 어렵다는 점이고, 이를 방치하면 줄파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중장기부채대책방향’ 연구에 따르면 98년의 경우 농가소득으로 가계비도 충당 못하는 농가가 39.4%, 농가소득으로 생활비와 부채상환이 불가능한 농가가 49.9%에 달했다.
농가부채 증가와 농가의 상환능력 상실은 농협의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농신보)에서 농신보 대출을 대신 갚아주고 구상권을 갖는 대위변제액이 매년 급증하는데서도 뒷받침 된다.
농신보 대위변제액은 지난해 4533억원에서 올해와 내년 각각 5100억원, 2005년 4300억원, 2006년 7000억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강제집행과 연대보증
가장 큰 문제는 농협에 의한 강제집행이다. 농협 빚을 갚지 못할 경우 농민들은 14~18%에 달하는 살인적인 고금리의 연체이자에 이어 가혹한 채권추심과 경매·가압류 등 재산권 강제집행을 당한다.
지난 2000년의 경우 9월말까지 159개 농·축협이 채권추심회사에게 9446건의 채권추심을 의뢰해 농민조합원들을 닥달하다가 자살사례 등으로 주춤한 일이 있었다.
이같은 농협에 의한 재산권 강제집행은 참여정부가 농가부채 대책을 마련중인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가 농협중앙회에 대해 재산권 강제집행 중지와 연체이자 인하를 요구, 중앙회가 일선조합에 자제를 지도한 상황이다.
농가부채 문제를 크게 증폭시키는 중요한 문제점의 하나가 연대보증이다.
농협은 신용위주의 선진금융보다는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에다 연대보증이라는 비인간적이고 전근대적인 방법을 버리지 않고 있다.
99년 4월말 자료에 따르면 농협 대출금 27조9536억원 가운데 43.7%인 12조2174억원에 대해 연대보증을 세웠다. 많은 농민들이 상호 맞보증을 섰다가 연쇄파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잇따르는 자살행렬
이런 까닭에 2001년 농가부채특별법 시행 이후에도 자살행렬은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14일 경북 봉화군 춘양면 박모(52)씨의 죽음은 그가 하우스 수막재배와 복수박 생산의 선도농민으로 정부 선정 신한국인, 농협의 새농민상 수상자였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 컸다.
“다음 시대에는 꼭 농민이 잘사는 시대를”이라는 유서를 남긴 그는 농가부채 3억원에 시달려 오다가 동생의 보증으로 꾼 돈 4000만원마저 농협 직원이 횡령하는 바람에 살아갈 의지를 잃고 농약을 마셨다.
충남 예산에서는 지난해 11월 신양면 이모씨(48)가 2000만원짜리 연대보증을 잘못 서줬다가 예기치 못하게 누적된 6000만원의 농가부채를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
또 같은 예산군 신례원의 김모씨(46)는 1억9000만원의 빚 상환이 돌아오면서 채무 재연장을 신청하려다 보증인을 확보하지 못해 1월28일 결국 생을 포기했다.
지난해 8월 경남지역을 휩쓴 수해로 인해 다니던 공장과 700평의 벼 농사를 잃은 김해시 한림면 박모씨(47)가 그라목손을 마시고 자살한 일, 2001년초 최악의 폭설로 충남 당진의 정모씨, 홍성의 천모씨, 충북 옥천의 구모씨가 목숨을 끊은 일도 재해로 인한 농가부채 때문이다.
■르포 / 합천군 대양면 정규연·김보영 씨 부부
“부채 굴레, 언제쯤 벗을지…”
지난 12일 진주를 지나 합천읍을 향하는 33번 국도변. 검붉은 얼굴의 젊은 농부가 땀방울을 쏟으며 경운기를 몰고 있다. 대형비닐하우스 옆 쪼가리 밭에 무엇인가를 심기 위해 고랑을 타는 모양이다.
반쯤 열려진 하우스 문 사이로 늦딸기 향내가 진하게 흐른다. 이웃 하우스에서 몸빼바지를 입고 검은 장화를 신은 아낙이 바구니에 담아오는 토마토가 먹음직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멀리서 보기에 평화로워만 보이던 느낌은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여지없이 깨졌다.
정규연(38·대양면 신거리)·김보영(29) 부부는 13동의 대형하우스에 연간 1억2000만원에 달하는 토마토와 딸기를 수확하지만 자재비와 논 임대료 4000여만원과 부채이자 및 원금상환액 4000여만원, 법인하우스 분담금 1000여만원을 제하면 소득이 채 3000만원에 못 미친다.
하루평균 12시간이 넘는 노동력의 대가를 환산하며 순수익을 따져볼 여유를 포기한 지는 이미 오래 전의 일. 부부는 내년이면 몇 년간 일시적으로 연기했던 부채의 원금상환일이 도래해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다.
김씨는 8동의 개인하우스 외에 5동의 법인 하우스로 인해 더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인의 대형하우스 22동은 지난 1996년 성공하는 농사꾼이 되자며 뜻을 같이한 정씨의 지역동료 7명이 영농법인을 만들어 정책자금 2억여원을 대출 받아 땅 8000평을 임대해 지은 것.
전반적인 농산물가격 불안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이들 중 세사람이 젊은 의욕만으로 냉정한 현실의 벽을 넘기에는 무리가 컸던지 파산을 선언하고 법인을 떠났다.
떠난 이들이 짐 지우고 간 부채 분담금도 문제지만,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카드와 사채를 썼다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연체빚을 견디다 못해 가족까지 찢어진 후 폐인처럼 돼버린 친구 심모씨가 정씨는 너무도 안타깝다고 한다.
또 정씨는 지난해 태풍루사와 집중호우로 인해 토마토, 고추, 피망이 들어있던 하우스 13동이 침수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활처럼 휘어져버린 하우스 2동에 대한 복구비와 동당 20만원이 되지 않는 대파비, 위로금 200만원이 정부로부터 지원됐지만 작물 피해액에 견줄 바가 못돼 올해 초 악화된 경영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부채돌려막기’를 하느라 혼이 났다고.
대학 졸업 후 남편만 믿고 농촌에 뛰어들었다는 부인 김씨는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마냥 쩍쩍 갈라진 손바닥을 도시에 있는 친정어머니께 보이게 될 때가 제일 가슴 아프다.
농가부채의 굴레를 벗기 위해 한 평의 땅이라도 활용하려 노지고추 골을 타고 있는 이들 부부에게 언제쯤 해방의 산들바람이 불어올 지, 답답한 가슴을 뒤로 한 채 돌아섰다.
#사례1/청원군 옥산면 금계리 곽노봉씨
“정부 말만 믿었다가 낭패”
“요새 이자가 싸니까 다행이지 예전 같았으면 벌써 쓰러졌어요. 쌀값은 내려가고 착유량도 주는데 빚이 줄어들 리가 있습니까. 앞이 안보여요”
충북 청원군 옥산면 금계리에서 벼농사 2만평에 낙농 75두 규모를 하고 있는 곽노봉(53)씨는 계속되는 빚의 악순환을 이렇게 설명한다.
특히나 요즘은 원유과잉 문제로 막막하기만 하다. 정부에서 집유일원화라는 명목하에 낙농진흥회 가입을 권유해 그대로 따랐는데 지금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쿼터량이 평년에 비해 30% 가량 줄었기 때문이다. “하루 1톤정도 짜던 것을 700에서 800kg 수준으로 줄이니 소득이 줄지요.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하면 100% 망해요.”
곽씨의 부채규모는 약 1억5000만원선. 수년전부터 이 규모가 줄지 않고 매년 되풀이된다. 사료비, 인건비, 비가림 우사 건축비에, 사료배합기, 트랙터, 볏짚결속기 등 농기계구입 자금까지 합하면 매년 부채는 제자리를 맴돈다.
원유과잉 사태가 계속된다면 곽씨의 부채상태는 더 심각한 상황에 놓일 것이 뻔하다.
#사례2/청원군 내수읍 장양3구 고병섭씨
“사형선고 기다리는 심정”
청원군 내수읍 장양3구에서 육우를 하고 있는 고병섭(36)씨는 당장 파산을 선고해야 할만큼 위태로운 상태. 총 부채가 3억원 정도 된다.
2001년 이후 계속되는 육우불황으로 매일매일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심정이다. “이자만 1년에 1600만원정도 돼요. 지금 육우 한 마리당 순수하게 손해가 30만원이에요. 그래도 무슨 수가 있어야지요.”
고씨의 부채원인은 간단하다.
건초값이나 사료값은 올라가고 소값은 계속해서 내려가니 부채를 안을 수밖에 없다. 그가 사는 마을에서는 열다섯 농가가 육우를 하는데 이중 이미 다섯 농가가 부채로 폐농을 한 상태라고 한다.
고씨는 올초에 200만원주고 한우를 한마리 샀는데 지금은 최소 380만원은 간다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빚을 내서라도 좀 더 사둘걸 그랬어요. 하기야 송아지값이 비싸서 엄두도 못냈지만요.” 그는 벌써 수년째 정책자금도 농협자금도 못쓰고 있다.
신용이 바닥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한우값 좋다해서 작목을 전환하려 한들 입식자금은 또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사례3/고흥군 금산면 신평리 김영일씨
“맞보증 떠안아 설상가상”
10년전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김영일(40·고흥군 금산면 신평리)씨는 현재 수도작 1만평, 120두 규모의 흑염소농장 1만평, 밭 5000평의 영농규모를 갖고 있는데 반해 부채는 1억8000만원이다.
부채 중 8000만원은 필요 농기계 구입비가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8000만원은 각종 정책자금 사용으로 인해 진 부채다.
농기계가격은 올라가고 사용연한은 점점 짧아지다보니 사용중인 농기계 값을 완전히 상환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농기계를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김 씨는 50두 규모의 한우를 사육했는데 결국은 2000만원의 부채만을 안고 작목변경을 해야만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최근에는 설상가상으로 맞보증을 섰는데 맞보증을 선 농업인이 몰래 지역을 떠나버려 이자를 포함해 1200만원을 변제했다.
김 씨는 “농업분야의 새로운 사업으로 어려움을 타개하려 노력하고 있다”며 “농업자금은 장기간에 걸쳐 갚아 나갈 수 있도록 상환 기간을 늘려 줄 것”을 희망했다.
#사례4/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정병석씨
“빚 독촉장만 수북…죽을맛”
김해에서 1800평의 장미농사를 짓고 있는 정병석(47·대동면 예안리)씨는 IMF 이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화훼농가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씨는 고교졸업 직후부터 시작한 배추와 토마토 농사를 통해 모은 돈과 정부보조 50%, 융자 30%로 1996년 대형하우스를 짓고 화훼농사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IMF 이후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다 3억이나 되는 부채를 안게됐다.
연체 부담을 이기지 못해 최근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논 4000평을 처분해 개인 부채를 4000만원대로 낮췄으나, 마을친구 진모씨에게 서준 보증이 잘못돼 모든 것을 팔아도 빚쟁이 신세를 벗을 수 없게 됐다.
얼마 전 정씨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날라 오는 체납 독촉 우편물로 인해 분통이 터져 도끼로 우체통을 찍어버렸다고. 부채독촉을 견디다 못해 도주하거나 파산한 젊은 농가와, 보증으로 인한 채무의무로 마지못해 하우스를 지키고 있는 농가들이 주위에 부지기수라며 정씨는 화훼농가의 절박한 처지를 호소했다.
●현장에서 온 편지
-휴일 없는 20년 노동의 대가가 결국 신용불량자라니…
보증을 섰다. 친구놈 농사 잘되라고 97년 5억의 보증을 9명이 서게됐다.
보증인들이 5억여원을 변제한 3명은 면제가 됐고, 현금이 없는 나는 재산 1억원을 지난 4월 경매처분했다. 경매가 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변제하려 노력했고 채무자 역시 괴로운 심정이었다.
문제는 나를 위해 보증을 서 준 사람들이었다. 친구들을 위해 보증을 서 준 것이 강제 경매처분 당한다면 나에게 보증을 서 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법원경매지에 내 이름으로 물건이 나열되고 세상 밖으로 소문난 무능력함이 나를 더욱 괴롭혔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계속되는 폭음에 수전증이 생기고 기억력이 감퇴됐다. 40대 중반까지 걸어온 인생의 행로가 억울했다. 휴일 없는 20년 노동의 대가는 너무도 혹독했다. 거처해야 할 집은 어디로 정해야 하는가? 잃어버린 45년의 삶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신용불량 등록에, 연체에, 가압류에, 경매까지…. 처절한 비운의 인생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태산을 짊어질 듯한 기세로 농업에 투신한 결과가 이것인가? 농산물 가격 폭락과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는 어떻게 할꼬. 죽어야겠다. 눈물을 머금고 창고에 있는 농약병을 곁에 두고 지난날을 회상해 봤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을 수없이 되새기면서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빨리온다’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쉼 없이 달려온 내 인생이 너무나 초라하고 불쌍히 여겨졌다. 부모님과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를 생각해 보증을 서 준 지인들을 다시금 생각해 봤다. 이대론 죽을 수가 없었다. 농약병 한 개에 내 인생을 버린다는 것이 너무도 억울했다. 바보 같았다.
그래 살자. 살아야겠다.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다시 시작해 보자. 10년 후 “나의 선택이 옳았는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는지” 물었을 때 “그래, 최선을 다했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되자고, 나는 무너지는 나를 되잡았다. <최민호/45·거제시 신현읍·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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