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빚 때문에 은행을 터는 사람들, 신용카드빚 독촉에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녀의 신용카드빚을 갚는데 퇴직금을 모두 쏟아 부은 아버지들... 쉴새없이 신용카드관련 범죄와 자살들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과 정치가들은 '경제지식 없는 무식한 사람들의 무절제한 소비성향' 때문에 생긴 비극이라고 일축하고 있고, 이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것은 소위 '도덕적 해이'를 불러와서 사회의 금융질서를 문란케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경제지식함양을 위해서 부유한 자들의 자녀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경제교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여하튼, '도덕적 해이'와 '경제교육' 등을 운운하는 경제학자들과 정치가들의 주장에는, "경제지식 없는 무식한 사람들이 카드문제를 발생시켰으니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반성하고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있다.
그렇다면, 신용카드 문제를 개개인의 무지와 과소비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그리고 그들에게 일방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2003년 10월 경 350만명이 신용불량자였고 카드연체율은 10.4%를 기록하였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경제활동인구(15세 이상의 일할 의사가 있는 인구집단)의 10명 중 1명이 신용불량자라는 말이다. 그러면 10명 중 1명은 '무식하고 무절제한 소비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천만에... 이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켜서는 안된다. 사실 신용카드 사용자가 증가된 것은 오히려 국가의 정책 때문이었다. 99년 현금서비스이용한도(당시 70만원) 폐지, 신용카드 이용액의 소득공제 도입, 2001년 신용카드 의무사용 등으로 국가는 신용카드활성화를 장려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문제를 좀더 크게 살펴보기 위해서 가계신용(가계대출과 물품신용구매의 총액) 전체를 살펴보자. 98년부터 가계신용은 지속적으로 증가되어, 184조원(98년)에서 2003년 10월 434조원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전체 가정이 평균적으로 3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가계부채가 늘어난 것 역시 국가의 경제정책의 결과이다.
1999년 IMF와 세계은행, 맥킨지 등은 한국의 가계신용이 선진국수준(미국은 GDP의 70%)에 미치지 못하므로 가계에 대하여 더 많은 카드대출과 은행대출을 해주라고 권고하였으며, 관변 경제학자들과 연구소에서도 이구동성으로 가계부채를 증가시켜 '소비견인형 경제성장'으로 한국경제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계부채를 증가시켜 경기를 부양하려는 국가정책은 곧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미 선진자본주의의 경험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미국을 비롯한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면서 최근에 더욱 심각해진 문제가 바로 민중들의 가계부채이다.
장기적인 불황 속에서 국가가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카드남발, 가계대출장려 등의 신용팽창정책이다.
그러나 세계전체의 장기침체국면 속에서, 특히 99년 이후의 순환적 경기하강국면 속에서 경기부양을 위한 신용팽창정책은 이른바 서민경제를 심각하게 뒤흔들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 카드연체자의 절반 이상이 500만원에서 2000만원 사이의 빚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른바 서민경제에서 발생한 빚의 규모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결과 민중들은 노동시장유연화,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증가,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인한 실직과 임금소득 저하 등으로 고통을 받았으며, 그 결과 96년~2000년 동안 전체 도시빈민들 등의 하위 10%는 -20%, 그 다음의 하위 10%는 -12%, 그 다음의 10%는 -7%, 그 다음의 10%는 -3%의 실질소득 감소가 있었다.
소득의 감소로 인한 빈곤이 카드사용을 부추겼고, 채무불이행의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무식하면서도 절약하지 못한' 민중들에게 카드부실문제를 추궁해서 될 것이 아니라, 국가의 일시적인 경기부양책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져온 빈곤과 소득불평등에 1차적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정책으로부터 발생한 빈곤은 아주 심각한 것이다. 경제정책의 변화는 계급구성과 생활수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도입한 아르헨티나에서는 75년 인구 2200만명의 1/10이었던 빈곤층이 2000년 3700만명의 2/3로 증가되었고, 새로 빈곤층으로 진입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전의 중산층에서 몰락한 계급들이었다고 한다.
다른 나라의 상황은 한국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지속되는 한, 빈곤문제의 심화와 카드빚과 가계빚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 국가는 철저하게 자본가편에, 특히 금융자본가의 편에 선다.
여기서 국가의 계급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신용카드빚과 연체는 카드사의 부실로 이어질 것이다. 최근 문제가 된 것은 LG카드의 유동성 위기였다.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카드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었으며, 그 만큼 높은 이자율로 높은 수익을 얻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연체율의 급등 등으로 부실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그 동안 단물을 다 빨아먹은 LG일가에서는 이제 금융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였으며, 카드채를 구입한 주채권은행인 국민, 신한, 조흥은행 역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러자 3년전 공적자금만 잔뜩 투입하여 해외매각된 '현대투신'처럼 이번에도 국가가 금융자본의 부실을 책임지고 나섰다. 즉 산업은행이 LG카드의 부실채권을 구입하고 나선 것이다.
사적자본인 금융자본의 부실을 국가가 막아주고 그 비용을 사회 전체, 특히 민중들에게 전가시키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 비용은 민중들의 세금으로 메꿔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99년 이후의 구조조정과정에서 독점재벌과 금융자본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한 공적자금이 160조원이 넘고 이것의 상당부분은 회수되지 않아 민중들에게 전가되는 것과 동일한 논리이다.
카드빚을 진 '무식한' 민중들에게는 가혹하기 그지없고 금융자본가에게는 관대하기 그지없다.
'무식한' 민중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면 다음에도 또 그럴 것(이른바 도덕적 해이)이고, 금융자본가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면 지금 당장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질 것이라 안 된다!!
이 얼마나 이중적인 잣대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신용카드, 가계부채 등과 관련된 또다른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신용이라는 것은 미래의 소득으로 현재의 구매력을 보장하는 것이다.
곧 현재 소비의 대가로 미래의 소득을 금융자본가에게 지속적으로 예속시키는 방식인 셈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정책과 결부된 카드빚, 가계부채는 결국 미래 잉여가치를 수탈하고 노동자 민중을 자본의 지배력 아래 '훈육'시키는 매개고리가 된다.
따라서 신용카드문제에 대한 대응은 파편적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 실천의 문제, 즉 계급적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