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doo 2003/12/29(월) | |
1930년 철원 포함 임진강 유역 상업현황 ![]() 본 표를 올린 취지는 과거 임진강 유역의 가장 번창했던 우리지역의 역사를 통일과 함께 다시 한번 살려보자는 의미입니다. 경원선 개통 이후 1930년 당시 철원은 경원선 여파로 임진강 유역 중 가장 많은 3만여명의 외지 이주민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북의 평강도 1만5천여 이주민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1930년 당시 임진강 유역의 인구를 보면 전체 56만여 인구중 철원면은 1만5458명으로 최다, 평강의 고삽면은 1만4406명, 평강면과 동송면은 각각 1만여명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당시 철원면의 인구밀도는 336.5명/㎢로 타 지역과 큰 차이를 보였다고 합니다. 추후 815광복직전에는 철원읍의 인구가 3만186명으로 늘게되고 평강읍의 인구는 2만347명 평강 고삽면이 1만8411명, 현내면이 1만6219명, 김화읍과 철원 어운면 동송면이 각각 1만2천여명에 이르러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일제강점기의 임진강 유역의 읍내장 거래액을 보면 철원읍장이 1,332,870圓에 이르러 차위인 평강의 621,300圓을 두 배 이상 뛰어넘는 액수였다고 합니다. 당시 다른 장 현황을 보면 문산포(554,250), 장단(510,072), 전곡(467,527), 고랑포(425,200), 이천 (374,120), 구화(337,906), 김화(288,848), 신읍(270,600), 두일(228,000), 송정(216,050), 송우장 (141,692圓) ... 특이사항은 1789년 조선말 기록에는 임진강 전체유역 중 갈말면의 인구가 4천170명으로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결국 철원의 미래는 통일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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