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최종철
2003/12/18(목)
철원 김화발전 방향(두루님의 글)  


한반도 분단 그리고 철원분단 김화분단 50년을 넘어보내는 올해 우리지역에 희망의 싹이 트고 있음에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철원 김화 평강 지역은 과거 1천100년전 태봉국의 중심으로 또한 근대에 와서 한반도의 X축을 관통하는 철도, 도로의 중심지로 인구 30만여명이 몰려들었던 번영의 고장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번영의 기간은 너무 짧았습니다.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그 번영의 흔적은 모두 폐허가 되고 남아있는 것은 지역 원로님들의 고증밖에는 없습니다.

분단과 전쟁 후 김화지역은 우리정부의 북진으로 38선 이북이었던 김화군 지역의 김화읍의 대부분과 주요부를 수복하게 됩니다.
전쟁의 폐허를 수습할 시기인 1954년 정부 내무부에서는 김화군 지역을 인근 철원군에 편입할 것을 예고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당시 12만 김화군민 중 남하한 4만 군민의 이름으로 국회 내무위원회에 진정서를 보내는 등 주민들의 김화군 존속 의지가 높은 것과 당시 정부5개년 계획에 서울-철원-김화간 철도 복원사업이 포함되어 있는 것 등을 들어 결국 김화군은 독립 군지역으로써 존속되게 됩니다.

그 뒤 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상대적으로 지역주민 보다는 중앙집권적 정권유지 관리에 목적을 두었던 군정은 김화군 전역을 철원군에 편입하고 철원군 신서면(인목면)을 경기 연천군에 편입합니다.

이로써 철원군과 김화군을 합친 현재의 철원군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만일 독립 철원군 김화군 체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었었다면 지금의 경원선, 금강산선 복원하라는 주민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철원군과 김화군의 중심이 현재의 갈말읍이 된 것이며 각각 지역주민들간의 해결할 수 없는 한탄강 깊이와도 같은 골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일부에선 김화군 역사찾기 운동이 철원군의 분열만 조장할 것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현재의 우리나라는 중앙집권 지향이 아닌 지방분권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인구 3만 1읍 1면의 충북 증평군을 신설한 충북도를 보아도 그렇고 역시 인구 3만의 충남 계룡시를 신설한 경우를 봐도 지방분권의 대세를 새삼 실감케 합니다.

지방분권은 다수 지역주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원만히 진행될 수 있습니다.
즉 주민이 왕인 것입니다. 철원지역민과 김화지역민이 원하는 그 어떤 길이 있다면 의회와 행정은 정치성 개입 없이 그 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이 김화군의 복원과 철원군의 회복일지라도 강원도와 군의회, 군행정은 지체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지방자치 민선군수 10년이 남긴 현재 철원의 자화상을 보면 그 갈 길은 보이리라 믿습니다
 
 두루 운영자(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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