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33 2003/11/13(목) | |
한탄강엔 이 시대의 모든 것이 녹아 흐른다(한탄강네트워크) ■ 한탄강엔 이 시대의 모든 것이 녹아 흐른다. 1) 강의 우주론적 이해 강은 그 자체로 network이다.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볼 때 강은 동맥이다. 지구의 모든 강물은 바다를 매개로 이어져 있다. 그러기에 이 지구의 모든 물방울은 철저히 이어져 있다. 지표면을 흐르지 않는 물일지라도 바다로 涌泉하여 결국 하나가 된다. 드넓은 바다에서 수증기는 비가 되어 육지에 내리고 땅을 적시고 다시 바다로 간다. 끝없이 반복해온 순환이다 . 이 순환의 한 가운데 인간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사람이 이 지구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로 강은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명이라는 作爲의 시작이었고 끝이다. 인간의 문명을 구분할 때 돌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따라서 시대적 구분을 한다. 처음엔 그냥 주워서 썼고 그 다음엔 깨트려서, 급기야는 갈아서 썼다. 이 단순한 변화에 수 십 만, 수 백 만 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인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루기 좋고 마음대로 원하는 모양을 내고 싶었다. 이제 돌 속에 있는 청동, 철, 온갖 쇠붙이를 뽑아 썼다. 돌을 깨뜨리고 갈아서 쓰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문명을 건설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돌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정보를 보관 전달하는 chip이 되었다. 장석류의 돌을 원료로 한 반도체가 그것이다. 돌을 보고도 그것을 사용할 줄 모르던 때부터 반도체 정보화시대인 지금까지 인간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변함 없이 강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더 강가로, 강가로 이동하여 살고 있다. 세계적인 metropolitan이 모두 큰 강의 하구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처음에는 물과 물고기를 얻고 강가에 널려진 돌멩이 몇 개만 있으면 되었지만 이젠 그 모든 것이 필요치 않고 오로지 강물만이 필요하다. 농업용수, 공업용수, 발전용수! 용수, 용수, 용수..... 반대로 그 썼던 물을 버리기 위한 하수구로서의 강이 필요할 뿐이다. 문명은 강에서 시작해서 강에서 끝난다. 그러나 강이 처음의 그 강이 아니다. 심각한 위기에 있다. 2) 한탄강의 생성과 그 역사 고고 인류학계에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의 발견을 보고함으로써 인류학에서마저 백인우월주의를 은연중 주장하던 서구의 학계를 일거에 뒤집은 쾌거가 바로 한탄강의 한 지점에서였다면 새삼 놀랄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바로 전곡리 구석기유적지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미군 병사 그렉 보웬이 우연히 한탄강을 산책하던 중 주먹도끼를 발견한다. 우리의 문명사를 27만 년 전으로 끌어올리는 '역사적 우연'이었다. 우리의 국사 책 첫 장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건 1호'가 되었다. 이렇게 태고의 이야기를 엮어 한탄강은 흐르기 시작했다. 3,000만 년 전 평강의 오리산에서 이상한 화산 폭발이 있었다. 흔히 화산 폭발을 연상할 때 뾰족한 산봉우리에서 불기둥이 솟고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고 뒤이어 용암이 흐르는 모양을 그릴 수 있다. 백두산, 한라산, 후지산, 폼페이의 베수비우스..... 그러나 오리산의 화산은 특이했다. 화려한 불기둥도 번거로운 화산재도 없이 그저 꾸역꾸역 뜨거운 용암을 아래로 흘려 보냈다. 평강대지를 만들고 철원평야를 만들고 연천으로 내려오다가 파주의 임진강에 이르러 적벽을 만들어 놓고는 멈추었다. 6-11차례에 걸쳐 켜켜이 다른 현무암 층을 만들었다. 뜨거운 용암이 식어 철원· 평강 용암대지를 빚어놓았고 그 사이로 빗물은 어김없이 흐르게 되었고 4차례에 걸쳐 빙하기가 찾아왔을 때 빙하는 결정적인 한탄강의 단초를 열어놓았다. 철원평야의 한 가운데를 흐르는 한탄강은 고생대 노년기 지형의 경동지형을 흐르는 우리나라의 다른 강들과 전혀 다른 경관을 보여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작지만 남과 북에서 나누어 흐르는 한탄강의 역사는 생성의 연원보다도 더 뜨거운 인간의 드라마를 아직도 한탄강의 힘찬 여울소리에 실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27만 년 전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쓰던 이래로 한반도 역사적 전환점의 대목에서 늘 한탄강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마치 소리 없이 흐르던 저 용암처럼 말이다. 아직도 그 여울에 귀 기울여 보면 민족상잔의 총소리, 대포소리, 날카로운 비명소리, 민중들의 한이 맺힌 절규가 들리고 있다. 그것도 생생히...... 그 대사건을 똑똑히 본 사람들이 아직도 그 강 언저리에 살고 있다. 낙동강전투가 어찌 한탄강의 그 수많았던 전투와 비교할 수 있으랴? 인류역사상 한탄강은 가장 많은 사람의 피로 얼룩졌던 강일 것이다. 세계 전쟁사에 유례 없는 살상이 이 한탄강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아슐리안 주먹도끼의 후예들답게 너무나도 극적인 사건들을 만들며 살아왔다. 삼국시대의 최대의 각축지가 바로 한탄강이었고 궁예와 왕건의 운명도 이 강에서 갈렸고 병자, 임진의 최대 격전지였던 곳! 한탄강은 신생대 제3, 4기의 활동적인 지층의 강렬한 기운 탓인지 아직도 분단의 깊은 골짜기 한가운데에 놓여 긴장과 갈등으로 흐르고 있다. 한탄강의 역사는 이렇게 우리 역사의 가장 역동적인 부분만을 차지하여 흘러왔다. 8대 강이 조선의 大動脈이라면 한탄강은 작지만 조선의 심장을 감싸고 있는 冠狀動脈이었다. 심한 경련과 압박감, 숨막히는 역사 속에 한탄강은 관상동맥의 역할을 충실히 해 왔다. 3) 강을 대해온 우리의 발자취(한탄강에서 본 강과 인간) 6-70년대 경제 개발이 모든 삶의 기준이 되었을 때 사회과부도에 나와 있는 환상적인 다목적 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푸른 산과 강, 그 사이의 커다란 Dam, 그리고 산 너머로 아스라이 사라지는 송전탑, 댐 아래로 펼쳐지는 바둑판 같은 드넓은 평야, 흰 연기를 힘차게 뿜으며 돌아가는 공장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이런 장면들을 우리는 개발의 청사진으로 가슴 뿌듯하게 보아왔다. 그 개발의 한 중심에 댐이 존재하고 있었고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리와 관개는 治世의 기본이었고 토목기술의 발전에 맞추어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 왔다. 서양의 Dam은 석조 댐이 주종이었고 동양, 특히 우리나라의 Dam은 흙 댐이었다. 우리나라의 모든 전통적 저수지가 바로 이 흙으로 제방을 쌓았다. 현대적 의미의 콘크리트 Dam은 1930년대 후버댐이 그 신기원을 열었고 우리나라에는 수풍댐이 그 첫 발이 된다. 일제와 6·25의 폐허 위에 경제 개발은 어느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강력한 리더쉽의 근본이었다. 관개용, 생·공용수, 발전용 댐과 다목적 댐이 줄줄이 건설된다. 65년 춘천댐을 시작으로 73년 소양댐과 팔당댐, 76년 안동댐, 80년 대청댐, 85년 충주댐, 87년 낙동강 하구둑. 그 후 금강 하구둑까지 우리나라 모든 강에 빼곡이 들어섰다. 그 덕분에 수도권에는 2천 만 명이 한강 물을 먹고 살 수 있도록 되었다. 개발 드라이브의 경제는 80년을 고비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는 환경보존이라는 엄청난 화두를 만나게 된다. 큰 강의 본류에 댐을 막아오던 수자원공사는 이제 지천이나 지방하천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이미 큰 강에는 댐이 들어설 곳이 없이 때문이다. 이젠 댐 건설의 명분도 다양하다. 홍수예방과 수량조절, 새만금이나 시화호에서처럼 간척지 확보나 농업용수 등 온갖 명분으로 Dam은 건설되어지거나 계획되고 있다. 현재도 30여 곳이 계획 중이고 그중 12 곳이 우선 계획중이라고 수자원공사는 발표하고 있다. 90년 9월 9일∼11일 사이에 영월 단양 지방에는 평균 369mm의 폭우가 내렸다. 이 우연한 기회를 수자원공사는 놓칠 수 없었다. 이 때 나온 계획이 그 이름도 유명한 동강댐이었다. 동강댐의 역사적 가치는 개발과 보존이 처음으로 전선을 형성해 일단 보존론의 승리로 일단락된 최초의 사건이라는데 있다. 그 이후 우리의 Dam 건설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고 治水정책에 일대 전환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가뭄으로 건교부와 수자원공사는 대대적인 댐 건설을 외치고 있으나 이는 철 지난 장타령에 불과하다. 오히려 조직적 반발만 불러올 것이며 수자원의 효과적 관리를 위해 수자원공사와 농업기반공사 등의 개혁의 계기가 될 것이다. 90년 들어 세계은행의 댐 건설 차관도 전면 중단되었고 댐의 경제적 가치가 급격히 하락된 시점에서(엄청난 예산을 비효율적인 인프라에 투자할 것인가? 라는 거시 경제적 차원에서) 댐 중심의 수자원 정책은 전환 될 수밖에 없는 필연을 안고 있다. 4) 오지(奧地)는 문명의 근원이다 - 정신의 고향, 오지는 살아야 한다 - 강물은 이름 없는 골짜기에서 시작하여 시냇물이 되고, 지천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와 만나 포구가 된다. 포구는 물산(物産)과 정보가 풍부한 곳이다. 그 시대의 문화가 꽃피는 곳이다. 그러나 그곳은 강물이 모이는 것같이 물산이 모일 뿐 생명력 있는 창조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하구에서 이루어지는 창조라고 해야 그것은 포구 수면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정도에 불과하다. 그 지역의 정신적 뿌리는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시냇물이 시작되는 곳에 가 보면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그 뿌리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창조된다. 시대를 달리해도 그 지역의 생명은 거기에 있다. 이는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저 이스라엘의 척박한 광야의 영혼은 로마 제국의 공허한 정신을 채웠으며 티벳과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양자강과 인더스 문명은 시작되었다. 우리가 오지라고 일컫는 곳이 강의 근원이듯이 인류 사상사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큰 강을 가로막을 곳이 없게 되자 이제 댐은 상류로 상류로 거슬러 올라오고 그 오지를 물에 넣기 위해 각 지천에도 계획되고 있다. 동강은 정선아라리를 물 속에 넣으려 했다. 아리랑의 그 기막힌 한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쉼 없는 생명의 근원 아닌가? 낙동강의 상류인 태백산 골짜기 골짜기에 경상도가 살아있고, 그 산 너머 골짜기에는 영산강으로 가는 전라도의 혼이 있다. 이제 더 이상 댐이 필요치 않음은 그 오지를 수장시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탄강엔 수 천년에 걸쳐온 우리 민족의 격랑의 역사가 숨쉬고 있다. 아니 수 십 만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중나선형의 코드가 한탄강 양안에 있다. 지금도 분단의 그 깊은 사색들은 용해하여 흐르고 있다. 그 한탄강에 장애물을 설치한다는 것은 관상동맥 경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경제 개발과 대규모 토목으로 이루어지는 국가 경영 system은 이제 그 한계에 도달했다.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는 것에 비해 경제적 가치는 보잘 것 없다. 새만금, 시화호 등 대형 방조 댐에서 보여지고 보령댐, 밀양댐 등 최근에 세워지는 댐들도 담수가 되기도 전에 오염으로 인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중국 공산당도 그들의 정체성과 경제 개발 사이의 딜레마를 탈출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중화사상의 뿌리인 티벳의 탄압과 과시욕에 불타는 三陜(샨샤) 댐을 건설하고 있다. 이제 한탄강은 새로운 한국의 사상이 만들어 질만한 우여곡절의 오지 아닌 오지이다. 어쩌면 통일 조국의 대 강령이 여기서 나올지 모른다. 마치 고려가 그랬듯이. 한탄강은 늘 그런 오지인 것이다. 5) 댐은 모든 network를 단절시킨다. 동강 댐 건설계획이 발표되자 수몰지역 주민들은 둘로 쪼개졌다. 나무를 심고 가건물을 짓고 한푼이라도 보상을 더 받으려고 애쓰는 사람들-물론 이들도 겉으로는 반대한다-과 댐이 건설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들어가며 치열하게도 강을 지키려는 사람들로 나누어졌다. 그런 현상이 한탄강에서는 더 극명하고 또 우울하게 나타난다. 99년 홍수 이후 한탄강댐 건설 계획이 간간이 신문에 오르내리고, 지표 조사를 위해 용역회사 조사원들이 나타난 후 급격히 주민들은 반으로 나뉘었다. 댐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변은 " 나라에서 하는 일인데 어떻게 막겠느냐?"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그 내면의 이유들은 단 한가지 '보상'이다. 농촌경제가 피폐해지는 과정에서 늘어난 것은 농가 빚이다. 그 중에서 마을에서 여론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더 빚이 많다. 그 이유는 모든 정책 자금은 그들이 우선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했고 이는 늘 실패로 돌아갔으며, 그 적극성으로 인해 더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이제 그들에게 있어 댐 건설이라는 운명적 사건은 그동안 뒹굴었던 논과 밭 고향을 버리는 대신, 빚 없이 맘이라도 편히 살고 싶은 너무나도 인간적 바램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그들이 고향과 환경, 나아가 오지가 가지는 깊은 뜻을 알기에는 너무나 현실은 저 멀리 가 있다. 이 대목이 어려움이다. 언제나 개발론자들의 선전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가뭄과 홍수예방은 곧 댐이다. 바로 교과서의 위력이다. 마치 서정주가 「국화 옆에서」 하나로 가장 유명한 시인이 될 수 있듯이 말이다. 댐 건설 계획의 발표만으로도 이미 사람들 사이에는 넘지 못할 댐이 가슴속에 쌓이고 말았다. 서로 솔직히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다. 찬성은 찬성끼리, 반대는 반대끼리 또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어정쩡한 슬픔까지 댐은 모든 network를 철저히 파괴해 나간다. 댐 건설은 어쩌면 이런 단절과 파괴 뒤에 그 사실을 확인 해주는 절차에 불과한 지 모른다. 논밭을 버리고 고향을 버리고 이제는 맘 편히 살 것 같지만 결국 그들이 돌아올 곳은 물 속에 잠긴 고향을 먼발치에서 만이라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우리는 전국의 수몰민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물질만능과 부도덕한 리더쉽으로 수 십 년을 살아온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아도 단절과 메마른 인정으로 인해 물질적 풍요와는 달리 질 낮은 삶을 살게되었다. 그래도 오지에서 공동체의 원형을 찾아 볼 수 있었지만 마을이 한 순간에 깨어져 버린다. 여기에 댐의 무서움이 있는 것이다. 수자원공사와 건교부의 지속적인 할 일을 위해, 몇 백 년 아니 몇 십 년 만에 찾아온 홍수를 위해 투자해야할 우리들의 땀과 단절의 고통은 너무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다. 우리는 단절의 Dam을 넘어 생명의 이음으로 가야한다. '소리 없는 강!'은 공동체의 단절을 의미한다. 강이라는 역동적 생명의 네트워크를 단절시키고 아무리 정보통신을 발전시킨다해도 우리들 사이의 단절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6) 治水는 治國이다. 禹王의 治水는 자연 지형을 이용해 큰 호수를 만들어 홍수에는 물이 에돌아가고 가뭄에는 호수로부터 물길을 내어 관개를 했다. 자연 지형을 이용한 治水야말로 치수의 理想이다. 팔당댐의 건설은 수도권에 2천 만이 모여 살 수 있게 한 원인이었다. 난개발의 원인은 엄밀히 팔당댐의 물을 얼마든지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댐 하나로 아주 기형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4大 강의 대형댐에서 공급되는 물은 생용수가 아니다. 허드렛물이나 공업용수로 쓰인다. 생용식수는 또 다른 방법으로 구입한다. 결국 댐과 농업용수는 댐 하류 지역 일부만 제외하고는 무관하다. 한탄강도 본류의 물은 댐이 있으나 없으나 양수 시설로 퍼 올려야 한다. 이번 가뭄에 청평댐이나 화천댐 상류의 가뭄에 한강 물은 별 도움이 되지 못했음을 알아야한다. 우리의 治水 정책은 댐으로 인해 심각하게 뒤틀려 있다. 아직도 댐을 유일한 治水라고 생각하는 정부 관리들과 언론 그리고 교과서 수준을 넘지 못하는 국민 의식이 있는 한 치수 정책은 더 깊은 왜곡과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의 원인이 될 것이다. 治水 정책의 대전환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필요로 하는 내일의 의미 있는 첫 시작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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