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태봉이
2007/2/12(월)
최성각 이 사람에게 관심을(2)  
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나 동질감이 사라지게 된 근본적 이유는 근대화에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가 근대화되면서 서구의 천민자본주의 논리와 근대 민족주의 개념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했고 정신보다 물질이 강조되고 자연과의 공생보다 이익을 위한 개발이 그 자리를 차지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낡은 사유들 즉 공동체, 자연과의 공생 등은 철저히 근대적 제도화 교육 속에서 철저한 ‘타자’가 된 것이 아닐까요?
최> 그건 뭐, 잘 알고 있구만. 왜 물어봐?
균> ......



지> 일부 환경운동 단체들이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비용을 보조하고 있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 풀꽃세상은 기업이나 정부 지원금 없이, 회원만의 힘(회비와 수익사업)으로 자립에 이르고자 애쓰고 있지. 월 500만원 가량의 이월금도 남기고 있고, 일꾼들의 대우는 우리나라 환경단체 중에서 가장 좋은 편이야. 기업이나 여느 이익집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열악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아태재단보다 재정이 튼튼하고, 외부 자본의 도움이 없이도 굴러가니까 비록 가난하지만 누구보다 당당하고 의연할 수 있겠지. 자본(기업이나 정부)의 힘에 예속된 NGO가 어떻게 기업이나 정부를 비판하겠어. 우린 다르지. 우리 힘의 원천은 회원에서 비롯되니까, 우리는 비록 작은 단체일지는 모르지만 누구도 비판할 수 있지.

풀꽃세상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녹색평론'에 소개 된 네팔 여성 ‘찬드라 꾸마리 구릉’ 사건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이 문제를 확대해석하고 그 여인에게 사죄 해야한다며 모금운동을 전개하는 과정 중심에 선 사람이 환경운동가 최성각이 있었다.

지> 풀꽃세상이 풀꽃상으로도 많이 알려졌지만 또 찬드라 구릉 문제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최> 처음엔 이 믿어지지 않는 일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는 것에 상당히 놀랐어. 멀쩡했던 사람이 정신병자로 오인되어서는 자그마치 6년 4개월 동안이나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었다는 게 말이 되기나 해? 자그마치 6년 4개월. 찬드라는 한국에 돈을 벌러 온 외국인노동자였지, 걸리지도 않은 정신병을 고치려 온 정신병자가 아니었잖아. 흔히 말하는 불법체류자도 아니었고. 단지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노동자라는 이유 때문이었어.

균> 감금 된 거였네요. ‘광기의 역사’에서 나오는 한 대목 같이.
최> 감금이라고 표현하면 의사선생님들 비위가 상하겠지만 푸코가 병원이나 학교나 감옥이 사실 상당히 비슷하다고 말한 적도 있잖아. 그런데 찬드라의 경우에는 감금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거지.



그는 만약 그녀가 백인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고 했다. 단지 영어를 한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학원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대접을 받고 있는 이 나라에서 찬드라가 만약 영어권의 백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상황은 완전히 다르게 전개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내게 한다.

지> 아마..

나는 무언가를 물어보려다가 멈추고 다시금 주변을 되돌아본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근대의 뿌리와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고 조종하고 있는 모습을 찬드라 사건을 통해 좀더 생각해 보았다. 길들여진 눈, 길들여진 귀, 무엇보다 길들여진 두뇌를 지배하는 것이 관습과 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인간이라는 동물은 그가 살아온 토양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 그것을 인식하고 벗어나는 방법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지> 찬드라 구릉 사건이 보여준 건 무엇일까요. 이번 일에 대한 의미랄까 뭐 그런 것을 평가해 보신다면?
최> 우리 사회의 난폭성과 야만적 인종주의를 극명하게 보여 줬다고 생각해. 이민족에 대해서 굴종적 사대주의 아니면, 멸시와 학대밖에 선택할 줄 모르는 ‘못난 한국인’들은 수치감을 느끼고 자성을 좀 해야 해. 우리 내부의 인종주의를 비판하고 반성해야 하는 거지. 서열화 된 국가의식에 바탕을 둔 외국인 대하기 말이야. 백인한테는 비굴할 정도로 친절하고, 유색인종에겐 잔혹하리만큼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모습은 비판하고 반성해야만 해.

지> 이번 월드컵 기간에 벌어진 외국인 노동자들 집회에 대한 무관심에도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이중적 잣대가 그대로 작용한 것이네요.
최> 그렇지. 우리가 이웃(타자)과 같이 살 수 있는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그것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고쳐야해.

지> 풀꽃세상이 이 문제에 대해 굉장한 시간을 보냈고 모금운동도 하셨죠.
최> 모금운동은 나중에 '녹색평론' 10주년 즈음되어서 김종철 선생님(녹색평론 발행인)하고 나하고 이야기 하다가 찬드라 이야기를 다시 하면서 나온 거야. 그리고 나서 김 선생님이 ?녹색평론?에 ‘찬드라 사건’에 대해서 원고를 한번 기고하는 게 어떻겠냐 하시더라고. 그렇게 찬드라 사건을 다시 세상에 환기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참회모금운동’을 제안했고, 참회모금 운동을 하게 된 거지. 아마 찬드라씨와 전생에 인연이 있나 봐.

다시 인연을 강조한다. 그리고 한 번 맺어진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한다. 얼마 전에 찬드라 꾸마리 구릉이 네팔에 돌아간 뒤에 히말라야를 직접 찾아가서 재판소식을 전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재판진행과 관계없이 찬드라 구릉 사건은 두고두고, 커다란 죄책감으로 남아 있었다고...

지> 일각에서는 환경운동 하는 단체가 인권운동에까지 신경 쓰고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 일면에는 찬드라 참회 모금운동이 인권운동으로 비출 수도 있지만, 환경문제를 야기한 물질만능주의, GNP지상주의 등이 바로 찬드라 사건이라는 비극의 핵심인데, 그런 가치관이 환경문제를 일으킨 가치관과 같은 뿌리라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찬드라 사건에 대한 풀꽃세상(환경단체)의 개입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절대.





히말라야를 꿈꾸다.


  지> 예전 학교에 계실 때 가끔 인도 여행 이야기를 하셨는데 요즘도 그쪽으로 여행 다니세요?
최> 기회만 있으면 가려고 해. 내 관심은 오로지 인도든 네팔이든 히말라야거든. 히말라야의 설산이라기보다는 그곳 소수민족이 내 관심사야.
지>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세요?  

최> 티베탄, 라다키, 네팔리, 구릉족, 셀파족 등... 히말라야의 소수민족들은 우리(시대)가 잃어버린 것들을 지니고 있지. 그나마 산업화 이전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그들로부터 배우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더욱 실감하고 하는 것이 결국 내 문학의 화두가 될 거야.
지> 거기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만나셨죠?
최> 그래, 그때 난 산업사회가 유일한 삶의 모델인가, 라는 회의와 고민이 있었거든. 그러던 차에 라다크에 갔고 마침 헬레나 여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한국에서 온 작가라고 만남을 요청했어. 헬레나가 만난 첫 한국인인 셈이지. 그때 <오래된 미래>에 대한 이야기, 점점 붕괴되는 라다크에 관한 이야기, 산업사회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 나중에 헬레나를 만난 이야기를 ‘녹색평론’에 기고했지. 한 번 찾아서 읽어봐.

지> 그곳에서 선생님께서 고민하시던 대안을 찾으셨나요?
최> 아직 문명화가 덜 된 네팔과 라다크인들을 보면서 어쩌면 그들에게서 산업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어. 그때부터 환경과 생태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을 거야.

 지> 여행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입니까?
최> 신발 끈 메고 현관을 나설 때 아주 행복해. 국내든 외국이든. 외국은 주로 히말라야를 많이 갔지만 배낭 매고 돌아다닐 때 살아있는 것을 실감하는 거지. 하지만 ‘풀꽃세상’ 시작하곤 많이 못 돌아다녀. 바쁘니까.
지>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최> <녹색평론선집1>을 보면 환경 문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문제에 눈을 뜰 수 있다고 생각해.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고, 또 꾸준히 소개하고 있지. 왜 쇠고기를 비롯한 육식문화에 문제가 있고, 왜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필요한지, 우리 삶의 모습이 얼마나 문제인지 그 책을 보면 잘 알 수 있거든.  


지> 이번 풀꽃상을 ‘자전거’가 받은 이유도 거기에 있는 거네요.
최> 그래. 이번에 자전거가 풀꽃상을 받은 이유도 엄밀히 따지자면 그런 걸꺼야. 이젠 자전거를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찾아봐야겠지.

인터뷰가 어느 정도 정리될 무렵인 2002년 8월15일에 풀꽃세상 사람들이 ‘새만금 독립군 전차(자전차)부대'의 대원들을 이끌고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새만금 사업을 반대하는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회원과 전북 부안군 지역 주민들이 공동으로 17일부터 이틀간 새만금 살리기 전국 자전거 잔치 행사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萬物同根 - 모든 문제의 본질은 같은 뿌리에 있다.

지> 오전 집회 때 수경스님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잠깐 끊겼거든요. <오마이뉴스> 사진 통해서 보니까 선생님이 스님께서 절을 올리실 때 머리에 물 부어 주시고 계시던데 참 인상 깊었습니다.
최> 당시 수자원공사가 낙동강 하구의 오염된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리산에 댐을 지으려고 소동을 피웠고, 풀꽃세상은 그 어이없는 부당성에 항의하기 위해 풀꽃상을 그곳 계곡의 물봉선이라는 꽃에게 드리는 방식으로 대응했었어. 그때 역시 실상사의 세 스님들께서도 지리산 댐 건설을 반대하셨고, 우리는 그분들에게 인사를 드린 것이야. 풀꽃상을 받으신 이후에 수경스님은 본격적으로 환경운동 판에 뛰어드셨지.
스님은 새만금이든 댐 소동이든 북한산 파괴에 대해서든 그 본질이 같은 뿌리라는 인식을 하고 계셨고, ‘만물동근’(萬物同根)이라는 스님 생각은 우리 풀꽃세상의 그것과 다르지 않지. 작년의 삼보일배(三步一拜) 참회운동도 스님과 풀꽃세상이 같이 만든 작품이었기 때문에 땅바닥에 몸을 던지신 스님을 옆에서 모셨고, 이번 삼보일배 참회운동도 역시 모시게 된거야. 아마 스님과 전생에 육친(肉親)의 인연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스님을 존경하고, 스님은 나를 믿으시는 눈치이고. 기자들이 많이 와서 취재하지만 나오는 건 <오마이뉴스> 하나 뿐이야.

지> 삼보일배에 대해서 좀 자세하게 말씀해주세요.
최> ‘三步’ 세 걸음마다 ‘一拜’ 한 차례 절하기. 그 몸짓으로는 한 번에 2미터도 채 못 나가는데 적어도 3천 번 이상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무릎을 꿇고 팔꿈치를 대고 이마를 갖다대는 거야. 2001년 새만금 살리기 운동 일환으로 벌였던 참회운동이 바로 수경스님하고 풀꽃세상)의 합 작품이었어. 스님이 발상(發想) 하시고, 풀꽃세상이 그 의미를 확대했고, 진행도 했어.
그러니 내가 작년이나 올해나 삼보일배 하시는 스님을 옆에서 도운 일은 자연스러운 일인거야. 이번 북한산 살리기 삼보일배는 조계사(불교계) 차원에서 벌어졌지만, 역시 스님은 안 모실 수가 없었어. 스님은 삼보일배 하실 때 내가 모시면 편안해 하시고 그래.

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의미가 전달되었다고 봅니다. 이번 삼배일보 기도도 정말 힘드셨지요?
최> 비가 온다고 했었는데 내리지 않았어. 기온이 30도가 넘었을 거야. 풀 한 포기 허락하지 않는 아스팔트의 지열, 매연 내뿜는 자동차,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악취, 그런걸 맡으면서 이 세계가 거대한 오물덩어리 그 자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기에 충분해. 삼보일배 행렬은 부드럽고 연약한 초식동물이 사나운 육식동물 등허리를 타넘는 것 같아 바라보기에도 고통스럽고 처절하더라고.
그런데 그 순간에도 서울 한복판 일상은 여느 때와 하나도 다름없이 굴러가는 거라. 지나가는 사람들은 무심한 얼굴로 바라보고, 어떤 운전자는 짜증을 내면서 교통체증을 불만스러워하기도 했지. 간혹 시민들 중에 박수를 보내는 이도 있었고, 그냥 조용하게 그늘 아래 서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어. 세상의 반응이란 게 본래 다양한 법이라 자발적인 집단고행이 오히려 닫힌 가슴들에게 역설적인 설득력을 지녔던 것 같아.



삼보일배 기도가 진행되기 전날인 7월 16일, 법원은 북한산관통도로 일부 구간에 대한 공사중지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그날 삼보일배의 행렬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그 행렬이 비단 ‘북한산 개발반대’ 만을 위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근원의 뿌리가 같으니 그 뿌리를 캐내려는 몸짓이 아니었겠는가.
삼배일보 기도가 진행되던 중 조계사를 40미터쯤 앞두고 수경스님이 실신했다.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되셨는데 이때도 조직적인 ‘풀꽃세상 회원들’의 활약이 돋보였다고 한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회원의 도움으로 입원 수속을 마쳤고 수경스님의 소식을 각 언론사에 타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7월 25일 새벽. LG건설이 고용한 용역이 스님들의 농성장을 습격했다. 이때 수경스님을 비롯한 설치미술가 최병수 씨 등이 폭행을 당해 다시 병원으로 실려갔다.

지> 가장 힘드셨을 때가 언제였나요?
최> 작년 지구의 날 행사 때, 모든 환경단체들이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그 행사에 불참하자고 (내가) 제안했어. 새만금 살리기라는 단일목적으로 한국의 환경단체들이 2001년 행사에 불참하면 그것만으로도 큰 뉴스가 되고, 그런 여론이 결국 정부가 망국적인 새만금 사업을 포기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거든. 하지만 환경단체 대표자회의에서 내 의견이 묵살되었지. 그리고 난 뒤 수경스님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울음을 터뜨렸지. 스님과는 같은 코드이니까, 그분 앞에서는 흐느낄 수 있었겠지.

지> 수경스님만이 아니라 선생님은 여러 분야에 계신 분들을 잘 알고 지내신다고 들었습니다.
최> 환경운동 판에는 글패(문단)들보다 더 아름다운 분들이 많이 계셔. 글패들의 골목은 이 세상의 많은 골목들 중의 하나일 뿐인데, 그게 온 세상인 줄 알아. 하지만 이쪽 생명운동 판에는 정말 아름답고 깊은 분들이 많이 계시지. 그런 분들을 만나 같이 고민하고 부축하는 것은 이번 생에서 드물게 경험할 수 있는 큰 축복이라고 생각해.


이 사람이 사는 법

문학 행사가 끝난 날 저녁. 학생들과 교수 세 명은 운동장 구석에 앉아 두런거리며 술잔을 주고받았다. 두부, 김치와 대꾸리(됫병) 소주를 먹고 마실 때 시커먼 뿔테 안경을 쓴 교수 한 명이 학생들의 손을 바스라질 정도로 잡으면서 이야기한다. “열심히 해라, 열심히.”

지> 소설가로 또 환경운동가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역할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최> 작가의 가장 큰 책무는 좋은 글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어. 하지만 좋은 글이라는 게 당대의 현실문제에 무관심해야 가능하다고는 생각지 않아. 얼마나 당대 현실에 치열하게 정면 대응하면서 고민했는가, 그런 삶이 결국은 좋은 글이라는 결과로 드러나게 된다고 생각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일은 상업주의, 천민자본주의의 인간성 황폐, 비열해지는 시대정신 같은 표면적인 일이 먼저 떠오르지만, 무엇보다도 사물 혹은 세계에 대한 인간의 무례함이라고 생각해. 생명가치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그래. 파고들면, 결국 환경문제, 생태계 위기보다 더 심각한 당대문제는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 거. 작가는 태생적으로 언제나 먼저 신음하는 사람, 혹은 약자에 대한 연민, 폭력과 부정에 대한 분노가 그 감수성의 기반이라 생각하고 있어. 우리 시대의 약자는 여성, 자연, 노약자, 가난한 자들이겠지. 그 중에서 자연이 우리 시대만큼 무참하게 모욕을 당하고 모욕을 당한 적이 없어. 당연히 무관심할 수 없게 되었지. 보고야 말았고, 알게 되었으니까.



지> 환경운동 하면서 글쓰는 일을 병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최> 어렵기로는 어떤 삶이든 한평생 살아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잖아. 다행히 환경운동 하는 글쟁이로서의 삶이 나의 내부에서 자연스레 통합되고 연결되어서 내 경우에는 다행이라고 생각해. 삶과 글이 일치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

삶과 글이 일치하는 삶이라.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괜한 질문을 했다.

지> 대학 때 문학 공부하는 학생이나 문단에서 직접 창작활동을 하시는 분들 중엔 직접 현장에서 뛰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잖아요. 작가란 현실 문제에 맞대응하기보다 양자간의 거리를 두는 사람이 아니냐, 이런 얘기인데 선생님은 이것을 어떻게 보세요?
최> 책상머리에서 생산되는 관념의 문학, 설익은 감상주의, 혹은 천박한 욕망이 바탕에 깔린 상업주의문학은 문학과 삶에 대한 모독이지. 삶과 글이 일치하는 문학이 감동을 주지 않겠는가 싶어.

지> 선생님 소설을 환경문제를 다룬 본격 생태문학이라고 해야하나요?
최> 뭐라고 부르든 그것은 내 일이 아니지. 나는 아직 한편도 쓴 것이 없어. 이런저런 인연으로 책을 펴내면서도 내 문학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는 오만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지. 대중성, 상업주의하고는 무관한, 내 ‘꼴리는 대로’ 쓴 작품들인데, 그렇지만 왠지 만족스럽지 않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작품들이라, 정말 없던 일로 하고 싶을 뿐이야. 내 책을 돈주고 사서 읽은 사람들 때문에 이건 '연습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성이 안 차는 것은 사실이거든.

지> 이제 어떤 글을 쓰실 계획이세요?
최> 이런 말이 있어. “만약에 그것이 나한테만 중요하다면,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앙드레 말로의 말인데 젊었을 때 이 한마디 말이 나를 흔들었어. 난 작가의 책무란 일단 좋은 글을 쓰는 것이라 생각해. 하지만 좋은 글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생명이 존중되는 세상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보거든. 생명에 대한 감수성 없이 어떻게 좋은 글이 가능하겠어.

지> 선생님 글의 근원은 생명에서 비롯되는 거군요.
최> 그래, 그리고 그걸 알기 위해선 먼저 공부, 책읽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풀꽃세상은 환경운동 판에선 처음으로 책읽기 운동을 하고 있어. 환경 문제는 개인이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잖아. 그래서 세상의 변화와 개인의 성장이 함께 밀고 나가야 할 일이 되는 것이지. 개개인이 조금 더 성숙해지는 데 책읽기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

지>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요 최근에 녹색 평론이나 환경관련 소설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초기의 진지함과 긴장감이 많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 녹색평론은 귀한 잡지이지. 반공과 지역감정에 의존해 장사하는 거대언론사보다 녹색평론이 우리 시대에 백 배는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

지>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질문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선 풀꽃세상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고 하셨는데 그 근원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최> 풀꽃세상이라는 환경단체는 ‘아름다운 삶’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해.

그와의 대화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뭔가를 주섬주섬 집어준다. 풀꽃세상에서 발간하는 ‘풀씨’하고 그것보다 작은 책 ‘풀밭’이었다.

지> 이것들은 여기서 발간하는 책들인가 보내요.
최> 맞아. 회원들에게 정기적으로 보내지는 책이지. 좀 여유가 되고 나아지면 출판사도 해볼 생각이야.



  풀꽃세상을 나오는데 풀씨들이 모두 일어나 인사를 한다. 왕풀님은 자주 와서 무거운 것도 들어 달라고 하시고 최성각 그래풀은 활짝 웃으며 배웅을 했다. 나는 부끄러워서 도망치듯 빠져 나왔는데 그들은 먼저 사람을 존중하고 존경할 줄 아는 마음에서 그랬던 것이다. 전철 안에서도 종로 바닥을 걸어나오는 동안에도 그 풀씨들의 향기가 떨어지지 않았다.



취재, 정리: 지영균(kyuv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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