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도민일보에서
2006/1/16(월)
"힘들게 잡아도 고작 입에 풀칠" - 나홀로 조업체험  
"힘들게 잡아도 고작 입에 풀칠"
[현장 르포] 영동본부 구정민기자 나홀로 조업 체험
강릉 주문진 앞바다에서 연안어업 체험에 나선 구정민 기자(사진 왼쪽)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등을 밝힌 채 조업 중인 대진호에서 그물을 끌어 올리고 있다. 강릉/최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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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의 북한 수역 '싹쓸이 조업'에다 대형트롤의 동경 128도 이동(以東) 조업 등으로 어자원이 감소하고 어업용 면세유 가격의 급등으로 출어 경비조차 빼기 어려운 요즘, 동해안에는 혼자서 새벽 조업에 나서는 이른바 '나홀로 조업' 어업인들이 부쩍 늘고 있다. 선원을 두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험한 파도와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맞서 힘겨운 조업을 해봤자 수입은 고작 입에 풀칠할 정도여서 '나홀로 조업'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혼자 조업하다 바다에 빠지는 불상사가 빚어지는 경우도 발생하지만, 강릉 주문진항의 연안 어선 350∼400척 중 60%가 나홀로 조업이며 10∼20%가 부부 어업인들이다. 영동본부(강릉) 구정민 기자가 그들의 고단한 삶의 현장을 따라가 봤다.

하루벌이 5만원… 어선 60% 1인 출어 감수
어자원 감소·면세유값 급등 출항 절반 줄어


 12일 오전 3시 30분. 어둠이 짙게 깔린 강릉 주문진항 해경 파출소 주위로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오전 4시인 출항시간에 맞춰 미리 입·출항 신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다.
 

  파출소 앞에서 만난 대진호(자망선·4.96t) 선장 김주섭(52) 씨는 "날씨가 장난이 아닐 겁니다. 뭐하러 이런 고생을 사서 하려는지"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16살 때부터 배를 탔다는 김 선장은 주문진항에서도 유명한 이른바 '나홀로 어부'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혼자 안했지요. 말동무라도 있으면 덜 힘들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그물을 걷어봐야 하루 5만원 벌이도 못할 때가 많아요. 그러니 선원은 엄두도 못내지요."
 

  김 선장과 함께 입·출항 신고서를 작성한 뒤 부두에 정박 중인 대진호에 올랐다.
 영하의 날씨에 겨울 갑판은 이미 얼어 있었고, 난생 처음 입어보는 어색한 비닐 작업복 탓에 뒤뚱거리다 미끄러져 넘어지기 일쑤였다.
 "아이고, 이러다가 해 뜨겠네요. 얼른 출발해야 아침 8시까지 돌아올 수 있습니다. 서두르세요."
 호통소리에 겨우 자리를 잡자, 김 선장은 대진호에 시동을 걸었다. 이때가 새벽 4시 30분.
 

  십여척의 다른 배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주문진항을 빠져나간 뒤 넓은 바다를 만나자 대진호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작년 겨울에 비해 출항하는 어선의 숫자가 절반 이상 줄었다는 게 김 선장의 설명이다.
 

  얼어붙은 얼굴을 날을 세운 바닷바람이 스치고 지나가자 칼에 벤듯 얼굴이 따가웠다.
 

  20여분이 지났을까. 속이 울렁거리는 데다 입마저 얼어붙어 말 한마디조차 내뱉기 힘겨웠다.
 

  김 선장이 전날 새벽 그물을 쳐 놓은 곳은 주문진항에서 동북방으로 9마일 해상. 육지 거리로 환산하면 15㎞ 남짓 하지만 뱃길로는 1시간 30분이나 달려야 다다를 수 있는 곳이다.
 

  그물을 쳐 놓은 인근에 도착하자 김 선장은 암흑 속에서 자신의 그물 깃발을 찾느라 어군탐지기와 나침반을 주시했다. 예전에는 멀리 산과 별, 그리고 선장의 감각만으로 그물을 찾았다고 한다.
 

  김 선장이 갈고리가 달려 있는 긴 장대를 들고 나와 익숙한 솜씨로 깃발을 낚아챘다. 이제 125m 바다 속에 잠겨 있었던 그물을 끌어 올릴 차례. 양망기에 그물을 걸고, 그물이 엉키지 않도록 조심조심 당겨 보지만, 기대했던 만큼 고기는 잡히지 않았다. 청어철이라 청어가 대부분이었고 드물게 넙치와 소라, 조개 등이 끌려 올라왔다.
 

  "나 혼자 먹고 살려면 절대 이 짓 안 합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까지 애들만 4명입니다. 어떻게든 막내 녀석 대학까지는 가르쳐야 할텐데. 글쎄 우리 막내가 이번에 우등상을 받아왔잖아요. 허허, 그 놈 참. 아무리 힘들어도 그 놈 웃음 한 번이면 모든 걸 참아낼 수 있어요."
 

  정신없이 그물을 당긴 지 한 두시간쯤 흘렀을까. 어깨와 손목이 뻐근해 질 무렵, 그물의 마지막을 알리는 부표가 딸려 올라왔다. 칼바람 속에서도 몸은 땀을 토해냈다. 작업을 마치고 잠시 쉬는 사이 땀이 고드름처럼 엉겨 붙었다.
 

  "오늘은 그나마 10만원 벌이는 했네요, 오랜만에 사람 여럿이 탄 것을 이놈들도 알았나 보네요." 김 선장은 괜한 너스레를 떨며, 다음날 새벽 걷어올릴 새 그물을 풀었다. 약 2㎞ 길이의 그물이 모두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저 멀리 수평선이 붉게 물들며 새날이 밝았음을 알렸다.
 

  주문진항으로 돌아오면서 기자는 추위로 이미 감각을 잃어버린 손과 발처럼, 어업인들의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감각없는 오늘날의 어업정책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강릉/구정민 jungmkoo@kado.net

기사입력일 : 2006-01-15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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