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종현
2006/1/13(금)
위기가 클수록 위기가 제공하는 평화의 기회도 큽니다.  
[1기 10강] 정전 50년, 한반도 평화구상

위기가 클수록 위기가 제공하는 평화의 기회도 큽니다.

발표 박명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2003.11.28


박명림교수 “논문을 쓰면서 이름이 좀 알려지니까 ‘자기가 겪은 전쟁’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다며 그 현장에 함께 가자고 청하시는 분들이 점점 늘더군요. 한번은 장기수 아저씨를 모시고 지리산의 옛 격전지를 찾아갔는데, 산기슭에 이르자 갑자기 할아버님께서 ‘총알이 온다! 피해, 피하란 말이얏!’하며 정말 전쟁터에 있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뛰고 피하고 숨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다가 뒤로 쓰러지는 바람에 머리를 심하게 다치셨고, 치료를 했지만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지요. 정말 충격이었죠. 한동안 밤마다 그 장면이 꿈에 나타나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했고 여러 차례 집필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이요? 역사책에 들어있는 게 아니라 아직도 우리 삶에 굵게 생겨진 아픔인 것 같아요. 그 아픔이 조금이라도 치유될 수 있다면, 다시는 그런 아픔을 우리가 겪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런 일에 제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런 생각이에요.”

어쩌다 한국전쟁을 연구하게 되었느냐는 다소 평범한 질문에 이어지는 무거운 대답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연구는 집단죽음에 대한 대속, 영혼의 안식을 위한 레퀴엠의 의미를 먼저 가져야 하며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이 역사의 격랑에 휩쓸린 개인의 아픔에 함께 슬퍼할 수 있는 가난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엄청난 무게의 일임을 직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난 11월 27일 “정전 50주년, 한반도 평화만들기”를 함께 고민한 강좌시간은 무엇을 연구해 얼만큼의 성과를 냈느냐를 따지기 좋아하는 이 사회에서, 한 인간의 불행에 함께 슬퍼할 수 있는 박명림 선생 같은 참 연구자와 함께 전쟁·폭력·분단을 야기했던 한국전쟁을 제대로 보고, 그 위해서 평화·인권·통일의 화두를 다시 새길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박명림 선생은 오랫동안 해외 연구가들에게 의존했던 한국전쟁의 이론을 새롭게 해석한 정치 학자로, 정전 이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하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더욱 주목받은 중견 학자입니다. "한국전쟁에 대해 국내 연구자로서 가장 정확한 설명을 제출하겠다"는 학문적 집념 아래 시작된 박명림 선생의 한국전쟁 연구는 브루스 커밍스, 와다 하루키로 대표되는 해외 연구사가들의 이론틀을 거부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정전 50주년을 맞은 지난 2003년에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것을 주장하며 강연, 집필 등으로 누구보다 바쁜 한해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2003년 연말에는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수상, 한겨레 미래를 이끌 100인에 선정되어 그간의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기도 하였습니다.


통일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은 평양이지만, 열기만으로 평화정착되지 않아

박명림 선생은 ‘평화’에 대해 새로운 철학과 비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평화전략에 대한 논의에는 집중했지만, 이 땅에서 우리를 살리고, 후손을 살려낼 비전과 방법 같은 본질적인 논의를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평화 철학의 핵심은 ‘생명과 살려냄’입니다. 평화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살려내는’ 수단을 중요시하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번영’의 의미와 직결됩니다. 여기에 조약(Treaty) 혹은 약속의 의미가 더해집니다. 양보를 하며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평화는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박명림 선생은 한반도 전쟁위기에 주체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반도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것을 당부합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지위는 주변 열강의 이해관계에서 변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초라한 식민지의 지식인 신분에서 ‘동양평화론’을 주창하며 중국과 일본의 지성에게 큰 자극을 주었던 안중근의 삶처럼 ‘평화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전쟁을 막고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앞당길 수 있다는 사실에 유념하라고 말입니다.


이라크 추가 파병은 위헌, 일본은 평화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없어

박명림 선생은 현안으로 불거진 이라크 추가파병문제에 대해 오랜 기간 헌법을 연구한 학자답게 헌번 5조 ‘국군이 침략전쟁을 수행하지 않는다’를 들어 “한국의 이라크 파병은 위헌이다”라고 못 박습니다.
또한 유사법제를 통한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시도에 대해서 ‘일본 평화헌법은 연합국이 국제 조약에 의거하여 제정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은 헌법을 고칠 자격이 없으며, 평화헌법 개정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 나라는 일본의 침략으로 분단된 남한과 북한’이라는 파격적 주장에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의 이런 주장에 정말 충격을 받았던 것은 급격히 조락하고 있던 일본 평화운동 세력들이었다고 합니다. 2003년 10월경 일본에서 열린 학회의 기조발제에서 “침략을 막기 위한 일본의 평화헌법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적인 헌법으로 오히려 세계화되어야 할 것”이라는 박명림 선생의 참신한 주장에 일본 평화운동계는 평화운동의 새로운 테마를 잡았다며 크게 고마워 했다고 합니다.

박명림 선생은 “위기가 크지 않으면 위기 해결을 위해 전력투구하지 않게 됩니다. 위기가 클수록 위기가 제공하는 기회도 배가 됩니다. 지금 닥쳐온 한반도 전쟁의 위기는 오히려 기회입니다. 삶을 살려는 것처럼 절실한 본능이 없기 때문이지요.”

50년 전 세계사에서 가장 참혹하고 비극적인 전쟁을 치르고도 평화를 이루지 못한 우리 자신에 대해 냉정히 반성하고 성찰할 때만 한반도가 ‘100년 전쟁국가’*에서 21세기의 평화의 발신지로 세계사에 기여할 수 있다며, 이렇게 평화를 고민하고 공부하는 시민들의 모임이 희망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순간순간 인용하는 고전의 경구와 폭 넒은 문제의식과 열정의 강연으로 청중을 사로잡은 박명림 선생, 한국에 ‘기립박수’문화가 있었다면 박명림 선생의 강연은 앙코르-기립박수를 받았을 텐데, 맘껏 좋아하고 격려하는 문화가 아직은 부족한 듯 해 2% 아쉬웠습니다.^^
멋진 강연은 늘 실존의 문제의식으로 귀결되나 봅니다. 모두들 한 뼘씩 커진 키로 강연장을 나섰으니, 내일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평화의 메아리로 울리겠지요.


*100년 전쟁국가
한국은 1876년 개항이래 1970년까지 한국은 ‘긴 20세기’(the long 20th century)의 주요전쟁-청일전쟁, 중일전쟁, 2차 세계대전, 중국내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거의 전부 참여하거나 연루되어 세계사의 한복판에 들어가게 되었다.


박명림 선생의 강연을 요약하였습니다.
* 강연 요약문 보기 (문화일보 031201)



정리 한수정 (평화나눔 아카데미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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