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미스 성을 뒤로하고 북쪽 High Land(고산)지방으로 발길을 돌렸지.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의 접경지방부터 대략 스코틀랜드의 중부지역까지를 Low Land라 칭하고, 그 이북지역을 High Land라 칭하는데, 말 그대로 하이랜드(고산지대)로 들어서면서부터 지세가 험해지고, 잉글랜드 지방에서는 볼 수가 없었던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군.
하지만 모양새는 산이지만, 우리의 산들처럼 수목이 우거진 그런 산이 아니고, 산 아래에서 산 정상까지 나무 한 그루 없이 암석과 잡초로만 덮여 있는 그런 산들이야.
글라미스 성을 떠난 후 5시간 여를 달려서 인버네스라는 도시에 도착할 때까지 산사이로 굽이 굽이 돌아난 도로를 끝도 없이 달리는데, 나무 한그루 없이 우뚝우뚝 솟아 있는 산들과 암석들, 비와 눈이 섞여 흩뿌리는 날씨에, 산 하나를 돌면 갑자기 천지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짙은 안개가 길을 막아서는가 하면, 다시 한 굽이를 돌아나가면, 언제 안개가 있었냐는 듯이 깨끗한 길이 나타나기도 하고, 몇십 킬로를 달려도 마을 하나 없는 그야말로 광야같은 세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러다 산밑에 자리잡은 자그만 집 한채의 모습이 차창으로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날이 어두워지면서 나무 한그루 없는 산 그림자들이 주는 그 기괴한 분위기들...
한국에서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분위기였다네. 스산하다는 단어가 이런 정경을 표현하는데 적합하지 않은가 싶어. 기괴하다 싶기도 하고. 이렇게 몇십킬로를 달려도 인가 하나 없는 도로에서 차라도 고장이 나면 큰일이다 싶은 걱정이 앞서기도 하더군.
이렇게 5시간여를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도시가 바로 Inverness라는 도시라네.
하이랜드 지방에서는 가장 큰 항구 도시인데, 이 도시의 위도가 대략 북위 58도가 다 되어 가니 얼마나 북쪽인지 짐작이 가겠지?
나중에 집에 돌아와 지도를 찾아 보니 블라디보스톡이 겨우 북위 43도 밖에 되지를 않고, 사할린 섬의 최북단도 북위 55도가 채 되질 않더구만. 우리가 시베리아라고 부르는 지역의 시작하고 거의 맞먹는 위도니 얼핏 생각하기에는 엄청나게 추울 것 같지만, 한국의 겨울보다도 더 춥질 않다니 참으로 신기해.
영국 섬 전체가 가을이 되기 시작하면서 다음해 봄까지는 마치 우기(雨期)라도 있는 양 겨우내 비가 내리고 하긴 하지만, 온도는 영하로 
*하이랜드(고산지대)의 국도변 호숫가에서*
내려가는 일이 많지 않아서 그리 춥지는 않다더군. 다만 섬나라 답게 바람이 많아서 체감온도가 떨어지는 경우는 많더군.
그 괴이쩍기 까지 했던 하이랜드의 도로를 벗어나면서 도시의 불빛이 발아래 보이기 시작하는데, 속으로 반갑다 싶기까지 했다네.
밤 8시가 넘어서야 도착해서 숙소를 어떻게 찾을까 걱정이 컸는데, 다행스럽게도 크게 시간을 들이지 않고 숙소를 잡았지.
잠깐 내가 묵었던 숙소 이야기를 해 볼까 하네.
영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숙소의 형태가 바로 B&B라는 형태의 숙박시설인데, Bed(침대) 와 Breakfast(아침)의 약자로 B&B라 쓴다는구만. 제목만 갖고도 대략 짐작이 가긴 하지?
지금은 기업화되어서 방을 수십개씩 갖고 영업하는 큰 곳도 많지만, 원래는 보통 가정집에서 남는 방들을 여행자들을 위해서 제공하는 형태가 오리지널이라고 하더군.
예를 들면, 방이 4~5개쯤 되는 집에서 자녀들이 장성해서 출가를 한다거나, 대학에 진학해서 집을 떠나게 되어 남는 방이 생기거나 하면, 그 방을 숙박시설로 활용한다는 거야.
그러다가 명절이나 방학에 식구들이 집으로 돌아와서 빈방이 없게 되면 그 기간은 영업을 하지 않는게 보통이라고 하더구만. 런던을 비롯한 대도시에는 이름만 B&B고, 전문적인 호텔처럼 큰 건물을 갖고 영업하고, 아침 식사도 콘티넨탈(대륙식)으로 간단하게 제공하는 형태로 많이 바뀌었다고해.
하지만 지금도 중소도시나 시골은 전통적인 형태 그대로 운영하는 B&B들이 더 많다는군. 우리의 민박하고 비슷하지만, 아침을 제공한다는 점이 우리의 민박과는 다르고, 요금 계산이 방 당 얼마하는 식이 아니고, 숙박하는 사람당 얼마 하는 식이야.
아마도 아침 식사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러는게 아닌가 싶어. 그래서 대부분의 B&B는 가정집이며 동시에 숙박업소기 때문에 주인이 살고 있고, 아침 식사도 주인집 식당에서 먹는 경우도 흔하다더군. 그러니 영국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잠깐이라도 엿볼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하겠지.
우리가 인버네스에서 묵은 집은 3층짜리 집인데, 1층의 큰 거실을 식당으로 꾸미고, 1층과 2층을 주인 식구들이 사용하고, 3층에 있는 방 3개를 여행객들을 위해 쓰고 있었지. 스코틀랜드 북서부의 섬에서 태어났다는 주인 집 아주머니는 한국에서 왔다는 소리에 월드컵 이야기도 하면서 반가워 하더군.
그러면서도 잊지 않고 하는 소리가 자신이 태어난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가보지 않으면 후회할거라고 관광 안내원보다도 더 열심히 홍보를 하더군. 누구든지 영국을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관광이야 대도시에서 하더라도 숙박은 약간 시골로 나가서 손님방이 2~3개 정도만 있는, 주인이 나이 지긋한 중년 이후의 부부가 운영하는 B&B에 투숙한다면 아마도 가장 이상적인 영국 체험의 일부가 될거라고 생각이 드네. 푸짐
한 영국 전통식 아침 식사도 먹을만 한데 메뉴를 소개하자면, 토마토소스를 끼얹은 삶은 콩, 볶은 양송이 버섯, 베이컨, 쏘세지, 계란 후라이, 구운 토마토가 기본으로 나오고, 토스트(먹고 싶은 만큼), 씨리얼(먹고 싶은 만큼), 각종 과일(먹고 싶은 만큼), 각종 과일 주스(마시고 싶은 만큼), 커피나 영국식 차(마시고 싶은 만큼)를 아침 식사로 제공하지.
물론 각종 잼과 버터 그리고 신선한 우유는 기본이고. 또 모든 B&B주인들은 인근 지역의 유명한 관광지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으니 굳이 관광안내소를 따로 찾아갈 필요도 없다네.
우리도 처음 가는 도시에 밤늦은 시각에 도착해서 어디가 어딘지를 모르는 상황이었어.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고 주유소 종업원에게 B&B 밀집 지역이 어딘가를 물었더니(거의 대부분의 도시에 B&B 밀집지역이 있음), 친절하게 위치를 말해주고, 그것도 모자라서 밖으로 나와서 가는 길을 가리키면서 소상하게 알려주더군.
그래서 찾아낸 첫 번째 B&B는 빈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숙박할 수가 없었지만, 주인이 친절하게 직접 다른 B&B들에 전화를 해 가면서 숙박이 가능한 곳을 찾아주더군. 그냥 빈방 없다고 해도 그만인데 말이야. 저런 모습들이 바로 영국을 관광 대국으로 만드는게 아닌가 싶었어.
아주 작은 친절이 낯선 땅에 도착한 여행객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 우리도 깨달아야 할거 같더구만. 여기서는 은퇴한 부부들이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 아담한 집을 사서 방 2~3개 정도를 손님방으로 내주면서 B&B영업을 하면서 말년을 한가하게 보내는 이상적인 노후의 모습이기도 하다더군. 이런 형태의 B&B들에게는 정부에서의 세제혜택도 있다는 거 같아. 부러운 노후가 아닐수 없지.
인버네스는 도시 자체가 갖고 있는 여러 군데의 명소로도 유명하지만, 더 유명한 이유는 바로 미스테리의 괴물이 산다는 네스호 관광의 출발지로 더 유명하지.
스코틀랜드는 호수의 나라야.
크고 작은 수많은 호수가 스코틀랜드 전역에 걸쳐 있다네. 유명한 네스(Loch Ness-영어에서 호수를 의미하는 Lake란 단어를 쓰지 않고 스코티시의 원래 언어인 게일어에서 온 Loch란 단어를 씀. 지금도 북쪽의 도서지방에서는 이 게일어가 남아 있어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함)호도 그 많은 호수들중 하나이고.
스코틀랜드의 많은 호수들은 거의 대부분이 북동쪽에서 남서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오래전 빙하기 시대의 빙하 작용과 단층작용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형성이 되었다고 해. 네스호의 괴물에 관한 이야기는 몇해전 KBS에서도 방영이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호수의 총 연장은 39km에 달하고, 폭은 대략 1.5km정도 된다는군.
깊이는 가장 깊은 곳이 305m라니 내수면의 호수치고는 정말 깊은거지. 서해안의 수심이 대략 10∼20m 안팎이고 동해안도 깊어도 300m 안팎이라고 하는데 내륙 한복판의 호수 수심이 305m라니 정말 대단해. 1930년대에 어슴푸레한 괴물의 사진이 찍히고 난 후에 
*네스호의 모습과 호숫가 고성의 유적*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갖 설과 주장이 난무하다 시피 했었더군.
대략 살펴보면, 사진 조작설에서부터 시작해서, 호수 표면에 떠 다니는 부유물 착시 현상설, 바람에 의해 생긴 파도가 햇볕에 반사되면서 그림자를 만드는데 그 그림자를 잘못 보고 괴물로 오인했다는 음영 착시설, 호수 바닥의 단층 작용에 의해서 지층에 갇혀 있던 개스가 분출하면서 수면에 포말을 만드는데, 이 포말을 괴물로 오인했다는 설(이 개스 분출 현상은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었다고 함)등이 있고, 듣던중 가장 믿기 어렵고 약간은 황당하기 조차 했던 건, 호수바닥에 터널이 있어서 바다와 연결이 되어 있고, 그 터널을 통해서 괴물이 바다로 나갔다 호수로 들어왔다 할수 있다는 설이었다네. 그야 말로 설이니 뭐 믿거나 말거나 겠지만.
그동안 수십차례에 걸쳐 정밀 조사도 행해졌었다는군. 저인망 어선의 투망식으로 그물을 연결해서 호수 끝에서 끝으로 훑고 내려가는 조사에서부터, 음파 탐지기같은 첨단 장비를 동원한 조사, 해저 탐사선(소형 잠수정)을 동원한 조사등 수십차례의 조사가 있었지만, 한번도 괴물의 실체를 확인한 적은 없다고 해.
결국 두서너해 전 영국 정부가 예산을 부담해서 최첨단 장비들을 동원해서 정말 호수 끝에서 끝으로, 바닥을 다 뒤집어 놓다시피 한 조사를 한 끝에 네스호에 괴물은 없다고 공식적인 영국 정부의 입장을 정리했었다는군.
공식결과가 괴물이 없는 거라니 없다고 생각을 하긴 해야겠지만, 한번도 괴물에게 사람이 해를 입었다는 피해 사례 보고(?) 역시 없으니, 설사 있다 한들 아직까지는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괴물은 아닌 듯 싶은데, 이런 착한(?) 괴물 하나쯤 우리 사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지 않겠나 싶어.
우리 손녀 녀석도 이 괴물 이야기를 믿고 있거니와, 아이들에게 이런 착한(?) 괴물 이야기가 그리 나쁘게 영향을 줄 거 같지는 않아서 말이지. 어린 동심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도 그리 나쁘진 않을거 같은데 말이야.

*스산한 하이랜드 지방의 풍경*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네스호를 따라서 내려가던 발길을 중간에 꺽어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 찾아간 곳이 영국 전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중 하나라는 에일린 도난(Eilaean Donan Castle) 성이었다네.
이곳에 가서 스코틀랜드의 슬픈 역사를 듣고 나니 아름다운 성의 모습 뒷편에 묻혀져 있는 스코티시의 슬픈 역사를 보게 되는거 같아 가슴이 무거워 지더군. 그럼 에일린 도난성의 이야기는 여행기 7에서 해 보기로 하지.
아마도 여행기 7이 이번 여행기의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