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디를 스치듯 지나서 간 곳이 글라미스 성(Glamis Castle)이란 곳이라네.
이곳은 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외갓집으로 유명한 곳이라네.
이 곳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참고 삼아 한가지 말을 해두자면, 우리는 성(城, Castle)이라면 당연히 영화에서 보듯이 돌로 쌓아 올린 그런 요새 같은 성을 연상하지. 그런데 이곳에 와서 보니까 영국에서 성(Castle)이라고 하는 게 꼭 우리가 연상하는 그런 것만은 아니더라고. 여기서는 귀족들이 사는 대저택도 캐슬(Castle,城) 이라고 하더라고. 처음에 글라미스 캐슬이라고 하길래 나도 당연히 그런 요새 같은 성을 생각했었지. 그런데 와서 보니 대저택이더라고.
내 추측이지만, 아마도 옛날에는 귀족들이 사는 집은 주거용 집이면서 동시에 요새의 역할을 하기 위해 우리가 연상하는 그런 성을 짖고 살았기 때문에 그 전통 때문에 나중에도 꼭 요새 목적의 건축물인 아닌, 거주용 대 저택도 캐슬(성)이라 부르게 된게 아닌가 싶어. 왜냐하면 아주 오래된 귀족들의 저택은 집이 아니고, 요새용 성인 것들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야. 글라미스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지금 영국 왕실 이야기를 해볼까 해. 그래야 글라미스 성 이야기를 하기가 쉬워질 것 같아.
역사적으로 영국 왕실의 혈통이란 게 참으로 복잡해. 언뜻 생각하기에 영국왕실이니 당연히 영국 사람의 혈통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그렇지 않더구만. 지금까지 많은 왕조가 바뀌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외국(유럽대륙)에서 왕을 수입(?)해 온 경우도 있거든. 중세 영국왕실의 혈통은 프랑스 사람이었다고 해.
그래서 그 당시 영국 왕실 사람들은 영어를 쓰지 않았다고 하더군. 영어는 하층민이나 쓰는 언어였고, 당시에는 프랑스어를 궁중에서 썼다고 하더군. 우리는 조선이란 나라에 이씨 왕조가 단일 왕조로 조선이 망할때까지 지속되었지만, 영국은 영국이란 왕국에 여러왕조가 흥망성쇠를 겪은 거지. 더구나 영국 왕실은 장자 왕위계승만을 고집한게 아니고, 아들이 없을때는 딸에게도 왕위를 계승시키도록 했으니 더 복잡해질 수 밖에 없지.
여기서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후의 영국 왕위 계승을 잠깐 살펴 보면, 빅토리아 여왕 - 에드워드 7세(빅토리아의 장남) - 조오지5세(에드워드7세의 장남) - 에드워드 8세(조오지 5세의 장남) - 조오지 6세(조오지 5세의 차남,에드워드 8세의 동생) - 엘리자베스 2세여왕(현재 영국 여왕, 조오지 6세의 장녀))으로 이어지고 있지.
그런데 에드워드 8세 다음이 왜 자신의 아들이나 딸이 아닌 남동생에게 왕위가 넘어갔는가가 궁금하겠지? 기억들 하나? 윈저공과 심프슨여사의 러브스토리. 왕위를 포기하고 사랑하는 여자의 품으로 달려간 그 왕이 바로 에드워드 8세라네. 1936년에 왕위에서 스스로 물러나 동생에게 물려주고 미국인 이혼녀인 심프슨여사의 품으로 달려간거지.
그 바람에 엉겁결에 왕이 된 사람이 바로 조오지 6세(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이고, 왕비가 된 사람이 바로 킹홈과 스트레스모어의 백작의 딸인 Lady Elizabeth Bowes-Lyon, Queen Elizabeth The Queen mother(현 여왕의 어머니)라네.
이 조오지 6세의 부인이자 왕비의 친정집이 바로 글라미스 성이야.
그러니 현재 여왕의 외갓 집이 되는거지. 말이 나온 김에 한가지 더 쓰자면, 왕위를 버릴 만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만 우리에게 알려진 윈저공과 심프슨 여사의 이야기가 사실 여기 영국에서는 그리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더군. 거기에는 정치적인, 복잡한 당시의 상황도 깔려 있었는데, 1936년 당시는 유럽대륙에 2차대전의 전운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이지. 왕위에서 물러난 윈저공은 독일에 가서 히틀러도 만나고, 나찌당의 행사에도 참석하고... 뭐 그런 일련의 정치적 행동들을 많이 하고 다녔던 모양이야. 딱히 매국적인 행위라고 까지 하긴 뭐해도 결코 조국 영국에 득이 되는 일이 아닌 그런 일들을 많이 했더군. 윈저공이 히틀러에게 이용당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는구만. 그래서 사랑 이야기는 뒷전이고, 그런 일련의 행보들이 영국 사람들 입에서는 비판의 대상으로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군. 또 결국 왕위까지 버리고 달려갔던 심프슨 여사와도 결국은 이혼을 했었다니 무엇을 위한 사랑이었을까?
형의 돌연한 퇴위 덕분에 왕이 된 조오지 6세가 아주 똑똑한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조오지 6세를 지금도 칭송받는 왕으로 만든건 순전히 왕비였던 엘리자베스 여왕 모후의 덕이라고들 하더군.
조오지 6세가 잘 생긴 미남이긴 했지만, 아주 똑똑한 사람은 아니였다는게 정설이더군. 한눈에 엘리자베스에게 반한 조오지 6세(당시에는 왕자 신분)가 열심히 쫓아 다니면서 구애를 한 끝에 겨우 결혼 승낙을 받았다더군.
그런데 어느날 졸지에 왕과 왕비가 된 거야.
그때부터 왕비가 한마디로 독한 맘먹고 내조를 시작한거지. 2차대전의 발발로 런던이 대공습으로 불바다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정부에서 왕실을 지방으로 소개시키려 했다는군.
그런데 그걸 단호히 거부하고 런던 잔류를 결정한 장본인이 바로 왕비였다는군. 그 결정에 부군이자 영국 왕인 조오지 6세는 그냥 따라간거고. 폭탄이 비오듯 떨어지는 런던에 잔류하면서 폐허의 런던 거리와 병원을 누비며 전쟁에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잃지 않도록 부지런히 뛰어 다니는 왕과 왕비를 보고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했겠어?
2002년, 102세의 나이로 서거했을 때, 온 영국 국민들이 다 슬픔에 잠겼었다는군. 영국왕실에서 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보다 어쩌면 더 많은 인기를 누렸던 왕실의 식구였을거야.
챔벌린 내각이 독일과의 전쟁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 굴욕적인 뮌헨 협상에 조인까지 했지만, 결국 2차대전이 발발했고, 대전 발발과 동시에 수상에 취임한 윈스턴 처질의 첫 대국민 연설의 일성이 "우린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였다는군. `우린 승리할 것이다`가 아니고 `결코 항복하지 않겠다` 였다는데.... 항복이란 단어를 입에 올려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으로 독일에게 밀리고 있었다는 반증이겠지.
2차대전을 항복을 운운해야 할만큼 절박한 상황에서 승리로 반전 시킨 원동력은 처질 수상의 놀란운 지도력과 전략 전술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준 왕실 가족의 역할도 대단했었을거라고 생각이 들어. 이런 지도자들을 가진 이 나라 사람들이 부러운게 솔직한 심정이라네.
왕실의 혈통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흘러 가 버렸군.
빅토리아 여왕의 아들 에드워드 7세는 덴마크의 공주 알렉산드라와 결혼을 했어. 그러니 벌써 현 여왕의 증조부 대에서 외국인의 혈통이 섞인 셈이지. 그런데 더 재미 있는건, 현재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의 혈통이야.
빅토리아 여왕은 4남 5녀를 두었더군. 그런데 그중 장녀인 앨리스 공주가 헤세의 대공작 루이스와 결혼을 했고, 이 두 사람은 2남 5녀를 두었는데, 그중 한명인 빅토리아 공주가 밀포드의 후작과 결혼을 해서 2남2녀를 두었지.
그 2녀중 한명인 앨리스 공주가 이번에는 그리스의 왕자 앤드류와 결혼을 해서 1남 4녀를 두었는데... 그 1남이 바로 지금 영국 여왕의 남편인 필립 공작이라네. 비록 빅토리아 여왕이후 딸쪽의 혈통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족보상 한 여인 아래서 낳은 자식이니 결과적으로야 집안 식구인 셈이거든.
글라미스 성의 역사는 16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네. 당시에는 귀족의 여름 사냥용 임시 숙소로 지어진 것이었다는군.
그것이 17세기 후반에 들어와서부터 방어용 목적의 외성을 쌓아 올렸고, 그 안쪽에는 거주용 저택을 짖고, 수백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증축과 개축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는군.
지금 현재에도 백작부부가 살고 있는데, 지금은 저택의 대부분을 일반에게 공개하고, 자신들은 저택의 한쪽 일부만 사용하고 있다는군.
현 영국여왕의 외갓집이기 때문에, 여왕 모후가 생존시에는 여름 휴가를 이곳에서 나기 위해 여왕과 같이 와서 지내기도 했다는군. 대연회장, 가족 응접실, 침실, 무기 창고 등등 100여개가 넘은 방의 숫자도 대단하고, 방마다 진열되어 있는 골동품, 회화, 도자기, 무기 등의 가치만 따져도 웬만한 박물관 하나는 차리고도 남을 만큼이니 참 대단하지?
수십 에이커가 넘은 정원과 영지 그리고 한참 때는 상주 하는 하인, 요리사, 정원사의 숫자만도 50여명이 넘었다니(백작부부의 식구들은 제외한 숫자) 체육관을 연상케 하는 규모의 부엌도 그리 놀랄만한 건 아니겠구나 싶기도 했어.
얼마전 런던에 있는 햄프턴 궁에서 헨리 8세의 유령이 CCTV에 잡혔다는 뉴스를 봤는데, 여기 이 글라미스 성에도 유령에 얽힌 이야기가 있더군. 성 안의 한 방에 가면, 각종 무기와 사냥용품 등이 전시 된 방이 하나 있는데, 그 방의 한 벽에 창문이 두 개가 나 있어. 창문과 창문 사이 거리가 대략 한 8미터 정도 될까?
그런데 그 창문과 창문 사이가 그냥 판판한 벽이 아니고, 불쑥 튀어 나와 있지. 마치 방이 하나 있는 것 처럼. 하지만 문이 없는거야. 안내하는 할아버지의 말로는 원래는 방문이 있었다는군.
- 중간생략 -
그런데 실제로 건물 밖에 나와서 그 방이 있는 2층을 올려다 보면 창문이 세 개가 있는거야.
성의 모양이 아름다워서 유명하기도 하지만, 영국 왕비의 처가면서, 여왕의 외갓집으로도 아주 유명한 장소가 된 거지. 더구나 영지의 정문에서 성 건물 입구까지 들어가는 진입로의 모습은 실로 장관이라 할수 있어.
*글라미스 성의 진입로(뒷편 건물이 성채)*
*글라미스 성채의 전면(미모의 여인은 내 아내^*^)
*글라미스 성의 이탈리안 가든
* 성의 정원에서 바라본 성의 동측면*
이름: 33
스코틀랜드 여행기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