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33 2005/8/23(화) | |
[펌] 우리말과 법률 1 - 민법을 중심으로- 우리말과 법률 1 - 민법을 중심으로- ************************* 법학박사 이 진 기 이 글은 사법연수생 자치회에서 발행한 사법연수 25호에 게재하기 위해서 쓴 시론적 글로서, 아직 미완성이며 다른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지 본인의 생각을 글로 옮긴 것임을 밝혀 둡니다. ************************************** *** 법에 선행하는, 법률가의 가장 중요한 사회통제도구로서의 언어 언어는 인류정신사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언어는 중요한 대화의 도구이자 사고의 매체(인식매체)이다. 법률가에게, 언어는 가장 중요한 사회통제의 도구로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언어는 법에 선행하며 "언어 없이 법은 없다". 이것은 곧 언어가 법에 영향을 미침을 뜻한다. 왜냐하면 언어는 우리의 세계관에 대한 표준이기 때문이다. 언어가 세계관의 표준이라는 사실은, 외국에 가지 않았을지라도(경험이 없더라도) 그 나라의 언어를 익힘으로써 어느 정도 그 나라의 문화정신을 인식할 수 있음을 고려하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따라서 법은 언어가 제시하는 표준 아래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법률가는, 법을 유일한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인식하면서도 법이 언어의 특별영역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한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권리, 의무, 과실 따위와 같은 개념으로 구성되는 민법은 언어를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며, 이러한 법률개념을 공통의 무기로 하는 법률가집단에게는 단어(개념)가 특히 중요하다. 즉 단어는 입법안, 개별법률, 계약, 유언장과 법률문서를 작성할 때에 법률가의 주된 관심의 대상이 된다. 물론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직업인들도 그들 사이에 사고를 전달하기 위해 단어를 사용하나 그 단어의 중요성이 법률가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다음에서는 지금까지 거의 논의되지 못했던 법과 언어의 관계에 대하여 민법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 법과 언어규칙의 관계 법과 언어는 규칙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법률문제영역에 대한 규칙들은 법전편찬을 통하여 체계적으로 포섭될 수 있다. 다만, 법을 옷과 같이 언제나 필요할 때 갈아입을 수는 없다. 또한 언어(여기에서는 국어)의 영역에서도 규칙, 즉 언어규범의 체계화작업은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노력의 하나로 조선어학회는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아래에 있었던 1933년 〈조선맞춤법통일안〉을 만들었고, 그 뒤 조선어학회를 계승한 한글학회도 1980년 〈한글 맞춤법〉을 발표했다. 한편 국가적인 차원에서 문교부도 〈한글 맞춤법〉(문교부고시 제88-1호), 〈표준어 규정〉(문교부고시 제88-2호), 〈로마자 표기법〉(문교부고시 제84-1호), 〈외래어 표기법〉(문교부고시 제85-11호)을 고시하여 언어규범을 체계화했다. 그 후 국어정책에 관한 업무가 1990년 정부조직법의 개정(대통령령 제12895호)으로 문화부(현재의 문화관광부)로 이관됨에 따라, 현재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 국어정책과가 우리말과 글에 관한 종합계획의 수립·추진, 체계적 정리·보급에 대한 업무를 주관하고 있다(대통령령 제15722호[1998년 2월 28일] 제30∼34조). 이와 더불어 문화관광부 소속의 국어연구기구로 "어문정책전반에 관련된 연구를 주관하고, 특히 국어사전편찬, 각종 어문규정의 제정 및 홍보를 통하여 언어생활의 표준을 제공하고 각종 어문자료를 수집하여 국어 유산을 보호하는 한편 국어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도록 국립국어연구소가 설립되었다. 국립국어연구소의 연구성과는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의 완간 및 2000년 7월 7일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문화관광부고시 제2000-8호)의 제정으로 열매를 맺었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부칙은 표지판의 경우 2005년 12월 31일까지(제2조), 그리고 출판물은 2000년 2월 28일까지 이 표기법을 따라야 한다고(제3조) 규정하고 있다. 국어에 관한 고시의 법규성은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전통문화예술을 계승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문화예술진흥법〉(법률 제2337호[1972년 8월 14일], 법률 제5014호[6차 개정, 1995년 12년 6일])에 근거를 둔 것으로 보인다. 문화예술진흥법은 국가에 국어의 발전과 보급을 위한 계획을 수립·시행할 임무를 부과하고(제5조), 국어발전과 보급을 위한 제반시책을 심의하기 위하여 문화체육부(현재는 문화관광부)에 (자문기관으로) 국어심의회를 설치할 것을 규정한다(제6조 1항, 같은 법 시행령 제14∼22조). 나아가 국가는 한글맞춤법, 표준어규정, 외래어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등 국어사용에 필요한 사항(이하 "어문규범"이라 한다)을 국어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정한다(제7조 1항). 마지막으로 같은 법 제8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공문서 기타 서류의 작성(제1항) 및 교육 또는 공공용에 제공하기 위한 인쇄물, 방송광고물 등을 작성할 때 예술창작을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문규범을 준수할 것(제2항)을 요구한다. 그런데 문화예술진흥법 제8조는 "준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그 법문의 표현상 언뜻 보기에 강행법규처럼 보인다. 그러나 같은 법과 그 시행령은 법 제5조에도 불구하고 제8조의 강제수단 및 위반의 효과에 대해서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적용의 대상도 국가 및 자치단체로 제한하고 있다. 나아가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부칙도 강제수단 및 사후보장책으로서 이의 위반에 대한 제재를 알지 못한다. 결국 언어규범에 관한 고시는 행정기관 내부를 규율하는 규범으로서의 성격만을 가진다고 볼 것이다. 한편, 언어규범통일의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으나, 언어규범은 그 본질에 따르면 체계화, 즉 법제화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법률은 확정성을 생명으로 하는데,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인 '표준어'와 이를 소리대로 어법에 따라 적는 '맞춤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 개념이므로 확정성을 가질 수 없고 따라서 立法適狀에 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규범의 입법화는 "언어생활의 통일"이라는 요구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 언어규범에 관한 고시는 국가기관의 확인행위 내지 권고행위라 볼 수 있으며, 이의 준수 또한 공적 확인행위에 대한 신뢰보호의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나아가 고시된 언어규범도 모든 언어규범이 아니라 그 최소한을 체계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한글 맞춤법은 어느 특정분야에서 사용되는 특정규정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든지 사용하고 있는 일상 문자생활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규정대로 문자를 표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이는 규정 자체가 애매한 데도 원인이 있다. 다른 한편, 문화관광부의 고시가 행정부가 아닌 다른 국가기관인 입법부와 사법부를 구속할 수 있느냐가 문제된다. 국가는 입법활동을 통하여 국가의 의사를 실현한다. 다시 말하면 법률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사표시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법률은 문자를 매개로 하여 언어가 체현되고 지속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1948년 10월 9일 공포·시행된 〈한글전용에관한법률〉(법률 제6호)은 “대한민국의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므로 원칙적으로 법률도 한글로 표기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화예술진흥법 제8조 1항의 '국가'가 입법부와 사법부를 포함한다면 입법안 및 제정·개정된 법률, 명령에 대하여도 문화관광부의 고시로 규정된 어문규칙이 당연히 효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어려운 문제에 마주치게 된다. 왜냐하면 이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행정부 내에서 대내적 효력을 갖는 행정규칙인 고시가 행정부가 아닌 다른 국가기관에 의해 제정된 상위규범인 법률 및 명령을 간접적으로 통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지적한 것처럼 고시의 법적 근거를 문화예술진흥법에서 찾는다 할지라도, 이 법은 강제효가 없으므로 그 실효성을 확보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언어규범의 준수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통일적이고 올바른 글의 표기를 위해서는 글쓰는 이들과 글을 매체로 하는 사람들의 직업적 노력이 요구된다. ***외국의 입법례와 언어규범 법과 언어규범 입법화의 상관성에 관한 논의의 중요성은 외국의 예에서 볼 수 있다. 1804년에 제정된 프랑스민법전이 명료하고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표현으로 인해 프랑스어문체의 표본이 되었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인의 언어생활에 지표가 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문호인 Stendhal까지도 Balzac에게 보낸 편지에서 "la Chartreuse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문체를 다듬기 위하여 매일 아침 2, 3개의 민법규정을 읽는다"고 말했다(Dupr , l'Encyclop die des citations [R.Lindon, Le style et l' loquence judiciaires, 1968, 25 ff.에서 재인용]). 이와 비교하여 볼 때, 독일의 경우는 민법전의 제정이 언어규범의 통일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871년 독일제국이 성립되기 전까지 통일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던 독일의 개별국가(분방국)들은 각기 고유한 법제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언어영역에 있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져, 심지어 하나의 국가 내에서조차 통일된 언어규범으로서 '맞춤법'(Rechtschreibung)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표적인 독일어사전편찬자인 Duden도 "같은 학교내의 교사들 사이에 그리고 같은 관청의 언어교정관들 사이에 맞춤법에 관하여 전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반인들이 기댈 수 있는 권위 또한 없었다"고 당시의 실상을 회고했다(K.Duden, Rechtschreibung, in: Encyclop disches Handbuch der P dagogik, 2. Aufl., 1908, 321 ff. [331]). 이와 같은 법률과 언어규범의 분열은 산업과 상업 및 거래의 발전을 저해하는 중요한 원인이었다. 19세기에 이르러 국가사상(Nationalgef hl)이 성숙함에 따라 법과 언어규범통일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먼저 민법전의 제정과 관련하여 19세기 역사법학파의 태두인 von Savigny는 '민법은 언제든지 갈아입을 수 있는 웃옷과 같은 것이 아니라 일정한 관점에서 조명한 사람들의 생활 그 자체이다'(Vom Beruf unserer Zeit f r Gesetzgebung und Rechtswissenschaft, ersch. 1814, wiedergedr. in: Hattenhauer, Thibaut und Savigny, Ihre programmatischer Schriften, 1973, 95 ff., 102 ff.)라고 하는 한편 당시의 시대적 사정에 미루어 아직 민법전을 편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역설했고, 이 주장은 많은 지지를 얻었다. 민법이 사람들의 생활 그 자체라는 점에서 민법전의 편찬작업은 언어규범의 체계화와 성질을 같이 한다. 법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언어학자들도 국가에 의한 광범위한 언어규범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von Savigny의 제자이자 친구로서 역사언어학파의 창시자였던 J. Grimm은 역사법학파와 동일하게 이상적이고 올바른 발음체계가 아직 없다는 이유로 발음에 따른 표기법의 채용을 반대했다. 그 결과 언어규범의 통일도 민법전의 제정과 마찬가지로 통일독일제국의 건설을 기다려야 했다. 1871년 독일제국의 성립과 더불어 이제는 민법전을 제정할 수 있을 정도로 독일민족정신이 성숙했다는 인식이 무르익음에 따라 독일제국은 민법제정작업에 착수했다. 먼저 1887년 완성된 독일민법 제1초안이 1888년 간행되었고, 1895년에는 제2초안이, 그리고 마침내 1896년 8월 18일 최종 심의된 제3초안이 제국의회를 통과·공포되어 1900년 1월 1일 현행 독일민법(B rgerliches Gesetzbuch)으로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독일민법의 특징으로는 개념형성의 정확성과 개별 법원칙의 합치성, 일반조항을 통해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어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 등을 들 수 있다. 입법이유서도 "민법초안은 단순히 일반법사상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명확하고 정확한 법원칙을 설정하고 판단을 법전에서 연역할 수 있을 정도로 법원칙이 완결된 체계 내에 서로 관련성을 갖도록 특히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한다(Mugdan, Motiv I, 893 [Planck]). 독일민법전의 법문은 중후하고 장중하며, 단순·명쾌한, 그러나 다소간 권위주의적인 문체로 쓰여졌다. 한편 맞춤법통일과 관련하여 Duden은 1872년 독일어맞춤법(Die deutsche Rechtschreibung)에서 일반적으로 승인된 표기관행을 인정하는 한편, 읽기와 쓰기가 서로 다를 경우에 양자에 따른 표기가 모두 유효하다면서 표기를 단순화할 것을 역설했다. 그후 1876년 프로이센은 표기위원회를 설치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대부분의 주는 교육목적에서 개별적으로 1880년 제정된 프로이센학교철자법(die preu ische Schulorthographie)을 채용했는데, Bismarck는 같은 해에 맞춤법이 법률로 입법될 때까지 기존의 관행을 준수할 것을 지시하고 이의 위반을 행정처분으로 제재했다. 그 결과 학교와 국가기관의 언어규범이 분열되었다. 1890년 Bismarck가 실각한 후 프로이센교육성(Unterrichtsministerium)은 공적 생활에도 프로이센학교철자법을 적용하고자 시도했으나 제국관리의 반대로 결렬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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