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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7/24(일)
존재 위백규의 사상 재조명한 학술서 출간  

존재 위백규의 사상 재조명한 학술서 출간

       
   연합뉴스/2001.03.20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소설가 김석중씨와 경기대 안황권 교수가  호남
실학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ㆍ1727-98)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학술서 「존재 위백규의 사상과 철학」(삼보아트)을 엮었다.



이 책은 실사구시 학문이 싹틀 무렵에 태어난 존재 선생이  학자로서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일궈낸 철학 세계를 논문으로 살피는 한편 문학적 업적도 시편  등
작품을 통해 재평가했다.



엮은이들은 "존재 선생이 호남실학의 3걸로 지칭될 말큼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고 전제한 뒤 "이 책이 그를 새롭게 인식하고  그의
학문과 사상, 문학을 후학들이 공유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존재 선생은 자신의 술회처럼 '지벽(地僻)' '인벽(人僻)'
'성벽(姓僻)' 등 삼벽(三僻)의 불리한 여건 속에서 학문에 정진해 독자적  실학사상
의 틀을 마련했다.



그는 스물 다섯 나이부터 17년 동안 충청도 덕산에서 제자를 기르던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ㆍ1681-1767)를 매년 찾아가 학문적 토대를 두터이했다. 존재는  스승
이 죽은 뒤 고향에 머물며 향촌의 교화와 지역발전을 위해 힘쓰는 한편  저술활동에
도 정열을 쏟았는데, 정조는 그가 엮은 세계인문지리지 「환영지」를  보고  감탄해
조정에 나오도록 했다.



한양으로 올라온 선생은 나라의 기강과 선비들의 악습을  바로잡고  부정부패를
없애야 한다는 등 폐정을 지적하는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특히 조정의 정책을 논한
< 만언봉사 >에서 성균관 유생들을 가리켜 "1년 내내 책 한권 변변히 읽지 않고  끝까
지 의리 한 마디 나누지도 않으면서 무리를 지어 떠들어대고 관에서 주는 밥이나 축
낸다"고 통박해 미움을 샀다.



한미한 시골에 살던 '한낱' 무명 선비가 배경 든든하고 세력 강고한 성균관  유
생들에게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 것이었다. 이후 유생들이 동맹휴학 등을 통해  그를
조정에서 밀어내려 하자 선생은 미련없이 낙향해 버렸다.



존재는 벼슬아치, 선비에서 아전, 농민에 이르기까지 기강을  확립해야  한다는
데 개혁의 초점을 맞췄다. 부패와 도둑질, 사치, 무절제, 무지를 없애야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실현방법을 향촌교육에서 찾은 선생은 훈장을 선거로 뽑
아야 하며 원만한 인격과 학업능력을 가진 학생은 관에서 경비를 부담해 교육시키자
는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또 지역발전이 곧 국가발전과 연관되므로 향촌의 문화수준을 높여야 하며  자율
적 조세정책과 자체 방어임무를 수행하게 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는  오늘
날의 지방자치제를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 왕권국가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혁
신적 개혁안이었다. < 사진 있음 >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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