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김방희 님 칼럼
2005/7/17(일)
문근영의 힘  

문근영의 힘


내용  

문근영을 아는가? 너무 순수하고 깜찍해서 ‘국민 여동생’이라는 별칭을 얻은 배우. 여린 외모와 심성과 달리 그는 엄청난 흥행 능력의 소유자다. 그것도 <어린 신부>라는 단 한 작품으로 이를 입증했다. 최근 개봉한 그의 후속작 <댄서의 순정>도 마찬가지다. 문근영을 빼면 아무 것도 자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영화는 평일 예매율 70%를 기록했다. 개봉 첫 주에 50만 관객을 가볍게 돌파했다. 대작이 아닌 소품 영화로는 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모든 감독들이 그와의 맞대결을 피하려 든다는 얘기가 결코 과장은 아닌 셈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모두가 이제 겨우 19살을 꼭 채운 여고생에 관한 얘기라는 점이다.

며칠 전 그를 처음 만났다. 물론 영화 <댄서의 순정>을 통해서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했다. 돈을 벌기 위해 우리나라에 입국한 중국 교포가 불우한 댄스 트레이너와 만나 춤과 사랑을 배운다는 것이다. 제목 그대로 댄서의 순정에 관한 영화다.

과연 문근영은 대단했다. 그는 영화의 모든 순간과 장면을 지배했다. 그의 표정과 대사, 그리고 동작 하나하나는 다른 모든 것을 압도했다. 그의 존재 외에 다른 배우들과 배경, 그리고 그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은 사실상 빛을 잃었다. 예를 들어 남자 주인공이 시련을 당하는 대목은 눈물을 자아내게 고안됐다. 영화 문법에 따르자면 관객은 여기서 울어야 한다. 그러나 이 장면을 외면한 관객들은 정작 문근영이 반딧불이에 대해 설명한 후 이렇게 되묻는 상황에서 눈물짓는다. “아즈바이(아주버니의 중국 교포식 발음)는 사랑을 믿슴까?”

문근영의 이런 힘은 사실 뛰어난 용모나 연기력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빼어나게 잘 생겼거나, 연기를 잘 하는 편은 아니다. 그것이 다른 여배우와 다른 점이다. 그의 매력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잃지 않은 그의 착한 품성과 강한 용기에 기인한다. 그는 마지막 빨치산을 조부모로 두고 있다. 그 때문에 겪었을 그의 불우한 가족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놀라우리만치 낙천적이며 건강하다. 그는 수입의 상당 부분을 선행에 쓴다. 사서인 어머니를 위해 도서관을 짓겠다는 꿈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런 품성과 행동이야말로 홍보용으로 급조된 기획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많은 관객들이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런 식의 연예계 신화를 손꼽아 기다려왔다. 연예계의 온갖 추문과는 다른 부류의 얘기 말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그의 품성과 행동을 통해 10대의 건강성을 믿고 싶어하며, 우리 사회의 미래를 낙관하고 싶어한다.

문근영이 분한 <댄서의 순정>의 장채린은, 우리 사회에 중국 교포 문제를 던진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애써 잊거나 무시하는 중국 교포의 문제를 다시 꺼내든 것이다. 대부분 대의를 위해 고국을 떠났던 독립 운동가들의 후예를 우리는 과연 무시하고 방치할 것인가? 심지어 우리는 세상 물정을 모르고,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이유로 그들을 이용하기까지 해왔다.

<댄서의 순정>은 체제가 다른 척박한 이국 땅에서 살아남은 그들이 실은 우리보다 더욱 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근영 개인이 가진 착하지만 강한 이미지를 통해, 중국교포 문제를 그 어떤 말이나 글보다도 효과적으로 제기한다. 문근영은 진부한 소재와 최루성 스토리 라인 탓에 자칫 삼류 영화로 전락할 뻔한 영화를 구원했다. 동시에 우리 10대의 건강성과, 우리 사회의 잠재력을 되살려냈다. 이것이 진정 문근영의 힘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문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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